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 이야기 중에서 보기 드물게 짧은 내용입니다. 역사 이야기가 주제가 아니라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조심한다 자중한다 하면서도 철근콘크리트인 분하고 그만 실수(?)로 정치이야기가 얽혔는데...
아무리 조목 조목 설명해도 당연히 안통하죠.
1. 고인이 되신 분 - 구린 구석이 있으니 죽었다.
2. 문재인씨 - 비서실장까지 한 사람이다. 틀림없이 큰 돈을 받아 먹었다.
3. 한명숙씨 - 5천만원이든 뭐든 틀림없이 받았다. 내 인생에 돈 싫다는 사람 못 봤다.
여기까지는 지하철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라 차분하게 설명해줬지만...
4. 2MB - 원래 그런 사람이다. 다 알고 지지했다.
5. 말이 안통하네뜨 - 역대 가장 깨끗할 것이다. 자식이나 친인척이 없으니 해먹을 사람이 없다.
하도 기가 막혀서 자신이 스스로 말이 꼬이지 않느냐는 말만 해주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다시 한 번 철근콘크리트의 인지부조화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지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은 5천만원 수수주장에 대해 반드시 받았고 절대로 용서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은 천문학적 숫자에 대해서도 '원래 그런 사람이고 그것도 능력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럼 지난 몇 년 동안 온갖 조사를 다했는데도 뇌물수수 의혹조차 제기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내 인생에서 돈 안받은 사람은 없었다'라고 주장합니다.
한명숙씨의 의자공범사건 이야기가 나와서 2,100년 전 중국의 사례 하나를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봅니다.
한나라 문제시절(기원전 162년경) 주아부周亞夫라는 명장이 있었습니다.
개국공신 주발(초한지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죠?)의 아들인데다가 흉노족을 격파하며
한나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분에 대한 이야기는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1061625731를 참조하세요.)
문제가 흉노족의 침입을 걱정하며 서군과 북군 진영을 방문했는데,
장수와 병사가 달려나와 영접을 했고 문제는 흉노의 기습에 만전을 다해야 할 장수들이
자리를 비운 것에 대해 몹시 질책했습니다.
그리고 주아부의 진영에도 도착했는데...
병사들이 "천자의 수레가 도착했다"라는 통보에도 불구하고 일체 움직이지 않았고
“군영에서는 오직 장군의 명령만 따르지 천자의 어명도 듣지 말라고 장군께서 가르쳤소”라며
오히려 무기를 들고 위협했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대통령이 순시 중인데 초병이 암구호없이 통과시킬 수 없다고 버틴 것이죠.
수레에서 내린 관리가 주아부를 찾아 직접 명령을 내린 후에야 진영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진영에 들어선 후에도 주아부가 무릎을 꿇고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갑옷차림으로 가볍게 허리만 숙였다고 합니다.
“신하가 갑옷 차림이라서 큰 예를 올리지 못합니다. 다만 군중의 예의로 인사드립니다.”
동행한 관리들은 무례에 분노하고 황제를 두려워했지만 문제는 거꾸로 그의 태도를 칭찬하며
태자 유계에게 "만일 나라가 위급에 처해 있을 때, 특히 반란이 생겼을 때는
주아부에게 중임을 맡길 만하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렇지만 태자가 경제로 즉위하면서부터 젊은 황제와 승상이 된 주아부는
심각한 의견대립을 벌였습니다. 결국 주아부는 병을 핑계로 사직했고
경제는 주아부를 제거해서 왕권을 강화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주아부에게 모욕을 주려는 졸렬한 일화가 여러가지 전해집니다.
예를 들면 식사에 초대하고는 수저를 내주지 않았고, 주아부가 시종에게 수저를 내오라고 하자
감히 자신의 앞에서 명령한다고 트집을 잡는 일도 있었습니다.
노쇠한 주아부가 장례준비를 스스로 챙기고자 아들에게 순장용 갑옷과 방패 500개를 준비시키고
목재를 사들였습니다. 경제는 이것을 빌미로 주아부를 죽이기로 합니다.
대리시(형벌관청)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 들어온 주아부는 모반혐의로 취조를 받았고
당연히 자신의 장례에 사용할 물품을 구입한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대는 모반을 하려고 했는가?”
“내 아들이 구입한 물건들은 모두 장례에 쓰이는 것이오. 어찌 모반하는 것과 관련이 있겠소?”
“그대가 살아서 모반을 계획하지 않았다면, 죽어서 모반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주아부는 대리시 뒤에 경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5일동안 단식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미 고령인데다가 아마도 취조가 형사물에서 나오는 신사적인 취조가 아니었을 겁니다.
어제 딸아이가 변호인을 보고 와서 제게 이러더군요.
"어떻게 30년 전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2,100년 전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30년 전이라면 뭐가 달라지겠니.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데..."
다른 분의 자료를 보니 냉금성이라는 분이 이런 기록을 남겼다고 하는군요.
“주아부가 몰랐던 사실은 나라와 임금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나라는 공적인 것이고 임금은 사적인 것이다.”
“중국 전통사회에서 가장 이치가 통하지 않는 두 곳이 있다면,
하나는 기생집이고 또 하나는 궁정일 것이다. 기생집은 사회의 최하층이라서
돈만 알고 이치를 따지지 않으며,
궁정은 사회의 최상층으로서 권력이 바로 이치이기 때문이다."
“기생집은 암흑 천지이고, 궁정은 흑백이 뒤바뀐 곳이다.”
2,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돈만 아는 암흑 천지에 살고, 정부와 국회는 권력만 아는,
진실된 종복은 쫓겨나고 거짓된 양아치가 군림하고 있죠.
마우스 클릭 한 번 만으로 지구 반대편에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도 사람은 바뀌지 않았으니
2,100년 전의 협잡이 여전히 위력을 가지고 귀한 인물을 죽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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