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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중남미

패전으로 정복한 멕시코, 코르테스의 멕시코 원정 - 아스텍 (1부)

by uesgi2003 2014. 5. 11.


정몽준씨 일가의 솔직한 발언과 행동이 연일 화제입니다. 제 자신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심신을 닦고 가정을 바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안하게 만든다)에서 '수신'조차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남을 뭐라고 조롱할 처지가 아닙니다만... 

일단 저는 유권자이고 서울에 사는 한은, 저와 제 가족을 위해 일할 5년 계약직 시장공무원을 제대로 면접보고 뽑아야 하기 때문에 남을 뭐라고 해야 할 입장입니다. 그리고 정몽준씨도 '수신제가'를 벗어나 '치국'을 향해 나섰고 많은 사람의 엄정한 저울 위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정몽준씨는 '치국'이 아니라 '제가' 단계로 다시 돌아가야 할 인물입니다. 아직은 입을 조심하고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어야 할 아들의 '미개한 국민'부터 부인의 불법선거운동 고발건까지 '제가'조차도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왕족질이 너무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어서, 저울 앞에 나서기 전에 '제가'부터 해야겠죠.


한 편으로는 정몽준씨가 성공적으로 '치국'에 오르게 되는 불길한 염려도 있습니다. 왕족질하는 아이가 조롱하던 '미개한 국민'이 사실로 적중하는 염려죠. 아무리 우리가 미개해도 '제가'조차 못하고 있는 왕족에게 서울을 맡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중남미로 무대를 옮겨서 스페인 황금사냥꾼(콩키스타도르)과 아스텍의 치열한 역사입니다. 오래 전에 코르테스의 멕시코(메히코) 원정 이야기를 정리한 적이 있는데 그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이전 이야기->http://blog.daum.net/uesgi2003/21부터 봐야 연결이 될 겁니다. 


코르테스는 멕시코 원정에서 만난 틀락스칼라와의 교전에서 전멸위기까지 몰렸다가 살아나 그들과 동맹관계를 맺고 지배국인 아스텍으로 향하게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코르테스가 틀락스칼란국과 동맹을 맺는 장면입니다. 


원래 제 이야기는 현지어 발음이 원칙이었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너무 벗어나고 생경하다는 의견이 많아서 이제는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 이야기와 용어발음이 좀 다릅니다. 


패전으로 정복한 멕시코, 코르테스의 멕시코 원정 - 아스텍


에르난도 코르테스Hernando Cortez는 토리티야(중남미식 쌈) 더미 위의 나무에 매달린 인디안을 노려보았다(신대륙을 인도로 착각했기 때문에 원주민은 모두 인디안으로 불렀습니다.)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일확천금을 노리고 스페인에서 건너간 정복자)는 멕시카Mexica(또는 아스텍Aztecs)의 위대한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의 텅빈 거리를 지나면서 분노와 당혹감이 더욱 커져갔다. 1520년, 6월 24일, 전조는 매우 불길했다.



스페인 지폐의 코르테스입니다. 늘 강조하지만, 역사는 어디에 발을 두고 바라보는가에 따라 입장이 크게 변합니다. 스페인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대를 연 콩키스타도르를 지폐에 넣을 정도로 자랑스럽겠지만, 중남미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문명자체를 말살한 악마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의 발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개인적인 판단이겠지만, 한일역사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겠다는 외계인 수준의 무리에게 동조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코르테스는 큰 소리를 쳐가며 거의 정복직전까지 갔던 황금도시로 스페인 군대를 이끌었다. 몇 세기 동안 스페인 탐험가들이 그렸던 환상속 낭만은 테노치티틀란의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났다. 테노치티틀란은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크게 잘 정리된 중남미의 보석으로 30만 명 이상의 시민이 살고 있었다. 멕시코 계곡의 푸른 호수들로 둘러쌓인 섬 도시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도시였다. 계곡 뒤의 눈덮인 산을 배경으로 논밭과 과수원이 곳곳에 있었고 주변지역은 사람들로 넘쳐났었다. 

테노치티틀란은 2개의 큰 수도가 물을 대는 운하가 복잡하게 얽혀있었고 어느 곳에나 장대한 궁전과 높은 사원이 있었다. 



코르테스 일행의 행로입니다. 출발은 쿠바에서 시작했고 쿠바 총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코르테스는 1년 전에 500명의 병력을 데리고 멕시코 해안에 상륙해 이곳까지 온 적이 있었다. 그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1511년에 쿠바에 도착했고 영향력을 넓히던 중에 33살이던 1518년, 본토의 어딘가에 황금도시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쿠바총독을 설득해서 원정대를 꾸렸다. 


