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대전 사이, 소련은 적군Red Army의 현대화와 기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독일과 비밀협정을 맺고 기갑전력의 개발과 훈련에 서로 협력했다.
미국도 기술지원을 했다. 미국사업가 아만드 햄머Armand Hammer(사진 참조)의 도움으로 소련은 서유럽 산업을 접하게 되었다. 스탈린그라드에는 포드자동차의 지원을 받아 연간 4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초대형 트랙터공장이 건설되었다. 출발은 트랙터생산이었지만 점차 전차와 반궤도 장갑차 개발로 전용되었고 트랙터도 포를 견인하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외국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소련의 군사력은 2가지 문제에 발목을 잡혔다. 먼저 적군은 기동력이 부족했는데 장비를 대량생산한다고 해도 운전수가 부족했고 정비공이나 기술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국방과 항공화학개발을 위한 사회연맹Union of Societies of Assistance to Defence and Aviation-Chemical Construction, OSOAVIAKHIM이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1930~1936년 기간 동안, OSOAVIAKHIM은 100만 명 이상의 운전수와 정비공을 배출해냈다. 교육수준은 나쁘지 않았고 농기구 사용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1936년까지, 소련은 130만 명 정도의 병력을 갖췄고 꽤 많은 운전병을 징집할 수 있었다.
1930년 미하일 코시킨Mikhail Koshkin은 독일이 겉과 속이 다른 친구라고 생각했다. 마이바흐Maybach AG는 조절 차동장치Controlled Differential를 사용하는 변속장치를 개발했는데 독일은 마이바흐 변속기가 소련에 넘어가지 않도록 기밀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코시킨은 독일에 상주하는 첩보원을 통해 소련이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미하일 코시킨은 소련을 구원한 3대 무기 중 하나인 T-34의 수석설계자입니다. T-34는 전차설계와 생산을 결정지은 최고의 전차입니다.
소련은 1931년에 독자적으로 전차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빠르고 가벼운 정찰용 경전차, 12~15톤의 추격전차, 중무장과 중장갑의 돌파전차, 특수전차, 대소형 기갑차량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28년 영국 비커스-암스트롱Vikers-Armstrong과 계약을 맺고 마크4 모델B 전차를 복제했다. 6톤의 무게, 47mm 주포, 트랙당 2개의 보기, 4개의 로드휠이 있는 전차였다.
모델B는 마이바흐가 개발한 것과 비슷한 변속기를 사용했다.
소련은 모델B를 사용해 T-26B를 만들었는데 주포만 소련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45mm로 바꿨다. 트랙터 공장에서 모델B와 T-26B 전차대대 2개를 생산했다.
미국에서는 유명한 엔지니어 월터 크리스티Walter Christie가 놀라운 성능의 전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는 트랙을 탈부착해서 도로에서는 바퀴로 달리고 야지에서는 트랙으로 달리는 전차를 개발했다.
크리스티 설계는 차체 내부의 수직 스프링이 지지하는 큰 휠이 특징인데 뒤축의 출력이 사슬 드라이브로 가장 뒤의 로드 휠을 굴렸다. 4개의 로드 휠은 독립적으로 움직여서 승차감이 좋았다. 야지에서는 트랙을 로드 휠 위로 장착해서 주행성능을 유지했다.
크리스티 전차는 미국의 중전차 T-3 1931으로 이어져서 야지에서는 시속 42km, 도로에서는 75km라는 놀라운 성능을 자랑했다. 미육군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1930년대에는 개발을 이어갈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다.
도로에서는 트랙을 벗겨내고 장갑차로 달릴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티는 미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자 소련으로 눈을 돌렸다. 소련은 T-3를 2대 주문해 평가한 후에 소련전차설계국이 바로 행동에 옮겨 BT-2를 개발했다. 10.2톤의 BT-2는 리버티Liberty 수입엔진을 그대로 장착해 2,000rpm에서 343마력의 힘을 냈다.
