잠깐 T-34/85의 전설적인 전투이야기가 나왔기에 이번에 제대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타이거 II가 어쩌고 T-34는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글레두프 전투를 정리한 것입니다. 하도 난독증 환자가 많아서 이런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라 안타깝군요.
다시 한 번, 타이거 II는 타이거 I 다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전차입니다. 미니어처 모델로는 타이거보다 더 많이 샀을겁니다.
소련전차병의 눈으로 본 T-34 (2부)
1944년 8월 11일, 6근위전차군의 오스킨Oskin(사진 참조)과 이부슈킨Ivushkin의 T-34-85 두 대가 보병을 태우고 폴란드 오글레두프Ogledow(지도 참조)로 접근했다.
주변 마을에 독일 전차 여러 대가 파괴되거나 방기된 것을 보니 독일군은 후퇴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들판에 전차를 세우고 건초더미로 위장했다. 혼자서 3m 높이로 주목을 끌었기 때문에 밤새 다른 건초더미도 높게 쌓았다.
13일 오전. 짙은 안개가 위장효과를 더해주었다. 오전 7시, 이부슈킨은 몇 대의 전차소리를 들었는데 소련군은 처음 보는 신형 타이거 II 전차 11대였고 보병수송장갑차 여러 대가 따라오고 있었다.
“골짜기에서 괴물전차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모래 위에서 미끄러졌다. 코로봅소령이 왼쪽에서 무전으로 ‘적이 온다’라고 무전을 쳤고 나는 ‘서두르지 마라. 400m에서 요격한다’라고 말했다.
저는 그림의 헨셀형보다 유선형의 포르쉐형 포탑이 더 마음에 듭니다.
겨우 492대만 생산되었고 그 당시에는 이미 제공권을 빼앗긴 상태라 비운의 전차였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전차가 나타났다. 서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서 세 번째 전차가 나타났을 때에는 첫 번째 전차가 이미 이부슈킨의 전차를 지나쳤다.
그는 “쏠까요?”라고 물었고 나는 “발사!”라고 대답했다. 오스킨의 전차가 건초더미에서 포신을 드러내고 몇 번 흔든 후에 발사했다. 적 전차의 측면에 검은 구멍이 계속 났다. 전차 두 대가 불타기 시작했고 세 번째 전차가 선회하며 오스킨을 상대하려고 했지만 미끄러져서 움직이지 못했고 끝장났다.
나는 모든 부대에 “307-305” 무전을 쳤고 포병사단의 30문이 오글레두프를 뒤덮었다.
그날 밤, 오글레두프 동쪽 300m 지점의 고지 남쪽면을 점령했고 3전차대대 전차 두 대와 기관총중대가 마을로 들어가 적을 소탕했다. 마을 중간에 버리고 달아난 타이거 II가 더 있었다. 이 전차를 보고서야 신형전차라는 것을 알았다. 오스킨은 팬저 3대(사진 참조)를 격파했다고 보고했었다.
"2시간 후, 전장은 조용해졌다. 정찰병이 오글레두프 근처에 말짱한 전차 두 대(사진 참조)가 있다고 보고했다. 선회하다가 모래에 빠졌다. 좌측에서도 한 대를 더 발견했다. 습지대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서류를 그대로 두고 갔다. 신형전차는 68톤의…”
그렇지만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신형전차는 더 남아 있었다. 접근하던 보병이 Tiger II의 포격에 발이 묶이자 IS-2 한 대가 투입되었고 2대를 격파했다.
122mm로 독일의 모든 전차를 상대할 수 있었지만 겨우 28발만 적재해서 난감했던 전차입니다.
“동트기 전, 중대장 클리멘콥의 전차소대가 오글레두프 부근에 자리 잡았다. 적 전차가 집과 덤불 뒤에서 포격을 하자 보병이 멈춰 클리멘콥에게 보고했다. 클리멘콥 동지는 높은 지대에서 두 발을 쏘아 적 전차가 숨어있던 집을 부쉈다. 적이 후퇴했지만 트랙에 맞고 주저 앉았다. 적은 전차를 버리고 달아났다. 보병이 전차를 노획해 포탑을 돌리고 적에게 발사했다.”
타이거 II 7대가 무크레Mokre에서 이동했다. IS-2 한 대가 800m 거리에서 포격했고 2대를 파괴했다. 독일전차는 후퇴했다가 재집결해서 푸니키Poniki로 접근했는데 다시 다른 IS-2가 매복해 있다가 1km 거리에서 한 대를 격파하자 나머지는 달아났다.
8월 11일~13일 3일 동안, 타이거 II 7대가 완파되었고 6대가 거의 고스란히 노획되었다. 한 대는 지휘관 전차로 지도와 신형전차 설명서가 있었다. 8월 16일, 독일 501중전차대대 포로는 원래 타이거 II 20대와 4호전차 20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26대만 남았다고 실토했다.
평소 많은 사람의 상상 속에서는 이런 전투가 그려졌을텐데요. 오글레두프에서는 정반대였습니다.
여기에서 501중전차대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북아프리카 데뷔전에서는 연합군을 상대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지만 결국 튀니지전투에서 항복하면서 소멸되었다가 재편되어 다시 동부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바그라티온전투에서 단 한 대의 전차도 남지 않는 사실상 전멸했고 막강한 타이거 II로 재편되어 첫 번째 전투인 오글레두프에서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생존하다가 영국군에게 항복했습니다.
재편시에 타이거 II로만 재편된 것으로 아는데 어느 말이 맞는 지를 모르겠군요.
