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근대/나폴레옹전쟁41

나폴레옹전쟁 (7부) - 전열병 일제사격 당시 보병전술이 우리의 오해와 달리 유연하면서도 복잡했다는 것을 설명했고, 이번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무척 답답하게 생각하던 전열병 일제사격에 대해 설명합니다. 전쟁에 전쟁이 이어지던 시대라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우리가 그랬듯이, 100년 후의 후손들은 우리를 미개하게 생각하는 실수를 반복할겁니다. 사격술 강선총을 무장한 병사는 거의 없었고, 절대다수가 전장식 수발총을 사용했다. 영국군의 소총은 구경이 약간 더 커서 프랑스군의 탄약을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의 소총은 성능보다는 생산성이 우선이었고 어느 소총이나 거의 비슷했다. 소총의 품질보다는 병사의 기량이 더 우선이었다. 정교한 조준보다는 최대한 빨리 장전하고 적을 향해 적당히 조준한 후에 일제사격하는 훈련을 받았다. 부대가 한꺼번에 방아쇠를 당겨야.. 2022. 4. 22.
나폴레옹전쟁 (6부) - 보병대형과 훈련 요즘 꽃심고 잡초 뽑느라 다시 속도가 느려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 2년 동안 많이 뒤집고 다듬은 덕분에 올해는 그 범위가 훨씬 작아졌습니다. 그 당시 유럽군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병과는 보병이었다. 전체전력 중 60~90%를 차지했고 가장 저렴하면서도 변화무쌍한 병과였다. 지휘관은 기병과 포병을 더 원했겠지만 대부분의 전투는 양측의 보병간에 벌어졌고 워털루전투의 나폴레옹처럼 보병이 부족하면 승리할 수 없었다. 보병의 기본단위는 대대이며 300~1,200명으로 편차가 심했는데 보통 500~700명이었다. 살라망카전투에서 영국군 42연대 1대대는 1,079명이었던 반면에 44연대 2대대는 겨우 251명이었다. 전투에 참가한 영국과 독일군 44개 대대 중에 5개는 800명 이상이었고 9개는 400명.. 2022. 4. 17.
나폴레옹전쟁 (5부) - 경보병 산병Skirmisher, 엽병Jager, 경보병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고 있습니다. 경보병은 18세기 말~19세기 초에 크게 활약한 병과였다. 영국과 유럽대륙은 미국독립전쟁 경보병에 큰 관심을 가졌고 프랑스혁명전쟁에서 산병전술은 경직된 구식보병전술을 압도했다. 그렇지만 최근 연구자료를 보면 프랑스산병에 대해 상당히 과장되어 있고 정예산병은 혁명의식에 고취된 신병이 아니라 전문경보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790년대 프랑스군은 산병전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밀집대형보병을 지원하거나 독립적으로 사용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왼쪽이 프랑스 척탄병, 오른쪽이 경보병(볼티죄흐, 도약병)입니다. 척탄병은 원래는 수류탄을 던지고 착검돌격해서 적진을 무너트리는 특수보병이었는데 나폴레옹전쟁에서는 정예보병 정도의 .. 2022. 4. 1.
나폴레옹전쟁 (4부) - 포병운용 요즘 뉴스도 끊고, 데스크탑 PC가 고장나서 게임도 끊으니 전사정리 속도가 붙는군요. 포병은 고전하는 보병을 근접지원하면서 용맹을 발휘했다. 살라망카전투에서, 웰링턴은 다인리Dyneley에게 포 2문을 산정상으로 끌고 올라가 전부 전멸할 때까지 방어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명령을 받으면 전멸이나 수훈, 둘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염려했던 프랑스군의 공격은 없었고 연합군에 공세에 나서면서 포 4문이 더 합류했다. 이제 700m 거리의 산에 있는 프랑스군을 포격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응사하는 프랑스군 포대를 잠재웠다. 포르투갈여단이 프랑스군 진지를 공격해 산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밀려났다. 프랑스군이 반격에 나서자 다인리는 300m 거리에서 산탄을 퍼부어 프랑스군을 막았다. 본대의 .. 2022.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