37mm포와 7.62mm기관총으로 무장했다. 최대/최소장갑은 13/6mm였고 야지최고속도는 48km, 포장도로에서는 80km가 넘었다고 한다. 서스펜션은 차체 내외부에 수직 스프링을 삽입해 승차감을 높였고 작전범위는 170km가 넘었다. BT-2는 추격전차의 결정체였다.
모델B와 T-26B 전차가 대단한 성능을 보였지만 그 이상이 필요했다. 코시킨은 심한 압박에 시달렸고 리버티 엔진도 마찬가지로 개선의 여지가 많았다.
1934년, 하르콥Kharkov 자동차공작소는 리버티 엔진을 개량해 3.8L 용량의 V-12 수냉식 디젤엔진을 개발했다.
이 엔진은 추운날씨를 감안해서 공기압 시동장치를 가졌고 1,800rpm에서 500마력의 출력을 냈으며 신뢰성이 매우 높았다. 소련이 개량한 리버티 디젤엔진은 2차대전 최고의 전차엔진으로 자리잡았다.
1933~34년, 독일과 소련의 협력관계는 점차 소원해져갔다. 소련은 더 이상 독일과 협력해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소련과의 협력관계부터 단절했다. 그렇지만 독일에게서 얻는 정보덕분에 T-34라는 걸작전차를 개발할 수 있었다.
26.3톤의 T-34는 톤당 19마력의 놀라운 출력을 냈고 400km를 기동할 수 있었다. 최고속도는 53km였고 크리스티 전차와 같은 서스펜션 체계였다. 트랙을 탈부착할 수 없었지만 크고 독립적인 로드 휠덕분에 승차감이 좋았다.
전면장갑은 최대/최소 45/15mm였지만 경사와 주조장갑으로 방어력은 상당히 좋았다. 전기로 움직이는 포탑에는 76mm 포를 탑재했고 중반 이후에는 85mm 포와 중장갑으로 개량되었다.
트랙의 너비는 50cm로 넓어서 하중도 많이 실리지 않았다. 포탑도 동시대의 독일전차에 비해 상당히 빠른 선회속도를 자랑했다. 독일전차는 수동으로 포탑을 돌렸기 때문에 초탄발사에서 상당히 불리했다.
1939년 12월, 소련은 KV라는 신형 중전차를 선보였는데, 국방장관 클리멘티 보로실롭Klimenti Voroshilov를 기리는 이름이었다. 재미있게도 그는 1937년에 적군의 기계화군단을 해산시킨 인물이기도 했다.
이 전차는 1940년 5월에 레닌그라드 키롭Kirov 전차공장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43.5톤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V-12 디젤엔진은 2,000rpm에서 600마력의 출력을 냈다. 33.6km의 최고속도로 336km를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톤당 13.8마력으로 균형잡힌 전차였다.
76mm 주포와 3정의 7.62mm 기관총을 장착한 KV는 포방패 90mm, 포탑 75mm, 후면 30mm의 장갑을 자랑했다. T-34와 마찬가지로 접지력이 좋았고 강력한 철갑탄은 900m 거리에서 100mm의 장갑을 격파할 수 있었다.
독일의 유명한 88mm만이 이 전차를 상대할 수 있었다.
지노비이 콜론바놉Zinoviy Kolonbanov은 레닌그라드를 수비하던 중에 크라스노그바르데이스크Kranogvardeysk 전투에서 5대의 KV전차로 43대의 독일군전차를 격파했는데 단 한 대의 전차도 잃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전차는 156발을 맞았다고 하죠?
그럴만도 한 것이, 장포신 4호전차가 간신히 상대할 수 있는 KV-1을 2호와 단포신 3호전차로 상대했고 그것도 기습을 당했습니다.
