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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기타

우정의 극과 극 - 손빈과 방연

by uesgi2003 2014. 2. 13.


소치 올림픽에서 이상화선수가 좋은 기록을 내면서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김연아선수의 피날레 무대는 기록적인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녀가 어떤 성적을 내던 상관없이, 오랜 시간 덕분에 즐거웠고 피겨 스케이팅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원빈과 현빈에게 미쳐서 저를 오징어취급하는 안사람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자면... 이번 소치 미인 중 가장 눈길이 가는 미인입니다. 역시 솔로들에게는 장모님의 나라 러시아, 우크라이나입니다. 솔로인 분은 빨리 비행기편 알아보길... 




러시아 역사 이야기로 빠져야 흐름이 맞는데, 아쉽게도 오늘은 중국의 고대 인물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부터 간단하게 정리해보고 싶었던 서로를 해친 우정(?) 그리고 서로를 살린 우정입니다. 손빈과 방연의 경우에는 우정이라고 할 수 없겠죠. 손빈만 그렇게 오해했을 뿐이니까요. 어쨌든 손빈과 방연의 빗나간 우정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손빈(孫臏)에 대해 알아봐야겠죠? 그리고 그에 앞서 전국시대에 대해 간단한 설명이 하겠습니다. 주나라가 외적에 밀려 수도를 지금의 뤄양으로 천도한 후에 한, 위, 조 3개 제후국이 독립을 인정받은 기원전 771년부터 진나라가 중국의 6개 나라를 합병해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말합니다. 


주나라가 천도를 할 당시(서주시대)의 중국 지도입니다. 



손빈과 방연이 활약하던 전국시대 당시의 중국지도입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의 문물을 세계최고의 수준으로 발전했고 무려 2,000년 후인 지금도 우리는 그들의 사상과 일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동 아시아 사상의 기틀이 된 유교사상이 이 때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춘추시대에는 주왕실을 정점으로 제후국들이 대립하고 경쟁했지만 그래도 서로를 존중해서 멸망시키는 일이 적었지만, 전국시대에 접어들면서 약육강식으로 힘이 모든 것을 결정지었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서 위대한 사상가들이 대거 출현하였고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각지에서 부국강병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유가, 도가와 묵가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법가(관중)와 종횡가(방연)가 중심사상입니다. 




전국시대 당시에는 유가와 함께 가장 큰 세력을 이뤘던 묵가의 병법을 만화로 그린 작품입니다. 제게는 대단한 명작이고, 당연히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스토리는 도움요청을 받은 묵가에서 단 한 명의 전략가가 파견되고 대군을 맞아 벌이는 혈투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손빈은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의 후손으로 뛰어난 군사가였습니다. 그는 종횡가(귀곡자가 창시한 사상으로 제후국의 정치대립과 연합으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사상. 합종연횡이 나온 사상)에서 방연(龐涓)과 동문수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손빈은 귀곡자에게 손무의 병법 열세 편을 받을 정도로 제자 중에 뛰어났고 묵가의 금활리가 귀곡자를 방문했다가 손빈의 재능을 알아보고 세상에 나가 군주들을 도우라고 권했습니다. 손빈은 동문인 방연이 이미 세상에 나갔고 자리를 잡으면 자신을 부르기로 했다는 대답을 합니다.


방연은 귀곡자의 제자로 있다가 세상에 먼저 나갔고 합종연횡으로 유명한 소진과 장의의 동문이라고 허세를 부리며 군주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다녔습니다. 당시 위(魏)나라의 혜왕은 인재를 널리 구하며 국력을 키웠는데, 방연에게 대장군 자리를 맡겼고 그의 아들과 조카를 모두 주요 지휘관으로 임명해서 위세를 떨쳤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방연의 허세는 거짓이 아니었고 혜왕은 그에게 모든 병권을 맡길 정도로 신임했습니다.


방연이 강대국 위나라의 대장군에 올랐는데도 동문인 손빈을 부르지 않았으니 이상하죠? 이유는 인간이 가지는 질투와 욕심때문이었습니다. 방연의 뛰어난 재능에 비해 품성은 악인의 것보다도 못했고, 자신보다 뛰어난 손빈을 부를 경우의 경쟁구도 그리고 기득권 상실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뒤에 설명할 포숙아의 품성이나 우정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손빈의 대답을 들은 금활리는 "방연은 이미 위나라 고관대작이 되었네. 이유를 모르겠군. 내가 알아봄세"라며 혜왕을 방문합니다. 위의 만화 묵공에서도 제대로 표현했듯이, 당시 묵가의 위세는 대단했고 모든 제후가 그들을 모시고 싶어했기 때문에 묵가의 제자라는 평판만으로도 제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혜왕은 방연에게 손빈에 대해 물었고 방연은 이제부터 본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손빈은 제나라 사람으로, 지금 폐하는 제나라와 적대관계인데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그는 제나라를 위할 것입니다."

