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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독일군의 동부전선의 몰락(24) - 후베 포위망 그리고 만슈타인의 경질 (2)

by uesgi2003 2012. 6. 15.

 

날씨는 점점 더워지는데 비는 안오고 가뭄이 심각하다고 하는군요. 

원래 이 맘때 쯤이면 장마가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장마 기미는 커녕 소나기도 제대로 안 오고 있습니다. 

농민들 심정이 타들어가겠습니다. 북한도 가뭄피해가 대단하다고 하더군에 내년 초부터 식량문제가 터지겠군요.


요즘 너무 어두운 소식만 가득합니다. 초장기 호황의 여파 그리고 화폐경제의 거품을 직격탄으로 맞게 된 10대와 20대들은 일자리 찾기도 힘들고... 위기가 언제 끝날 지 모를 불황에는 내수시장을 탄탄하게 다져서 자력으로 버틸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데, 임기 시작부터 경제력과는 상관없는 땅파는데 올인을 했으니 앞으로 올 여파가 무섭습니다. 


지난 이야기부터 계속되는 눈닫고 귀닫고 입만 열어 놓은 히틀러와 같은 놈이 우리나라에도 마지막까지 꼬장을 부리고 있으니... 마지막까지 F35로 엄청난 손실을 끼치겠다고 하니...


독일군의 동부전선의 몰락(24) - 후베 포위망 그리고 만슈타인의 경질 (2)


만슈타인은 히틀러만으로도 힘겨워 죽을 지경인데 1 기갑군의 후베장군까지 괴롭히고 있었다. 그는 바로 탈출하게 해달라고 계속 요청해오고 있었고 더구나 서쪽이 아닌 남쪽으로 탈출로를 변경하겠다고 고집부리고 있었다. 

지도를 얼핏 보면 남쪽이 활로로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얇게 펴진 러시아군의 포위망을 돌파하면 드네스트르 강 정도가 유일한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서쪽으로의 탈출을 준비하라는 3월 25일이 되자, 러시아군이 프로스쿠로프의 남서쪽을 깊숙히 침투해 아마 53 군단관 3 기갑군단의 전선을 토막내고 있었다. 1 기갑군의 서쪽 탈출로가 막혀버렸던 것이다. 

1 기갑군 참모장교들은 서쪽으로의 탈출은 너무 위험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공병대대와 다리건설용 자재를 이미 드네스트르 강변에 집결시키고 있었다. 

 

누구라도 활로가 열려있는 드네스트르 강쪽으로 탈출로를 잡는 것이 당연했다. 서쪽방향에는 두터운 러시아군의 포위망이 펼쳐져있고 많은 희생을 치루고 전선을 하나 뚫더라도 수십 개의 강과 개울을 건너는 동안에 다시 러시아군의 추격을 받을 것이 뻔했다. 더구나 후베는 체르카시에서 아군이 얼마나 막대한 희생을 치루고 탈출했는지를 직접 목격했고 부하들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만슈타인의 명령에 강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전선 전체를 생각하면 만슈타인의 계획대로 서쪽으로 탈출해야 4 기갑군과의 전선이 연결되고 러시아군이 루마니아와 헝가리로 무인지경으로 달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25일에는 이미 주코프와 코네프의 기갑부대가 이미 드네스트 강의 남쪽까지 진출했고 주력부대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1 기갑군이 드네스트르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겠지만 그래봐야 러시아군이 다시 추격할 것이고 카파치안 산맥에 막혀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림 설명: 철수하기 전에 철로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후베는 기갑군 차원의 생사를 보고 있었고 만슈타인은 집단군 전체의 생사를 보는 차이가 있었다. 1 기갑군이 카파치안 산맥으로 몰린다면 병력은 살릴 수 있겠지만 집단군에서는 전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후베는 서쪽으로 탈출하는 것이 맞았다. 그는 막대한 희생이 예상되더라도 러시아 2개 군을 뚫고 서쪽으로 탈출해야 했다. 만약 서쪽탈출에 성공한다면 단순히 4 기갑군과 전선이 연결되는 것 말고도 남쪽으로 진격하고 있던 주코프의 배후를 마비시키는 또 다른 효과가 있었다. 

