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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일본 해군조종사의 무덤, 필리핀 해전 - 2부

by uesgi2003 2015. 8. 6.


일본군은 산호해와 미드웨이해전에서의 참패를 복수할 차례가 되었다고 자신했다. 오자와는 가장 존경받는 영웅의 말을 인용하며 장교와 병사들의 결전의지를 다졌다.  도고 헤이하치로Dogo Heihachiro는 쓰시마Tsushima해전을 앞두고 일본제국의 운명이 달려있다. 전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라는 말을 했었다.

누가 먼저 발견해서 선제공습을 시도하느냐가 중요했고 정찰기와 잠수함은 적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6 18, 양쪽 함대는 마치 투견이 서로의 크기를 재며 기세를 올리듯이 조심스럽게 필리핀해로 접근했다. 오자와는 미국함대의 전력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반대로 스프루언스는 일본항공기의 더 긴 비행거리를 염려했고 정찰기를 총 출동시켜 적의 함대를 찾으려고 했다. 일본함대의 큰 선회기동에 대비해 적의 위치를 정확하게 포착하기 전까지는 적이 생각보다 상륙부대에 가깝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라는 명령을 했다.

18일이 이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던 늦은 오후에 일본 정찰기가 먼저 미국함대를 찾아냈다. 야습을 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한 오자와는 이튿날 오전까지 기다렸고 그 이후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미국함대를 공습한 후에 착륙할 괌 비행장의 상태를 알 수 없었다.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공습으로 활주로가 엉망이면 큰 손실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자와의 정찰기가 먼저 발견한 후에 미처의 정찰기로 일본함대를 마주쳤다. 미처의 기동전대 58은 아무런 성과 없이 서진하고 있었는데 스프루언스는 반전해서 사이판을 엄호할 위치에 있으라는 명령을 했다.

그러던 참에 일본해군이 지상군에게 보내는 교신을 감청했고 일본함대의 위치를 찾아냈다. 오자와는 미처에게서 서-남서쪽으로 568km 지점에 있었다.

 

미처는 선제타를 날릴 기회라고 보고 다시 한 번 반전해서 밤새 서진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거리를 좁힌 후에 날이 밝으면 적을 기습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미처와 참모는 스프루언스가 당연히 요청을 승인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계속 동진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스프루언스는 일본의 또 다른 함대가 선회기동해서 기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했다.

조종사들은 스프루언스가 결정타를 먹일 더 없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수비로 전환해서 밤새 다가올 적에게 선제권을 양보했다고 화를 냈다. 그렇지만 오자와는 거리를 좁히면 미군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거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스프루언스의 결정은 전투가 끝난 후에도 격렬한 비난을 샀지만 그 나름대로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오자와는 완벽한 함정을 드리웠다. 구리타 함대가 미군을 유인하면 오자와의 본대가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미처가 밤새 서진해서 새벽에 적을 공습했다면, 일본해군의 강력한 방어선을 만났을 것이다. 먼저 구리타 함대의 격렬한 대공망을 돌파하고 160km 떨어진 오자와 본대의 대공포와 요격기를 상대해야 했다. 공습 후에도 다시 구리타의 대공망을 통과해야 했다.

공습으로 오자와의 항공전력에 큰 피해를 입혔겠지만 미군도 상당히 많은 손실을 입었을 것이고 619일에 있을 대승은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프루언스는 전력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오자와의 신참조종사들이 몰려들었을 때에 압도적인 방공망으로 궤멸시킬 수 있었고 미처가 계획했던 선제공격보다 훨씬 더 큰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스프루언스도 일본함대와 같이 최대한 보호막을 펼칠 수 있는 대형을 갖췄다. 일본전폭기는 먼저 미군요격기의 공격을 받게 되고 그 후에는 윌리스 리의 전함과 순양함의 대공포망을 통과해야 했다. 스프루언스의 항공모함에 폭탄을 떨어트리려면 다시 호위함의 대공포망을 통과해야 했다.


 

618일 오전 830, 오자와가 필리핀해전을 먼저 개시했고 항공모함에서는 일진인 65대의 전투기, 폭격기와 뇌격기가 사이판을 향해 동쪽으로 날아갔다. 그렇지만 일본군의 결연한 모습과는 달리 처음부터 코미디 영화같은 상황이 연이어 벌어졌다.

