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 타이거 이야기 (4부)
‘적군이 우리 뒤 10km 지점에 있습니다.’
‘상황을 알려주게’ 헬만이 소리쳤다.
‘우리 뒤에 50대 정도의 신형 요세프 스탈린 전차가 있습니다. 정말 거대한 강철괴수입니다. 슈투카 기관포로는 엔진그릴만 부술 수 있고 포탑은 이빨도 안 먹힙니다.’
‘적군 방향이 어느 쪽인지 그리고 다른 병력이 있나?’
‘서쪽 강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강으로 곧바로요. 그 놈들도 전속력입니다. 아마 30분이면 여기를 통과할 겁니다. 트럭 50대에 보병과 견인포를 싣고 있습니다.’
‘기지가 어디인가?’
‘강 서쪽의 플로벤카Plovenka입니다. 이반전차가 점령하면 100km 내에는 공군기지가 없습니다.’
쿠르트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공군의 엄호는 이미 전차병들 사이에서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헬만은 몇 가지 더 물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조종사를 하노마그에 태웠는데 자존심 상해했다. 우리는 서쪽 지평선으로 향했다. 타이거 15대와 하노마그 10대로는 중과부적이었다.
서쪽으로 해가 기울 때에 러시아군이 남쪽에 보였다. 먼 스텝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사방에 배연과 진흙을 튕기고 있었다. 헬만은 이미 다른 타이거에게 전투준비를 지시하고 있었다.
‘선도대일거다. 앞으로 있을 전투의 예고편이지. 격퇴한 후에 다시 전진한다.’
우측에 다른 타이거가 자세를 잡았고 하노마그도 우리 뒤로 몰려 들었다. 우리 뒤에 있는 편이 안전했다.
약 10여대 정도로 T-34보다 훨씬 넓고 낮은 모양이었다. 분명히 신형 스탈린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뭔가가 더 있었다.
‘적군 전투기군. 슈투르모빅.’ 헬만이 신음소리를 냈다. 슈투르모빅은 러시아의 전폭기로 속도는 느리지만 동체를 장갑으로 두르고 있어서 기관총으로는 소용이 없었다. 깨진 관측창 너머로 이놈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후 전개에서 잘 나오지만 원래 IS-2의 상대는 타이거가 아닌 킹타이거입니다.
‘놈들이 먼저 공격하고 다음에 스탈린이 올 거다. 다들 준비해라.’
하노마그의 MG42가 총신을 위로 올렸다. 분명 일천발을 퍼붓는 굉장한 무기이지만 슈투르모빅이나 스탈린에는 소용이 없었다. 거리를 측정하는 예광탄을 쏜 후에 조용히 적의 공격을 기다렸다.
그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고 고통스러웠다. 마이바흐 엔진소음에 맞춰 내 심장소리도 커졌다. 전폭기가 우리 머리 위로 다가오자 하노마그의 기관총이 먼저 발사했다. 슈투르모빅의 날개 기관포탄을 뒤집어 쓴 하노마그의 전면 유리창과 기관총병이 산산조각나는 것이 보였다.
뒷문이 열리고 이반 장교가 몸을 던졌다. 조종사도 그녀 옆에 몸을 던졌다.
타이거도 몇 발을 맞았지만 쇠망치로 두들기는 정도밖에 안되었다. 곧바로 폭탄이 투하되었다. 눈물모양의 작은 두 발이 거의 수직으로 내려와 한 발은 근처에 다른 한 발은 뒤의 낮은 언덕에 떨어졌다. 뒤에 있던 하노마그의 바퀴, 트랙과 시신이 하늘로 치솟았다.
전폭기가 사라졌는데도 잔해는 여전히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스탈린에게 포문을 열었다. 거리는 2km 정도로 충분했다. 88mm가 불을 뿜자 익숙한 반동이 차체를 흔들었다. 스탈린까지 몇 초도 안 걸렸다.
우리는 스탈린 2대를 맞췄는데 한 대는 연기를 내더니 멈췄고 다른 한대는 미끄러지면서 부주의하게 측면장갑을 드러냈다. 아군 중 한대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휠 바로 위에 한 방을 더 꽂았다.
