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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기타

페르시아 최정예부대, 불사부대Immotals는?

by uesgi2003 2022. 1. 26.

페르시아 고대사 전문가인 로이드 르웰린 존스Lloyd Llewellyn-Jones교수의 BBC 자료를 인용했습니다. 

 

 

영화의 영향으로 불사부대하면 이렇게 흉칙하고 중무장한 병사들로 오해하고 있죠. 

이런 병사들이었다면 오히려 스파르타 방어선을 무척 간단하게 돌파했을겁니다. 

 

 

 

페르시아 불사부대Immortals: 아케메네스Achaemenid제국의 최정예 근위대 

불사부대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예병 중 하나였다. 페르시아 불사부대는 어떻게 그렇게 강력했고 불사라는 명예를 얻었을까? 

페르시아 불사부대는 BC 550~330년, 약 200년 동안 활약한 정예부대로 아케메네스제국의 역사를 함께 했다. 1만 명 정도의 불사부대는 제국군대의 주축이었고 황제의 근위대이자 정규군의 일부였다. 


키루스대왕Cyrus the Great(그림 참조)은 서아시아에 방대한 제국을 세웠다. 이란 평원의 남서쪽 끝에 있던 키루스는 메디아Medes와 바빌로니아Babylonia제국, 리디아Lydia왕국 등을 정복했다. 
이후에 크세르크세스Xerxes I는 그리스 중부와 북부 대부분을 정복해서 동쪽으로는 인더스 계곡Indus Valley부터 서쪽으로는 발칸반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불사부대는 기원전 539년에 바빌론을 정복한 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키루스가 바빌론 총독으로 임명한 여성사령관 판테아 아르테쉬보드Pantea Arteshbod(사진 참조)가 불사부대라는 근위대를 창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키루스 전기를 쓴 크세노폰Xenophon은 키루스 자신이 정규군인 스파다spada에서 정예병사를 선발해 황궁근위대를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대부분 페르시아인으로 구성되었고, 메디아와 엘람Elam인도 상당수 선발했다. 키루스는 이전의 적군도 포용하는 관용을 보였다. 정규군은 장비를 자비로 갖춰야 했기 때문에 정규군과 불사부대는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이었다. 

 


5살의 어린이에게 승마, 궁술, 사냥과 경작 등을 가르쳐 정규군으로 키웠다. 20살 정도에 입대했고 온갖 격전을 치루고 50살이 되면 연금과 토지를 받고 제대했다. 전투능력과 사기 면에서 최정예 병사였고 정규군의 10% 정도만이 불사부대가 될 수 있었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에 따르면 불사부대는 정확하게 1만 명이었고 이 숫자를 그대로 유지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부대원이 전사하고, 중상을 입고, 병에 걸리거나 제대하면 바로 보충해서 전력누수를 없앴다. 
그리고 전장에서 시체를 바로 치웠다. 불사부대의 시체가 안 보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불사부대는 주로 1.8m 길이의 날카로운 창을 사용했다. 창날의 반대편에는 추를 달아서 둔기로 사용했다. 
균형추는 과일모양이었고 사과모양은 불사부대에서도 1천 명 만이 달 수 있는 명예로운 모양이었다. 1천의 초정예 황제경호대는 천총apple-bearers이라고 불렀고 창이 더 길었다. 
불사부대는 사가리스sagaris라는 경량 도끼 등을 부무장으로 사용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불사부대는 투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다양한 머리쓰개tiaras를 착용했다. 천모자를 착용해서 얼굴을 덮어 바람과 먼지를 막기도 했는데 대부분 천으로 만든 모자를 착용했다. 
동과 철판을 겹친 갑옷을 착용했는데 물고기 비늘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버들과 나무에 가죽을 씌운 방패도 사용했다. 

 



궁병이 전열에 섰고 보병이 그 뒤에 그리고 기병은 양측면에 섰다. 수천 발을 동시에 날리면 하늘을 덮었고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불사부대의 갑옷이 햇빛에 번쩍이면 광경만으로도 많은 도시가 공포에 질려 성문을 열었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불사부대는 상당히 높은 지위였고 많은 돈을 썼다고 한다. 행군을 할 때마다 첩, 노예, 개인물품으로 가득 채운 마차나 낙타를 끌고 다녔다. 

기원전 530년에 키루스가 죽자, 아들 캄비세스 2세Cambyses II와 다리우스대왕Darius the Great이 불사부대를 그대로 유지했다. 다리우스는 그리스를 침공할 때에 불사부대를 투입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불사부대도 기원전 490년 마라톤Marathon패전을 막지 못했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선왕의 패전을 보복하려고 대대적으로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불사부대도 10년 전의 패전을 복수할 기회가 왔다.  
테르모필레Thermopylae협곡에서 메디아와 키시아Cissia인으로 구성된 정규군은 소수의 스파르타군의 격렬한 저항을 뚫지 못했다. 스파르타 레오니다스Leonidas 1세는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병만으로 오히려 페르시아 정규군을 밀어냈다. 
크세르크세스는 불사부대를 투입해 스파르타군을 격파하기로 했다. 헤로도토스는 ‘불사부대가 손쉽게 끝낼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리스군과 교전하자 정규군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기록했다. 

 

나폴레옹이 겨울에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패전했다는 식으로, 심각한 오류를 사실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테르모필레에서도 스파르타군 말고도 최소한 3,000명 이상의 그리스도시 병사들이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다가 2,000명 이상이 전사했습니다. 

그런데도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타 300명만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불사부대의 경장비는 스파르타의 방어선을 돌파할 수 없었다. 키루스가 제국을 확장할 당시의 무기와 장갑은 대단한 위력이었지만 크세르크세스 시절에는 스파르타군이 훨씬 위력적인 무기와 장갑을 사용했다. 
크세르크세스는 기원전 479년 플라타이아Plataea전투에서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불사부대는 심각한 패전에도 불구하고 아케메네스 제국의 정예부대로 남았다.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Gaugamela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대왕Alexander the Great의 마케도니아Macedonia군에게 패하면서 아케메네스 제국은 급격하게 몰락했지만 불사부대는 살아남았다. 

 


알렉산드로스는 키루스를 매우 존경했고 불사부대를 궁전의 경호부대에 합류시켰다. 폴리아이누스Polyaenus는 ‘불사부대원 중에 가장 크고 잘 생긴 병사들이 페르시아 복장으로 단검을 들었다’고 기록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죽고 제국이 4개로 분할되었다. 
중앙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지역은 셀레우코스Seleucus 1세의 셀레우코스Seleucid 제국이 되었지만 불사부대를 그대로 유지했는 지는 불확실하다.

 


불사부대는 해체된 후에도 계속 영향을 미쳤다. 기원후 224년에 탄생한 사산Sasanian 제국은7세기 무슬림제국에 합병되기 전까지 존재했고 불사부대라고 부른 정예부대 체계를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