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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타

History of War 선정, 역사상 최강의 전함 20척

by uesgi2003 2020. 2. 8.


전사전문잡지 History of war가 선정한, 역사상 최강의 전함 20척입니다. 



1. 나름 많이 줄였지만 상당히 긴 내용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즐기세요.

2. 기준이 좀 모호하기때문에 당연히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재미로만 즐기세요.

3. 원문대로 조선이 아닌 한국으로 번역했습니다. 조선으로 바꾸면 다른 국가도 당시의 국가명으로 모조리 바꾸는 대작업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냥 원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History of War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국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잘 모르는 당시 국가명을 사용하면 배경과 위치 등을 추가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분량이 될 겁니다. 

4. 거북선은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DK Smithonian Military History에서도 한국전사로는 유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History of War, 20 Greatest Warships


https://www.myfavouritemagazines.co.uk/knowledge/history-of-war-magazine-subscription/?gclid=CjwKCAiA1fnxBRBBEiwAVUouUvm3gGGTyOjM91xE1xKVCnzEFf3l5lTiRtE5hNwHs_QEFzAxTuYyPBoC6YwQAvD_BwE


인력과 인내로 항해하던 고대선박부터 함포, 항공기를 채운 치명적인 현대선박까지, 해양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선박을 추려보았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해군은 인력과 자연에 의존했지만 전사에 남는 거대한 충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스 3단노선Greek Trireme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제국의 전함



취역시기 : 기원전 6세기~1세기

주 사용국 : 그리스

길이 : 36.5m

작전범위 : 이론상으로는 무제한. 선박건조를 위해 정기적인 휴식이 필요

선원수 : 200

주무장 : 청동제 충각

부무장 : 수병

 

3단노선은 날렵하고 빠른 갤리Gaelly(노를 젖는 선박)로 노 한 개에 한 명씩, 170개의 노를 3단으로 배치했다. 선원 외에 함장, 10명의 수병과 4명의 궁수가 승선했고 총 200명이 승선했다. 경량목제를 사용해서 최대시속 10노트(18.5km)의 속력을 냈다.

3단노선은 2가지 방식으로 전투에 투입되었다 선수에 장착한 충각Ram으로 적선의 선체를 뚫어 침수시키는 함대전이 있었다.  노잡이는 충각돌진 후에 노를 뒤로 저어 엉킨 배를 풀었다. 같은 배를 다시 들이받거나 다른 목표물을 노렸다.

등선육박전에도 투입되었다. 함장은 보병을 투입해 적선을 제압했다. 노젓기에 탁월했던 아네테해군은 등선육박전을 피하고 기동력을 활용해 충각전을 벌였다.

3단노선은 단점이 있었다. 선체목재가 물에 젖기 때문에 매일밤 해안에 끌어올려 말려야 정상속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중해는 해양벌레가 들끓었고 선체에 구멍을 내서 약화시켰다. 3단노선은 끊임없이 검사하고 타르칠을 해줘야 파손을 막을 수 있었다.


 

바사Vasa(또는 와사Wasa): 스웨덴의 비극적인 전함

스웨덴 구스타브 아돌푸스Gustavus Adolphus왕이 발트해 장악을 위해 건조한 바사는 홀수선 위가 지나치게 무거워서 공식출항일에 돌풍을 만나 침몰



취역시기 : 1628년

주 사용국 : 스웨덴

길이 : 47.6m

작전범위 : 무제한

주무장 : 24파운드 청동제 데미컬버린 24

부무장 : 3파운드 청동제포 8, 1파운드 포 2, 박격포 6

  

구스파브 아돌푸스는 북부의 사자라는 별명에 걸맞는 인물이었다. 정예군을 효율적으로 지휘해 30년전쟁에서 독일의 개신교를 구해냈다.

스웨덴은 발트해 장악을 위해 더 크고 강력한 해군이 필요했다. 1624, 구스타브는 스톡홀름Stockholm 왕실조선소에 있던 네덜란드 전문가에게 새 전함을 의뢰했다 왕은 건조도크의 전함을 보고 초대형 전함을 다시 요구했다.