T-34와 KV전차도 대전차지뢰에 취약했지만 눈덮인 겨울에는 하중이 넓은 범위에 분산되어서 대전차지뢰를 터트리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두 전차 모두 크기나 무게를 감안하면 대전차지뢰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KV전차는 크리스티 서스펜션을 사용하지 않고 훨씬 작은 로드 휠을 장착한 독일식 토션바 서스펜션을 사용했다. 크리스티 서스펜션은 KV전차의 무게를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션바 서스펜션은 무게를 12개의 로드 휠에 분산시켰다.
독일은 1943년 말에 타이거 전차를 투입했는데 타이거 전차는 56톤의 무게를 버틸 수 있도록 16개의 로드 휠을 포개는 방식을 채택했지만 정비와 생산성 문제가 있었다.
소련은 전차를 혁신적으로 개량했지만 여전히 승무원과 정비공 양성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전차처럼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소련은 엄청난 국토와 인구가 장점이었지만 너무 다양한 언어와 문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훈련이나 교육시설을 지역으로 분산시킨 후에 시설끼리 협조해야 했다. 전쟁 중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서 소련전차는 전술 면에서 독일전차에 열세였다.
1941년 6월, 독일이 침공하자 소련은 공장을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현명한 판단을 했다. 1941년 말, 키롭 185공장은 레닌그라드에서 우랄산맥 동쪽의 첼랴빈스크Chelyabinsk로 이동했다. 하르콥에서 이동한 공장 그리고 첼랴빈스크 트랙터 공장과 합쳐져 탄코그라드Tankograd라는 거대한 전차생산 도시를 만들었다.
소련의 과장된 통계자료를 그대로 믿기 힘들지만, 이 공장에서는 종전까지 18,000대의 KV전차와 48,000개의 V-12 디젤엔진을 생산했다. 다른 전차공장도 니질-타길Nizhil-Tagil의 우랄마시자보드Uralmashzavod 공장에 합쳐져 T-34를 대량생산해냈다. 1943년에는 약 12개의 후방공장에서 전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1941년 6월, 소련은 독일의 기계화전투에 큰 피해를 입었고 모든 전선에서 학살을 당했다. 황당할 정도의 참패 속에서도 소련군 전차는 몇 가지 희망을 던져주었다. 독일 제1 전차사단이 처음으로 KV전차를 만났는데 37mm 대전차포는 KV전차를 노크하는 정도에 불과했고 그보다 큰 구경의 화기도 60m 이내에 접근해야 효력이 있었다. 결국 1전차사단은 KV전차에게 큰 피해를 입었다.
2주 후, 제17전차사단이 단 한 대의 T-34에게 더 큰 피해를 입었다. T-34 한 대가 사단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몇 대의 3호 전차를 불태우고 37mm 대전차포를 밟은 후에 아예 사령부를 누비고 다녔다. 15km를 마음대로 누비고 다니던 T-34는 미처 부수지 못한 105mm 포의 직격탄을 맞고야 멈췄다.
1941년 10월, 보로디노Borodino 전투에 T-34가 대거 투입되자 독일군은 공황상태까지 몰렸다. 소련군 전차는 놀라운 전과를 올렸고 독일군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소련 승무원의 훈련부족과 전차장의 지휘미숙덕분에 더 큰 피해를 모면할 수 있었다.
독일군 전차전술의 교범인 하인츠 구데리안Heinz Guderian은 T-34를 독일도 생산해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소련은 전쟁초반 많은 영토와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지만 동쪽 멀리로 공장을 이동시켰기 때문에 독일군의 공습에서 안전하게 전차를 생산해냈다. 그리고 전투를 거듭할수록 소련 승무원도 역전의 용사가 되었다.