만슈타인이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맞지만 그는 무모한 것이 아니라 대담한 것이었고 당연히 1 기갑군이 성공적으로 탈출하고 우크라이나 전선군을 둘로 단절시킬 준비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코프는 만슈타인의 생각을 몰랐지만 만슈타인은 주코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의욕이 앞선 러시아군은 1 기갑군을 포위섬멸하겠다는 작전과 목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고 집단군 정보부대는 러시아군의 통신을 가로채 해독하고 있었다. 만슈타인의 책상에는 하루에 두 번씩 러시아군의 전력과 진격방향 심지어 그 날의 작전목표까지 올라왔다. 러시아 1과 4 전차군이 보내는 통신이 그대로 만슈타인에게도 전달되었으니까 그는 주코프와 같은 방에서 나란히 앉아 같은 지도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1 전차군에게 체르노브치(Chernovtsy) 방향으로 진격하라는 주코프의 명령을 본 만슈타인은 "좋아"라고 말했다. 보병 사단이 합류할 때까지 1 전차군은 대기하고 있으라는 명령이 다시 들어왔다. "아주 좋아!" 

1 전차군이 보병도 없이 지키고 있던 드네스트르 강 상류가 러시아의 허점처럼 보였고 여기가 독일 1 기갑군이 탈출하기 가장 좋은 곳처럼 보였지만 그랬다가는 주코프가 파놓은 함정에 걸리는 것이었다. 참모장교가 여전히 남쪽으로의 탈출을 고집부리고 있는 후베를 설득하기 위해 누군가를 포위망 안으로 들여보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만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딱 잘라 말하고 히틀러를 만나러 출발했다. 

"시간이 없다. 부세 장군이 후베에게 왜 그런지를 잘 설명해줄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남쪽이 아닌 서쪽으로 탈출해야 한다."


 

히틀러는 마치 완전히 다른 사람같았다. 이전의 차갑고 고집불통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만슈타인 원수. 1 기갑군은 서쪽으로 탈출하자는 귀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바라지는 않지만 프랑스에서 9와 10 SS 기갑사단을 4 기갑군으로 전출시키겠소. 그리고 헝가리에서도 367 보병사단과 100 전차엽병사단을 보내겠소. 후베가 테르노폴 남서쪽까지만 나오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오."라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놀란 만슈타인은 히틀러에게 겸손을 표시하며 탈출작전에 대해 설명하고 후베에게 서쪽으로 탈출작전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히틀러는 다시 한 번 미쳤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다. 

 

그림 설명: 주코프는 독일 1 기갑군이 남쪽으로 탈출로를 잡을 것으로 기대했고 탈출하는 후베를 중간에서 자르려고 거의 모든 병력을 남쪽으로 내려보냅니다. 그러나 독일군은 서쪽으로 탈출하고 주코프의 판단착오는 러시아군에게 큰 피해로 돌아옵니다.

 

오전 2시 50분, 1과 4 기갑군에게 최후명령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8 군에게도 작전에 대해 설명되었다. 포위된 22개 사단이 러시아 2개 군과 4개의 강을 뚫고 탈출하는 대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르보프로 날아간 만슈타인은 4 기갑군의 라우스 장군에게 세레트(Seret) 방면으로 구원공격에 나서라고 명령했다. 라우스는 테르노플에 갇힌 수비대가 걱정되었지만 지금은 러시아 포위망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포위망 안에서는 탈출준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26일과 27일 양일간 4 공군비행단이 전투물품을 공수하고 부상병을 실어날랐다. 

주코프는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한 채, 후베가 남족으로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베가 드네스트르 포돌스키이(Podolskiy)로 내려오면 탈출하는 독일군을 중간에서 요격해서 절반은 포위망에 밀어넣고 절반은 카파치안 산맥으로 달아나게 만들 생각이었다. 생각만 해도 몸이 근질거리는 흐뭇한 상황이었다. 