"나는 출신을 구분하지 않고 인재를 모르고 있소. 손빈과 같은 인재는 모시고 싶소."


손빈을 마주한 혜왕은 그가 전국 최고의 병법가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방연과의 관계를 감안해서 일단 부군사로 방연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방연이 대인배같은 소리를 합니다.

"손빈은 저보다 나이가 많고 뛰어납니다. 제 아래는 안되고 그를 객경(예를 들면 사외이사)에 임명하고 공을 세우면 군사로 임명하시지요."

방연은 일단 시간을 벌고 기회를 보아 손빈을 제거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객경이라는 허울좋은 자리로 추천한 것입니다. 사외이사가 경영권이 없는 고문직에 불과한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손빈은 방연이 앞장서서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을 보고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진실된 친구로 착각했죠.


방연은 손빈을 제나라로 보내려고 수작을 부립니다. 그러나 손빈의 가족이 제나라 군주에게 죽었고 제나라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본격적으로 손빈을 해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방연이 손을 쓴 것인지 아니면 제나라에서 인재를 초빙하려고 했던 것인지, 친척에게서 귀향을 권하는 편지가 왔고 그 편지가 혜왕의 손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손빈이 제나라와 인연을 맺으려는 모양이요."

"그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제나라고 간다면 위나라에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만약 엉뚱한 마음을 먹고 있다면 제가 알아서 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연은 손빈에게 고향을 한 번 방문해보라고 권유를 합니다. 손빈은 거절하다가 방연의 배려에 감사하며 혜왕에게 휴가를 청했고 혜왕은 손빈의 변절을 단정하고 바로 투옥시켰습니다. 방연은 영문을 모르는 손빈 그리고 의심에 눈이 어두워진 혜왕의 사이를 오가면 본격적인 모략에 나섭니다. 

"폐하가 귀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내가 막았습니다. 그렇지만 처벌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얼굴에 문신을 새겨넣는 경형과 다리신경을 절단하는 빈형을 받아야 합니다."


손빈은 영문도 모른 채로 극형을 당했고 평생 설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방연에게 더욱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방연은 손빈에게 손씨 가문의 병서 열 세 권을 빼앗으려는 욕심까지 부렸고 손빈은 감옥에서 병서를 한자씩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긴 방연의 수하가 병서를 모두 쓰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손빈은 방연의 음모를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미치광이 짓을 했고 방연이 시험하기 위해 돼지우리에 가두었을 때에도 돼지 똥을 입에 넣으며 모든 사람을 속였습니다. 방연은 병서가 아까웠지만 손빈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고 언제 사형대로 끌려나갈 지 모르는 손빈은 계속 미치광이짓을 했습니다.


어느날 금활리가 누더기 옷을 입고 몰래 숨어들어왔습니다.

"내가 제나라 제후에게 사정을 이야기해두었소. 다른 사람을 넣어둘테니 제나라 사신의 수레에 숨어 탈출하시오. 나는 자네가 탈출한 후에 달아날 것일세."

혜왕은 방연에게 제나라 사신을 국경까지 호위하라고 지시했고, 손빈을 놓친 방연은 그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거짓보고하고 음모를 마무리지었습니다. 


제나라 장수 전기는 다행히도 인덕을 갖춘 사람으로 손빈이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달려가 그를 모시고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이 때에 말경주 시합의 유명한 일화가 탄생합니다. 전기는 제나라 왕족과 경마를 즐겼지만 할 때마다 돈을 잃었습니다. 왕족의 말에 상대가 안되었던 것이죠. 경마를 구경한 손빈은 전기에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 전략을 가르쳐줍니다. 

"장군의 가장 나쁜 말로 상대의 가장 좋은 말과 상대를 붙이십시오. 그리고가장 좋은 말로 상대의 중간 말을, 중간 말로 상대의 나쁜 말을 상대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승부가 달라진 것을 이상하게 여긴 제나라 위왕이 이유를 물었고 전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빈을 추천했습니다. 위왕도 막힌 인물이 아니었던지 손빈의 가치를 알아보고는 군사에 임명해서 군대를 맡겼습니다. 