멕시코에 상륙한 그는 엄청난 멕시카 제국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고 쿠바총독의 명령을 무시하고 고지대의 수도로 향했다. 그리고 무모한 원정에는 믿을 수 없는 행운도 따라주었다. 멕시카 황제 몬테수마Montezuma 2세는 철저하게 미신을 숭배하던 군주였다. 



혹시나 오해가 있을 수 있어서, 문명 5에 등장하는 인상 더러운 몬테수마는 이번 이야기의 몬테수마 2세가 아닌 증조 할아버지 몬테수마 1세입니다. 몬테수마 2세와 같은 우유부단한 황제였다면 문명 5의 위인으로 이름을 올릴 수 없었겠죠.


코르테스는 하필이면 중미Mesoamrica(아래 지도참조) 연도체계 중 원년One Reed 해에 도착했는데, 사라진 톨텍Toltec 문명세운 케트살코아틀Quetzalcoatl 신이 동방으로 배룰 타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해였다. 




톨텍 문명은 아스텍 이전에 융성했던 문명으로, 사진은 툴라Tula에 있는 톨텍 전사의 석상입니다.  



케트살코아틀 신은 여러 형태를 가졌는데 사람과 동물이 혼재했습니다. 여기에서는 깃털이 있는 뱀 모양이군요. 온라인 게임 와우를 했던 분이면 추억이 새록 새록 돋는 장면일 겁니다. 정글 인던을 공대로 많이 돌아다녔죠?

요즘 그린 케트살코아틀 신입니다. 클릭하면 커집니다.



몬테수마는 코르테스를 돌아온 신 또는 신의 전령으로 착각하면서 그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멕시카 제국은 원래 톨텍 문명의 후계자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몬테수마는 제국의 창시자라고 착각한데다가 코르테스가 많은 적을 물리치고 수도까지 오자 두려움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는 어이없게도 멕시카의 최대 적대국인 틀락스칼란Tlaxcalan(코르테스가 전멸위기에 몰렸다가 성공적으로 동맹을 맺은)조차도 멕시카의 동맹으로 받아들였다. 


코르테스는 남쪽 둑길에서 몬테수마를 만났고, 몬테수마는 500명의 스페인군과 5,000명의 틀락스칼란군을 환영했다. 코르테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몬테수마를 포로로 잡기로 했다. 



아스텍군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그림입니다. 백인이 처음보는 말까지 타고 나타나자 신으로 굳게 믿은 몬테수마는 적대국 병사까지 수도 깊숙이 끌어들일 정도로 이성을 잃었습니다. 


코르테스는 40명을 데리고 황제의 궁전으로 가서 몬테수마를 칼로 위협해 데리고 갔다. 몬테수마는 어이없게 납치되면서도 아스텍 시민이 한 줌도 안되는 스페인 병사를 공격하지 말라고 진정시켰다. 그는 동생 쿠이틀라후악Cuitlahuac을 포함해 코르테스에게 저항하려는 지도자들을 비난했고, 코르테스는 몬테수마의 지지를 받아 지도자들을 스페인 진영에 감금시켰다. 

테노치티틀란을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장악한 스페인군은 온갖 금은 세공품을 녹이며 제국을 마음대로 약탈하기 시작했다. 


코르테스는 1주일 후에는 500만 명이 넘는 제국의 통치자 행세를 하며 막대한 금은보물의 20%를 본국으로 반출하기 시작했다(Royal Fifth라고 해서 중세 이슬람권에서 전쟁노획물 등을 군주에게 20% 바치던 관례가 있었는데, 식민지 약탈에 나선 이베리아 기독교 국가에서도 같은 원칙을 정했습니다.) 

일개 원정대 지휘관에 불과한 코르테스가 자신을 무시하고 본국과 직접 교신하자, 쿠바총독은 군대를 보내 코르테스를 체포하려고 했다. 코르테스는 페드로 데 알바라도Alvarado에게 120명의 스페인병사와 대부분의 틀락스칼란군을 맡겨두고 해안으로 강행군했다. 그리고 짧은 전투 끝에 쿠바 파견군 지휘관 나르바에스Narvaez를 사로잡은 후에 나머지 병사에게 돈을 뿌리며 일확천금의 도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6월 24일, 코르테스는 파견군 병사까지 흡수해 테노치티틀란으로 돌아왔고, 이야기 처음부분의 시체 그리고 예전과 다른 도시의 분위기를 보게 되었다. 



30만 명이 살던 대도시 테노치티틀란은 그림과 같이 운하로 정교하게 연결된 섬도시였습니다. 



이렇게 온갖 작물농장과 과수원이 있었고 운하의 주요 거점은 도개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