왕의 요구를 못이긴 조선소는 새로 설계하고 제작하는 대신에 이미 건조된 전함의 용골을 늘리고 선체를 크게 키웠다. 결국 이렇게 제작된 바사는 겨우 11.6m의 너비에 홀수선이 4.7m 밖에 안되는 기형적인 모습이 되었다.

거대한 돛, 높이 치솟은 선미, 육중한 대포를 장착하자 바사는 홀수선 위가 지나치게 무거워 무척 위험한 상태였다.

제대로만 제작되었다면 1,210, 47.6m의 길이, 10개의 돛, 3개의 마스트의 무시무시한 전함이었다. 24파운드 청동제 데미컬버린Demi culverins 24문의 주포와 경량포 부포를 무장했다.

 

 

스페인 갈레온Galleon

스페인제국의 상징인 갈레온은 스페인 해군원정의 선봉대였고 해상교역을 보호



취역시기 : 1580~1593년

주 사용국 : 포르투갈과 스페인

길이 : 60m

작전범위 : 무제한

주무장 : 대포 48

 

16~17세기, 스페인제국 황금기의 상징이었다. 제국은 수백척의 갈레온으로 여러 대륙의 식민지를 본토와 연결시켰다. 16세기에 처음 등장한 갈레온은 측면이 높고 돛으로 항해하는 선박으로 가볍고 낮은 갤리보다 해전에 유리했다.

스페인은 강력한 보병대를 투입해 해전에서 승리했다. 갈레온은 3~40문의 다양한 청동제포를 장착해 함포전에서도 강력했다.

1639년 네덜란드와의 다운스Downs해전을 끝으로 전열선Ship of the line으로 대체되었다.


 

헨리 8세의 헨리 그레이스 아 듀Henri Grace A Dieu

중무장한 튜더왕가 캐럭Carrack은 르네상스 시대의 해양괴물이지만 막대한 운용비용 때문에 제한적인 투입



취역시기 : 1514~1553년

주 사용국 : 영국

길이 : 40m

작전범위 : 무제한

선원수 : 700

주무장 : 철제포 16, 청동제포 4, 수석포 2

부무장 : 청동제 펠컨 6, 수석포 22, 소형 선회포 126

  

원래는 헨리황가Henry Imperial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다가 헨리 그레이스 아 듀라는 이름으로 15146월에 건조되었다.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비용이었던 8,700 파운드가 들었고 1,000톤의 무게였다. 

엄청난 주무장 외에 126문의 소형 선회포로 적에게 화살 등을 뿌렸다. 적이 아무리 운이 좋아도 그 다음에는 화승총창과 도끼로 무장한 700명의 선원을 상대해야 했다.

헨리 그레이드 아듀의 실제 전과는 거의 없었다. 1539년에 건조되었지만 운용비용이 너무 들어서 거의 대부분 항구에 머물렀다.

1547년에 에드워드Edward로 이름을 바꾸고 울위치Woolwich에 정박해 있다가 1553 8월에 출항준비를 하다가 화재로 침몰했다.



거북선

일본의 한국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부활한중무장과 중장갑의 전설적인 전함



취역시기 : 1592~1598

주 사용국 : 한국

길이 : 36m

작전거리 : 무제한

선원 : 130

주무장 : 대포 22

부무장 : 충각공격

장갑 : 중량 목재


1592한국의 운명은 어두웠다일본함대가 부산에 나타나자 한국해군은 지리멸렬했다개전 첫날한국해군은 궤멸했고 일본의 침공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잔존함대제독 이순신은 포기하지 않았다그는 약탈하는 일본선박을 무자비하게 습격했다반격의 선봉에는 이순신이 오래 전에 준비해 둔 거북선이 있었다.

이순신은 소수의 거북선을 선두에 세웠다일본선박은 선체가 높았고 바람에 의존한 반면에 거북선은 낮고 노와 돛을 함께 사용해 기동력이 좋았다중포 외에 강력한 충각을 장착했다.

선체 위를 덮어서 일본군의 화승총을 막았다거북선은 적선 사이에 침투해 포탄을 쏘고 철화살을 날려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1592년 말까지이제독은 함대와 소수의 거북선을 활용해 일본함대를 모조리 격파해 일본의 보급선을 끊었고 한산도대첩으로 일본의 침공을 막았다.


