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햄은 해상에 강력한 이탈리아해군 전력이 있다는 것까지만 알고 그 숫자, 목적과 행선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3척의 전함과 항모 포미더블에게 출항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커닝햄은 지중해 동부의 모든 부대에게 3월 28일 오후 5시에 크레테 남부로 집결하라고 명령했다.
이탈리아해군은 영국 수송단을 가로챌 생각으로 크레테 남부로 내려갔다. 안타깝게도 이탈리 정찰기는 28일에 알렉산드리아 상공을 정찰하지 않았고 라치노 제독은 이미 영국함대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항구를 떠났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탈리아군이 명령과 정보체계 혼선이 심각했다고 해도 지금의 전력은 개전 초부터 늘 함께 있었던 전력이었다. 지중해에 배치된 영국함대는 더 구형이고 느리고 무장도 상대적으로 빈약했으며 특히 구축함은 반드시 받아야 할 유지보수는 사치인 지경이었다. 일부는 아예 항구를 떠나지 못하거나 바로 돌아와야 했고 다른 구축함은 함대의 발목을 잡는 신세로 전락했다.
28일 오전 6시, 라치노는 비토리오 베네토에서 단거리 정찰기를 발진시켰다. 이탈리아 전함은 영국군과 달리 정찰기를 회수할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정찰기는 육지로 귀환해야 했지만 제대로 그 가치를 발휘했다. 함대 선봉에서 불과 80km 지점에 영국 소함대가 나머지 함대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탈리아함대는 23에서 30노트로 속도를 올려 우선 그들부터 잡기로 했다.
7시 45분, HMS 오리온Orion이 멀리서 올라오는 이탈리아 순양함의 연기를 발견했다. 중과부적이라고 판단한 소함대는 멀리 있는 전함의 지원을 받기로 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8시 12분, 이탈리아 순양함 트리에스테Trieste가 속도가 느린 HMS 글루시스터Gloucester에게 8인치 포문을 열었고 글루시스터도 6인치 주포로 응사했지만 거리가 미치지 못했다.
비토리오 베네토에 타고 있던 라치노 제독은 황급히 달아나는 영국 소함대를 의심했다. 그는 영국함대가 함정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오판하고 순양함에게 추격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탈리아함대가 천우신조의 기회를 날리고 있는 동안 커닝햄의 주력함대는 이제 112km 지점까지 접근했다. 주력함대는 들쭉날쭉한 속도 때문에 마음이 안 맞는 2인 3각의 꼴이었는데 1차대전 유물인 바햄Barham이 가장 심각했다. 기함인 워스파이트도 기관고장으로 뒤에 처져 있었고 1차대전 베테랑인 오스트레일리아 순양함 HMAS 벤데타Vendetta는 아예 알렉산드리아로 돌려보냈을 정도였다.
커닝햄은 이탈리아함대의 공격보고를 받고는 가장 신형인 베일리언트Valiant에게 구축함을 이끌고 급히 구원하게 했고 포미더블의 페어리 알바코어Fairey Albacore 복엽기(아래 사진참조)에게도 어뢰공격을 나서라고 명령했지만 10시가 넘어서야 모두 항모를 떠날 수 있었다.
라치노는 여전히 적의 전력을 두고 고민에 빠져있었다. 보유한 정찰기로는 적의 전력과 위치를 파악할 방법이 없었고 독일이 약속한 항공엄호는 고사하고 이탈리아공군조차도 하늘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큰 오판을 했다. 로도스Rhodes섬에서 영국 전함, 항모와 구축함 함대를 포착했다는 보고를 해왔지만 그는 자신의 순양함 소함대가 복귀하고 있고 도망갔던 영국 소함대가 그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영국 소함대를 다시 한 번 공격하기로 했다.
오전 11시, 26km 지점에서 비토리오 베네토의 굴뚝연기를 본 오리온은 경보를 울렸다. 다시 한 번 소함대는 반전회피를 했고 이탈리아 전함의 15인치 포탄이 날아들었다. 두 척의 순양함이 가벼운 피해를 입었지만 속도가 더 빠른 이탈리아 전함에게 따라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바로 이 순간에 알바코어 함상폭격기 선봉이 도착했고 비토리오 베네토가 회피기동으로 어뢰공격을 피하는 동안 영국 순양함들은 무사히 대피했다.
