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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독일군의 동부전선의 몰락(24) - 후베 포위망 그리고 만슈타인의 경질 (1)

by uesgi2003 2012. 6. 14.

동부전선 이야기를 원하는 분이 있어서 한참 중단되었던 독일군의 동부전선의 몰락 24편이 이번 이야기입니다.

워낙 오래 전부터 연재된 것이라, 처음 오신 분들은 이전 이야기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제 블로그에 계속 오신 분은 지난 23 http://blog.daum.net/uesgi2003/112을 잠시 복습했다가 이번 이야기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도 러시아군의 대규모 작전에 독일군 수십 만 명이 전멸 위기에 몰리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마치 후베 장군이 협공을 하는 느낌을 주는 Hube's Pocket으로 더 잘 알려져 있더군요.

 

독일군의 동부전선의 몰락(24) - 후베 포위망 그리고 만슈타인의 경질 (1)

 

 

상황지도와 전선의 보고서를 읽지 않아도 집단군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를 알 수 있었다. 예비병력은 모두 소진되었고 기동사단도 계속된 전투에 만신창이였다. 전선은, 특히 8군과 1 기갑군의 전선은 거의 병력이 없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드니에페르 강하구와 쉐페토브카 사이의 전선만 연결된 상태였고 쉐페토브카에서 프리페트 습지대까지의 전선에는 70km가 넘게 단절되어 있었다. 프리페트 습지대 남부에서 러시아에 맞서고 있는 병력은 누렘베르그 13군단이 전부였기 때문에 러시아 13군은 이미 지난 11월 중순에 드니에페르와 프리페트 사이의 습지대를 넘어서 있었다.

 

그림 설명: 지도는 이번 이야기가 끝난 다음의 상황입니다. 오늘의 무대는 붉은 원으로 그려진 부분입니다. 이렇게 되니 남쪽의 크리미아 반도가 외딴 섬이 되는데, 크리미아 반도의 비극이 다음 이야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클릭하면 커집니다.

 

하우페 장군의 13군단이 러시아군의 진격을 최대한 지연시키고는 있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이제 러시아의 6개 군이 옛날 폴란드 국경인 로브노(Rovno) 지역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며 만슈타인의 북부 전선 전체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슈타인 원수는 계속해서 총통사령부에 경고를 하고 로브노 지역에 한 개 군 정도의 추가병력지원을 요청해왔다. 그러나 히틀러는 "도대체 내가 어디에서 군 병력을 만들어낼 수 있겠소?"라는 대답만 했다. 다시 한 번 임시방편 조치가 취해졌다. 호트가 경질된 후에 라우스 장군가 지휘하는 4 기갑군이 테르노폴(Ternopol) 일대를 맡았고, 1 기갑군이 쉐페토브카로 이동했다. 만슈타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중앙의 기갑군을 빼내 북부전선을 보강해 포위되지 않게 하는 것 뿐이었다. '라이스탄다르테 아돌프 히틀러' SS 기갑사단이 쉐페토브카 남부로 이동했고 1, 6, 16 기갑사단은 부그(Bug)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이 임시방편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병력이 부족한 8군의 기갑 병력을 절반이나 빼냈기 때문에 코네프의 제2 우크라이나 전선군이 재정비를 마치고 공격해온다면 막을 병력이 없어진 것이다. 체르카시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빠져나온 6.5개 사단으로 6개 군을 막으라니 

 

러시아군은 작전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 정보망도 그들의 작전과 목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3월 초에 작성된 보고서에는, 러시아군이 독일 남부 전선을 협공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1 우크라이나 전선군은 프리페트 습지대를 통해 53 군단의 전선을 뚫고 폴란드를 향해 진격하는 동시에 남쪽 드네스트르(Dnestr) 강으로 선회해서 집단군 배후로 돌 예정이며, 코네프의 제2 우크라이나 전선군은 탈진한 8군의 전선을 뚫고 루마니아로 진격해서 제1 전선군과 연결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렇게 되면 포위망 안에는 독일 1 4 기갑군이 갇히게 된다.

 

그림 설명: 남부전선의 상황을 풍자한 그 당시의 만화입니다.

 

히틀러는 이렇게 정확한 보고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봄의 진흙장군이 러시아의 진격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흙장군이 아직 제 힘을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 아침과 저녁에는 눈보라가 불어서 도로가 얼어붙었고 러시아군은 얼어붙은 도로 위로 이동하고 있었다.

육군참모장인 자이츨러(Zeitzler)는 히틀러를 설득하기 위해 유도질문을 했다.

"총통이 러시아군이라면, 다음 작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공격!"이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고 그 대답에 따라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안 해!" 히틀러도 러시아군이 곧 공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크리미아 반도, 노르웨이, 헝가리, 이탈리아, 프랑스 어느 곳 하나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프러시아의 프레드릭 대왕은 '모든 것을 지키려고 하면 어느 것도 지키지 못한다'라는 말은 남겼는데 히틀러는 망설이고 있었다.