적군 전차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후면 데크부터 불타올랐다.
스탈린은 우리 타이거보다 훨씬 넓었고 거대하고 육중한 포탑을 달고 있었다. 한 발을 정확하게 맞췄는데도 완전히 튕겨냈다. 스탈린 한 대는 처음 두 발에 이어 다시 한 발을 맞았는데도 모두 튕겨냈다.
‘미치겠네.’ 쿠르트가 중얼거렸다. 맞다. 우리는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다. 스탈린이 대응포격을 시작하자 오렌지 섬광이 번쩍였다. 전면장갑에 엄청난 충격이 있더니 60톤이 나가는 전차가 몹시 흔들거렸다.
포탑의 빌프는 정신없이 사격을 했고 탄피가 차체 바닥으로 마구 떨어졌다. 근처의 타이거는 포탑에 한발을 맞았는데 몇 초 동안 흔들거리더니 포수의 해치가 활짝 열리고 안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옆의 전차장 큐폴라에서 전차장이 급히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화염이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포수 해치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3m가량 치솟았다. 바로 내 자리인 운전병 해치도 열렸지만 두 팔만 밖으로 나왔을 뿐, 마찬가지로 화염만 보였다.
부숴진 하노마그에서 탈출한 러시아 여성장교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주변은 러시아군 포로와 독일군의 시체가 가득했다. 쿠르트는 그녀에게 기관총을 겨누었다.
‘하지 마. 그냥 놔둬.’ 나를 보더니 으쓱거렸다. 헬만이 소리쳤다. ‘파우스트. 뒤의 언덕 위로 몰아라. 그 위에서 사격한다.’
폭격맞은 하노마그 잔해 위로 올라섰다. 탑승원은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인 데다가 우리는 엄폐물이 필요했다. 언덕이 차체 측면을 가려주었기 때문에 포탑을 좌측으로 돌리고 계속 포격했다.
아군 타이거는 좌우로 산개해 스탈린에게 계속 포탄을 날렸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타이거는 전면트랙에 한 방을 맞아 끊어진 조각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시 측면을 한 방 맞았는데 그대로 엔진그릴로 관통해 나왔다. 안을 헤집어 놓았을 것이다. 엔진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안의 전차병이 즉사 했기를 기도했다.
러시아의 실험자료입니다. 122mm의 거대한 포탄은 깔끔한 88mm와 달리 장갑을 찢어 놓는다는 표현이 정확할겁니다.
IS-3 실물을 봤는데 정말 강철괴수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IS-2만해도 저것을 어떻게 격파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듭니다.
좌측의 스탈린 2대가 전속력으로 우회해 측면에서 포격했다. 아군 여러 대가 포신을 돌려 앞의 스탈린 트랙을 모두 날려버렸다. 거대한 몸체가 진흙으로 미끄러지더니 우리에게 더 없이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포신을 낮춰 차체 위로 두 발을 쏘았다. 해치가 날아갔고 포탑이 미친듯이 돌더니 포구에서 스파크가 튀어나왔다. 밖으로 빠져 나오는 승무원은 고폭탄으로 산산조각 냈다.
두 번째 스탈린은 방어선을 돌파해서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하노마그 한대가 후진하던 중에 직격탄을 맞아 안에 타고 있던 장갑척탄병이 튕겨져 나왔다.
타이거 두 대가 그 놈을 상대했다. 근거리인데도 우리 포탄은 두터운 포탑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왔고 반대로 우리 타이거는 포방패에 한방을 맞고 88mm가 뒤틀렸다. 무장해제된 타이거는 급히 후진하다가 구덩이에 빠져 스탈린에게 가장 취약한 배 아래를 드러냈다.
스탈린은 바닥면을 깨끗하게 관통시켰고 타이거는 내폭을 일으켜 포탑이 날아갔다. 그 안의 전차병도 포탑에 갇힌 채로 함께 날아갔다.