라치노는 원래 목표였던 수송선단도 없고 연료도 부족하고 항공지원도 없었기 때문에 후퇴하기로 했다. 알바코어가 나타난 것을 보면 최소한 한 대 이상의 항모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모든 함선에게 북으로 선수를 돌려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라치노는 아직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라고 세 번째 오판을 하고 연료를 아낄 수 있는 경제속도로 움직이게 했다. 전력이 노후한 영국함대가 사력을 다해 자신을 상대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영국함대도 아직 공격준비를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포미더블은 이탈리아공군의 폭격을 받는 동안에도 폭격기를 발진시켜야 했다. 오후 3시, 3대의 알바코어가 이탈리아 전함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이탈리아군은 이미 먼저 도착한 블렌하임 폭격기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이탈리아 포수가 고고도의 블렌하임 폭격기를 상대하는 동안, 알바코어는 저고도로 날아 비토리오 베네토를 기습했다. 900m 거리에서 한 대의 복엽폭격기가 격추당하기 전에 어뢰를 떨어트렸다.
선수아래를 맞은 비토리오 베네토는 침수되며 동력을 잃었다. 선원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속도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라치노는 이제 도망갈 생각 밖에 없었다. 커닝햄의 영국함대가 100km 밖까지 접근했다.
오후 5시, 라치노는 2개의 순양함 소함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3척의 영국전함도 그의 뒤를 좇고 있었다.
저녁 7시, 3번째이자 마지막 공습이 시작되었다. 6대의 알바코어와 4대의 페어리 소드피시 뇌격기가 나타나 비토리오 베네토 부근에서 호위하는 이탈리아 함대로 다가왔다. 영국함대는 80km까지 접근해서 야간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선두에 있던 구축함들은 넓게 퍼져 30노트 속도로 전진하며 이탈리아함대를 찾았다.
저녁 7시 30분, 이탈리아 함선의 대공포가 불을 뿜었고 그 일대는 예광탄, 탐조등과 화염으로 환해졌다. 공습에서 겨우 한 발의 어뢰만 성공했지만 이후의 전투를 결정짓는 한 방이었다. 중순양함 폴라Pola가 어뢰를 맞고 엔진룸이 침수해 움직일 수 없었다. 전기도 완전히 나가버렸다.
나머지 함대는 폴라의 상황을 알아채지 못하고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커닝햄도 고민했다. 야간전투를 벌인다면 아침에 몰려들 이탈리아와 독일폭격기가 두려웠다. 부하장교도 추격에 반대했지만 그는 모험을 걸기로 했다. 베일리언트의 속도를 늦춰서 자매전함과 거리를 좁혔다.
영국해군은 이탈리아해군에게 없는 레이더를 갖추고 있었다. 이탈리아도 1930년대 초, 위대한 이탈리아 발명가 마르코니가 레이더 장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지만 완성하기 전에 죽고 말았다. 이탈리아는 영국해군의 레이더 장착을 모르고 있었다.
HMS 오리온은 어둠 속에서 주저 앉은 폴라를 포착했다. 라치노도 비슷한 시간에 폴라의 상황을 뒤늦게 알았다. 그는 영국해군의 추격에 대해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라Zara와 피우메Fiume와 함께 4척의 순양함을 보내 폴라를 견인하라는 위험한 결정을 내렸다.
이탈리아군은 연료를 아끼기 위해 16노트 순항을 했고 새벽이 오기 전까지 안전지역으로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심야의 추격전에는 워스파이트가 가장 앞에 나섰다. 커닝햄은 항로를 변경해서 레이더에 표시된 미확인 목표물을 요격하라고 지시했다. 이탈리아해군은 아직도 영국해군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영국해군은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야간전투를 대비해 오래 전부터 연습을 해오고 있었다. 이제 그 대가를 받을 때가 되었다.
저녁 10시 30분, 일렬종대의 이탈리아 순양함이 포착되었다. 커닝햄 제독은 전함 3척을 횡렬대형으로 바꾸고 15인치 포는 4km 사거리에 맞추게 했다.
