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무기는 기원전부터 본격적인 화약무기시대 이후에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시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서는 영화 안시성을 보다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배경정도로만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로 중국의 공성무기이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비슷한 공성무기를 사용했습니다.
중간에 설명하다 보면 이야기가 번져서 안시성전투와 상관없는 무기도 등장합니다.)
중세공성전에 대해서는 이미 외국자료의 백년전쟁을 인용해 자세하게 설명해두었습니다. DP라는 커뮤니티에 공성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중국공성무기에 대한 요청을 받아 이번 기회에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이제 10일 정도만 지나면 기대하는 영화 안시성이 개봉합니다.
당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실제로 양만춘의 이름에 대해서도 논란) 적당한 사실과 재미를 버무렸을 것 같습니다만,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주요 캐릭터는 투구를 쓰지 않습니다.
전투 중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투구는 필수입니다만 어째 당태종(?) 외에는 얼굴보여주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SF 사극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고편을 보니 공성무기 고증도 상당하더군요.
이미 주요 사극에서 나름 연구하고 투자를 했기 때문에 공성무기 고증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대조영인가요? 그 사극에 동원된 공성무기들인데 오늘 설명한 자료와 일치합니다.
내가 수성하는 입장이라면 어떤 성을 선택하겠습니까? 산성? 평지성? 내가 공성하는 입장이라면요?
수성 지휘관이라면 아마도 방어하기 좀 더 쉬운 산성을 선택하겠죠.
그런데 내게 좋으면 상대에게도 좋은 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선 적의 모습을 보기 힘들어서 미리 대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적이 공성무기를 만들거나 탄환으로 사용할 돌과 나무가 매우 풍부합니다.
반대로 평지성은 방어하기 어려운 반면에 공격하기도 어렵습니다. 미리 주변을 초토화시켰다면 적의 모든 움직임은 사전에 포착되고, 무기로 삼을 돌과 나무를 멀리서 구해와야 합니다.
특히 그림의 성처럼 성벽이 높은데다가 둘레에 깊은 해자가 있고 이중 성벽으로 성문을 보호하고 있다면 산성보다 훨씬 강력한 방어력을 갖추게 됩니다.
깊은 해자를 만나면 난감하지만 해자는 결정적인 방어수단은 아닙니다. 적의 귀중한 시간을 뺏는 역할 정도면 제 역할을 다한방어수단입니다.
수천 수만 명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면 질병이 발생하고 귀중한 군량을 소비합니다. (중앙정부의) 원군이 갑자기 들이 닥치면 앞뒤로 적을 놓고 상대해야 합니다. 성을 하루라도 빨리 함락시켜야 하기 때문에 해자의 물길을 끊어서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 없죠.
가장 간단하고 무식한 방법은 지역주민을 강제동원해서 흙 등으로 해자를 메우는 것입니다. 수비군의 방해로 많은 피해가 나기 때문에 미리 나무상자나 간이다리를 만들어서 투입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설명했듯이 현명한 수비지휘관이라면 주변을 초토화시켰기 때문에 자재를 멀리서 구해올 수 밖에 없고 결국에는 가장 무식한 방법을 쓰게 됩니다. 만약 현명한 공격지휘관이라면 기병선봉대를 보내 수비군의 초토화작업을 막거나 미리 공성무기의 핵심부품을 제작해두었을 겁니다.
이제 해자를 모두 메웠습니다. 탐색전을 거쳐 본격적인 공성전에서는 성문과 성벽을 동시에 공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벽공략에 사용했던 주요 무기들입니다. 모양새만 다를 뿐이고 기본적인 구조나 용도는 동서양 모두 비슷했습니다.
가장 오래 그리고 흔하게 사용된 공성노입니다.
공성노는 바로 윗그림처럼 화약무기 시대에 들어서도 폭탄을 더 멀리 날리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대충만든 사극에서는 보병들이 사다리를 들고 뛰지만 실제로는 정교한 운제가 중심역할을 했습니다.