1943년 7월의 쿠르스크Kursk 전투는 독일 전차부대에게 있어서 종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련의 큰 돌출부를 없애고 동부전선의 전세를 반전시키려고 했던 이 전투에서 독일군은 3,000대의 전차, 1,000문의 포, 5,000대의 차량을 잃었고 다시는 그 전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1920년대만 해도 말과 썰매에 의존했던 적군은 1943년이 되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차전력을 갖췄고 전후에도 세계최고의 전차를 계속 생산해냈다. 1920~1943년까지의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양국의 동부전선 전차전력이 궁금한 분이 있을까봐 오래 전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동부전선 전사를 정리하던 중의 보충자료이니까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지 않고 어긋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지금까지 잘 읽어오신 분이면 아마도 '독일군이 밀려나면서도 러시아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계속 입히던데, 러시아군은 도대체 보병과 전차를 외계인에게서 빌려오나? 좀 이상한데...'하시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보병이야 마이웨이 영화에서도 잠깐 나오듯이, 멀리 시베리아까지 정치위원을 보내 싸그리 긁어왔고 3명당 총 한자루 주는 식으로 전장에 내몰면서 초반의 위기를 넘겼고, 중반부터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시를 탈환하면서 탈환한 지역의 주민들을 징병했기 때문에 엄청난 피해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전차는? 이야기에서 나오듯이 1944년 중반까지는 독일전차의 강력한 포와 장갑이 방어전에 주효했고, 독일전차병의 경험이 비교도 안될 정도로 우수했기 때문에 러시아군 전차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전세를 뒤집을 수 없었던 것이, 러시아 특유의 중공업 시설, 러시아 전차 특유의 높은 생산성과 낮은 학습곡선, 연합군의 막대한 물량지원 그리고 파손된 전차의 재활용 때문에 독일군은 항상 수세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군 전차가 3대의 러시아군 전차를 파손시켰다고 해도 러시아군이 4대의 전차를 생산해내 투입했다면 결국 남은 러시아군 전차 1대가 전장을 제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독일군과 러시아군 전차의 생산량을 한 번 알아볼까요?
자료에 따라 편차가 상당히 심하기 때문에 저는 위키에 공개된 자료를 중심으로 여러 자료를 조합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러시아 전차의 생산량입니다. T-34는 미국조차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양을 생산해냈습니다. 대전 후에 공산위성국가에게 제공된 양까지 합치면 약 8~9만대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경전차 1.5만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독일군 전차와 대등하거나 우수한 전차들이었습니다. 그냥 어렴풋이 계산해도 9.6만대의 우수한 전차가 전장에 투입되었던 것입니다.
저도 독일전차 빠이지만 T-34 85mm가 3만 대면 말 다했죠. 독일의 주력전차였던 4호전차보다 공수주 모든 면에서 우수했습니다. 독일의 88mm와 마찬가지로 대공포 출신인 85mm는 500m 거리에서 전설적인 타이거와 판터를 모두 격파할 수 있었습니다.
Soviet tank type | Production |
Light tanks | |
T-34 | 35,119 |
T-34/85 | 29,430 |
KV and KV-85 | 4,581 |
IS | 3,854 |
SU-76 | 12,671 |
SU-85 | 2,050 |
SU-100 | 1,675 |
SU-122 | 1,148 |
SU-152 | 4,779 |
이제 독일군 전차의 생산량입니다. 독일군 빠답게 좀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가장 앞의 경전차에서는 75mm를 탑재한 대전차 자주포 마더II 723대를 제외하고는 러시아군 경전차와 같이 전력외로 계산해야겠죠?
German Tank Production by Type
Panzer I | Pre-war |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1944 | 1945 | Total | ||
---|---|---|---|---|---|---|---|---|---|---|---|
Pz I | 1867 | 1,867 | |||||||||
Pz I (Command - no turret) | 26 | 26 | |||||||||
Total | 1,893 | 0 | 0 | 0 | 0 | 0 | 0 | 0 | 1,893 | ||
Panzer II | Pre-war |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1944 | 1945 | Total | ||
Pz II | 1,223 | 15 | 9 | 223 | 302 | 77 | 7 | 1,856 | |||
Px II (f) | 90 | 42 | 23 | 155 | |||||||
Marder II | 511 | 212 | 723 | ||||||||
Wespe | 514 | 144 | 658 | ||||||||
Bison | 12 | 12 | |||||||||
Total | 1,223 | 15 | 99 | 265 | 848 | 803 | 151 | 0 | 3,404 |
이제 좀 쓸만한, 그렇지만 T-34에는 많이 못미치는 전차들이 나옵니다. 그래도 모두 계산하고 마더II까지 더해 7,300대입니다.
