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2차대전

소련전차병의 눈으로 본 T-34 (3부)

by uesgi2003 2016. 3. 16.


계속 반복해서 당부하지만 제 서재의 이야기는 역사의 한 부분과 시각을 그대로 전달할 뿐입니다. 


3부로 정리되는 이번 이야기도 제목 그대로 '소련참전용사의 입을 빌린' T-34 이야기입니다. 


소련전차병의 눈으로 본 T-34 (3부)


1942년 보고서는 ‘T-34의 심각한 피해는 전면이 아닌 측면장갑관통이었다. 조사대상 차체의 432번 피탄 중 270번이 측면이었다. 승무원이 전차의 특성을 잘 모르거나 가시성이 낮아서 위험을 적시에 발견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했다. 승무원 교육을 개선하거나 가시성을 높여야 한다고 정리했다.

전차장과 장전수 관측장비에서 철제 거울을 없애서 잠망경도 유리블록으로 교체해서 파편의 피해를 줄였다. 1942년 가을 생산된 나사조립식 포탑부터 변경했다. 운전병은 좌우로, 전차장은 전방위를, 통신병과 장전수는 우측을 경계하면서 위험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T-34 시리즈 중에 가장 좋아하는 1941년 포탑형입니다. 



1942년형 6각형 포탑입니다.

 

전차장의 시야확보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43년 여름에야 전차장 큐폴라 개선시험을 시작했다. 전차장은 여전히 포수 역할을 했지만 큐폴라 개선덕분에 머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었고 사방을 경계할 수 있었다.

전차장 큐폴라는 회전하였고 포수를 하지 않을 때에는 주변상황을 보며 전투를 지휘하거나 다른 전차와 협업할 수 있었다는 증언이 있지만 실제로는 큐폴라가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차장용 잠망경이 더 추가된 것이었다.

1941~42년에는 잠망경이 고정되어 있었고 아주 조금씩 움직여서 주변을 봐야 했지만 이제는 후방까지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해치를 닫고 전투를 벌이다가 피탄되면 탈출하기 힘들기 때문에 잠망경을 포기하고 해치를 열어둔 전차장도 있었다.


 

대부분의 전차병은 독일전차의 시원한 가시성을 부러워했다.

짜이즈Zeiss광학조준기를 부러워했다. 종전때까지 성능이 대단했다. 우리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조준기 자체가 우리 것보다 훨씬 편리했다. 우리는 조준점에 삼각형이 있고 좌우에 실선이 있었지만 그들은 바람과 거리까지 수정할 수 있었다.’



소련전차의 조준방식입니다. 



타이거의 조준방식입니다. 훨씬 편리해보이죠? 


 

그렇지만 실제로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었다. T-28 다포탑전차에서는 독일과 같은 원형거리측정을 사용했다가 T-34에서 수직거리측정을 사용했다. 문제는 광학장치의 차이였다. 이지움Izyum 광학공장을 소개하면서 소련의 광학장치는 품질이 심각해졌다. 초기 T-34의 망원조준기를 포신에 붙여서 위아래를 쳐다봐야 했지만 나중에 독일전차와 같은 관절형 조준기로 변경했다.



타이거의 관절형 조준기입니다. 



 

T-34 1944년형 ZIS-S-53 포입니다. 

 

1 — armor protection gun, 2 — bracket cradle for mounting machine guns, 3 — Gun 4 — Scope 5 — key cradles, 6 — wedge bolt gun, 7 — the breech of the gun, 8 — magnet electric trigger, 9 — hinged suspension of sight, 10 — lateral level, 11 — gilzoulovitel, 12 — flywheel aiming angles, 13 — lanyard, 14 — left panel fencing, 15 — electric trigger lever, 16 — Linkage, 17 — switches guns and machine guns, 18 — stop fastening gun in traveling , 19 — Bracket, 20 — bracket cradle for mounting a sight, 21 — flange for mounting the cradle to the armor protection guns, 22 — cradle; 23 — gun barrel

 

T-34 시야가 안 좋으니 운전병은 해치를 열고 다녔고 엔진 팬이 빨아들이는 차가운 바람을 온 몸에 맞아야 했다.

안락함이 전혀 없었다. 미국과 영국전차에도 들어가 봤는데 훨씬 안락한 환경이었다. 실내는 밝은 색으로 도색되어 있었고 의자도 푹신한데다가 팔걸이도 있었다. T-34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실제로 포탑에는 팔걸이가 없었지만 운전병과 통신병 의자에는 팔걸이가 있었다. 그리고 영국군과 독일군전차(타이거 제외)도 팔걸이는 없었다.

