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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드레드노트부터 항공모함까지 - 비스마르크 사냥

by uesgi2003 2021. 5. 21.

고유명사의 발음이 왔다 갔다... 그리고 현지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확성과 일관성을 지켜야 하지만, 여러분을 위해 정리하는 자료이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뭐, 오타는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5월 23일 저녁 7시,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이 덴마크해협에 들어선 것이 발견되었다. 약 1시간 후, 순양함 노포크가 서포크에 합류했지만 1.2km 거리에서 15인치 포탄이 쏟아지자 연막을 뿌리며 후퇴했다. 
기적처럼 아무런 손상이 없었고 남서쪽 965km 거리에 있는 본토함대에 위급한 상황을 알렸다. 순양함 두 척은 밤새 독일전함을 따라붙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후드가 가장 먼저 다가왔다. 부제독 홀랜드Holland는 순양함들이 프린츠 오이겐을 상대하는 동안 전함 두 척으로 비스마르크를 집중 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는 비스마르크가 선두에서 빠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비스마르크는 포격 후폭풍으로 전방 레이더가 고장 나서 프린츠 오이겐이 선두를 맡았다. 

 


홀랜드는 선제공격하기 위해 무선교신을 죽였고 서포크의 보고로 독일전함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렇지만 자정직후에 서포크에게서 더 이상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다. 서포크의 보고가 다시 들어오자 속도를 28노트로 올리고 독일함대로 향했다. 새벽 3시 40분, 가시거리는 19km였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급하게 항로를 바꾸자 갑자기 포격이 쏟아졌다. 몇 분 만에 15인치 4발, 8인치 3발을 맞았고 한 발이 함교를 맞춰 거의 모두를 죽였다. 간신히 살아남은 함장은 연막을 피우고 퇴각하라고 명령했다. 
최신함이었던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여전히 작업상태였다. 14인치 포탑을 완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전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전면대결은 약할 수 밖에 없었다. 함장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로 아군의 순양함과 함께 시간을 끌며 본토함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함장 리치Leach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그림 참조)가 비스마르크에 3발을 명중시켜서 연료탱크를 2개에 구멍이 생긴 것을 알지 못했다. 이 피해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공격을 포기하고 생 나제르St Nazaire로 향했다. 
비스마르크가 들어갈 건조독이 있는 유일한 프랑스 항구였다. 본토함대는 여전히 530km 남서쪽에 떨어져 있었고 빨라야 2일 후에나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전투함이 계속 증원되고 있었다.
H전대가 지브랄타에서 북쪽으로 올라와 독일함대의 진로에 들어섰고 전함 로드니, 리벤즈와 라밀레스, 순양함 에딘버러도 수송단 호위에서 이탈해 비스마르크 추격에 참여했다. 

 


우선 비스마르크의 속도를 발목을 잡아야 했다. 항모 빅토리어스가 160km 거리에서 소드피시를 띄우기로 했다. 저녁 10시, 소드피시 8대가 이륙했다. 90분 후에 간신히 비스마르크를 발견했지만 악천후 때문에 놓쳤다. 20분 후, 추격하던 순양함이 레이더에 나타난 비스마르크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소드피시는 대공포화를 뚫고 공습을 감행했다. 어뢰 한 발을 명중시켰지만 별 피해를 주지 못했다. 8발은 빗나갔다. 
비스마르크는 남동쪽으로 선수를 돌렸고 레이더 최대거리에서 추격하던 영국순양함은 방향을 잃었다. 그리고 오보가 겹쳐서 비스마르크가 북동쪽으로 항해해 대서양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판단했다. 
본토함대의 주력함은 25일 하루 종일 이 방향으로 나가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비스마르크가 남동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방향을 수정했다. 

올바른 판단이었다. 거리가 멀어지기는 했어도 비스마르크 주변의 그물은 계속 조여 들었다. 젊을 때에 해군에 복무했던 공군사령관 보우힐Bowhill은 비스마르크가 브레스트로 바로 가지 않고 스페인 피니스테레Finisterre만으로 향할 것이라고 해군성을 설득했다. 
정찰기도 더 남쪽을 수색했고 26일 오전 10시, 비스마르크가 브레스트 서쪽 1,126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카탈리나Catalina에 동승한 미해군 조종사가 발견했는데 미국은 중립이었지만 실전경험을 쌓기 위해 참전했고 극비사항이었다. 
곧바로 아크로얄의 소드피시 정찰기 2대도 비스마르크를 발견했다. 순양함 쉐필드가 비스마르크를 추격하기 시작했고 오후 3시, 소드피시 뇌격기 14대가 이륙했다. 소드피시는 악천후 속에서 쉐필드를 비스마르크로 오인하고 폭격하기 시작했다.
아크 로얄은 쉐필드가 추격 중이라는 보고를 받지 못했고, 어뢰 몇 발을 투하했지만 순양함의 멋진 회피기동과 어뢰의 자기뇌관 고장으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저녁 7시, 다시 소드피시 15대가 이륙했다. 이번에는 쉐필드가 비스마르크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었는데 석양과 집중포화로 기회를 잡지 못하고 고전하다가 어뢰 2발을 맞췄다. 한 발은 비스마르크의 장갑판에 맞아 피해를 주지 못했지만 다른 한 발은 선미 끝을 맞춰 프로펠러를 부수고 방향키를 15도 기울게 만들었다. 