 

히틀러의 큰 착오는 1944년 3월 4일에 대가를 치르게 된다. 스탈린이 가진 최강의 전력인 제1 우크라이나 전선군은 만슈타인의 좌익을 공격한 것이다. 그 동안 바투틴이 지휘해오다가 우크라이나 민병대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고 주코프에게 지휘권이 넘겨졌는데, 열정적인 주코프는 이번 기회에 전임자와 다른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러시아 13 군은 하우페의 13 군단을 바로 밀어냈고, 약간 남쪽에서는 4개 군이 슐츠의 53 군단을 공격했다. 지옥불기둥과 같은 엄청난 포격으로 독일군 전선에 구멍을 낸 다음, 7 기갑사단과 96 보병사단의 저항을 가볍게 누르고 남서진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이동시킨 '라인스탄다르테' SS 기갑사단이 급히 반격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고 라시아군은 독일군 수비선에 45km 정도의 구멍을 냈다. 

독일 4 기갑군은 러시아군 공격으로 반으로 쪼개졌다. 13 군단은 북서쪽으로 밀려났고, 53 군단의 96과 291 보병사단은 1 기갑군 부근으로 밀려났다. 

그렇다고 만슈타인이 준비한 임시방편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북쪽 전선 뒤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3 기갑군단과 48 기갑군단이 늦지않게 전선에 투입되어 더 이상 불길이 번지지 않게 막았다. 48 군단은 완전히 붕괴된 전선을 넘겨받아 러시아군의 진격을 늦추며 테르노폴 방향으로 한 발씩 후퇴했고 3 기갑군단은 '라인스탄다르테' 기갑사단, 7 기갑사단, 68 보병사단과 함께 러시아군이 더 이상 침투하지 못하게 막았다. 충격에서 벗어난 48 군단도 1 기갑사단과 중기갑연대 뵈케(Boke)와 함께 반격을 하며 전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북부전선을 살리는 대신에 우려되었던 중앙전선에 더 큰 위기가 닥쳤다. 3월 5일 새벽이 동트자마자 1,000문의 대포와 박격포가 우만(Uman) 지역의 좌익을 두들겼다. 그 뒤를 바로 좇아 코네프(Konev)의 제2 우크라이나 전선군, 415대의 전차와 247대의 자주포가 8 군의 전선에 밀어닥쳤다. 뵈흘러(Wohler)는 러시아 전차를 막아낼 병력이 없었고 8 군의 전선은 토막으로 나뉘어져 돌파당했다. 5일 만에, 코네프는 우만 마을을 점령한 후에 부그로 진격했다. 놀라운 속도로 강을 건넌 그들은 드네스트르 강으로 계속 진격해갔다. 

 

그림 설명: 러시아군이 북과 동에서 1 기갑군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남쪽에만 포위망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만슈타인은 서쪽으로 탈출을 명령합니다. 강력한 러시아군의 포위망 쪽으로 탈출로를 선택한 만슈타인, 그 이유는 다음 이야기에서 설명됩니다. 지도는 클릭하면 커집니다.

 

드니에페르 하류에서도 거의 동시에 러시아 5와 7 근위(Guard)군이 홀리트(Hollidt)의 6 군을 공격했기 때문에 위기에 몰린 8 군을 도와줄 병력이 없었다. 독일 정보망이 예측했던 바로 그대로 러시아군이 움직이고 있었다.    

 

3월 16일에는 코네프가 르보프(Lvov)와 오데사(Odessa)를 연결하는 철로를 끊어 남부 집단군의 병참선을 마비시키더니, 17일에는 강습부대가 270m 너비의 드네스트르 강을 건넌 다음, 북서쪽으로 선회해 독일 1 기갑군을 뒤에서 포위했다. 26일, 러시아 선봉대가 루마니아 국경을 넘어 전쟁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남동유럽 땅을 밟았다.

의욕에 넘친 주코프였지만 코네프와 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만슈타인이 미리 준비시킨 독일 기갑병력이 제1 우크라이나 전선군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3 기갑군단은 기동력을 살려 부그를 지켜내고 있었고 53 군단의 전차와 보병이 필사적으로 버텨서 포위되는 것을 막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위기를 벗어난 것은 아니고 전선에 난 거대한 틈을 통해 러시아군이 계속 쏟아져들어오고 있어서 약간 더 지연시키고 있는 정도였다.

