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처음 본 것이 대학 입학 후라 바다에 별로 호감도 없었는데 지방출장 길에 폭풍이 이제 막 가라앉은 바닷길을 배타고 1시간 달리면서 죽다 살아난 후에는 파도와 배멀미 트로마가 깊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배가 조금만 흔들려도 기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제 이야기 중에 바다와 해군 이야기가 적은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 퓨리 보충설명을 위해 2차대전 전차전을 정리하려다가 이탈리아해군 이야기를 정리한 김에 바다와 해군 이야기를 더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트라팔가를 정리하고 다음에는 아마 로마시대 해군을 정리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에 더 재미있는 주제가 떠오르면 바로 방향을 바꿀 것이기 때문에 장담은 못합니다.
트라팔가의 넬슨
푸른 하늘과 북서풍이 트라팔가Trafalgar 곶에서 32km 떨어진 두 함대의 장교와 선원을 반겼다. 1805년 10월 21일이었다. 간 밤에 몰아쳤던 집중호우도 해가 뜨면서 사라져서 이제 곧 펼쳐질 역사적인 해전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맑은 날씨였지만 경험이 많은 선원은 하루도 안되어서 돌풍이 불고 파도가 험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틀 전인 10월 19일, 피에르 샤를 장 바티스트 실베스트르 빌뇌브Pierre Charles Jean-Baptiste Sylvestre Villeneuve 중장이 이끄는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는 닻을 올리고 카디스Cadiz 항을 출발했다. 나폴레옹 황제는 4,000명의 병사를 싣고 나폴리로 가서 그 해역을 지나는 3차 대프랑스 동맹Third Coalition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나폴리, 스웨덴)의 모든 배를 나포하라고 명령했다.
바람이 완전히 죽어버려서 33척 중에 겨우 7척만 항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빌뇌브가 80문짜리 기함 뷔상토르Bucentaure((사진참조)와 나머지 전함을 먼바다로 끌어내는데 하루가 걸렸다. 함대는 지브랄타Gibraltar 해협을 향해 남동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카디즈를 봉쇄하기로 되어 있었던 허레이쇼 비스카운트 넬슨Horatio Viscount Nelson 중장은 목표물을 바짝 뒤따랐다. 10월 21일 새벽이 되자 넬슨은 적 함대에 14km 지점까지 접근했다. 그는 100문짜리 기함 빅토리Victory를 타고 27척의 전함에게 한 열은 기함 뒤를, 다른 한 열은 커트버트 콜링우드 Cuthbert Collingwood 중장의 100문짜리 로얄 소브린Royal Sovereign 뒤를 종대로 따르게 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영국선원은 바로 움직였다. 그들은 선미포 부근에 만들었던 임시 장교숙소를 허물고 탁자와 의자를 모두 치우고 해먹을 상층갑판 가림막 위에 그물모양으로 쳤다. 그리고 포수에게 심지, 장약과 포탄을 배급했다.
프랑스와 스페인 포갑판은 이미 전투태세를 갖췄다. 넬슨의 명성을 잘 알고 있는 빌뇌브는 넓은 바다에 나가자 마자 전투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해두었다.
넬슨은 빅토리의 선미 상갑판에 토마스 마스터맨 하디Thomas Masterman Hardy 함장과 함께 서 있었다. 넬슨은 왼쪽 가슴에 4개의 기사작위 훈장을 달고 있었지만 그 대가로 1974년 코르시카에서 오른쪽 눈을, 1797년 카나리 군도의 테네리페 공격에서 오른 판을 잃었다. 부상과 장애는 신체를 빼앗아 갔지만 정신력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롭고 강했다.
넬슨은 다른 누구보다도 프-스 함대의 파괴를 기다려왔다. 연합함대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어야 나폴레옹의 확장 야욕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넬슨은 전통적인 전술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2열 종대 공격을 결정했다. 두 함대가 서로를 마주보고 스쳐 지나가며 선측 대포로 포격전을 벌이는 것이 정석이었다.
유리한 바람을 타고 펀치력과 맷집으로 승부를 정하는 일반적인 전술을 완전히 벗어난 과감한 시도였습니다.
넬슨의 함대는 바람 불어오는Weather Gage 쪽을 잡아 연합함대보다 유리한 위치를 유지할 계획이었다. 연합함대가 보이면 함대는 2열 종대로 덮쳐서 하나는 중앙을 그대로 관통하고 다른 하나는 연합함대 후미부터 궤멸시키기로 했다.
영국전함이 연합함대를 관통하면 바람이 불어가는 쪽Leeward에서 공격을 시작하는 동시에 연합함대의 선봉과 본대를 나눌 수 있었다. 10월 8일의 트라팔가 비망록에는 “넬슨 전술Nelson Touch”라고 기록되었다.
넬슨 전술과 그 결과입니다. 큰 그림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빌뇌브는 함대가 지브랄타 해협으로 가기 전에 영국함대가 공격해 올 것으로 보고 오전 7시 30분에 카디즈 귀항을 명령했다. 10시까지 연합함대는 방향을 완전히 바꿔 영국군의 공격을 대비했다. 영국함대는 연합함대가 카디즈에 들어가기 전에 잡으려고 보조 돛을 올렸다.
