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를 열기도 전에 제 발이 저려 미국으로 도망갔던 김종훈씨가 어제 WP에 기고한 글에서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뒷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서 화제입니다.
그의 화려한 경력 뒤에 숨어있는 각종 설에 대해 확인해야 했고, 또 당연한 절차인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스스로 물러났었죠. 그 이면에는 국적변경에 따른 금전적 손실도 숨겨져 있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었죠.
어쨌든 그가 자신은 마녀사냥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며 기고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31일(현지시각) 이 매체에 기고한 ‘새로운 세상의 오래된 편견’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마녀사냥에 비유할 수 만한 독기서린 공격은 인터넷은 물론 주류 언론 매체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나는 스파이였고, 내 아내는 매매춘에 연루됐다는 식의 중상모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정치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결코 없었던 내가 그런 (장관직을 수락한) 결정을 한 것은 좀 순진했다. 정·관·재계에서 변화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주로 내 국적을 문제삼아 반대했다”고 적었다.
이어 “21세기에 가장 성공하는 국가와 경제는 국적과 관련된 오랜 편견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출생지에 관계없이 능력있는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이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이민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토요일에 대중의 광기에서 마녀사냥도 설명했었는데 제 블로그에서 다시 한 번 정리해볼까요?
마녀사냥은 정확한 시작과 유래를 알 수 없지만 약 12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5세기에 광풍이 불었고 무려 19세기까지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 인류역사의 커다란 오점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마녀로 낙인찍혀 희생당한 숫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큰 전쟁이나 전염병에 희생당한 숫자와 비교하면 놀라운 피해는 아닙니다만, 그 목적과 인간파괴를 알게 된다면 경악하게 될 대학살이었습니다.
마녀사냥의 기원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설이 존재하며 어느 것이 정설인지 주장인지 불분명합니다. 오랜기간 동안 유럽전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모든 주장이 어느 정도는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로 악마가 존재한다'라고 시작한 마녀사냥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변질되면서 광기로 번져갔습니다.
예를 들어, 스테딩겐(Stedingen) 박해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종교를 동원했습니다. 스테딩겐은 현재의 독일 북서부와 네덜란드 접경으로 상당히 자유로운 사상과 생활을 즐긴 독립지역이었습니다.
브레멘의 대주교와 지역의 카톨릭 귀족들이 이들을 탄압하며 지배하려고 했고 1204년에 조세와 십일조 납부를 거부하며 항쟁을 시작합니다. 무려 28년 동안 버텼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귀족의 본거지를 점령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브레멘 대주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교황은 이들을 이단이자 마녀라고 파문하면서 성전을 촉구합니다. 결국 1233년에 스테딩겐은 대학살의 피해를 당하면서도 침략자를 물리쳤고 교황은 다시 독일 전역에 십자군을 일으키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교황의 명령을 받은 40,000명의 군대는 스테딩겐을 점령했고 초토화시켰습니다.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성전 기사단은 1307년에 프랑스 필리프 4세에게서 이단이라는 고발을 당합니다. 원래는 필리프 4세가 성요한 기사단과 합쳐서 자신이 속세의 군주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속셈이었지만 성전 기사단이 강력하게 거부했던 것입니다. 다른 주장으로는 필리프 4세가 성전 기사단의 막대한 재산을 탐을 냈다고 하는데 사후 처리를 보면 상당한 신빙성이 있습니다.
성전을 위해 일어난 기사들을 이단으로 고발한 말도 안되는 사건이었지만 조작과 고문으로 거짓 증거를 만들어냈고 이들이 불편했던 교황은 더구나 프랑스 왕의 꼭두각시였기 때문에 거짓 증거에 결정적인 힘을 보탰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성전 기사단이 체포되고 모든 재산이 몰수되었고필리프 4세는 기사단 지휘관들을 화형에 처해 욕심을 이뤘습니다.
(화형을 집행하는 사람이 상당히 즐거운 표정이군요 ㅡ.ㅡ )
종교개혁과 함께 마녀사냥은 대중의 광기로 번지게 됩니다. 위의 도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종교개혁 운동이 활발한 지역에서 가장 극심하게 일어났는데, 1485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가 존재하지도 않는 마녀의 숫자에 놀라 마녀사냥의 면죄부를 주게 됩니다. 유럽인 모두가 사탄의 위협에 대항하라는 칙령을 발표하고 악명높은 심문관 제도를 만들고 처벌할 무한권한까지 부여했습니다.
어차피 종교적 광기에 휩싸인 사제들과 마녀사냥꾼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녀를 식별했고 잔인하게 처형하면서 공포로 카톨릭의 교권을 회복하려고 합니다.
- 눈물 시험(Traenenprobe). 마녀들은 사악하기 때문에 눈물이 없다, 그래서 혐의자가 눈물을 흘릴 수 있나 시험하는 것으로, 눈물을 흘려서 혐의자가 죄가 없다는 것을 실증해 보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사가 걸린 시점에서 눈물을 억지로 짜내는 게 쉽게 될 턱이 없다.
- 바늘 시험(Nadelprobe). 타락한 악마들은 지울 수 없는 표식을 가지고 있으며, 마녀 또한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나체를 관찰하고, 또 관찰의 용이성을 위해 몸의 털, 음모, 눈썹을 깎거나 태운다. 관찰에 의해 사마귀, 융기, 부스럼, 기미 ,주근깨 등 마녀의 점이 나오면 형리는 그 자리를 누르거나 바늘로 찔러 감각을 느끼는지, 피가 흐르는지 시험한다.
- 불시험(Feuerprobe). 달구어진 쇠로 지지는 것을 견딜 수 있는지, 그리고 다치게 될지를 시험한다. 이렇게 제안했을 때 혐의자가 승낙을 한다면 그는 마녀가 된다. 마녀는 이 난관을 악마의 도움을 받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물시험(Wasserprobe). 일반적으로 물은 깨끗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혐의자를 단단히 묶고 깊은 물에다 빠뜨린다. 물은 마녀가 들어오면 뱉어낸다고 믿었다. 만약 혐의자가 물에서 익사한다면 혐의를 벗게 되겠지만, 물에서 떠오른다면 마녀로 간주되어 화형 되었다. 마녀든 아니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고문을 당하다 보면 죽거나 거짓고백해서 며칠만 더 수명을 연장하는, 어차피 죽게 됩니다.
다시 처음 화두로 돌아가서... 김종훈씨가 마녀사냥을 운운하며 '사랑한다던' 한국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그의 낙마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당했다는 우리의 마녀사냥 고문 주장을 보면서 가진 사람, 난 사람, 든 사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김종훈씨에게 반드시 깨우쳐주고 싶은 것 하나는, 국가의 리더가 되고 싶다면 최소한의 확인절차를 거쳐야 하고, 인사청문회라고 하기에도 창피할 정도로 허술하고 구속력없는 확인절차를 마녀사냥 운운하는 것은 그나마 호의적이던 사람들까지 등돌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완벽한 외국인의 신분으로 안전한 '제 나라'에서 떠들어댄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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