가장 왼쪽이 501중전차대대 마크입니다. 생쥐기사로 잘못 알려진 505는 중장갑 기사가 맞습니다.
“누가 어느 전차를 격파했는지 구분하기 힘들다. 2개 대대가 동시에 포격을 퍼부었고 포병대대 2개와 자주포 연대 2개도 가세했다. 지상공격기도 전과를 올렸다. 오스킨의 전차가 3대를 격파하고 1대를 파손시킨 것은 분명했다. 오스킨은 소련영웅 훈장을 받았고 포수는 레닌훈장을 다른 승무원도 훈장을 받았다.”
클리멘콥의 IS-2, Tiger II 14와 15 격파
우달롭의 IS-2, Tiger II 2, 6와 7 격파
벨랴콥의 IS-, Tiger II 16 격파
오스킨, Tiger II 8, 9와 10 격파
소련군은 노획한 전차를 쿠빙카로 끌고가 분석했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1. 엔진과 트랜스미션 안정성 부족
2. 복잡한 기계부품. 20 km/h의 느린 속도와 좁은 작전범위
3. 타이거 I과 팬저보다 떨어지는 장갑품질. 3~4발 직격탄을 맞으면 관통은 아니어도 상당한 파손. 용접품질 허술
4. 전면장갑은 관통불가. 152mm와 122mm 철갑탄과 고폭탄 포탄으로 중파가능. 트랙과 기계부품의 파손
5. BS-3 (100mm)와 A-19 (122mm) 대전차포 철갑탄은 1~1.5km 거리에서 전면장갑 관통가능
6. 소련85mm와 미국 76mm 대전차포는 800~2km 거리에서 측면장갑 관통가능. 미국탄이 더 효과적
7. 소련 76mm Zis-3와 F-34 포는 측후면장갑 관통불가능
8. 킹타이거 KwK 43 포는 대단한 성능이며 소련 IS-2 전차의 122mm와 비슷한 수준
T-34 포탑은 처음부터 전기구동이었는데 승무원은 수동조작을 더 선호했다. 레버를 위 아래로 움직여서 포탑을 움직였는데 전투 중에는 잊어버리고 수동조작을 했다.
85mm 장포신은 주행이나 전투 중에 땅에 처박히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T-34/85 포신은 4.6m로 작은 웅덩이를 지날 때에도 포신이 땅을 긁을 수 있었다. 부주의하게 발사하면 꽃술처럼 포신 끝이 갈라졌다.’
한국전쟁 사진이지만 이런 식으로 파손되는 것을 말합니다.
T-34는 적전차뿐만 아니라 야포와 보병에게도 사신과 같았다. 참전용사의 회고를 보면 전차 몇 대를 부순 정도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보병 수십 명부터 수백 명을 죽였다. T-34 포탄 대부분은 고폭탄과 대인탄이었다. 1942~44년 기간 동안 보통 100발을 보관했는데 그 중에 75발이 고폭/대인탄이었고 25발(4발은 텅스텐심) 철갑탄이었다.
85mm부터는 36발이 고폭/대인탄, 14발은 철갑탄, 5발이 텅스텐심 탄이었다. 전투상황에 따라 대인탄과 철갑탄의 비율을 다르게 가져갔다.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는 정조준하지 않았다. 고참은 절대로 멈추지 말고 움직이면서 하늘이던 땅이던 마구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래서 신참은 첫 번째 전투에서 절반의 포탄을 소비하는 일도 잦았다.
85mm는 76mm에 비해 절반밖에 안되는 31개 탄창만 적재했기 때문에 전차장 옆에 있는 기관총/통신병은 사실상 통신병 역할이 전부였는데 독일보병이 판처파우스트 등으로 무장하면서 근거리 전투에서 매우 중요해졌다. 작은 구멍으로 안보이면 운전병을 옆으로 밀어내고 전투를 벌였다.
심지어 해치를 열고 권총을 쏘는 일도 잦았다. TT 권총, 리볼버, PPSh 기관단총이 보급되었는데 기관단총은 시가전에서 포나 기관총 사각이 나오지 않을 때에 사용했다. 무전기를 포탑으로 옮기고 그 자리는 탄약을 보관했다. 31개 탄창 중 21개를 그 자리에 보관했다.
독일 대전차화력이 강화되면서 시야확보가 점점 더 중요해졌다. 초기 T-34는 운전병과 전차장의 거울 잠망경이 있었는데 안전을 위해 유리가 아니라 유광철을 사용했다. 작은 잠망경으로 보는 시야가 얼마나 답답한 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상상이 갈 텐데 전차장이 전장을 볼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다.
76mm에서는 전차장이 이런 조준경을 돌리며 포수역할까지 해야 했으니 전투가 험난했습니다.
첫 해는 그대로 사용하다가 유리 프리즘을 삽입한 잠망경을 사용했다. 운전병은 이런 개선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전투 중에도 해치를 열어서 시야를 확보하고 싶어했다.
‘T-34 해치의 3중 잠망경은 정말 말도 안되었다. 조악한 황색이나 녹색 유리로 시야가 완전히 뒤틀렸다. 출렁이는 전차 안에서 그런 잠망경으로 주변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진흙이라도 튀면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전투 중에도 한 뼘 정도 열어둔 것이다.’
겨우 이 정도의 시야만 확보됩니다. 황당한 영화 퓨리애서는 360도 전방위로 접근하는 보병을 모두 걸러냅니다만...
그래서 이렇게 해치를 열고 운전했습니다.
이베이에서 별걸 다 파는군요. T-34 운전수용 잠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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