HMS 그레이하운드Greayhound 구축함이 피우메를 탐조등으로 비췄다. 3척의 전함이 일제히 15인치 포탄을 쏟아 부었고 피우메, 자라와 구축함 알피에리Alfieri는 5분도 안되어서 화염덩어리로 변했다. 나머지 이탈리아 구축함은 어뢰를 마구 쏘아댄 후에 어둠 속으로 숨었다.
영국 전함은 급선회해서 구축함의 반격을 피했다. 커닝햄은 구축함에게 적을 추격하라고 명령했다. 어둠 속에서 이탈리아와 영국 구축함이 서로를 찾아대며 공격했다. 교전 중에 이탈리아 구축함 카르두치Carducci가 침몰했다. 나머지 두 척은 북서쪽으로 속력을 높여 달아났다.
HMS 해복Havock 구축함이 자라가 있을만한 곳에 조명탄을 발사했고 그 자리에는 폴라가 있었다. 해복은 폴라를 비토리오 베네토로 오인하고 브릿지에 두 발의 포탄을 쏘고 이탈리아 전함을 나포했다고 보고했다.
200명의 이탈리아 선원이 아직 폴라에 타고 있다가 포로가 되었다. 그들은 물에 젖어 심하게 떨었고 포도주로 추위를 달랬다. 이탈리아 선원이 전투 시에 술에 취했다는 주장은 오해일 뿐이다. 영국함대는 폴라를 이집트로 견인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끌면 위험을 자초할 뿐이었다. 포로만 데려가고 폴라를 격침시켰다.
비토리오 베네토를 추격하던 순양함대는 불빛을 봤다고 보고했고 커닝햄은 이탈리아의 새 함대가 투입된 것으로 생각하고 전 함대에게 북쪽으로 선수를 돌려 더 이상 전투를 벌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전멸위기에 몰렸던 이탈리아의 나머지 함선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해역을 뒤지던 영국 구축함은 자라도 발견해서 격침시켰다. 너무 많은 이탈리아 선원이 바다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있는 900명만 끌어올렸다. 이튿날 아침 8시가 되어 독일 급강하폭격기가 나타났고 영국함대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영국은 아직 물 위에 떠있는 선원의 위치를 이탈리아에게 알려주었고 그날 밤까지 300명을 더 구조할 수 있었다. 윈스턴 처칠수상은 커닝햄의 신사적인 행동을 질책했다.
나폴리항에 정박해 있는 피우메(오른쪽), 자라와 폴라입니다.
큰 피해를 입은 비토리아 베네토와 나머지 호위함은 안전하게 그러나 비참하게 이탈리아로 복귀했다. 영국함대는 공습을 당하기 전에 후퇴하면서 이탈리아가 2차대전에서 마지막으로 공세로 나왔던 마타판 해전은 이탈리아의 참패로 끝났다.
이탈리아는 구축함과 잠수함 작전에 주력하게 되었고 순양함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투입했다.
독일은 이후 2개월 동안 지중해에 폭격기와 유보트를 투입해 이탈리아해군의 공백을 메우려고 했고, 마타판 해전에 참전해 놀라운 전과를 올렸던 함선과 선원은 크레테섬 철수작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이탈리아해군은 마타판 해전에서 전함 1척 대파, 순양함 3척 침몰, 구축함 2척 침몰, 2,300명 이상의 전사, 1,015명 포로의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영국해군은 순양함 4척의
가벼운 파손, 뇌격기 1대와 3명 전사라는 비교도 안되게 가벼운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탈리아해군이 지중해에서 영국해군과 수송단을 몰아내지 못했고 북아프리카 전선붕괴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현대 > 2차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터와 셔먼의 상세베르 전차전 (0) | 2015.01.17 |
---|---|
M4 셔먼을 죽음의 덫으로 불렀습니다. (0) | 2015.01.04 |
이탈리아 해군이 멈춘 날, 마타판 곶 전투(1941) 1부 (0) | 2014.12.20 |
1945년 프라하 봉기 2부 (0) | 2014.12.13 |
1945년 프라하 봉기 1부 (0) | 2014.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