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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중남미

패전으로 정복한 멕시코, 코르테스의 멕시코 원정 - 아스텍 (3부)

by uesgi2003 2014. 5. 13.


어제 정몽준씨가 JTBC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 화제입니다. 특히 '손사장님!' 소리까지 튀어나오는 순간이 백미였습니다.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호칭이죠. 보통은 분통을 터트리지 못하고 참는 순간 아니면 상대를 찍어 누르려는 순간에 먼저 나오는 예고입니다. 

그의 예전 행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방송사고 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껄렁거리며 참더군요. 저는 욕설까지는 아니어도 야! 너! 소리가 나오는 줄 알고 은근 기대했었습니다. 반면에 손석희씨는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참 멋진 사람입니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깜도 안되는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랍니다. 


패전으로 정복한 멕시코, 코르테스의 멕시코 원정 - 아스텍 (3부)


코르테스는 대신전으로 목표를 바꿨다. 신성구역 안에 있는 웅장한 건물로 알바라도가 아스텍 지도층을 학살했던 곳이다. 거대한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2개의 신전이 있었는데 하나는 물과 풍작의 신 틀라록Tlaloc, 다른 하나는 전쟁신 후이트실로포치틀리Huitzilopochtli 신전이 있었다. 


성역 안의 피라미드 위에 2개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스텍 신은 같은 신이라도 동물과 사람 등의 여러 형태로 묘사되었는데, 전생신의 모습입니다. 



유럽인이 상상으로 그린 전쟁신 신전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는 전쟁신을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각 대륙의 신화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주요 소재가 되는데 현대에 표현한 전쟁신입니다. 


3일 동안 3번에 걸쳐서 스페인군은 성역으로 밀고들어가 신전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아스텍군은 신전에 500명의 정예병사를 배치시켜두었고 이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계단을 올라오는 침략자를 아래로 떨어트렸다. 



돌파구를 찾지 못한 코르테스는 4번째 공격에서 선두에 서기로 하고 부상당한 왼팔에 방패를 묶어두었다. 석궁과 화승총의 엄호를 받으며 그는 공격을 이끌었다. 아스텍군의 화살, 투창, 돌 심지어 통나무까지 쏟아져 내려와 많은 병사가 부상을 당했고 한 개의 계단마다 피가 넘쳐 미끄러웠다. 서로를 움켜쥔 병사들은 계단 밖으로 떨어져 죽어가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결국 최상층까지 진입하는데 성공한 스페인군은 나머지 아스텍 병사의 저항을 진압한 후에 무기력한 사제를 밀어 떨어트려 죽였다. 다른 시민은 스스로 뛰어내려 죽음을 택했다. 

스페인군은 후이트실로포치틀리 상징을 계단 아래로 던지고 신전에 불을 질렀다. 신전과 상징을 손에 넣은 틀락스칼란 전사들은 복수를 이뤘다며 승리의 환성을 질렀다. 



분노한 아스텍군은 거점으로 돌아가는 침략군에게 달려들었다. 코르테스의 시종은 전사한 아스텍군에게 경의를 표했다. 


"500명의 인디안이 용감하게 죽었다. 그들의 무기가 우리 수준이었다면 죽어간 숫자보다 죽인 숫자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들의 용기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아스텍의 심장부를 파괴한 코르테스는 휴전제안을 했지만 쿠이틀라후악의 전령은 찢어버렸다. 수 많은 사람이 죽은 것도 모자라 신전까지 파괴당하자 그들은 반드시 침략군을 죽이겠다고 다짐했고 더 많은 병력을 모든 거리와 건물에 배치했다. 1명의 스페인군을 죽이려면 25명의 아스텍군이 죽어야 하는데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코르테스가 아직 열려있는 유일한 도개교를 노려 공격에 나서면서 다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스페인군은 주변 건물을 부숴 그 잔해로 운하를 메우려했지만 곧바로 아스텍군이 몰려들어 거점으로 되돌려보냈다. 

쿠이틀라후악은 압도적인 숫자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제는 사방이 트인 지역에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아스텍 병사가 쓰러져 갈 때마다 스페인군 전력도 조금씩 사라져갔고 특히 화약과 식량을 소진시킬 생각이었다. 