넬슨은 바람부는 열Weather Column의 12척을 이끌었고 로얄 소브린을 탄 콜링우드Collingwood는 바람불어가는 열Lee Column의 15척을 이끌었다. 넬슨은 빅토리를 연합함대의 선두에서 12번째 전열함을 노렸는데 나중에 뷔상토르Bucentaure로 밝혀졌다. 2km 떨어졌던 로얄 소브린은 16번째 전함을 노렸다.
넬슨은 전투를 시작하기 직전에 함대에 “영국은 모든 사람이 제 임무를 다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넬슨의 계획은 위험천만했다. 2열 종대로 연합함대에게 접근하면 선두 전함은 그대로 포격에 노출되며 연합함대의 틈을 관통할 때까지 반격할 수 없었다. 연합함대 함장들은 영국전함이 틈을 파고들기 전에 돛대를 부러뜨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렇지만 영국함대는 연합함대에 비해 상당히 유리했다. 영국포수는 연합함대포수에 비해 2~3배 빨리 포를 발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넬슨의 작전이 들어맞아서 연합함대를 분리시키고 수적우위를 점한다면 포격전만으로도 연합함대를 궤멸시킬 수 있었다.
넬슨은 전투를 시작하기 직전에 함대에 “영국은 모든 사람이 제 임무를 다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넬슨의 계획은 위험천만했다. 2열 종대로 연합함대에게 접근하면 선두 전함은 그대로 포격에 노출되며 연합함대의 틈을 관통할 때까지 반격할 수 없었다. 연합함대 함장들은 영국전함이 틈을 파고들기 전에 돛대를 부러뜨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렇지만 영국함대는 연합함대에 비해 상당히 유리했다. 영국포수는 연합함대포수에 비해 2~3배 빨리 포를 발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넬슨의 작전이 들어맞아서 연합함대를 분리시키고 수적우위를 점한다면 포격전만으로도 연합함대를 궤멸시킬 수 있었다.
빅토리가 접근하자 연합함대는 넬슨의 기대와 달리 일렬이 아니었고 3~4척씩 뭉쳐있어서 관통할 틈이 없었다. 정오가 되기 전에 74문의 프랑스 푸그외Fougueux가 900m 거리에서 로얄 소브린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콜링우드는 3층 갑판의 모든 선원에게 엎드려 있으라고 명령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포탄은 미치지 못했고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로얄 소브린은 푸그외 말고도 80문의 프랑스 안돔타블레Indomptable과 74문의 스페인 모나르카Monarca의 측면 포격을 받았다. 112문의 스페인 산타 아나Santa Ana와 푸그외의 틈을 향해 접근하면서 유효사거리 안에 들어가자 로얄 소브린의 돛대는 거의 부러졌다.
빅토리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넬슨의 기함이 900m 안에 접근하자 74문의 프랑스 에로Heros, 뷔상토르와 140문의 거대한 스페인 산티시마 트리니다드Snatisima Trinidad의 포격을 받았다. 포격을 받은 빅토리의 뒷돛대Mizzen Mast 위가 부러지고 돛에 구멍이 나고 스크루가 부러졌다.
후갑판Quaterdeck에 서 있던 넬슨과 하디 사이로 포탄이 지나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다친 사람이 없는 지를 확인했고 넬슨은 “하디, 오래 버티지 못하겠는데”라고 말했다.
배에 대해 잘 모르니 한글용어 선택도 난감합니다. 조만간 범선에 관한 책을 공부해야겠군요.
나폴레옹은 1797년부터 1805년까지 8년 동안 영국해협을 건너고 싶어했다. 블로뉴Boulogne에서는 2,000척의 보트를 모아서 112,000명의 병력을 상륙시키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영국함대가 브레스트Brest, 호슈포흐Rochefort와 툴롱Toulon을 봉쇄해서 성사되지 않았다.
1804년, 프랑스가 영국에게 선전포고하며 스페인이 합류했고 카를로스Carlos 4세는 나폴레옹에게 25~29척의 전열함을 제공하겠다는 비밀협정을 맺었다. 스페인함대가 가세하면서 연합함대는 영국함대보다 더 크게 무거운 전열함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전함의 디자인과 속도도 영국전함보다 우수했기 때문에 제대로만 사용하면 영국선원의 경험을 상쇄시킬 수 있었다.
빌뇌브는 넬슨이 중간을 끊을 것으로 예상하고 12척의 예비전함을 따로 떼어서 ‘정찰함대’를 만들었다. 정찰함대로 영국함대에게 반격해서 넬슨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생각이었다.
카디즈를 나설 때에는 연합함대 선봉은 스페인 중장 이그나시오 데 알라바Ignacio de Alava의 산타 아나가 선봉에, 중간은 빌뇌브의 뷔상토리가, 후위는 피에르 뒤마누아르Pierre Dumanoir의 80문짜리 포미다블레Formidable가, 정찰함대는 페데리코 그라비나Federico Gravina의 112문짜리 프린시페 데 아수투리아스Principe de Asturias가 섰다.
카디즈로 다시 귀항하면서 순서가 바뀌어서 알라바가 후위가 되었는데 그라비나는 빌뇌브가 지시한대로 바람부는 쪽이 아닌 후위로 선회했다. 전투가 벌어지면서 연합함대는 2가지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게 된다. 선봉의 뒤마누아르가 영국함대의 후위를 공격할 수 있었고 그라비나의 정찰함대는 영국함대의 공격을 받는 중앙이나 후위를 지원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를 않았고 연합함대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의외로 트라팔가 영화를 찾기 힘들군요. 비슷한 시기인 마스터 앤 커맨더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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