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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타

사라진 전설, 그리스 불 (2부)

by uesgi2003 2014. 9. 21.


비잔틴 제국이 황동관을 사용해서 화공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데 관 안의 인화물질을 불어낸 방법은 불분명하다. 어쩌면 그리스 불의 비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불가리아인이 그리스 불을 손에 넣고도 사용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용법 역시 추측에 의존하고 있는데, 갑판 아래에 인화물질 탱크를 설치하고 가열해서 불어냈을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었다. 인화물질이 탱크 안에서 불붙지 않도록 가열해야 했다. 압축공기를 사용해서 황동관으로 불을 뿜어냈다는 기록도 있다.


 

정확한 방법은 알 수 없지만 그리스 불을 압력으로 뿜어냈다면 해전에서 주로 사용한 이유가 이해된다. 인화물질을 대량으로 저장하고 가열해서 뿜어내려면 특수하게 만들어진 배의 선체만큼 좋은 곳이 없다. 비잔틴 제국의 기록을 보면 공성탑을 상대로 그리스 불을 사용하라고 되어 있지만 육상전에서는 그리스 불의 설비를 민첩하게 이동하며 사용하기 어렵다.

 

이제 비잔틴 제국은 왜 그리스 불을 대대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슬람 해군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비잔틴 제국은 외적의 침공에 시달리면서도 그리스 불을 몇 차례만 사용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독보적인 화공무기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지중해 패권을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예를 들어 러시아인은 9세기 말과 10세기 초에 콘스탄티노플을 4차례나 위협했지만 그리스 불은 한 차례만 만났다.

 

비잔틴 제국이 그리스 불의 비밀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 첫 번째 이유가 될 수 있다. 화공선을 대규모로 동원하면 그만큼 노획되어 유출될 위험도 커진다. 그리스 불의 비밀을 적에게 넘겨주기 보다는 작은 패전이 더 안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 불은 공격용이 아니라 수비전용에 가까웠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비잔틴 화공선은 다가오는 적 함대에게 화염장막을 펼쳤었다. 공격에 나서게 되면 적선에 뒤섞이게 되고 황동관이 있는 전면이 아니라 선미에서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적 지휘관이 뛰어나다면 바람을 등져서 그리스 불의 사거리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 불의 안전장치가 부실할 수 밖에 없었고 비잔틴군도 사고를 두려워했을 것이다. 사고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당시 기술로는 사고를 동반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비잔틴 제국도 8세기~13세기 중에 그리스 불의 비밀을 유실했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미국이 2차대전 후에 원자폭탄 제조법을 분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의 황당한 실수인데 절대비밀을 유지하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스 불의 제조법은 황제가문과 원 발명자 칼리니코스 가문만 알고 있었다. 황실 지하의 터널에 그리스 불 제조공장이 있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스 불을 제조하고 운반하고 사용하던 극히 일부의 전문가가 비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겠지만, 화학자는 제조, 조선공은 운반, 지휘관은 사용에 대한 단편적인 비밀만 알았다.

화학자는 원료를 제조했지만 그것을 가열하고 압력을 가하는 방법에 대해 몰랐고 조선공은 그리스 불 화공무기를 안전하게 보관할 배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원료제조와 사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지휘관은 해전이 벌어질 때를 제외하고는 그리스 불을 만지지도 못했다. 황제는 위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휘관에게 그리스 불의 원료를 넘겨주지 않았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였다면 이런 비밀유지가 필요 없었겠지만 비잔틴 제국은 많은 외적의 위협을 겪어야 했고 반란도 끊이지 않았고 그렇게 비밀은 유실되었다.  

비밀을 온전하게 간직한 황실가문도 자주 바뀌었다. 685~717년 기간에는 연속된 반란으로 황제도 계속 바뀌었다. 먼저 레온티우스 장군은 티베리우스 제독에게 쫓겨났고, 아르메니아 장군 필립피코스가 그 뒤를 이었다. 2년 만에 다시 반란이 일어나 민간인 아르테미우스가 올랐다가 테오도시우스 3세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고 다시 2년도 안되어서 레오 3세가 그나마 안정적인 황제에 올랐다.

 

만약 그리스 불의 비밀이 유실되지 않았다면 비잔틴 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매우 위력적인 화공무기였겠지만 그렇다고 역사를 바꿀 정도의 무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비잔틴 제국의 바다를 지켜주기에 충분한 무기였겠지만 육상의 위협을 막아내기에는 매우 부족한 무기였다.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 불 없이도 이슬람의 육상침공을 오랜 기간 동안 막아냈다. 정작 콘스탄티노플의 몰락은 서쪽의 동맹, 십자군에게서 시작되었다.



성전으로 시작한 십자군 원정은 회를 거듭할수록 반목과 일탈의 규모가 커져갔는데, 4차 십자군 원정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내전과 베네치아 공화국의 물욕때문에 기독교 군대가 기독교 국가를 점령하고 약탈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1204, 미하엘 3세의 비잔틴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했지만 이미 비잔틴 제국의 종말을 막지는 못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453년에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는데, 그리스 불의 비밀이 살아있었다고 해도 이미 오스만 투르크는 초대형 대포를 동원할 때라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 불의 비밀이 언제 유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비잔틴 제국은 오스만 투르크군을 상대로 그리스 불이라고 부르는 화공무기를 사용했지만 7세기의 위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군도 그리스 불에 대한 대처법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리스 불의 전설 그리고 비밀에 대해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문서 어딘가에 남겨져 있을 것이다. 아니면 콘스탄티노플의 유령만이 비밀을 알려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잔틴군의 그림입니다. 동서양을 아우르며 오랜 기간 존속했던 제국이기 때문에 상당히 다양한 민족과 무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설명하려면 책 한 권이 넘는 분량이어서 지금은 그냥 그림만 나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에 간단한 설명이 있으니까 시대를 참조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