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간단한 험담주제인데,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제 블로그에 호주 원주민 전쟁이야기를 정리한 김에 19세기 원주민들이 제국주의자들에게 한 방 먹인 몇 가지를 정리할까 했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아주 간단한 험담으로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영웅은 색을 즐긴다... 라는 아주 잘못된 통설이 있었고 심지어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기자를 추행하던, 형수를 추행하던, 교포를 추행하던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지 라는 몹쓸 쉴드가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최악의 난봉꾼 군주는 누구였을까요?
제가 꼽는 사람은 폴란드의 아우구스트(Augustus) 입니다. The Strong (강건왕)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듯이 힘이 장사였는데, 불행하게도 색을 밝히는 데에 그 좋은 힘을 많이 소비했습니다.
먼저 폴란드와 이 양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야겠죠?
폴란드는 17세기 당시에 무려 8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봉건국가를 벗어나지 못해서 합스부르크, 러시아, 스웨덴 등에 치이는 큰 덩치의 동네 바보였습니다.
아무리 화약병기 전성시대였어도 폴란드의 윙 후사르는 유럽전역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북방의 소국 스웨덴 (인구 250만)에게도 두들겨맞는 신세라니 좀 이상하죠? 불과 100년 전에는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폴란드 차르가 통치할 정도였는데 말이죠.
폴란드의 특수성 때문인데, 17세기 유럽은 강력한 중앙집권화와 왕권이 대세였지만 폴란드는 다양한 민족(폴란드, 리투아니아, 유대, 코사크 등)과 다양한 종교로 내부 통일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제국도 폴란드보다 더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거기는 신성로마제국이었기 때문에 원래부터 가능했던 것이고요. 합스부르크도 나중에 이런 복잡한 구성때문에 연중무휴로 주변 강대국과 전쟁을 벌였고 웃지 못할 황당한 패전을 하면서 프로이센에게 패권을 넘겨줍니다만.
1700년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입니다. 노란색이 우리가 말하는 합스부르크 제국이고, 붉은 색은 합스부르크 가문인 스페인의 영토입니다.
한가지 예를 아주 간단하게 들면, 합스부르크 제국이 국운을 걸고 총동원령을 내렸는데... 부대끼리 말이 안 통합니다. 심지어 장교와 병사가 말이 안 통합니다. 그러니 사소한 일에 서로 싸움이 벌어졌고 적과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와해되는 일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폴란드 왕은 선출직이었습니다. 지방의 강력한 영주들이 모여서 왕을 선출하는데, 그냥 왕관만 줍니다. 어떤 권한도 없기 때문에 뭔가 왕권을 휘두르려면 영주 의회(Diet)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왕은 출전했는데 폴란드 내부는 아무런 일도 없는 것처럼 평온한, 손발이 전혀 안 맞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교와 국방에서도 심각한 분열을 일으켰고 영주들이 공동전선을 펼치는 경우에도 외국의 교란/매수작전에 걸려서 적전분열은 다반사였습니다. 영주부대 하나가 전쟁 중에 짐 챙겨서 고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대한 영토, 강력한 전투력, 많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덩치 큰 동네 바보가 된 것입니다.
원래 아우구스트는 폴란드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서유럽은 프랑스의 태양왕(루이 14세)가 유럽 전역을 휘두르고 있었고 합스부르크, 네덜란드, 영국이 공동전선으로 그를 막고 있었죠.
프랑스의 최절정기는 나폴레옹 시절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군사력뿐이고 사실은 이 양반 시절입니다.
루이 14세에 대한 험담은 제 블로그 (http://blog.daum.net/uesgi2003/352)에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험담이라서 재미있으니까 보실 만 할 겁니다. 여기서도 한 마디 깐죽거리면, 루이 14세는 갑옷을 입은 그림이 많은데 전투는 제대로 참전한 적도 없죠. 아우구스트는 그래도 꽤 많은 전투를 치뤘기 때문에 갑옷을 입을만 합니다만.
