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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일본 해군조종사의 무덤, 필리핀 해전 - 1부

by uesgi2003 2015. 8. 2.


지난 이야기는 소련군의 궤멸이었는데 이번에는 일본군이 궤멸하는 필리핀 해전이야기입니다. 2차대전 전사를 정리할 때마다 플라모델을 다시 만들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힘듭니다. 


태평양전선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은 아래 지도를 클릭해서 큰 그림으로 잘 확인해야 제 이야기를 좀 더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일본 해군항공기의 무덤, 필리핀 해전 - 1부


톰 브론중위는 그루만Grumman TBF 어벤저Avenger 뇌격기의 연료눈금이 신경 쓰였다. 필리핀해 어딘가에 있는 일본함대를 찾아 떠돌다가 해가 질 무렵에야 항공모함에 4개의 폭탄을 투하하고 다시 모함인 USS 렉싱턴Lexington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다.

이제 불시착을 각오해야 하는데 그것만 아니면 성공적인 4시간의 비행이었다. 밤바다는 난폭해서 안전한 쉼터가 아니었다.

다행히 누군가가 모든 선박에게 전등과 탐조등을 밝히라고 명령해서 멀리 렉싱턴으로 보이는 선박이 눈에 들어왔다. 항공모함에 접근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사방에서 전투기, 급강하 폭격기와 뇌격기가 모여들었다. 연료가 바닥난 것은 브렌만이 아니었다.



1942년에 투입되어 1960년까지 비행했던 장수 폭격기입니다. 3명이 탔고 길이 12.5m, 너비 16.5m, 높이 5m의 대형기입니다. 

시속 442km와 1,600km라는 놀라운 작전범위를 가지고 있었고 900kg의 폭탄이나 어뢰를 장착할 수 있었습니다. 

함상폭격기로는 재미있게도 어뢰를 동체 안에 장착했습니다. 



브론은 렉싱턴에 착륙하려고 했지만 갑판은 야간착륙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충돌사고의 잔해가 가득했다. 두 번을 선회하며 착륙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다시 기수를 올려야 했다.

이제 불시착하는 수 밖에 없었고 구축함 근처로 가능한 한 접근해서 내려 앉았다. 브론과 다른 2명은 재빨리 동체 위로 올라갔다.

구축함은 곧바로 돌아오겠다는 방송을 했고 브론은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구축함은 다가오지 않았고 갑자기 순양함 USS 레노Reno가 다가와 세 사람을 끌어올렸다.


브론의 전투는 19425월 산호Coral해 그리고 6월의 미드웨이Midway해전의 연속이었다. 일본함대는 두 전투에서 주력 항모전력을 잃었고 미해군은 뛰어난 정보분석, 용기와 결단 그리고 신이 도운 행운덕분에 결정적인 반전을 이끌어냈다.

일본해군은 그 이후에 천천히 항공전력을 재구축하면서 결정적인 해전에서 미국의 태평양진출을 막을 생각이었다.


1944, 일본해군은 이제 함정을 파고 미끼를 놓을 차례라고 판단했다. 해군 지휘부는 미군이 뉴기니New Guinea 북쪽의 캐롤라인Caroline이나 팔라우Palau 군도 또는 중앙 태평양의 마리아나Mariana 군도 중 한 곳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합함대 사령관 도요다 소에무 Toyoda Soemu제독은 양쪽 모두에 준비하는 아고A-go작전을 시작했다.

1기동함대 사령관 오자와 지사부로Ozawa Jisaburo부제독은 일본에서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전투함을 지원받았다. 항공모함 다이호Taiho, 준요Junyo, 히요Hiyo, 쇼카쿠Shokaku, 즈이카쿠Zuikaku 5, 경항공모함 류호Ryuho, 치토세Chitose, 치요다Chiyoda, 즈이호Zuiho 척이 전력의 핵심이었고 5척의 전함, 12척의 순양함과 22척의 호위구축함이 호위를 했다.



길이 260m, 만재배수량 37,000톤, 함재기 65기의 최신형 항모 다이호입니다. 마땅한 대공화기가 없었던 탓에 일본해군은 공습에 상당히 취약했는데 미드웨이해전에서 그렇게 크게 당하고도 무장은 100mm(3.9인치)포 12문, 25mm 대공포(아래 사진참조) 51문이 고작이었습니다. 

약간 작은 크기의 엔터프라이즈의 경우 5인치 포 8, 40mm 보포스 대공포 40, 20mm 오리콘 기관포 50문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필리핀해전에서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일본에게는 황당하게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습니다. 



전설적인 거함 야마토도 제공권을 완전히 빼앗긴 후에 대대적인 대공무기 보완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죠.


1기동함대의 실제 핵심전력은 항공모함에 실린 전폭기였다. 430대의 전투기를 보유했고 육상기지에 있는 540대의 전폭기가 지원하기로 했다.