 

정말로 심각한 설계결함은 따로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내부로 뿜어내는 포연이었다. 포격하고 탄피를 배출할 때마다 가스가 쏟아져 나왔다.

철갑탄 장전! 고폭탄 장전! 한참 외친 후에 돌아보면 장전수가 탄약통 위에 실신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포연에 질식해 실신했다. 격전을 끝까지 버틴 병사는 거의 없었다.’

흡입팬으로 포연을 배출하고 환기시켰는데 초기 T-34는 포탑 앞부분에 팬이 하나 있었다. BT전차의 45mm에 맞는 형태라 포연이 뿜어져 나오는 포미가 아니라 포신 위에 달렸고 당연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1942년에는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팬조차 달지 않았다. 나중에 나사조립식 포탑을 생산하면서 팬도 뒷부분으로 옮겨 포연을 제대로 배출하기 시작했다. 85mm 포탑은 대형포 때문에 팬을 2개로 늘렸다.

그렇지만 포미로 가스가 배출되는 원척전인 문제는 막지 못했다. 독일군 전차처럼 압축공기를 불어 포신으로 가스를 배출해야 했지만 탄피와 함께 그대로 내부로 들어왔다. 전쟁이 끝난 후에야 포구 제연장치Bore Evacuator를 도입해 포미가 열리기 전에 가스를 배출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포미 가스배출을 막았습니다. 

 

T-34는 여러 면에서 혁신적인 설계였지만 구식기술을 그대로 접목시킨 미완성형이었다. 기관총수/통신병도 중간형태의 한 예였다. 전차장이 지휘와 포수역할을 했기 때문에 다른 병사가 무선통신을 맡아야 했다.

무선통신은 불안했다. 통신병은 전문가였지만 전차장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몇 번 피탄되면 주파수가 틀어지고 진공관이 깨져버렸다.’

초기 T-34는 양방향 71-TK-3 무전기(사진 참조)가 있었지만 모든 전차에 장착되지는 않았다. 독일전차도 지휘전차에만 무전기가 있었다. 19412월 규정에 따르면 독일경전차 중대는 2호전차 3대와 3호전차 5대에 Fu.5 양방향 무전기를, 2호전차 2대와 3호전차 12대는 Fu.2 수신기만 장착했다. 1호전차는 특수지휘전차(사진 참조) 외에는 아예 양방향 무전기가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전기의 숫자가 아닌 조악한 품질이었고 71-TK-3의 송수신 거리는 무척 짧았다.

주행 중에는 6km 정도 밖에 안되었다. 복잡한데다가 불안정해서 자주 고장났고 고치기 힘들었다.’

19418~1942년 중반, 무전기생산공장을 소개하면서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었다가 소개된 공장이 재가동되면서 모든 전차에 무전기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RSI-4 항공무전기(사진 참조)를 개선한 9R, 9RS, 9PM 무전기가 속속 생산되었다. 원래 영국제품인데다가 렌드리스로 부품을 공급받아서 훨씬 안정적이었다.



무전기는 운전병 부근에서 전투실로 옮겨졌고 85mm에서는 포탑 왼쪽에 장착되어 더 이상 포수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전차장이 조작했다. 그렇지만 지휘전차가 일방적으로 송신하는 전투방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모든 전차에 인터콤이 있었지만 초기에는 무척 불안정했고 전차장은 운전병 어깨 위에 군화발을 올려 신호를 주었다.

인터콤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전차장이 내 왼쪽 어깨를 누르면 왼쪽으로, 오른쪽 어깨를 누르면 오른쪽으로 운전했다.’

전차장과 장전수도 주로 손짓으로 말을 주고 받았다.

주먹을 장전수 코 아래에 찌르면 철갑탄 장전이라는 뜻이었다. 주먹을 완전히 펴면 고폭탄 장전이었다.’

‘76mm에서는 군화발이 훨씬 효과적이었지만 85mm 인터콤은 아주 우수했다.’

T-34/85는 어깨를 누르지 않아도 되었고 전차장과 장전수도 인터콤으로 주고 받았다.

 

T-34 엔진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었다. 주행 전에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빼고는 안정성도 매우 높았다. 새로 배치된 전차는 각기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전차, 모든 전차포, 모든 엔진은 나름대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전에 알 방법이 없었고 매일 점검하면서 발견했다. 결국 전방에서 조정을 했다. 전차장은 포의 정확도를, 운전병은 디젤엔진의 성능을 예측할 수 없었다. 생산공장에서 영점조정을 하고 50km 시험주행을 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았다. 전투에 앞서 전차에 대해 자세히 파악해야 했고 기회만 있으면 그렇게 했다.’