성공을 확신한 주코프는 모든 기동군을 드네스트르 강 남쪽으로 이동시켰고 체르노브치, 콜로미야, 스타니슬라스를 공격했다. 그리고는 곧 있을 독일군의 남쪽으로의 탈출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실제로 병력이 필요한 곳은 북쪽이었고 너무 늦게야 독일군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포돌스키이이 북서쪽에 있는 두나예브치(Dunayevtsy)에 있던 후베와 참모장교들은 예상외로 상황이 잘 풀리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3개 사단의 마우스(Mauss) 그룹은 이미 4 기갑군과 연결되었고 1 기갑사단은 고로도크(Gorodok)의 구석을 잘 막아내고 있었으며 53 군단은 프람폴-야르몰린치 지역을 장악했다. 17 기갑사단도 포돌스키이이를 공격하고 있었고 공군의 보급품공급도 약속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포위망 안에 들어온 공군 수송대 장교는 비행장이 바뀔 때마다 알맞게 각종 신호장비를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부대의 이동로를 따라 미리 지역을 정찰해서 비행장으로 사용할 장소를 마련해놓기까지 했다. 

 

그림 설명: 독일군 210mm 포의 위용입니다. 포위망에 갇혀있었지만 탄약 등의 보급은 원활하게 되었고 남겨지는 탄약은 모두 사용해서 없앴기 때문에 화력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식량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서 현지조달을 하거나 운나쁜 말들이 식량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후베는 부하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포위망에 있는 모든 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1 기갑군은 적을 공격해 전선을 돌파할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적은 모두 남김없이 분쇄하라." 탈출명령이 아니라 공격명령이었다. 

1 기갑군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북쪽에는 쉐발리에(Chevalier) 그룹이 북쪽을 방어하며 세레트 도강지점을 확보하고 유지하기로 되어 있었고 남쪽에는 브라이트(Breith) 그룹이 포돌스키이이에 있는 적을 밀어내고 즈부루치(Zburch) 건너 탈출하기로 했다. 


체르카시 포위망이 재현되었다. 처음에는 북서로 연결되었던 전선이 갑자기 동서로 연결되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혼란스럽게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것 같은 부대이동은 지휘관뿐만 아니라 일반 병사들까지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면에서 체르카시 포위망 탈출과는 분명히 달랐다. 

주코프가 서쪽 포위망을 부실하게 방치한 덕분에 즈브루치 다리를 고스란히 장악할 수 있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주코프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전차군단 한 개를 1 기갑군의 측면으로 급히 투입했지만 그 정도로는 막아세울 수 없었다.  러시아 1 전차군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지만 날씨와 도로사정이 러시아를 도와주지 않았다.

다급해진 주코프는 포위망 안에 있는 독일군에게 다음과 같은 최후통첩을 했다.

 

1. 4월 2일까지 무의미한 저항을 중단하고 항복한다.

2. 4월 2일까지 항복하지 않는 부대는 3명 당 한 명을 처형할 것이다. 항복하는 모든 장교는 자신의 무기, 훈장과 차량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협박조의 통첩은 독일군에게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왔고 참모들이 급히 수정한 통첩문이 다시 방송된다.

 

오전 11시에 왜곡된 통첩이 전송되었다. 제대로 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항복하는 모든 병사들은 충분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사령관만 처형될 것이며 이는 무의미한 저항을 계속해서 아군과 독일군 모두에게 불필요한 희생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드네스트르와 세레트 강 사이에는 눈보라가 몰아쳤고 도로는 빙판이 되었다. 탈출하는 독일군을 괴롭히던 러시아 공군이 사라졌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날씨이기도 했다. 독일공군은 눈보라가 잦아드는 밤마다 보급품을 공수했고 아직 야간전투기가 없던 러시아 공군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구원군 모습은 안보이나?" 모든 병사와 장교가 물어댔다. 아직 4 기갑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지휘관들은 예정된 시간에, 목표지점에서 4 기갑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통지를 받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공군이 끊임없이 보급품을 수송해주었고 도로의 진흙은 얼어붙어 중장비가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북쪽의 샤벨리에 그룹도, 남쪽의 브라이트 그룹도 작전대로 러시아군의 추격을 막아내며 강의 도강 지점을 확보한 후에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부상병들의 운명은 밝지 않았다. 중상을 입은 부상병 중 일부만이 차량으로 수송되었고 다리를 다친 경우에도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도중에 많은 부상병들이 죽어가거나 길가에 남겨졌다. 

