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특히 전사에서는 하늘이 재미있는 심술을 부립니다. 어떤 천재에게 시간(시대), 땅(주변 상황)과 사람(피아) 모두를 주다가도 어떤 천재에게는 일부러 비슷한 천재를 맞붙여 놓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기생유 하생량 旣生瑜 何生亮 을 한탄하며 죽어간 주유처럼 천재끼리 등을 맞대고 있는 경우에는 두 천재 모두 이름만 남길 뿐, 대업은 달성하지 못하죠.
오늘의 주인공인 스웨덴의 소년 왕 카를 12세도 그렇습니다. 스웨덴은 선대에 강력한 군사력으로 북유럽 강대국으로 일어섰고 감히 주제를 모르고 싸움을 걸어온 러시아와 주변국가를 물리칩니다. 위협의 근원이라고 판단한 러시아 원정에 올라 연전연승으로 몽골 이후에 지금까지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눈 앞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기생유 하생량이라고 했죠? 카를 12세가 20년만 더 빨리 왕에 올랐다면 또는 러시아 최고의 위인 표트르 대제가 없었다면 북유럽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역사와 지도는 달라졌을 것이고 세계역사도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그가 러시아 정벌에 나섰을 때에는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개혁하던 중이었고, 표트르도 카를만큼이나 불굴의 의지파라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먼저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지면서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아래 그림을 보면 스웨덴이 16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확장에 나서서 덴마크, 신성로마제국, 리보니아(튜튼 기사단->폴란드), 러시아 영토를 강제로 합병한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었네!'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스페인과의 전투를 벌이며 이 정도로 확장한 것입니다.
카를 12세가 15살에 왕위에 오르자, 그 동안 스웨덴에 눌려 살았던 덴마크 (프리드리히 4세), 폴란드 (정력왕! 아우구스트),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3국 동맹을 맺고 공격을 합니다.
덴-폴-러 3개국은 스웨덴과 아래와 같이 전쟁에 전쟁을 이어가던 악연이었는데, 원수집안의 대를 어린 아이가 이었다고 하니 치사하게 세 집안의 어른이 달려든 것입니다.
Dano-Swedish War may refer to one of many wars between Denmark-Norway and Sweden:
- Dano-Swedish War (1470–1471)
- Swedish War of Secession (1521–23)
- Northern Seven Years' War (1563–70)
- Kalmar War (1611–13)
- Torstenson War (1643–45)
- Parts of the Second Northern War:
- Scanian War (1675–79)
- Great Northern War (1700–21)
- Theater War (1788–89), part of the Russo-Swedish War of 1788–90
- Parts of the Napoleonic Wars:
- Dano–Swedish War of 1808–1809
- Dano-Swedish War (1813-1814), part of the War of the Sixth Coalition
The Polish–Swedish Wars were a series of wars between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and Sweden. Broadly construed, the term refers to a series of wars between 1563 and 1721. More narrowly, it refers two particular wars between 1600 and 1629. These are the wars included under the broader use of the term:
- the 16th century conflict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Livonian War (1558–1583)
- the War against Sigismund, in 1598
- the war of 1600–1629 (sometimes considered a part of the larger trans-European Thirty Years' War) which was twice interrupted by periods of truce and can be divided into:
- the war of 1600–1611
- the war of 1617–1618
- the war of 1621–1625
- the war of 1626–1629
- the conflicts in the second half of the 17th century known as The Deluge (part of Northern Wars 1655–1661)
- the Great Northern War (1700–1721).
- the War of the Fourth Coalition (1806–1807)
- the last Polish–Swedish War was the War of the Sixth Coalition, because the Duchy of Warsaw was a Napoleonic ally, whereas the Kingdom of Sweden was a member of the anti-Napoleonic coalition.
Russo-Swedish Wars may refer to:
- Swedish–Novgorodian Wars, a series of conflicts in the 12th and 13th centuries
- Russo-Swedish War (1495–97), result of an alliance between Ivan III of Russia and Hans of Denmark
- Russo-Swedish War (1554–57), prelude to the Livonian War
- Livonian War (1558–82), fought for control of Old Livonia in the territory of present-day Estonia and Latvia
- Russo-Swedish War (1590–95), instigated by Boris Godunov in the hope of gaining the territory of the Duchy of Estonia
- Ingrian War (1610-17), including an attempt to put a Swedish duke on the Russian throne
- Russo-Swedish War (1656–58), part of the Second Northern War
- Great Northern War (1700–21), conflict in which a coalition led by the Tsardom of Russia successfully contested the supremacy of the Swedish Empire in northern Central Europe and Eastern Europe
- Russo-Swedish War (1741–43), also known as the Hats' Russian War
- Russo-Swedish War (1788–90), known as Gustav III's Russian War in Sweden, and Catherine II's Swedish War in Russia
- Finnish War (1808–1809)
그 발단은 정력왕 아우구스트였습니다.
지난 번 험담에서 설명했듯이, 선출왕이라는 명예만 가진 작센 영주 아우구스트는 폴란드 통일왕정을 꿈꿨었는데, 스웨덴이 중앙집권과 절대왕권을 강화시키면서 리보니아의 자치권을 크게 축소시키자, 리보니아 귀족들이 폴란드에 합병을 요청합니다. 어차피 나라는 잃었지만 폴란드는 왕정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자치권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죠.
그렇지 않아도 기회를 노리던 아우구스트는, 리보니아는 한 때 폴란드 땅이었기 때문에 덴마크와 러시아를 유혹한 후에 폴란드 왕의 이름으로 전쟁에 나서지만 다른 귀족의 지원없이 작센군만 이끌고 나서게 됩니다. 리보니아 귀족이 내응을 하기로 약속했었고 러시아가 참전하기로 되어 있어서 크게 상관없었죠.
카를 12세가 18살이던 1700년에 폴란드가 14,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리가 요새를 포위합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지도 왼쪽의 덴마크(압도적인 해군력으로 스웨덴의 앞바다를 장악)가 16,000명을 이끌고 홀슈타인-고토르프를 침공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카를은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러시아가 무려 40,000명과 대포 195문을 이끌고 나르바 요새를 포위합니다.
당시 스웨덴의 보병과 기병은 유럽 최고의 전력 중 하나였고 가용한 병력은 해군까지 총동원하면 77,000명이었지만 앞 바다는 이미 덴마크-노르웨이 해군에게 장악당했고 전함과 수송선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덴마크 해군이 눈감고 있더라도 한 번의 전투에 나를 수 있는 병력은 10,000명이 고작이었습니다.
결국 (현지 수비군 포함) 15,000명으로 3곳으로 크게 분산된 영토를, 덴마크 16,000명, 폴란드 14,000명, 러시아 40,000명에게서 지켜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왕위에 오른 지 겨우 3년 밖에 안된 18살의 소년 왕이라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겠습니까?
1. 병력을 분산해서 3곳의 전략요충지를 방어한다?
2. 덴마크에게 홀슈타인-고토르프를 넘겨주고 평화협상을 해서 등 뒤를 다진 후에 폴란드와 러시아의 공격에서 리가와 나르바를 구원한다?
3. 어차피 승산없는 전쟁이다. 본토 방어에 주력한다?
4. 닥치고 아무나 한 놈만 팬다?
18살 어린 소년 왕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 지는 내일 자세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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