18~19세기의 전함은 세계 최강해군을 정의하는 전통이 되었고 해전의 전설을 남김



USS 컨스티튜션Constitution

강철 옆구리Old Ironsides라는 별명을 가진 USS 컨스티튜션은 1812년 전쟁 중 결정적인 승리를 거둬 미해군을 세계최강의 반열에 올림



취역시기 : 1798년 

주 사용국 : 미합중국

길이 : 93m

작전거리 : 수개월 작전 후 재보충

선원 : 450

주무장 : 32파운드 대포 24

부무장 : 24파운드 대포 30, 18파운드 선수포 1


미의회의 헌법제정 후신생 미해군의 핵심전력인 프리깃Frigate 6척 중 하나였다보스톤의 해군박물관에서 매년 수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1797 10월에 진수되어 1798 7 22일에 공식취역했다. 44~50문의 포를 장착했다초기 프랑스와의 분쟁시기에는 미상선을 보호했고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바르바리Barbary해적을 상대했다.

1812년 전쟁 중에는 영국전함 5척 등을 격파해 전설을 남겼다영국 프리깃 게리에르Guerriere의 포탄이 단단한 선체를 뚫지 못하자한 선원이 ‘옆구리가 강철이네’리고 말했고 강철 옆구리라는 별명이 붙었다이후 200년 동안 미해군의 상징이 되었다.



HMS 빅토리Victory

트라팔가Trafalgar해전에서 허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제독의 용기를 상징하여 영국해군의 전통이 됨



취역시기 : 1778

주 사용국 : 영국

길이 : 69.3m

작전거리 : 수개월 작전 후 재보충

선원 : 850

주무장 : 32파운드 대포 30

부무장 : 24파운드 대포 28단거리 12파운드포 42, 12파운드 중포 2, 68파운드 구포 2


240년 이상 취역 중인 세계최고의 전함이다. 1758년에 일급 전열선 중 하나로 주문하여 1765년에 기초가 놓이고 1778년에 취역했다. 1922년 이후, HMS 빅토리는 해군박물관으로 영국 포츠머스Portsmouth 건조도크에 전시되고 있다. 

1778년과 1780, 우썽Ushant 1, 2차전, 1782년 지브랄타Gibraltar공격전, 1797년 세인트 빈센트 곶Cape St. Vincent전투에 참전했다. 3차 대프랑스 동맹Third Coalition전쟁에서 프랑스-스페인연합함대를 상대로 1805 10 21, 트라팔가Trafalfar해전에서 최고의 활약을 했다. 

제독의 기함으로 27척을 이끌고 스페인 남서쪽 카디스Cadiz에서 적함대 33척을 격파했다. 넬슨은 빅토리 갑판에서조국은 각자 최선을 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빅토리는 적함대에 달려들어 4:1의 함대전도 벌이다가 74문의 리다우터블Redoutable과 맞대결을 벌였다. 두 전함은 돛대가 서로 엉켰고 넬슨은 프랑스 저격수에게 치명상을 입고 3시간 후에 전사했다. 

마찬가지로 치명상을 입은 빅토리는 HMS 넵튠Neptune에게 견인되어 지브랄타에서 응급수리를 받았다. 영국해군성은 빅토리가 너무 구형이고 손상이 커서 2급 전함으로 배치해 대대적인 개수를 한 후에 수송선으로 사용했다. 

1831, 국민의 반발로 폐기위기에서 벗어났고 1900년대 초에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영국해군의 상징으로 전시되었다.



퀸 앤스 리벤지Queen Annes Revenge

잔인한 해적 에드워드 티치Edward Teach (일명 검은수염Blackbeard)가 노획하고 사용한 악명높은 프리깃



취역시기 : 1710

주 사용국 : 대영제국

길이 : 31.4m

작전거리 : 약탈과 항구정박으로 보충 후 수개월

선원 : 150

주무장 : 영국제 6파운드포 24, 스웨덴제 6파운드포 3

부무장 : 영국제 4파운드포 4, 스웨덴제 1파운드포 19, 영국제 0.5파운드포 21

 

영국이 건조해 1710~1717년 동안 프랑스해군, 상선, 노예선으로 사용되었다. 악명높은 해적 에드워드 티치가 노획한 후에 자신의 기함으로 사용했다. 퀸 앤즈 리벤지는 캐리비안 일대를 공포에 떨게 했다.

