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884 독일군의 눈으로 본 스탈린그라드전투 - 대공세 준비 바르바로사 침략군은 정말로 엄청난 규모였다. 나치의 1935년 국방규정과 그에 따른 재무장 프로그램이 결합되어 세 개의 군대가 탄생했고, 1939년 이후의 짧고 성공적인 작전으로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침공 당일, 약 350만 명의 독일군이 약 50만 명의 추축군과 함께 국경에 집결해 있었으며, 3천 5백여 대의 전차와 7천문의 대포, 3천 대에 가까운 항공기의 지원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기동력 부족은 곧 발목을 잡았고, 60만 대의 차량과 비슷한 숫자의 말만으로는 진격을 지속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러시아의 끈질긴 저항과 열악한 교통망때문에 1941년 말까지 독일 물류 시스템의 핵심인 4만 1,000대의 귀중한 트럭을 포함해 차량 6대 중 1대를 잃었고 전차 6대 중 1대를 잃었다. 말 중 절반이 죽었고 .. 2024. 4. 7. 화보 한 장 보고 가세요. 제가 오징어라 잘생긴 사람, 특히 남자를 무척 싫어하는데... 이분에게는 그냥 머리를 숙일 뿐입니다. 저희 가족표 빨리 가져가세요. 2024. 3. 22. 검찰덕분에 홍삼을 다 사먹어봅니다. 이제는 뭘 먹어도 비실거릴 나이이고, 돈도 없어서 모 유명인물이 홍삼 좋다고 해도 흘러 넘겼는데, 홍삼 = 면역력 이라는 한국의 자부심이 위기에 몰려서, 직접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검찰덕분에 홍삼을 다 사먹어보는군요. 그런데 이런게 문제가 되면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이고 홈쇼핑이나 티비광고 모조리 사형감인데요? 2024. 3. 22. 독일군의 눈으로 본 스탈린그라드전투 - 바르바로사 실패 (2) 이제 히틀러는 수상실 의자에 기대어 스탈린의 붉은 군대는 엉터리였고 독일군 자체 정보가 믿을만 하다고 생각했다.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았고, 그에게 도전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발터 폰 브라우히취는 재정이 궁핍한 상태였고, 빌헬름 카이텔과 알프레드 요들은 예스맨이었다. 육군최고사령부 참모총장 프란츠 할더만이 막대한 손실을 입은 적군의 놀라운 재건 능력을 기억하며 겔렌의 보고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지난 여름과 마찬가지로 히틀러의 낙관론에 침묵을 지켰다. 히틀러의 낙관론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치 독일의 석유 부족이었다. 1917년, 광기 어린 프랑스총리 조르주 클레망소는 미국대통령 우드로 윌슨에게 전쟁에서 석유는 피만큼이나 중요하다는 편지를 보냈고, 25년 후 아돌프 히틀러도 이 .. 2024. 3. 17. 이전 1 2 3 4 ··· 47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