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러시아14 몽골에 대한 모스크바공국의 대반격 - 쿨리코보전투 (1380) 킵차크 칸국, 킵차크 한국, 금장 한국로 혼용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사용해도 괜찮습니다. 1380년 9월 8일 오전, 돈Don강 위에 짙은 안개가 내려 앉았다. 러시아군의 긴 대열이 네트라브다Nepravda강이 합류하는 도강지점에 길게 늘어섰다. 2km 정도를 걸어 킵차크 칸국Golden Horde 몽골군이 기다리는 전장에 도착했다. 러시아군 지휘관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y Donskoy모스크바대공은 동방정교Orthodox신앙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자도 연설했다. “형제들이여. 신이 바로 우리의 피난처이고 힘이다.” 그리고 뒤에서 몰래 모스크바귀족 미하일 브레노크Mikhail Brenok와 갑옷을 바꿔 입었다. 브레노크는 성모 마리아, 성 게오르기우스St George, 성 안드레아St Andrew 깃발.. 2022. 1. 6. 튜톤기사단의 흥망(2부) - 페이푸스호수 전투 (이번 이야기에서 잠시 끊고 2차대전 서부전선 이야기를 한동안 한 후에 다시 이어갈 예정입니다.) 타르투주교의 병력은 기사 300명과 에스토니아 보조병 1,000명, 나머지 에스토니아지역에서 기사 200명과 보조병, 튜톤기사단은 기사 350명과 보조병으로, 십자군은 총 800명의 기사와 1,000명의 보조병이 전부인 것으로 추측된다. 러시아군은 규모를 아예 알 방법이 없다. 알렉산드르 네브스키와 형제인 안드레이Andrey의 친위대 그리고 노브고로드 민병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십자군의 에스토니아 보조병과 같은 이민족 보조병이 있었을 것이다. 몽골 궁기병파견대는 수백명이 고작으로 전체 병력은 아무리 많아도 7,000명을 넘지 않았다. 양측의 정예병 규모는 거의 비슷했고 러시아군의 규모가 십자군보다 훨씬 .. 2020. 7. 8. 튜톤기사단의 흥망(1부) - 러시아침공 발트해의 상황 발트해에서의 십자군원정은 중동십자군과 같은 명예는 없었지만 훨씬 큰 영향을 미쳤고 현재까지 발트해민족 대부분이 가톨릭 또는 개신교 신자로 남아 있다.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상인이 시장을 위해 무력개척에 나섰고 그 다음에 검의 형제단Sword Brethren, 그 다음에 독일, 덴마크, 스웨덴 십자군이 새 영지를 찾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들이 분열을 일으킨 틈을 타 튜톤기사단Teutonic Knights이 나타났다. 북부십자군에 동참한 독일은 황제와 교황의 갈등 때문에 12세기 말~13세기에 무정부상태였고 덴마크와 스웨덴도 러시아, 비잔틴제국, 무슬림과 멀리하면서 급격하게 유럽화되고 있었다. 북부십자군은 4차십자군에 비해 소규모였다. 교황 인노첸시오Innocent 3세가 리보니아Livo.. 2020. 7. 8. 코사크의 역사 - 예르마크의 시베리아 탐험(2부) 코사크의 역사 - 예르마크의 시베리아 탐험(2부) 양쪽이 벼르고 있던 전투는 재미있는 사건 덕분에 코사크족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코사크족의 대포가 전투 중에 가장 용맹스로운 부족의 손에 들어갔다. 그들은 대포를 끌고 다니다가 전진하는 코사크족에게 날벼락을 날릴 생각이었.. 2016. 8. 20.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