Panzer 38(t) | Pre-war |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1944 | 1945 | Total | ||
---|---|---|---|---|---|---|---|---|---|---|---|
Pz 38(t) | 78 | 153 | 367 | 678 | 198 | 1,474 | |||||
Marder 138 | 110 | 783 | 323 | 1,216 | |||||||
Marder 139 | 344 | 344 | |||||||||
Grille | 225 | 346 | 571 | ||||||||
Hetzer | 1,687 | 1,335 | 3,022 | ||||||||
Total | 78 | 153 | 367 | 678 | 652 | 1,008 | 2,356 | 1,335 | 6,627 |
아직도 T-34에 못미치는 좀 약한 전차들입니다. 3호전차는 장포신 50mm를 장착한 후에도 크게 불리한 상황이었고 75mm를 장착하고서야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있었습니다.
상대가 안되었던 장포신 이전 전차까지 모두 더하면 약 28,000대이군요.
Panzer III | Pre-war |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1944 | 1945 | Total | ||
---|---|---|---|---|---|---|---|---|---|---|---|
Pz III | 98 | 157 | 396 | 651 | |||||||
Pz III (50) | 466 | 1,673 | 251 | 2,390 | |||||||
Pz III (50L) | 64 | 1,907 | 1,971 | ||||||||
Pz III (75) | 449 | 213 | 662 | ||||||||
Pz III (f) | 100 | 100 | |||||||||
StuG III | 192 | 540 | 93 | 825 | |||||||
StuG III (l) | 695 | 3,011 | 3,849 | 1,038 | 8,593 | ||||||
StuH 42 | 12 | 204 | 903 | 98 | 1,217 | ||||||
Total | 98 | 157 | 1,054 | 2,277 | 3,407 | 3,528 | 4,752 | 1,136 | 16,409 |
이제야 T-34에 대등한 전차가 등장했습니다. 아래 부분의 생소한 전차들은 대공포이지만 귀찮으니까 계산하겠습니다.
그래서 약 42,000대이군요.
Panzer IV | Pre-war |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1944 | 1945 | Total | ||
---|---|---|---|---|---|---|---|---|---|---|---|
Pz IV (short) | 211 | 45 | 268 | 467 | 124 | 1,115 | |||||
Pz IV (long) | 870 | 3,013 | 3,126 | 385 | 7,394 | ||||||
StuG IV | 30 | 1,006 | 105 | 1,141 | |||||||
Jagdpanzer IV | 769 | 769 | |||||||||
Jagdpanzer IV/70 | 767 | 441 | 1,208 | ||||||||
Sturmpanzer IV | 66 | 215 | 17 | 298 | |||||||
Hornisse | 345 | 133 | 16 | 494 | |||||||
Hummel | 368 | 289 | 57 | 714 | |||||||
Moebelwagen | 205 | 35 | 240 | ||||||||
Wirbelwind | 100 | 6 | 106 | ||||||||
Ostwind | 15 | 28 | 43 | ||||||||
Total | 211 | 45 | 268 | 467 | 994 | 3,822 | 6,625 | 1,090 | 13,522 |
이제 독일전차의 주연들이 등장합니다.
판터는 생각보다 많이 생산된 반면에 타이거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생산량이 상당히 적습니다.