 

동력장치에서는 공기여과기가 문제를 일으켰다. 초기의 구형 여과기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엔진손상의 주범이었다.

구형 공기여과기는 비효율적이어서 큰 터빈공간이 필요했다. 도로상태가 나쁘지 않을 때조차도 자주 청소해야 했다. 지침대로 청소만 제대로 하면 문제없겠지만 격전 중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여과기를 거친 공기가 더럽고 오일과 거름망을 제대로 갈지 않으면 엔진은 얼마 안가 고장났다.’ 

 

초기 여과기는 사이클론Cyclone 여과기(그림 참조)로 바뀌었고 유지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작전기간 내내 엔진고장이 거의 없었다.

T-34는 이중 점화장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투 중에 전기점화기가 고장나도 압축공기 컨테이너가 따로 달려 있어서 엔진기동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캐터필러는 피탄되지 않아도 자주 끊어졌다. 회전하면서 로드휠 사이에 흙이 잔뜩 끼게 되면 핀과 궤도가 버티질 못했다.’

‘T-34는 엔진소리만 우렁찬 것이 아니었다. 캐터필러소리도 요란했다. T-34가 접근하면 캐터필러소리가 먼저 들리고 그 다음에 엔진소리가 들렸다. 궤도는 구동휠의 롤러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했는데 닳게 되면 맞물리지 않아서 독특한 소음을 냈다.’

 


76mm에 비해 크게 개선된 85mm가 이정도의 소음입니다. 

 

고무 타이어를 사용하지 못해서 소음이 더욱 컸다.

운이 나쁘게도 스탈린그라드공장에서 T-34를 받았고 로드휠에 고무 타이어가 아예 없었다. 끔찍한 소음을 냈다.’

 

전쟁발발로 고무생산이 크게 줄어든데다가 겨울에는 강이 얼어붙으면서 야로슬라블 타이어공장에서 나온 로드휠을 실은 바지선이 제 때에 도착하지 못하자 스탈린그라드공장은 타이어 로드휠대신에 내부에 충격흡수 장치를 달았다. 로드휠 내부에 작은 충격흡수용 링을 넣었는데 다른 공장에서도 따라하기 시작했고 1943년 가을까지 계속 생산되었다. T-34/85는 고무타이어 로드휠이 장착되어 소음과 승차감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리고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이런 서스펜션이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T-34의 역할도 점차 변했다. 초기에는 중장갑의 장점, 변속기와 장거리주행의 단점을 가진 전차로 보병지원에 적합했다. 그렇지만 초기와 달리 점차 장갑의 장점이 사라져갔고 1943년 말과 1944년 초기에는 독일군의 75mm 포에도 관통되었고 88mm는 치명적이었다.

반면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다급해서 미루었던 개선사항이 적용되었다. 특히 동력계와 변속기가 크게 개선되어 고장염려가 없었고 유지보수도 쉬워졌다. 후기 T-34는 기동력이라는 큰 장점을 얻었다.

‘3일 만에 동프로이센 500km를 주파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1941년이었다면 500km 주행은 수리창 직행이었다. 19416, 8기계화군단의 강행군은 전차 절반을 고장으로 잃었다.

운행만 본다면 독일군전차가 더 완벽했고 고장도 적었다. 독일전차에게 200km 주행은 별 일이 아니었지만 T-34는 이곳 저곳이 고장났다. 독일전차의 전투력은 별로였지만 기계장비는 좋았다.’

 

1943년 가을이 되자, T-34는 종심과 우회침투용 독립전차전력으로 적합했다. 소련군의 주력전차가 되었고 이제는 장거리와 험지주파, 운전병 해치 개방, 전조등 조명이 T-34의 대명사가 되었다. 수백 km를 달려 독일군을 포위하고 퇴로를 끊었다.

1944~45년 작전은 1941년 독일의 전격전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독일군전차가 장갑과 화력열세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기동력으로 T-34KV전차를 협동으로 격파하거나 우회하며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위협했지만 이제는 중장갑과 화력의 타이거와 팬더를 우회해 협동으로 격파했다.

동부전선 발발부터 전장에 있었던 T-3419454월 베를린전투에서도 거리로 쏟아져 들어갔다. 1941년에도 그랬고 1945년에도 역시 전차병은 T-34를 믿고 자랑스러워했다. 

 


2015년 승전행진 준비 중인데, 여전히 운전병용 해치를 열어두고 다니는군요. 



(궤도를 하나씩 붙여야 하는 드래곤제품만 피한다면) 독일전차는 뭘 집어도 몇 시간은 걸리는 반면에 T-341시간 내에 조립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합니다.

그렇지만 뭔지 모르게 자꾸 끌리는 매우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모처럼 박스를 좀 열어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