만슈타인이 히틀러를 쥐어짜서 빼내온 2 SS 기갑군단과 100 전차엽병 사단이 이제 막 전선에 도착해 탈출해오는 1 기갑군까지 남겨진 50km 돌파에 투입되었다. 4월 5일 오후가 되자, 후베는 "2 SS 기갑군단이 북쪽에서 서쪽 부차치(Buchach)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으며 도강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통지를 받았다. 

주코프는 뒤늦게 돌아세운 병력 중 11 근위군 전차군단으로 1 기갑군의 측면을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브라이트 그룹은 35대의 전차를 파괴하고 전차군단을 드네스트르 강 건너로 쫓아보냈다. 이번에는 주코프가 "너무 적은 병력으로 너무 늦게" 대처했던 것이다. 

 

그림 설명: 외국에는 다양한 게임이 존재하는데 심지어 후베의 포위망 탈출과 같은 주제로도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언어의 압박이 아니라면 전쟁사에 관심있는 분들은 즐길 수 있을텐데, 언어의 장벽이 많이 높습니다. 게임규칙이 얇은 책 한권입니다.

 

4월 6일 새벽이 밝았다. 6 기갑사단의 척탄병들이 부차치 길목을 장악하려고 신들린 듯이 싸웠다. 러시아 4 전차군 여단이 거세게 저항하며 버텼지만 살아남으려는 자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구원군도 좀 더 나아가기로 했다. 10 SS 기갑사단은 부차치의 러시아 마지막 저항선을 뚫고 "우리가 해냈다!"라며 6 기갑사단의 등을 두들겼다. 40일 가까이 단절되었던 전선이 다시 연결되었고 포위망에 갖혀 있던 200,000명이 살아나왔다.

그러나 히틀러의 온갖 고집을 누르고 기적과 같은 작전을 성공시킨 주인공은 이 장면을 확인하지 못했다. 만슈타인이 해임된 것이다. 독일 국방군 지휘관 중 천재적인 전략을 자랑했던 그는 해임되어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3월 30일, 히틀러는 그를 불러 가슴에 철십자훈장을 꽂아주며 "기동작전은 모두 끝났소. 이제는 그 자리를 지킬 사람이 필요하오."라며 해임을 통보했다.

 

기동작전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은 전쟁을 포기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히틀러는 수비전의 명수로 알려진 모델과 쇠르너를 만슈타인과 클라이스트(Kleist) 자리에 임명하고 남부집단군은 '북부 우크라이나 집단군'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쇠르너는 클라이스트가 지휘하던 집단군 'A'가 바뀐 '남부 우크라이나 집단군'을 맡았다.

포위망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후베장군은 히틀러에게서 철십자훈장을 수여받고 전선으로 돌아가던 중에 비행기사고로 죽었다.

 

전선이 연결된 독일군은 주코프가 서둘러 보낸 추격군을 맞아 대단한 전과를 올렸다. 브라이트 그룹의 3 기갑군단은 드네스트르 북쪽 강변에 나타난 러시아군을 궤멸시켰고 4개 보병사단을 강 건너로 쫓아보냈다. 2 SS 기갑군단은 스트리파(Strypa)를 공격해 17km를 회복하고 러시아 5개 전차군단과 4개 보병사단을 수세에 몰아넣었다.

모델은 탈출해 온 병력을 스트리파에 투입해서 불안하게 연결된 전선을 보강시켰다. 큰 손실없이 탈출했던 1 기갑군은 방어와 반격작전에 나서면서 드네스트르 강 북쪽의 위기는 일단 봉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