다른 타이거가 침착하게 100m 거리에서 스탈린의 왼쪽 트랙을 날렸다. 스탈린의 포탑선회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돌았다. 스탈린은 달아나려고 애썼지만 진흙속에 바로 주저 앉았다. 타이거는 후면에 한발을 쏘아 깔끔하게 관통시켰다. 스탈린 포탑이 돌아가던 중에 새어 나온 연료에 불이 붙었고 타이거는 다른 스탈린을 상대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초근접전이 벌어지면서 헬만은 다른 전차장에게 마구 울부짖었다. 양상은 폭력배의 길거리 싸움이 되었다.
‘좌측으로 선회해. 옆으로 돌아서 저놈들이 지나가게 해.’ 나는 마이바흐에 기어를 넣었고 뜨거운 윤활유가 얼굴에 튀었다. ‘바로 그렇게!’
6~7대의 스탈린이 급히 다가오자 우리는 좌우로 급하게 이동했다. 무기력한 하노마그는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은 고폭탄으로 산산조각냈다. 다른 하노마그의 장갑척탄병은 밖으로 뛰어내려 언덕에 몸을 숨기고 전차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러시아 여성장교와 조종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보지 못했다.
방향을 바꾼 스탈린이 우리에게 달려왔다. 빌프는 10초만에 세발을 쏘았고 장전수는 엄청난 속도로 포탄을 바꾸면서 궁시렁거렸다. 포탑을 맞춘 두발은 그대로 튕겨 나갔고 세 번째 탄은 전면 장갑판을 빨갛게 달구어 놓았다.
스탈린 뒤로 타이거 한 대가 보였는데 엔진 데크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다른 한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그 안에서 불이 붙은 승무원이 빠져 나오고 있었다.
전면장갑에 한발을 맞아 관측창이 산산조각 났다. 포탑에서도 굉음이 들렸고 누군가의 긴 신음소리가 들렸다. 차체 아래에서도 큰 충격이 일어나 내 몸이 뒤로 젖혀졌다. 귀가 울렸고 관측창이 완전히 부서져서 장님이 되었다.
헬만이 내 등을 강하게 걷어찼고 옆자리의 쿠르트가 고함질렀다. ‘유리를 밀어내. 파우스트. 헬만이 가서 받으라고 하잖아. 받아버려!’
관측창을 밀어냈더니 신선한 바람이 탄내를 싣고 들어왔다. 다른 포탄이 터지자 작은 파편이 쏟아져 들어왔다.
얼굴의 상처를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스탈린을 향해 달려나갔다. 우리 포가 침묵을 지켰는데 신음소리의 주인공이 중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이제 60톤과 마이바흐 엔진만 믿어야 했다. 제대로 들이 받지 못하면 우리 신세는 처참해질 판이었다.
수백 미터를 순식간에 달렸는데 스탈린 포수가 제대로 조준하지 못해서 두 발을 우리 뒤로 날려 보냈다. 이반 전차에게 전속력으로 달려 들었다.
쿠르트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는 것을 보고 나도 머리를 감쌌다. 누군가 내 배를 걷어찬 듯한 고통이 왔다. 몇 초 후에 제 정신이 돌아왔다.
스탈린과 우리 모두 완전히 엔진이 나가버렸다. 미친듯이 시동모터를 돌렸지만 포탑의 신음소리, 빌프와 헬만의 목소리만 들렸다. 두 사람은 수동으로 포탑을 돌리려 했다.
88mm 포신이 천천히 돌아가더니 각도를 낮춰 내 머리 위까지 내려왔다. 스탈린의 부서진 관측창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거기도 엔진을 부활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먼저 포탄을 발사했다. 철갑탄이 깔끔하게 상부를 관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전차 안은 포탄이 헤집고 다니면서 온통 스파크 투성이로 변했다. 지연신관이 터지면서 더 이상 안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엔진은 여전히 숨이 돌아오지 않았다. 스탈린 포탑에서 두 명이 기어 나왔는데 등과 소매는 불이 붙어 있었다. 두 놈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기관단총을 들고 우리에게로 뛰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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