폴란드 왕 선출은 국내문제였다가 태양왕이 합스부르크 왕가 뒷 편에 심복을 심어두자고 생각하면서 국제문제로 불거졌습니다. 태양왕이 엄청난 뇌물을 뿌려서 프랑스 인재인 드 콩티를 왕으로 선출해 놓았는데, 문제는 놀기 좋아하는 프랑스인이라는 것입니다.
군사재능도 탁월하고 꽃미남인 드 콩티는 프랑스의 국익과 상관없이 베르사이유의 사치스러운 향락을 버리고 야만인 소굴로 가고 싶지 않았죠. 태양왕이 찍어 누르니까 어쩔 수 없이 가기는 해야겠는데 그 속도가 빠를 리가 없겠죠.
그 동안 배후에 적성국가를 놓게된 합스부르크 레오폴트 황제와 서유럽으로의 진출을 노리던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서로 짝짝꿍이 맞아서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야심만만한 탈락후보 작센의 아우구스트는 작센군을 이끌고 바르샤바에 진입하고 러시아는 폴란드 국경에 군대를 동원해서 의회를 압박합니다. 그리고 의회도 멀고 먼 프랑스의 금고보다는 가까운 동네깡패 합스부르크의 눈초리가 무서웠습니다.
바로 이 때에 문제의 드 콩티가 바르샤바에 대부대를 이끌고 나타납니다. 아우구스트는 '뭐 되었다'라는 심정이었을텐데... 대군을 이끌고 온 드 콩티는 다른 놈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르샤바에서 바로 뒤돌아서 가버립니다. 원래 오고 싶지 않았는데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 너무 고마웠던 것이죠.
아마 쿠데타군의 세력이 너무 약했으면 프랑스군을 보태줬을 인간입니다.
너무 길어지니까 각설하고...
아우구스트가 어느 정도로 난봉꾼이었느냐 하면.
1. 은인인 표트르에게 선물을 보냈는데, 군주라는 놈이 포르노 그림을 보냈습니다. 점잖은 귀부인 초상화인데 누르면 ##$^$&%$&*@@@라는 그림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군주같으면 크게 분노했겠지만 표트르 대제도 워낙 놀던 인물이라 '이 놈! 딱 내 스타일이네'라며 오히려 좋아했습니다.
2.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에게도 선물을 보냈는데... 당시 15살이던 그는 아버지와 함께 아우구스트에게 놀러갔다가 궁전투어를 합니다. 침실에 들어서서 인테리어를 칭찬하던 중에, 갑자기 침대 커튼이 올라가며 올 누드의 여성이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란 아버지는 몹시 화를 내며 15살 아들 목덜미를 끌고 나갔고, 아우구스트는 마구 웃어대며 사과를 해놓고는 밤에 몰래 프리드리히에게 그 여성을 들여보냅니다.
프리드리히 부자는 상당히 엄격한 사람들이어서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프리드리히가 외교문제를 생각해서 그냥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15살이 정말로 외교문제를 우려했을까요???
3. 자신보다 강력한 군주에게 그 정도의 행동을 할 사람인데, 자신은 더 했겠죠?
잠시도 여자를 멀리 할 수 없어서 무려 354명의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구대국인 폴란드의 인구가 좀 더 많아졌습니다.
4. '뭘 그 정도로???' 하시는 분이 있을텐데, 잠시 즐겼던(ㅡ.ㅡ) 올제스카 부인은 나중에 자신의 딸로 밝혀졌습니다. 워낙 무분별하게 나댔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도 못 알아본 것입니다.
아우구스트는 성욕만큼이나 야심이 컸고 비빌 언덕(표트르대제)이 생기면서 폴란드 이상의 욕심을 내게 됩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폴란드의 복잡한 내정때문에 덩치가 작지만 몹시 사나운 스웨덴에 두들겨 맞으며 도망다녔지만 이 사람의 끝없는 욕심덕분에 스웨덴이 몰락하고 러시아가 동유럽의 초강대국이 되는 대북방전쟁이 시작됩니다.
이 이야기는 제 블로그와 매일경제 빅스토리에 아주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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