오자와는 지상 항공기로 일본에 접근하는 미군전력의 30% 이상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 후에 가벼운 일본 함재기는 미국의 중장갑 함재기에 비해 160km 이상 비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상기에 두들겨 맞은 미국함대의 숨통을 끊는다는 계획이었다. 이 작전이 그대로 들어 맞는다면 미드웨이에서의 참패를 만회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970대의 전폭기는 어떤 미국함대라도 충분히 궤멸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전력이었지만 조금만 그 뒤를 들여다보면 진주만 공습 당시의 일본군 전력이 아니었다. 전쟁 초기에는 전투기의 성능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오랜 동안 훈련된 일급 조종사가 큰 활약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 후 2년 동안 참패를 거듭하면서 숙련된 조종사가 대부분 사라졌고 그렇지 않아도 비행사가 부족했던 일본은 심각한 질적 저하문제에 시달렸다. 일본은 훈련과정을 축소했고 비행학교를 막 졸업한 신병이 한 번의 교전경험도 없이 이 작전에 투입되었다


태평양전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면 일본군 지휘관의 침착한 태도였다. 조용히 명령을 수행하며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필리핀해전에서도 여지없이 그런 지휘관이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미국도 그랬다.

레이몬드 에임스 스프루언스Raymond Ames Spruance제독은 지식, 논리적인 판단력, 극한의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스프루언스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함대를 전개하기로 했다. 그의 첫 번째 임무는 사이판에 상륙할 병력과 보급품을 일본함대에게서 보호하는 것이었다. 마리아나 군도를 잃게 되면 일본 본토가 위협받기 때문에 일본함대의 항공모함이 대거 출동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일본해군에게 결정타를 먹인 직후의 스프루언스제독의 모습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전시 중이라고 해도 별 7개의 모습입니다. 

 

일본 주력항공모함도 욕심나는 목표물이었지만 일단 사이판에 병력과 보급품을 상륙시키는 것이 먼저였고 그 때까지는 적이 도발해도 사이판 일대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이판을 보호하는 동시에 오자와를 상대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겠지만 일본 항공모함은 우선순위에서 두 번째였다.

 

많은 해군지휘관, 특히 조종사 출신의 윌리암 홀시William Halsey와 같은 사람은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 항공모함이 훨씬 큰 위협이기 때문에 반드시 추격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렇지만 일본군과의 교전경험이 있는 스프루언스는 일본해군 특유의 유인전술을 알고 있었다. 미드웨이에서고 그랬고, 중앙으로 기만기동하면서 측면이나 배후로 돌아 공격하라는 일본 정보도 최근에 입수했다.

그는 일본함대 하나가 자신을 꾀어내고 다른 함대가 사이판 교두보를 공격할 것으로 예상했다.

 

194466, 엄청난 연합군 함대가 프랑스 해변에 상륙할 때에 마크 미처Marc Mitscher부제독은 마셜Marshall 군도의 마후로항에서 북서쪽으로 2,000km 떨어진 마리아나 군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상당히 짧은 시간 안에 전투함을 쏟아냈고 미처는 유럽함대에 버금가는 상륙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역사상 한 국가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이렇게 많은 병력을 동시에 투입한 경우는 없었다.



돌침대도 아니고, 어쨌든 별이 15개입니다. 그런데도 무척 소박하죠?

왼쪽에서 두 번째의 좀 불쌍해 보이는 사람이 미처중장입니다. 스프루언스보다 한 살 동생인데 많이 노안입니다. 

 

마지막 배가 항구를 빠져나오는데 까지 4시간이 걸렸다. 지휘관이나 배에 탄 병사들이나 모두 이런 장관은 처음이었다. 눈이 미치는 수평선까지 모든 곳에 미처의 100척 함대가 퍼져 있었다.

58기동함대Task Force58.1, 58.2, 58.3기동전대는 각각 4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했다. 58.4의 항공모함 3척까지 계산하면 모두 900대의 전폭기가 함께 하고 있었다. 최신형 그루만 F6F-3 헬캣Hellcat 전투기도 있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중순양함 4, 경순양함 13, 구축함 49척이 보호하고 있었고 전함 7, 중순양함 4, 구축함 13척을 갖춘 기동전대 58.7이 최전방에 섰다.

개인적으로 3번째 위장무늬를 가장 좋아합니다. 2차대전 해군기로 콜세어Corsair가 있지만 고양이 시리즈도 대단한 활약을 했었습니다. F4 와일드캣부터 시작된 고양이 시리즈는 종전에 투입된 F8 베어캣으로 이어졌는데 딴딴한 몸통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강력한 방어력과 한 방을 바탕으로 A6M 제로기는 13:1, 나카지마 Ki-84는 9.5:1, 미츠비시 J2M은 3.7:1의 격추율을 자랑했습니다. 

