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 국가자격증 갱신기간이라 하루 하루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출판사 준비한다는 핑계로 밤낮이 바뀌어 퍼져 자는 남편과의 이혼(정말?)을 고민하는 아내를 위해 모처럼 영화 두 편(더 레이디와 이웃사람)을 보고 왔습니다.
더 레이디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를 미얀마 국민들이 부르는 애칭입니다. 외국에서는 수치 여사를 철란(Steel Orchid)라고 부르죠.
정치에 큰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것이 당연한 옛 버마(현 미얀마), 그리고 젊은 분들은 잘 모르는 철의 여성 아웅산 수치 여사의 투쟁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저는 84학번이라 영화 속 장면들이 어제의 기억과 같았고, 수치 여사의 투쟁을 타임지 영어공부하며 감탄했었기 때문에, 안사람과 함께 가장 재미없을 수도 있는 2시간 12분 영화를 선탰습니다.
'왜 군부의 잔인한 진압이 제대로 표현 안되었지?' '왜 수치여사의 고통을 이렇게 밖에 표현못하지?' '왜 미얀마 사람들의 삶은?' '왜?...'하는 불만이 있었지만 상영관을 들어갈 때부터, 아니 영화를 선택할 때부터 '저는 당신의 삶에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였기에 12분 단편영화처럼 즐겼습니다.
11년 동안의 가택연금 중, 미얀마 시민들을 향해 철문 안에서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일부러 참지 않았습니다.
주말인데도 큰 상영관이 텅비어 있어서 그녀를 위한 눈물을 참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다큐성 정치영화가 아니라 수치여사와 그 가족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긴박한 긴장감이나 큰 액션 신이 없어서 지루하게 보실 수도 있는데, 한 번은 보실만 합니다. 특히 대학생은 반드시 봐야 할 영화입니다. 제 말을 믿고 친구나 애인을 끌고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양자경씨의 변신이 놀랍습니다. 상당한 싱크율을 보여주며 '게이샤의 추억이나 와호장룡'보다는 초기 '예스 마담'이 기억에 더 남아있는 저로서는 그녀의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살을 많이 뺐더군요.
참고로
미얀마 국민의 열망과 수치여사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독재는 더욱 단단해졌고 66살의 수치여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미얀마의 민주화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그녀가 연금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것도, 군부가 조작된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위키에서 문단 하나를 가져와 봅니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연설 중 하나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연설이다.
이 연설은 “부패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다.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부패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는 거기에 복종하는 사람을 타락시킨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볼 때마다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드는 그녀의 사진 하나를 가져와 봅니다.
국민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군부 놈들도 이 갸날픈 여성 하나 어쩌지 못하고 애먹습니다.
상영관 불켜지자 마자 안사람 버려두고 화장실로 급하게 갔더니만 안사람이 '울었냐?'하더군요.
고등학생 딸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다음 주말까지 상영관에 걸려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암살, 딸이 정치 리더라는 초간단 프로필은 똑 같은데, 워낙 다른 두 딸입니다.
두 딸의 사진만 놓고 봐도 한 눈에 드러납니다.
수치 여사를 모 딸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모욕 중의 모욕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돌아가는 판세로는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정치리더와 함께 하지 못하는 미얀마 국민들이 불쌍하듯이, 존경할 수도 없고 존경해서도 안되는 정치리더를 따라 다니는 한국 현실도 불쌍합니다. 상영관에서 흘렸던 눈물은 어찌보면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나서 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 분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더 간단명료하게 해주었기에 결론부분만 가져와 봅니다. 보다 자세한 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가 정치적 이유로 살해당하고 딸이 정치에 나선 행로가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과 비슷하다 해서 가끔 비교를 하지만 같고도 다른 이야기.
박 위원장은 군부 독재 권력자의 딸이고, 수치 여사는 군부 독재에 의해 살해된 민주화 운동가의 딸이다. 박 위원장은 성장 후 5.16장학회 이사장, 육영재단 이사장, 영남대 이사장을 거치며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 일선에 나섰고, 수치 여사는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야당 지도자로 민주화 투쟁을 벌였다.
수치 여사가 26년의 망명, 귀국해 21년 중 15년을 가택 연금당한 것과 박 위원장이 '나도 사찰 당해 본 적 있다'는 비교불가로 보인다. 두 사람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면 간단한 일이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10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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