운제는 그리스불을 사용하던 진-송의 허난성 전투(1126)는 물론이고 순천왜성(1598)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성곽과 성루모습이 독특한데 왜군이 남해안 일대에 마련한 거점이기 때문입니다. 무척 안타깝게도 조선과 명 양군이 대대적으로 왜성을 공격했지만 점령하지 못했죠. 주요 다이묘는 모두 놓쳤습니다.
공격군이 운제 앞에 걸치고 수비군의 공격을 막던 나무판입니다. 비단천을 펼쳐서 화살을 막기도 했습니다.
동양의 성은 보통 낮고 허술한 경우가 많아서 이런 식의 공성무기도 사용되었습니다.
갈고리를 성벽에 걸치고 50명 이상의 병사가 잡아 끌어서 무너트렸고, 끝에 커다란 쇳덩이를 달아서 성벽을 두들겨 부수기도 했습니다.
공성전의 단골메뉴인 공성탑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흔하게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동양의 성 대부분은 공성탑을 투입할 정도로 거대하지 않았습니다.
성벽을 넘어가는 용도보다는 아래 그림처럼 성벽 일부를 제압하는 작은 공성탑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소가 성문에서 뛰어나가는 희한한 모습이 보이죠? 주요 방어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소에게 창을 달아 보병의 접근을 막고 엉덩이에 불을 붙여 공격군의 진영에 불을 지르는 목적이었습니다만...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오히려 공격군에게 군량을 바치는 역효과가 났습니다.
화약시대에는 폭발물을 달고 가서 터졌기 때문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양쪽 모두에게 가장 강력한 공수성무기였던 투석기입니다.
투석기는 인력식(Traction)과 무게추식(Counterweight) 방식이 있습니다. 인력식은 말그대로 수십에서 수백명이 끈을 잡아당겨 탄환을 날리는 방식으로 중국에서 서양으로 전해졌고 무게추식(가장 아래 그림)은 반대로 이슬람에서 중국으로 전해졌습니다.
세번째 그림의 선풍포는 방향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풍포는 다른 대형 투석기에 비해 작은 탄환을 사용했지만 다연장 선풍포는 과연? 이라는 의문이 드는군요.
인력식은 1kg~60kg의 탄환을 최대 120m까지, 무게추식은 80kg의 탄환을 최대 300m까지 날려보냈다는군요.
투석기도 화약무기시대 이후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돌이나 나무 대신에 폭탄을 멀리 투척하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아무래도 가볍기때문에 잡아당기는 사람은 줄어들었겠죠.
안시성전투가 주 무대인데 자꾸 화약시대 무기로 번지는군요. 그래도 궁금해하실테니까 설명해야겠죠?
양쪽 모두, 많은 새를 잡아두고 있다가 목에 화약뭉치를 매달고 적에게 날려 보냈습니다. 적진에 불을 지르거나 혼란을 일으킬 목적이었죠. 그런데 2차대전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에 대전차용 자폭견을 투입했다가 역으로 당했던 것처럼 새가 적진으로만 가지 않았고 역효과도 상당했습니다.
현대식 드론폭격일텐데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효과 정도가 고작이었을겁니다.
그리고 위그림에서 병사가 던지는 폭탄은 안에 쇠징 등이 들어 있어서 근처에 있는 병사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화학물질을 넣어 성 아래에 모여 있는 적을 쫓았습니다.
그 밖에도 당연히 성문을 공격하는 파성추와 귀갑차가 있었습니다. 가장 아래 귀갑차 그림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안타까운 진주성 2차전투 모습입니다.
당시에도 정보는 생명이었기 때문에 성내 상황을 보는 감시탑을 사용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수성무기를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해자 물밑에 미리 뿌려두고, 기어 오르는 적의 머리에 떨어트리거나 뜨거운 물을 붓고, 성문이 뚫리면 방어용 수레로 다시 막았습니다.
그네처럼 생긴 것은 성벽에 달라 붙은 적을 떨어트리고 다시 성벽 안으로 올라오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진주성전투 당시 왜군의 접근을 막고 있는 조선군입니다.
그리고 쇠뇌와 투석기는 수비군에게도 귀중한 방어무기였습니다. 그림은 몽골의 공성에 대항하는 고려군이고 인력식 투석기를 사용해서 인화물질을 날려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주요 공성전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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