 


뤼첸스는 베를린에 이렇게 보고했다. 
전함 통제불가. 마지막 한 발까지 전투하겠음. 총통각하 영원하시길. 
곧바로 영국 구축함 5척이 도착했고 어뢰공격을 시도하다가 비스마르크의 정확한 포격으로 중단되었다. 밤새 킹 조지 5세와 로드니가 포격거리까지 접근했다. 토비Tovey제독은 비스마르크의 화력을 염려해 동이 틀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비스마르크는 달아날 곳이 없었다. 

 

 


5월 27일 새벽, 영국의 두 전함이 15km 거리에서 포문을 열었다. 오전 10시 20분, 비스마르크는 불타는 거대한 잔해로 변했고 더 이상 반격하지 못했다. 두 전함이 700발 이상을 퍼부었는데 명중탄은 극소수에 불과해서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토비제독은 포수에게 자신이 쌍안경을 던져 맞추는 편이 더 낫겠다고 질책했다. 두 전함은 피해가 없었지만 연료부족으로 물러나야 했다. 순양함 서포크와 도셋셔Dorsetshire가 접근해서 어뢰로 마무리를 지었다. 생존자 중 일부는 자침시켰다고 주장했다. 
비스마르크는 10시 36분에 침몰했고 2,000명 이상의 승무원 중 겨우 119명만 살아남았다. 반세기 동안 바다 밑에 가라앉았다가 심해촬영가 팀이 발견해 선수의 나치기를 촬영했다. 

 


프린츠 오이겐은 5월 24일에 비스마르크에게서 떨어져 나와 재급유 후에 기관고장이 계속되어 작전을 중단하고 브레스트로 향했다. 영국정찰기가 포착했지만 대부분의 전투함이 재보급받는 중이어서 6월 1일에 안전하게 항구로 들어갔다. 
프린츠 오이겐,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는 항구에 계속 머물다가 영국공군의 공습을 받고 피해를 입었고 그 해에는 더 이상 수송선단공격에 나서지 못했다. 
영국해군은 독일의 수송단공격을 원천차단하기 위해 급유선과 보급선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6월에만 급유선 5척과 보급선 3척이 격침되었고 기상관측선 2척도 나포되었다.  

6월 12일, 독일중순양함 뤄초우가 구축함 5척과 함께 상선단을 공격하려고 북대서양으로 향했다. 곧바로 영국정찰기에 발각되었고 뷰포트 뇌격기 14대가 공습에 나섰다. 선체에 정확하게 어뢰 한 발을 맞은 뤄초우는 6월 14일에 킬Kiel에 입항했다. 
6개월 동안 항구에 머물렀고 독일전투함의 수송선단공격은 더 이상 없었다. 1942년에 독일전투함이 대거 출항했지만 러시아침공을 지원하기 위한 북극전역이었다. 
대서양에서는 영국공군의 장거리전투기가 대거 투입되어 포케불프 콘도르의 위협이 급감했고 독일과 이탈리아 잠수함만이 제대로 작전을 펼칠 수 있었지만 그것도 점차 어려워졌다. 
1941년 여름, 선박피해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5월 말부터 캐나다와 영국전투함의 호위가 늘어났고 대서양지원그룹을 만들어 호위함을 위기에 몰린 수송선단에 투입했다. 
1941년 6월 23~28일, HX133 수송선단이 그린랜드 남쪽에서 유토브 10척의 공격을 받았다. 5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호위함 13척이 전투를 벌여 상선 5척을 잃은 반면에 유보트 U-556과 U-651 2척을 침몰시켰다. 

 

U-556은 1941년 2월에 취역해서 6월에 침몰해 단명한 잠수함입니다. 

1941년 5월 8일, 구축함 불독이 수송선단을 호위하다가 독일잠수함 U-110을 수상으로 끌어냈다. 독일수병은 폭발물을 설치하고 배를 버렸지만 폭발하지 않았다. 불독수병은 위험을 무릅쓰고 잠수함에 올라 암호책과 에니그마Enigma암호기계를 입수했다. 

 

에니그마 암호해독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폴란드에서 넘겨주었다는 주장도 있고 영국해군이 입수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독일해군의 무선교신 95%가 이 암호로 수발신되었고 유보트와의 전쟁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해군성은 이제 독일잠수함의 작전주기를 대략이라도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해군성은 유보트의 움직임과 위치를 예상하고 수송선단이 항로를 변경했고 HX133 호위함이 잠수함 2척을 침몰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