중국 드라마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손빈의 모습입니다. 마치 휠체어를 탄 것과 같은 그림이 많지만 기원전 당시에는 이처럼 마차를 탔겠죠.


손빈이 탈출한 후, 기원전 353년에 위나라 혜왕은 조나라를 크게 위협하며 영토를 계속 확장했지만 주변의 제후국이 연합하면서 오히려 위기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배후를 공격했지만 위나라는 조나라와의 혈전을 치르느라 여력이 없었고, 제나라도 이 기회에 위나라를 공격하는 동시에 조나라를 구원하기로 했습니다. 

전기를 대장군으로, 손빈을 군사로 임명하고 8만의 대군을 출병하게 됩니다. 원래는 조나라로 직접 들어가 위나라를 상대하려고 했지만 손빈은 위나라의 기세가 센 곳은 피하고 약한 배후를 치면 조나라를 저절로 구원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위나라 국경을 넘어 교통로를 장악하고 주요 도시를 공격하자고 제안합니다. 

본국이 위협을 받은 방연은 지친 병사들에게 휴식도 주지 않고 회군을 했습니다. 당연히 조나라에서 함락시킨 주요 도시에는 최소한의 방어병력만 남겨둘 수 밖에 없었죠. 교통로 계릉을 지키고 있던 손빈은, 그렇지 않아도 전투에 지치고 철야행군에 지친 위나라 군대를 손쉽게 격파했습니다(계릉전투. 지도 참조. 클릭하면 커집니다). 결국 위나라는 조나라에 모든 도시를 돌려주고 제나라와 평화협상을 합니다. 



이대로 물러날 혜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나라 내부에 균열이 생긴 틈을 노려 기원전 342년에 다시 방연을 시켜 조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조나라는 한나라와 연합했지만 둘 다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큰 힘이 되지 않았고 결국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손빈은 위나라의 기세가 등등할 때에 맞대결을 해서도 안되고 한나라가 여력이 있을 때에 구원해서도 안된다며 기다리자는 조언을 합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위기에 몰려 계속 간청을 할 때에 구원을 하면 한나라는 제나라에 많은 것을 양보하고 위나라도 그 기세가 많이 누그러졌을테니 손쉬울 것이라는 설명을 합니다. 


이번에도 한나라를 직접 구원하지 않고 위나라 국경을 넘었지만 방연은 이번만큼은 실수하지 않겠다며 신중을 기했고 손빈도 위나라의 전력을 염려하고 회전을 벌이지 않고 위나라의 복수심 그리고 방연의 자만심을 이용해서, 제나라 전력이 약하다는 기만전술을 사용합니다.  

첫 날은 밥짓는 야전 아궁이를 100개, 다음 날은 70개, 그 다음 날은 50개로 줄여가며 일부러 흔적을 남겼고(감조지계 減竈之計) 방연은 교통로를 차단하고 기습을 할 것으로 예상했던 손빈이 달아나는데다가 남겨진 아궁이 숫자가 크게 줄어드는 것을 보고 제나라 병사들이 흩어지고 있다고 오판합니다(마릉전투. 지도 참조. 동쪽으로 방연을 끌고 가는 전황이 보입니다). 



그는 이번만큼은 손빈을 잡겠다고 벼르며 보병을 뒤에 남기고 전차와 기병만으로 추격합니다. 그리고 손빈이 미리 정해둔 전장 마릉에 도착합니다. 손빈은 나무를 베어 길을 막으라고 명령하면서 중간의 한 그루의 껍질을 벗기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는 불이 보이면 그 곳으로 일제히 활을 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龐涓死于此樹之下

방연은 이 나무 밑에서 죽는다

軍師孫示
군사 손빈이 적다


밤에 도착한 방연은 봉쇄된 길을 뚫던 중에 커다란 나무에 글씨가 새겨진 것을 보고는 불을 가져오게 해서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에 수 많은 화살이 날아들었고 중상을 입은 방연은 스스로 자결하고 맙니다. 



거꾸로 추격에 나선 손빈은 위나라 태자를 포로로 잡고 한나라도 구원하고 위나라의 국력을 크게 위축시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전국 7 제후국 중 통일가능성이 가장 컸던 위나라는 마릉전투를 끝으로 다시는 국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위나라에 막혀서 진출하지 못했던 진나라가 진출을 시작하면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진나라가 통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