물론 본문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기체의 성능차이만큼 조종사의 숙련도도 차이가 나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정도의 전력이면 일본해군 모두가 나온다고 해도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라이프 잡지 종군기자 노엘 부쉬는 미처와 대화를 나눴는데, 제독은 사이판까지 막히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부시는 제독이 상당히 자신만만해 한다고 기록했다.

함대의 조종사도 마찬가지로 전투를 바라고 있었다. 조종사들은 사이판 공격을 멀리서 지켜보는 대신에 적과의 일전을 바란다고 대답했다. 마치 경기를 하듯이 일본군 격추마크를 더 달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스프루언스는 단순히 상륙군을 보호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이판 상공에 제공권도 장악해야 했다. 사이판 일대의 제공권을 장악해야, 항모를 떠난 일본군 전폭기가 폭격 후에 다시 항모로 돌아가지 않고 사이판 기지에 내려서 사이판 상륙군과 미국함대를 동시에 노리는 위험을 제거할 수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본 전폭기는 엄청난 작전범위를 누리게 되고 미군 전투기의 요격범위 밖에서 작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스프루언스는 시간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았다. 611~12일 연이틀 동안 괌, 로타Rota, 사이판, 티니안Tinian의 일본군 기지를 맹폭했다. 전투기는 활주로에 서 있는 적기를 파괴했고, 폭격기는 기지시설과 활주로를 누더기로 만들었다.

일본 미츠비시 제로기가 떠올랐지만 조종사의 비행실력도 그렇지만 최신형 헬캣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일방적인 전투가 끝나고 연기가 걷히자 오자와가 사용할 공군기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오자와가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계획을 바꿨을 수도 있지만 전사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늘 일어났듯이 가쿠다 가쿠지 부제독은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오자와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오자와는 일본 항공전력의 상당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을 모른 채로 계획대로 미국함대를 향해 항해를 계속했다.



이번 이야기와 상관없지만, 필리핀 루손지역에 파괴된 채로 버려진 일본 전폭기 잔해입니다. 



뉴기니 기지에서 무방비 상태로 공격을 당하는 일본 공군기지입니다. 항공기 파괴도 큰 피해였지만 일본군은 중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인력으로 활주로를 복구해야 했기 때문에 미군의 공습에 상당히 취약했습니다. 

미군의 공군기지를 폭격을 당해도 하루 만에 복구가 되었지만 일본의 공군기지는 몇 배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자와는 613, 미처의 전함이 사이판 앞바다에 도착해서 상륙에 앞서 제압포격을 가하고 있는 동안 술루Sulu 군도의 타위타위Tawi Tawi를 지나고 있었다. 동진하면서 함대를 3개로 나누었다.

구리타 다케오Kurita Takeo의 전위함대는 스프루언스를 유인하는 미끼 역할이었다. 구리타는 미국함대가 군침을 삼킬만한 항모 치토세, 치요다, 즈이호와 88기의 함재기를 가지고 있었고 막강한 전함과 순양함의 방어막을 펼쳤다.

160km 후방에는 구리타의 미끼를 노리고 덤벼든 적을 처리할 2개 전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A전대는 오자와 지휘 하에 다이호, 즈이카쿠, 쇼카쿠와 207기의 함재기를조시마 다카지Joshima TakajiB전대는 준요, 히요, 류호와 135기의 함재기가 있었다.

스프루언스가 미끼를 물고 구리타를 공격하면 오자와는 바로 반격해서 공습해오는 적기를 기습해 대전과를 올린다는 계획이었다. 대부분의 전폭기를 잃은 미함대는 오자와의 항모, 전함, 순양함을 막을 방법이 없을테고 사이판 상륙군까지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615, 사이판에서는 상륙군과의 혈전이 벌어지는 동안, 오자와는 미군의 공격을 알리며 마리아나 일대에서 적을 공격해 항공전력을 궤멸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령부에서는 결정적인 전투라는 단어로 상황의 위급성을 강조했다.

미잠수함은 오자와의 출발을 스프루언스에게 바로 알렸다. 그는 앞바다에 정박 중인 보급선에게 617일까지 계속 작전을 수행한 후에 동쪽으로 후퇴하라고 명령하고 서쪽에서 다가오는 일본함대와의 일전을 자유롭게 벌이기로 했다. 그렇지만 상륙군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 임무였기 때문에 사이판을 공중지원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교전할 생각이었다



물에 흠뻑 젖은 육군과 해병대가 기어서 교차하는 유명한 사진입니다. 일본군의 광적인 저항(옥쇄작전)으로 사이판과 이오지마에서 큰 피해를 입은 미군은 일본상륙을 포기하고 원자폭탄 사용을 결정하게 됩니다.

사이판에서만 일본군 32,000명 중 겨우 1,000명이 포로로 잡혔고 부상병을 포함해 5,000명 이상이 자살을 선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