에드워드 티치는 체포하려는 군대와 싸우다가 죽었고 퀸 앤즈 리벤지는 고의로 좌초시켰다. 1996, 잔해가 발견되었다.

 

HMS 스피디Speedy

전설적인 해군지휘관 코크란Cochrane경이 사용한, 14문의 브리그Brig(쌍돛대 범선)



취역시기 : 1783

주 사용국 : 영국

길이 : 23.3m

작전거리 : 항구정박으로 보충 후 수개월

선원 : 90

주무장 : 4파운드포 14

부무장 : 0.5파운드 선회포 12

 

 

1781년 6월에 건조가 시작되어 2년 후에 취역한 스피디는 훨씬 더 큰 프랑스와 스페인 프리깃과 사략선Privateer를 상대로 명성을 쌓았다.

1794년, 프랑스 소함대에게 노획되었다가 다시 탈환했다. 마지막 함장 토마스 코크란은 1801년 5월 6일, 32문의 스페인 프리깃 엘 가모El Gamo를 노획했다. 나폴레옹은 그를 바다늑대라고 불렀다.

다시 프랑스군에 노획되어 1806년까지 교황령 소속이었다. 러셀 크로우 주연의 마스터 앤 커맨더Master and Commander의 소재가 되었다.

 

 

로리앙Lorient

나일Nile전투에서 프랑스함대의 기함. 탄약고가 폭발해 침몰



취역시기 : 1793

주 사용국 : 프랑스

길이 : 65.2m

작전거리 : 수개월 작전 후 재보충

선원 : 1,079

주무장 : 36파운드 대포 32

부무장 : 24파운드 대포 34, 12파운드 포 34, 8파운드 포 18, 36파운드 구포 6

  

프랑스 대양Ocean급의 전함으로 포 120문을 장착했고 엄청난 측면포격을 가할 수 있었다. 17905, 툴롱Toulon에서 건조되기 시작했고 원래 이름은 도팡 로얄Dauphin Royal이었다. 1 공화국이 열리면서 상 퀼로트Sans-Culotte(프랑스혁명 주동계급)으로 변경되었다가 로리앙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17953, 제노바Genoa전투에서 함대 후위를 맡아 영국 74문 전함 에그몽Egmont, 베드포트Bedford와 함대전을 벌였다.

3년 후, 함대기함으로 나폴레옹 이집트원정군을 호위했고 영국함대가 출격했다.

육군을 하선시킨 후에 179881, 넬슨의 영국함대와 전투(나일강전투)를 벌였다. 넬슨은 과감한 공격으로 프랑스함대를 궤멸시켰다.

만신창이가 된 로리앙은 탄약고가 터지면서 침몰했고 선원 1,000명이 죽었다. 넬슨은 로리앙의 주돛대를 깎아 만든 나무관을 선물로 받았고 트라팔가해전에서 전사해 이 나무관과 함께 매장되었다.



 

19세기 말~1차세계대전

산업혁명으로 해전의 양상도 변화. 더 무겁고, 강력하고, 견고한 전함이 등장.

19세기, 바람과 인력에 의존하던 해군은 증기기관을 사용해 자유와 속도를 얻었다. 초기에는 범선에 그대로 증기기관을 장착했기 때문에 배기통으로 나오는 연기를 빼면 외양이 같았다.

프랑스 글루와흐Gloire와 영국 HMS 워리어Warrior가 취역하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증기기관 전함은 철갑Ironclad을 두를 수 있었고 목재전함을 압도했다. 미국남북전쟁Civil War에서는 남군 CSS 버지니아Viginia가 북군 USS 모니터Monitor를 상대했다.

20세기 초는 거포전함의 시대였다. 1906, 영국이 사상 처음으로 거포전함인 HMS 드레드노트Dreadnought를 진수시켰다.