워낙 생산단가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T-34를 더 우수한 전차로 높이 평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타이거 한 대를 생산해서 훈련시켜 내보낼 때에 러시아는 10대를 만들어 내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정확하게 10대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냥 대충 계산이니까 어디가서 인용하지 마세요 ㅡ.ㅡ
Panzer V | Pre-war |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1944 | 1945 | Total | ||
---|---|---|---|---|---|---|---|---|---|---|---|
Panther | 1,848 | 3,777 | 507 | 6,132 | |||||||
JagdPanther | 1 | 226 | 198 | 425 | |||||||
Total | 0 | 0 | 0 | 0 | 0 | 1,849 | 4,003 | 705 | 6,557 | ||
Panzer VI | Pre-war | 1939 | 1940 | 1941 | 1942 | 1943 | 1944 | 1945 | Total | ||
---|---|---|---|---|---|---|---|---|---|---|---|
Tiger I | 78 | 649 | 623 | 1,350 | |||||||
Tiger II | 1 | 377 | 112 | 490 | |||||||
Jagdtiger | 51 | 28 | 79 | ||||||||
Sturmtiger | 18 | 18 | |||||||||
Elefant | 90 | 90 | |||||||||
Total | 0 | 0 | 0 | 0 | 78 | 740 | 1,069 | 140 | 2,027 |
우와! 무려 5만대나 생산되었으니까 이쯤되면 '우에스기. 너 스스로가 바보인증이네?'하시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러시아군은 생산된 전차 모두를 동부전선에 투입시킬 수 있었던 반면에 독일군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도 롬멜이 매일같이 장포신 4호전차를 보내달라고 울어댔고, 아프리카 전선을 포기한 1944년 중반부터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으로 동부의 정예사단을 보내야했기 때문에 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1944년도에는 40% 이상을 빼야합니다.
제 이야기를 잘 읽으신 분들은 또 다시 제게 의문을 제기하실 겁니다. '연합군이 엄청난 장비를 공급했다며?'라고요.
연합군은 러시아에게 6,000대 정도의 전차를 보냈고 그 전차들은 거의 대부분이 3호 전차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주력전차들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림잡아 러시아군은 약 102,000대 정도의 주력전차(경전차 제외)를 동부전선에 투입한 반면, 독일군은 약 30,000대 정도의 주력전차를 투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도 소련 주력전차에 열세인 전차까지 모두 계산한 것이죠.
러시아군 전차의 성능이 향상되고, 전술이 개발되고,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후반으로 갈수록 독일전차:러시아전차 손실비율이 크게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개전초기에는 1:9까지 벌어졌던 피해가 종전직전에는 1:2.5까지 좁혀들더니 종전 시에는 1:1.2로 차이가 거의 없어집니다. 아래의 도표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실제로는 독일전차의 손실숫자가 더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Tank Losses | ||||||
---|---|---|---|---|---|---|
Year | Britain | German | Italy | Japan | Soviet Union | United |
1939 | ||||||
1940 | ||||||
1941 | 2,758 | 20,500 | ||||
1942 | 2,648 | 15,000 | ||||
1943 | 6,362 | 22,400 | ||||
1944 | 6,434 | 16,900 | ||||
1945 | 7,382 | 8,700 |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전장을 내준 독일군은 파손된 전차를 포기해야 했지만 러시아군은 회수해서 상당부분을 재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투카에게 엔진룸을 격파당한 T-34는 전투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다음 전투에서는 엔진교체 후에 재 투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지뢰에 주저앉은 전차는 휠과 궤도만 교체하면 다음 날 전투라도 투입할 수 있었고요.
생산량이 워낙 많았고, 갈수록 전차손실 비율은 줄어들었고, 전장터에서 회수해 재활용한 전차가 많았기에 막대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차를 투입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T-34는 대충 몇 시간 교육시켜 전투에 내보내는 차량으로 유명했으니까요.
'현대 > 2차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콤에게 축복을! 초대형 지상순양전차 P1000 라테 출시 (0) | 2015.08.04 |
---|---|
일본 해군조종사의 무덤, 필리핀 해전 - 1부 (0) | 2015.08.02 |
2차대전 실전 기록물 (0) | 2015.08.01 |
스탈린의 좌절, 이지움 포켓(1942) - 2부 (0) | 2015.07.31 |
스탈린의 좌절, 이지움 포켓(1942) - 1부 (0) | 2015.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