이제 코르테스는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그는 8일 안에 도시를 떠나게 해준다면 약탈품을 모두 남겨두겠다고 애원하듯이 제안했다. 이 제안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쿠이틀라후악은 침략군이 마지막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굶주려 죽을 때까지 봉쇄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코르테스는 당연히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6월 30일 밤,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아스텍 경비병들은 근처의 건물로 몸을 피했고 모든 화롯불이 꺼졌다. 스페인과 틀락스칼란군은 어둠과 비를 틈타 거점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많은 군지휘관이 학살이나 전투 중에 죽었기 때문에 아스텍군의 규율은 많이 어지러운 상태였고 쿠이틀라후악도 어쩔 수 없었다. 코르테스가 "행운은 용자의 편"이라고 말하던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틀락스카란 병사들은 거점에서 만든 목재 다리를 첫 번째 운하에 놓았고 전체가 무사히 건넌 후에 다음 운하로 옮겼다. 코르테스는 거점을 빠져나오면서 스페인 왕궁에 바칠 20%를 5마리의 부상당한 말에 실었고 나머지 황금덩어리(모두 녹였기 때문에)는 가지고 가겠다는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경험많은 병사는 황금을 포기하고 가벼운 보석을 택했지만, 쿠바에서 온 신참들은 무거운 황금을 선택했다. 


얼마 전까지의 치열한 전투를 생각하면 도저히 믿기지 않게도, 병력은 4번째 운하까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제 도시 외부로 빠져나갈 수로에 다리를 놓으려고 할 때에 물을 길러 온 여성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전사들이여 빨리 오세요. 적이 도망치고 있어요. 어둠 속에서 도망치고 있어요"라고 소리질렀다. 

호수 주변의 경비병과 신전 위의 사제는 경보를 울리며 소리 질렀다. "아스텍 전사여. 적이 도망가고 있다. 빨리 카누로 달려가거라." 깊은 잠에 빠졌던 도시 전체가 북소리에 깨어났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병사는 수로로 달려갔다. 수 천 명이 카누를 타고 운하를 가로질러갔고 다른 수 천 명이 스페인군 뒤를 쫓아 거리를 뛰어갔다. 

"마치 바람이 숲 전체를 뒤흔들어놓듯이 북소리가 울러퍼졌다. 북소리가 점점 더 커졌고, 호수의 어둠 속에서는 노가 물을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리고는 몇 개의 돌과 화살이 마구잡이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조만간 호수와 도로 모두가 아스텍군으로 뒤덮일 것처럼 느껴졌다."



스페인군이 기록한 아스텍 병사의 계급과 치장의 변화입니다. 평민과 일반 병사부터 시작해서 최고 지휘관까지 이어집니다. 


스페인군은 사방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와 날아드는 화살에 놀라 더 이상 대형도 못 갖추고 허둥지둥 달아났고 아스텍군은 운나쁘게 뒤떨어진 적의 뒷통수를 내리쳤다. 


스페인군은 마지막 장애물인 톨텍 운하를 돌파하기 직전에 갑자기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지휘관들은 다리를 가져오라고 소리질렀지만 다리는 마지막 수로에서 꽉 잠겨버려 그대로 둔 상태였다. 다리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말이 앞으로 전해지면서 규율은 완전히 무너졌다. 일부는 운하로 뛰어들어 목숨을 구하려고 했고 기병은 반대편으로 건너뛰었다. 다시 돌아가려던 선봉대는 뒤에서 따라오던 병사, 동물, 대포, 화약마차, 약탈품마차와 부딪쳤다. 



황금을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병사는 운하 속으로 가라앉았다. 시체와 마차가 쌓이면서 다리역할을 해주었고 나머지 병력은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여기에서 알바라도의 점프라는 전설이 탄생한다. 죽음에 몰린 알바라도는 긴 창을 장대높이 뛰기처럼 사용해서 마지막 수로를 건너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아스텍군이 뒤에 남겨진 침략군에게 달려들었지만, 스페인 포병은 달아나지 않고 침착하게 포격을 퍼부어 수백 명을 죽였다. 그렇지만 아스텍군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고 시체 위로 넘어온 전사들은 포병을 휩쓸었다. 몇 명의 기병이 달려들었고 잠시 아스텍의 공격을 막아내는 듯 했다.