적이 공습에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분이라도 빠르게 날아가야 할 판에 편대를 모으느라 상공에서 선회를 하며 가장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미군은레이더는 일본기가 아직 230km를 남겨둔 90분 후에 이미 공습경보를 울렸고 헬캣은 10:30분에 항모갑판을 이륙해서 대공포망 몇 km 앞에서 대형을 갖추고 기다렸다.



헬캣의 조종석입니다. 아래는 제로기의 조종석인데 Bf-109와 비교해도 그렇고 좀 빈약해보입니다. 


 

일본의 신참조종사는 다시 한 번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대형을 갖추고 일제히 뛰어들어 미군의 공격을 분산시키지 않고 마구잡이로 뛰어들며 더 없이 손쉬운 사냥감이 되었다. 그리고 격렬한 대공포망에 두려움을 느끼고 너무 빨리 급강하하거나 폭탄을 투하하는 실수를 반복했다.

반면에 헬캣 조종사는 미함대에 새로 배치된 전투통제 장교의 지시에 따라 고도, 속도와 범위를 수정하며 적기를 침착하게 격추시켰다


렉싱턴에는 일본어를 아주 잘하는 장교가 타고 있었고 그는 일본항공기가 주고 받는 교신을 감청해서 미군 전투통제장교에게 전달했다. 200대의 헬캣 조종사들은 이 정보를 미리 받았기 때문에 다들 한 두 개의 격추마크를 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숙한 신참조종사에 기체성능이 떨어지고 작전내용까지 미리 알고 있다고 해도 위험한 상대였다. 미숙한 조종사가 마구 쏘는 총탄에 맞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과욕을 부리면서 너무 접근했다가는 아군이 쏘는 대공포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기동전대 사령관은 초반에는 대공포를 쏘지 말고 요격기에게 맡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처는 렉싱턴의 함교에 있었고 종군기자 노엘 부치가 들어왔다. 부치에게 결전이 기대되냐고 묻고는 자신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부치는 멀리 수평선을 찬찬히 훑었는데 기동전대의 호위함에서 발사하는 포연이 눈에 들어왔다. 몇 분이 지나자 가까운 거리에 있던 순양함의 포 소리도 들렸고 마치 화답하듯이 렉싱턴에서도 온갖 포화가 터졌다.

한 대의 적기가 대공포망을 피해 수면 바로 위로 날아오다가 1km가 안되는 지점에서 불덩이로 변하면서 추락했다.


 

전투가 벌어지고 몇 분밖에 안 지났는데도 일방적인 승리가 기대되었다. 절반 이상의 일본기가 첫 번째 방어막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호넷Hornet의 윌리암 딘 사령관은 물 위에 떠 있는 낙하산만 25개를 셌을 정도였다.

에섹스Essex 전투기편대장 찰스 브루워Charles Brewer는 모함 전방 88km 지점에서 교전을 벌였는데 첫 번째 요격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편대장기를 노린 후에 300m 뒤에서 꼬리를 잡고 정확하게 총탄을 퍼부어 물속으로 처박았다. 첫 번째 격추를 끝내자 마자 적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다시 격추시켰다. 세 번째 격추는 약간의 경주 끝에 마무리지었고 네 번째 교전에서는 일본기 조종사가 경험이 많았는지 멋진 회피기동을 했지만 결국 바다로 격추시켰다.

 

일본기 중 일부는 대공망을 뚫고 항모나 순양함에 접근했다. 급강하폭격기가 렉싱턴에 접근했는데 한 대 만으로는 순양함 2대의 두터운 대공포를 피할 수 없었다. 부치는 순양함에서 마치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 듯한 광경을 봤고 과감하게 혼자서 뛰어들었던 적기가 박살이 나며 바다로 처박히는 장면도 봤다.

대공망에서 살아 남은 소수의 일본기는 항모에는 아예 접근하지도 못했다. 전함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에 폭탄이 떨어져 27명이 죽고 23명이 부상을 입었고 다른 전투함은 모두 회피기동으로 폭탄을 피했다.