 

USS 모니터Monitor

사상 처음으로 철갑전함 함대전이 벌어지면서 해전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발전


 

취역시기 : 1862

주 사용국 : 미국

길이 : 54.5m

작전거리 : 280km

선원 : 49

주무장 : 11인치 활강포 2

장갑 : 61cm 두께의 목재 선체 위에 12.7cm 강철장갑

  

1861년 말, 분리주의 남군이 노획한 증기선 USS 메리맥Merrimack을 철갑선으로 개조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목재선체를 철판으로 보강한 후에 CSS 버지니아Virginia로 이름을 바꾸고 1862년 초부터 북군의 해상봉쇄선을 뚫기 시작했다. 남부항구 봉쇄선이 뚫리면 남군은 목화를 무기와 바꿔 내전이 더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미해군도 이미 USS 모니터라는 철갑선을 가지고 있었다. 소형전함인 모니터는 수면에서 겨우 50cm 높이에 선회포탑에 11인치 활강포를 장착한, 괴상한 모습이었다. 증기기관으로만 추진했기 때문에 시속 6노트(11.1km)가 고작이었다.

39, 모니터는 버지니아와 포격을 주고 받았다. 모니터는 23발 이상을 맞았지만 두 전함 모두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해상봉쇄망을 지킨 북군의 전략적 승리였다. 겨우 1명만 전사한 사상최초의 철갑전함 함대전이었지만 이제 목재선은 자리를 잃었다.

18621231, 모니터는 태풍을 만나 침몰했다.



 

HMS 드레드노트Dreadnought

1906년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모든 전함이 구형으로 변했고 열강이 거포전함 경쟁을 시작


 

취역시기 : 1906~1919

주 사용국 : 영국

길이 : 174m

작전거리 : 12,260km

선원 : 800

주무장 : 12인치 대포 10(포탑 5)

부무장 : 3인치 포 27, 18인치 어뢰발사관 5

장갑 : 11인치 강철

  

HMS 드레드노트는 이전의 어떤 전함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 혁명수준의 설계로, 등장과 함께 다른 전함을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며 해군역사를 드레드노트 이전과 이후로 나누었다.

19세기 말의 전함은 다양한 구경과 사거리의 포를 무장한 반면, 드레드노트는 12인치 대포 10문은 5개의 포탑에 장착했다. 다른 전함에 비해 2.5배 강력한 무장이었고 훨씬 먼 사거리에서 더 무거운 포탄을 날려보낼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정확도를 크게 높인 사격통제와 추진기관이 혁신적이었다. 현대적인 증기터빈은 18,000톤 선체를 21노트(39km) 속도로 움직였다. 강력한 추진기관덕분에 선체는 11인치로 두터워졌다.

드레드노트는 전세계의 전함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을 구형함대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로 만드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리고 독일과 같은 경쟁국은 드레드노트 건조경쟁으로 영국을 위협했다.

영국은 기존의 해양전력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독일에 비해 비교우위를 잃지 않았다. 1914, 1차세계대전 당시에도 영국은 드레드노트 숫자에서 독일을 압도했다.

 

 

글루와흐Gloire

세계최초의 원양 철갑전함으로 유럽열강의 해군력 경주를 촉발


 

취역시기 : 1859~1879

주 사용국 : 프랑스

길이 : 77.7m

선원 : 570

주무장 : 6.4인치 강선포 36

장갑 : 목재선체에 11.4cm 강철판

 

수백 년 동안 해전은 목재전열선의 역사였다. 19세기초, 증기기관덕분에 풍력이나 인력없이 항해하고 더 무거운 장갑을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185911, 세계최초의 원양 철갑전함인 글루와흐가 툴롱에서 진수되었다. 8개의 보일러로 5,630톤의 선체가 12km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원래 범선이었다가 장갑을 장착했기 때문에 3개의 커다란 돛대를 달고 있었고 연료가 떨어지면 바람을 받아 항해했다. 구식전함처럼 측면포격으로 적을 공격했다.