아스텍군은 물러서지 않고 긴 창을 내밀며 "오! 도둑놈이 아직도 살아있네?"라며 다시 몰려들었고 말과 기병을 토막냈다. 

코르테스는 말과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건졌지만 수영에 능숙한 아스텍 병사들도 최고의 전리품을 노리며 뛰어들었다. 코르테스는 부하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났고 그날은 '슬픈 밤'이라고 이름붙였다. 

놀랍게도 아스텍군은 바로 추격에 나서지 않았다. 지휘관이 부족해 규율이 무너진 상태였던 그들은 죽은 시체를 약탈하고 포로를 잡는데 정신이 없었다. 특히 침략군이 가진 철제 무기와 장갑은 귀한 노획물이었다. 

수백 명의 스페인군이 살아남아 다시 거점으로 되돌아갔지만, 하루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죽거나 포로가 되어 신전에서 처형당했다. 



쿠이틀라후악이 아스텍군을 추스려 다시 추격에 나서는데까지 몇 시간이 걸렸고, 코르테스는 패잔병을 이끌고 틀라코판Tlacopan으로 들어섰다. 쿠이틀라후악은 중남미가 유럽을 상대로 싸운 전쟁 중에서 가장 화려한 승전을 거둬, 433명의 스페인 병사와 수 천 명의 틀락스칼란 병사를 죽였지만 코르테스 한 명이 더 가치있는 전과였고 반드시 그를 잡아야만 했었다. 

코르테스의 스페인군 400명과 틀락스칼란군 2,000명이 북서쪽으로 비틀거리며 달아나는 동안 모여든 아스텍 추격군이 7월 8일에 그 뒤를 따라잡았다. 



쿠이틀라후악이 함께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측근에게 지휘를 맡겼다. 다시 한 번 톡스카틀에서의 학살 그리고 참혹한 전투에서 지휘관을 잃은 대가는 매우 컸다. 

승리를 맛본 아스텍 병사는 적을 죽이기 보다는 포로로 잡으려든 전통적인 전투방식으로 회귀했고 덕분에 스페인군은 전멸직전에서 위기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코르테스 특유의 과감함이 결정적인 반전을 일으켰다. 


그는 4명의 부하와 함께 말을 타고 아스텍군의 대열을 뚫고 최고 지휘관만을 노려 돌격했다. 그는 등 뒤에 커다란 국기를 매달고 있었기 때문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목표물이었다. 코르테스는 그를 칼로 쳐서 쓰러트렸고 함께 공격했던 후안 데 살라망카가 창으로 그를 꿰뚫은 후에 국기를 잡아뜯고는 코르테스에게 넘겨주었다. 

침략군이 지휘관을 죽이고 국기를 흔드는 광경을 본 아스텍군은 사기를 잃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중미에서의 국기는 유럽과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중미에서는 국기에 신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는데, 침략군이 신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전투는 소용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멸을 두려워했던 스페인군은 이제 안전해졌다. 이렇게 해서 코르테스는 다시 한 번 목숨을 건지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참혹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수도를 지켜낸 아스텍은 스페인군이 남기고 간 천연두가 9월부터 휩쓸면서 황제를 포함한 많은 시민이 죽어갑니다. 면역력도 없고 약도 없으니 처음보는 병에 수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이후에 황제가 된 쿠아우테목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동맹국과도 심한 갈등을 겪게 되고, 다시 돌아온 코르테스에게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코르테스의 아스텍 정복 영화는 없군요. 있을 법 한데도 못 찾겠습니다. 그래서 너무 유명한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를 참조영상으로 가져왔습니다.

오해가 없도록 아래 지도를 잘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아스텍이나 마야나 모두 인신공양의 전통이 있었지만 엄연히 다른 지역과 문화입니다. 왼쪽의 분홍이 이번 이야기의 무대인 아스텍이고, 오른쪽의 녹색은 아포칼립토의 무대인 마야입니다. 

저도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아스텍이나 마야나"라고 이야기한다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아포칼립토의 충격적인 인신공양 장면입니다. 잔인한 장면을 싫어하시는 분은 스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들을 미개하다고 욕하는 유럽에서도 무려 200년 후까지 야만적인 마녀사냥과 종교재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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