 

첫 번째 전투는 단 34분 만에 끝났고 오자와의 일진 69기 중에 27기가 격추되었다. 승리를 만끽한 조종사들이 모함으로 귀환했고 마치 지역축제 사격경품을 따낸 것처럼 기뻐했다. 한 조종사는 와우, 고향에서 칠면조 사냥하던 생각이 나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말이 다른 배로 퍼지면서 위대한 마리아나 칠면조 사냥Great Mariana Turkey Shoot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리고 칠면조 사냥은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첫 번째 교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 오자와의 항공모함에서는 이진이 이륙하고 있었다. 출발부터 뭔가 불길한 조짐이 보였다. 128기가 갑판을 떠나자마자 잠수함이 쏜 어뢰가 다이호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마츠 사이코는 발견하자마자 편대에서 떨어져 나와 어뢰의 진로 앞에 비행기를 처박았다.

그의 희생으로 다이호는 피해를 면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미군 잠수함 알바코어Albacore는 결국에는 사냥에 성공한다.

 

코미디 2부는 참담했다. 8기가 엔진고장으로 귀환했고 나머지 119기는 160km 전방의 구리타 함대 위를 지나갔는데 미군으로 오인하고 맹렬한 포격을 퍼부었고 2기가 격추되고 8기가 피해를 입어 되돌아갔다. 이진은 미군함대에 접근도 하기 전에 19기가 이탈했다.

미군 레이더가 이번에는 탐지가 늦었고 조종사들은 간신히 이륙할 수 있었지만 미리 칠면조 사냥연습을 한 덕분에 30분도 안되어서 70기를 격추시켰다. 렉싱턴의 스탠리 브라키우중위는 6기를 격추시킨 후에 모함으로 적기가 너무 많아서 모두 격추시키지는 못할 것 같음이라는보고를 했다.

오히려 아군의 대공포가 더 위험했다. 탄약이 다 떨어진 브라키우는 모함으로 돌아가다가 하마터면 격추당할 뻔 했다. 다급하게 아군이라며 마이크에 고래고래 소리 지른 후에 갑판에 내릴 수 있었다. 조종석에서 내린 그는 함교의 미처를 올려다보며 손가락 6개를 펼쳤다.


 

엑세스의 데이빗 맥캠벨도 5기를 격추시켰고 플랜트의 전투기는 동체에 150개의 구멍이 뚫렸는데도 무사하게 복귀했다.

렉싱턴의 돈 고든중위는 4대의 주디 급강하폭격기를 발견하고 주변의 제로기를 무시한 채로 달려들어 수면과 부딪칠 위험을 무릅쓰고 3기를 격추시켰고 다른 한 기는 기수를 돌려 도망쳤다



연합군은 일본기에게 별명을 많이 붙였는데 정식명칭은 요코스카 D4Y입니다. 시속 550km의 빠른 속도와 1,465km의 비행거리를 갖춰 조금만 더 빨리 개발되었다면 진주만 공습에서 미군함대를 궤멸시켰을 폭격기입니다. 

기체가 불안해서 초기에 정찰기로만 사용했고 안정화된 1942년 후에는 비행성능을 위해 희생시킨 장갑과 연료탱크잠금 장치가 없어서 치명적인 약점을 보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기체인데 이미 연료탱크에 불이 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측에서는 혜성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연료탱크에 불이 붙어 떨어지는 모습과 직결되어서 미군이 재미있어 했습니다. 본토방어에 급급해지자 야간전투기로 개조되어 투입되었습니다. 



부치는 갑판에 내려 앉아 급하게 탄약과 연료를 보충하고 다시 전장으로 나서는 조종사들을 보고는 그들을 보면 전투의 절박함보다는 뭔가 빠르고 신나는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 마치 폴로나 하키 경기처럼이라고 기록했다.

운동경기라도 해도 일방적인 경기였다. 겨우 20기만이 방공망에서 살아 나왔고 다시 대공포망을 피해야 했다. 겨우 4기가 와스프Wasp에게 달려들었는데 훌륭한 회피기동으로 단 한 발도 맞지 않았다.

오자와의 이진 128기 중에 97기가 격추되었고 미함대의 피해를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