29일, 주코프는 드디어 드네스트르 강을 건너 남부 집단군의 배후로 도는데 성공했고 동쪽에서는 제2 전선군이 제1 전선군과 약속한 합류지점을 향해 무인지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만슈타인이 지난 1년 동안 그렇게 피하려고 노력했던 악몽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4 기갑군은 반으로 나뉘어졌고 8 군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리고 6 군과의 연결점이 완전히 끊어졌고 드니에페르 하류의 전선도 제3 우크라이나 전선군이 이미 침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후베(Hube) 장군의 1 기갑군이 부그와 드네스트르 사이에 갇혀버렸다. 최고의 기갑사단을 포함한 22개 사단이 이대로 갇혀버린다면 700km의 남부전선을 지킬 병력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폴란드와 루마니아까지 어떤 병력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동부전선에서 독일군이 위기에 계속 몰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히틀러의 고집이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거의 모든 예비전력을 소진한 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공세를 주장하며 단 한 뼘의 땅도 내주려고 하지 않았고 거의 모든 사단이 증원없이 전투를 벌이느라 전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버티고 있는 것은 만슈타인과 같은 천재 전략가가 건재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는 22개 사단을 전멸위기에서 구하게 된다.

 

포위망에 갇힌 1 기갑군에게 그나마 다행은 연료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베는 기동력을 살려 북부와 북서쪽에서 포위망을 완성하려는 러시아군을 계속 격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포위망 안에서 무한정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 어느 방향으로 탈출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림 설명: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마치 러시아 포로 수용소 모습같을 겁니다. 사진을 찍던 말던 마치 예비군 훈련 끌려나온 것과 같은 모습의 독일군입니다. 군기가 바짝든 병사만 SS 친위대인지 아니면 경계임무 중인지 모르겠지만 이 병사만 FM이군요.

 

3월 24일, 총통사령부에서 '1 기갑군은 보그의 전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자력으로 후방과 전선을 다시 연결하라'는 명령이 나왔다. 명령문을 읽던 만슈타인은 화를 내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총통에게 바로 전화를 했고, 자이츨러가 전화를 받았다.

"1 기갑군이 전선을 유지하는 동시에 4 기갑군과 전선을 연결하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15시까지 병력지원이 없다면 1 기갑군에게 탈출명령을 내리겠다고 총통에서 말씀드려주십시오."

만슈타인의 최후통첩은 명백한 명령불복종이었다.

15시까지 어떤 응답도 오지 않았다. 주코프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그리고 1 기갑군에게는 초조한 시간이 계속 지나갔다.

15시30분, 1 기갑군에게 서쪽으로의 탈출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명령이 전달되었다.

16시. 총통사령부에서 '탈출은 하되 전선은 유지하라'는 약간 양보한 명령이 전달되었고 만슈타인은 "참 애매한 명령이군. 탈출하는 동시에 전선을 유지하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며 자이츨러에게 다시 전화했다.

"총통의 명령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태 파악이 그렇게 안되나요?"

"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총통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직도요? 그렇다면 제가 독단적으로 판단해야겠군요."

17시35분. 만슈타인은 1 기갑군에게 서쪽으로의 탈출작전을 준비하라는 통신문을 보내고, 히틀러에게도 30분 후에 그 명령을 알렸다. 그제서야 히틀러는 만슈타인에게 직접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히틀러를 만난 만슈타인은 이번만큼은 물러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22개 사단, 200,000명의 목숨이 걸린 회담이었다.  만슈타인은 히틀러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1 기갑군은 후방의 러시아 2개 군의 포위망을 뚫고 서쪽으로 탈출에 나서고, 4 기갑군이 반격에 나서 중간 지점까지 탈출로를 열어줄 것이다... 4 기갑군은 전투력이 너무 약해졌기 때문에 최소한 1개 기갑군단의 증원이 필요하다...

"도대체 어디에서 병력을 빼내라는 것이요? 프랑스? 적의 상륙이 임박했는데! 헝가리? 거기에서 병력이 빠지면 헝가리는 바로 전쟁에서 빠질거요. 4 기갑군만으로도 안된다면 이 작전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요. 1 기갑군은 전선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그것이 전부요."

이렇게 소리친 히틀러는 만슈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재빨리 넘어갔다. 

"귀관은 끊임없이 움직이려고 했고 그래서 결국 이 지경이 된 것이요. 그 많던 예비전력을 모두 다 써버리고도 결국은 계속 후퇴만 했지 않소!"

만슈타인은 물러서지 않고 히틀러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총통각하. 이 모든 위기는 당신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지난 8개월 동안 전략적으로 불가능한 전투만 강요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게 작전권도, 반드시 필요한 병력도 주지 않았습니다. 내 말을 따랐다면, 지금 이렇게 무의미한 논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총통의 책임입니다."

놀란 히틀러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만슈타인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금 잘잘못을 따져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 당장 1 기갑군이 탈출합니다. 총통의 허가가 아니라 동의를 요청합니다."

히틀러는 "동의할 수 없소. 오늘 저녁에 다른 문제를 논의합시다."라고 말하면서 등을 돌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