 

 

퀸 엘리자베스급Queen Elizabeth Class

1차세계대전 당시, 5척의 퀸 엘리자베스급 수퍼 드레드노트 전함 5척이 최강이후 개장을 거쳐 2차대전에서도 현역으로 활약

 


주 사용국 : 영국

길이 : 197m

작전거리 : 8,334km

선원 : 49명

주무장 : 15인치 포 8문(포탑 4개)

부무장 : 6인치 포 14문, 3인치 대공포 2문, 3파운드 예식용 포 4문, 21인치 어뢰관 4문

장갑 : 14인치


이미 강력한 드레드노트를 더 강력하고, 크고, 빠르게 개선한 수퍼 드레드노트로 영국은 경쟁국가를 눌렀다. 1914년에 진수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공수주 3박자를 갖춘 이상적인 전함이었다. 

퀸 엘리자베스, 워스파이트Warspite, 벨리언트Vailiant, 바햄Barham, 말라야Malaya 5척은 시속 25노트(46.3km)의 쾌속전함으로 함대의 다른 전함보다 먼저 전장에 도착해 적함대를 붙잡아 두고 나머지 함대가 전투에 합류했다.

1차대전 후,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장갑과 대공포를 보강하는 개장을 거쳐 현대식 전함으로 부활했다. 




독일 UB III형 유보트U-Boat

1차세계대전 당시, 바다의 공포



취역시기 : 1917~1918

주 사용국 : 독일

길이 : 55m

작전거리 : 15,742km

선원 : 34

주무장 : 50cm 어뢰발사관 10

부무장 : 8.8cm 갑판포 1



영국이 19세기 해상을 지배하는 동안 다른 국가들은 막강한 영국전함함대를 극복할 방법을 찾았다. 잠수함이 좋은 대안이었고 독일은 잠수함을 적극적으로 채택했다

영국함대가 북해와 독일의 항구를 봉쇄하자, 독일은 잠수함으로 대서양과 영국 사이를 오가는 상선 수천 척을 침몰시켰다

독일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미국이 연합군에 참전했고 독일은 급격하게 기울었다

516톤의 UB III형은 89척이 건조되었다. 해상에서는 14노트(26km), 해저에서는 8노트(15km)로 항해했다

 


 

2차세계대전

세계역사의 중심이었던 전함이 항공모함으로 대체



전함이 다가설 수 없는 거리까지 항공기를 날려보내는 항공모함의 시대가 되면서 전함의 시대는 급격하게 저물었다. 2차대전에서는 연합군 항공모함이 전세를 결정지었다. 태평양전선에서는 일본군이 점령한 섬에 상륙하는 병력을 엄호했고, 대서양전선에서는 보급로를 위협하는 독일 유보트를 찾아 사냥했다 

2차대전 후, 원자력과 제트기가 등장하면서 해양력은 더욱 중요해졌다



HMS 후드Hood

영국해군의 자존심. 독일전함 비스마르크Bismarck와의 전투 후에 침몰



취역시기 : 1920년

주 사용국 : 영국

길이 : 262m

작전거리 : 9,875km

선원 : 1,418명

주무장 : 15인치 포 8문

부무장 : 5.5인치 포 12문, 4인치 포 4문, 소구경포 다수



제독Admiral급 4척 중 가장 먼저 취역한 후드는 영국함대의 핵심전력이었다. 1916년 9월에 건조를 시작해 1918년 8월에 진수되었다. 20년 동안 후드는 42,000톤의 무게와 15인치 포 8문으로, 세계최강의 전함이었다. 

1923~24년, 후드는 세계를 일주하며 영국의 국력을 과시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후드는 지중해 H 함대의 기함으로 메르스 엘 케비르Mers-el-Kebir의 프랑스함대를 공격했다. 

1941년 5월 24일,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Prince of Wales와 함께 독일전함 비스마르크,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과 덴마크 해협에서 전투를 벌였다. 

후드는 포탄 몇 발을 맞고 대폭발을 일으키며 3분만에 침몰했고 1,415명이 전사했다. 겨우 3명만 살아남아 영국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사를 기록했다. 

근본적인 설계오류라는 주장과 속도를 위해 방어력을 낮췄다는 주장이 있다. 





USS 엔터프라이즈 (CV-6)

태평양전선에서 놀라운 전투기록



취역시기 : 1938년

주 사용국 : 미국

길이 : 252m

작전거리 : 23,200km

선원 : 2,217명

주무장 : 전폭기 90기

부무장 : 5인치 포 8문, 다양한 대공포


태평양전선은 엔터프라이즈 대 일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1942년 가을, 산타 크루즈Santa Cruz해전에서 USS 호넷Hornet이 침몰하면서 남태평양에는 엔터프라이즈가 유일한 항모전력이었다. 

과달카날Guadalcanal공방전 등으로 미국과 일본은 상당히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은 3번이나 엔터프라이즈를 격침시켰다고 주장했고 미국은 회색유령Grey Ghost라는 별명을 붙였다. 

1934년 7월에 건조를 시작해 1936년 10월에 진수했고 요크타운Yorktown급으로는 두번째 항모였다. 2차대전 당시 가장 많은 전투에 참전했다. 두리틀Doolittle 도쿄습격작전과 미드웨이Midway해전의 주역이었고 필리핀해와 레이테Leyte만해전에도 참전했다. 

2차대전 후, 해상박물관으로 유지하려다가 고철로 해체되었다.




USS 아이오와Iowa

USS 아이오와는 50년 동안 퇴역과 재취역을 반복



취역시기 : 1943년

주 사용국 : 미국

길이 : 270m

작전거리 : 24,000km

선원 : 1,921명

주무장 : 16인치 포 9문. 개장후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32발

부무장 : 5인치 포 20문, 다양한 대공화기, 개장후 하푼대함미사일 16발


USS 아이오와는 미해군이 진수한 마지막 전함형으로 태평양전선에서 쾌속항모를 호위했다. 종전 당시 윌리암 할시Halsey제독의 기함이었다. 

한국전쟁에서는 북한해안을 포격했다. 1980년대 중반에 개수작업을 거쳐 1990년까지 현역으로 활약했다.

지금은 로스 앤젤레스항의 해상박물관으로 전시되고 있다. 




비스마르크Bismarck

대서양에서 연합군보급로를 위협하다가 영국해군에게 침몰



취역시기 : 1940년

주 사용국 : 독일

길이 : 248m

작전거리 : 16,430km

주무장 : 15인치 포 8문

부무장 : 5.9인치 포 12문, 4.1인치 포 16문, 다양한 소구경포


독일의 철혈수상의 이름을 붙인 비스마르크는 2차대전 당시 영국해군에 대항하기 위한 2척의 거포전함 중 한 척이었다. 

1936년 7월에 건조를 시작해 1939년 2월에 진수되었고 41,000톤과 강력한 15인치 포 8문으로 무장했다. 

대서양에서 연합군상선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영국함대가 대응에 나섰다. 1941년 5월 24일, 덴마크해협에서 비스마르크와 중순양함 프란츠오이겐은 영국전함 HMS 후드를 격침시키고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파손시켰다. 

5월 26일, 영국항모 HMS 아크 로얄Ark Royal의 페어리 소드피시Fairey Swordfish 복엽기의 어뢰공격을 받아 급히 피신했다.

이튿날 영국 킹 조지King George 5세와 로드니Rodney의 포격을 받고 심각한 피해를 입고 프랑스 브레스트Brest 650km 지점에서 침몰했다. 




야마토Yamato

무사시Musashi와 함께 일본이 자랑한 수퍼전함이었지만 미해군의 전폭기에 침몰



취역시기 : 1941년

주 사용국 : 일본

길이 : 263m

작전거리 : 13,300km

주무장 : 18.1인치 포 9문

부무장 : 6.1인치 포 12문, 5인치 포 12문, 다양한 소구경포


배수량 64,000톤으로 세계최대의 전함이었다. 미드웨이해전에서 애마모토 이소로쿠Yamaoto Isoroku제독의 기함이었고 오카나와작전에서 마지막으로 출항했다. 야마모토는 자살공격임무를 맡아 미해군에게 피해를 입히고 자침시켜 해상포대로 활용한다는 계획이었다. 

1945년 4월 7일, 미해군 전폭기의 어뢰 11발과 폭탄 7발을 맞고 침몰했다. 무사시는 1944년 10월 24일, 레이테만해전에서 침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