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전선 타이거 이야기 (5부)
쿠르트가 차체 기관총을 갈겨댔지만 그 놈들은 몸에서 연기를 내며 이미 차체 위로 올라가 있었다. 빌프가 포탑 기관총으로 한 놈을 맞췄고 내 앞으로 떨어졌다. 다른 놈은 엔진그릴에 대고 기관단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대로 있으면 우리도 그 놈도 함께 운명을 다할 판이었다. 때마침 엔진에 시동이 걸렸고 급가속으로 후진해 포탑 위의 놈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놈은 군복에 여전히 불이 붙은 채로 아래로 떨어졌고 나는 다시 전진해 완전히 뭉개 버렸다.
치열한 전투가 거의 마무리 되었다. 15대의 타이거 중에 최소한 5대가 불타고 있었다. 스탈린도 몇 대만이 후퇴하고 있었다. 불타는 타이거의 해치에는 고폭탄을 피해 빠져나오던 시체가 달라 붙어 있었다.
스탈린에서 빠져 나와 구덩이에 숨어 있던 적군은 하노마그의 장갑척탄병에게 사로 잡혔다. 보병은 화를 참지 못하고 대검으로 쑤시고 야전삽으로 두들겨 보복했다.
빌프는 달아나는 스탈린을 향해 포격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 속도가 너무 느렸다. 누군가 크게 다친 것이 분명했다.
전투를 시작한 지점으로 되돌아가자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 돼지들이 그곳에 있었다. 중무장한 3명이 하노마그 잔해를 뒤지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쿠르트가 재빨리 기관총으로 두 명을 쓰러트렸다.
나머지 한 명이 언덕 사이로 몸을 피했고 나는 옆으로 돌았는데 거기에는 스탈린이 있었다. 그 놈은 차체 해치 안으로 들어갔고 엔진이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포가 서서히 선회하더니 우리와 마주쳤다.
왜 사격을 안 하는 거야? 포탑을 올려다 보았는데 포미가 완전히 다른 방향에 있었다. 선회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스탈린의 포탄세례를 기다렸다. 공포스러운 몇 초가 지나고 스탈린은 기어를 바꾸는 소리를 내더니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포신은 여전히 우리를 향하고 있었는데 마치 은행강도가 경비원에게 권총을 겨누고 문밖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었다.
우리를 공격했다 가는 위치를 노출시키고 다른 타이거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도 그 놈도 살아남았다. 나는 일어나 포탑을 올려보았다. 포수인 빌프는 조준경에 얼굴을 댄 채로 움직이지 않았고 장전수는 목에서 피를 뿜으며 포탑 바에 쓰러져 있었다. 헬만은 수통 물을 한참 마신 후에 아래로 내려왔다.
‘새 장전수가 필요하겠어. 그리고 이제 이동하도록.’
스탈린의 포탄이 우리 포탑을 뚫지 못했지만 포탑 안쪽에서 터져 나온 금속조각이 장전수의 목 동맥을 끊어 놓았다. 우리는 그를 다른 시신이 있는 지면에 내려 놓았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를 다시 추려 모아야 했기 때문에 매장에 신경쓸 수 없었다. 모두 7대의 타이거를 잃었고 하노마그도 10대 중에 6대 그리고 그만큼의 보병을 잃었다. 러시아 여성장교는 살아 남았다. 공군장교의 멋진 비행복은 이제 진흙투성이였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2~30km는 가야 안전했다. 불타는 차량과 시신을 그대로 두고 다시 이동했다. 머리 위에서 낮게 나는 비행기 엔진소리가 계속 들렸지만 이미 어두워지고 있어서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조명도 없이 전차를 모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헬만은 몇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고 수리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말했다. 날이 새면 남은 연료를 모두 사용해서 서쪽 강변에 도착해 방어전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장갑척탄병이 먼저 계곡으로 정찰을 떠났고 나는 엔진을 껐다. 정찰팀이 돌아오자 헬만이 내려가 상황을 물었다, 나는 해치를 조금 열어서 대화를 엿들었다.
‘안전한가?’
‘안전해 보입니다. 계곡은 200m 길이로 통과가능합니다. 적의 기척은 없습니다.’
‘그럼 여기에 머문다.’
‘장교님. 그리고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병사가 한 옆으로 물러서자 그 뒤에는 회색코트와 스카프를 걸친 사람들이 보였다.
‘아군 간호병이네?’ 쿠르트가 말했다. ‘도대체 젊은 여성 둘이 여기에서 뭘 고 있었지?’
헬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는 독일 적십자입니다.’ 그녀의 흰색 드레스에는 붉은 십자가 표식이 확연했다. ‘우리 병원은 후퇴 길에 올랐는데 우리만 뒤처졌습니다.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적군에게 절대로 잡히면 안됩니다.’
‘마침 부상병 치료가 필요했습니다. 하노마그를 타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첫 경험이겠군요.’ 쿠르트는 내게 윙크하며 ‘모든 일에는 첫 경험이 있지’라고 말했다.
타이거는 장거리 주행에 절대로 맞지 않았다. 심지어 탄탄한 시내도로에서도 오래 달리지 못했다. 런닝기어의 부담이 워낙 심했고 1,000km만 가도 엔진와 변속기를 모두 교체해야 했다. 여러 대가 이미 심각한 상태였고 다들 장거리 주행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개당 10kg이나 나가는 트랙링크도 금방 닳아서 계속 조이고 교체하지 않으면 구동휠에 엉키곤 했다. 트랙연결을 유지하는 핀은 화로 옆의 부지깽이만큼이나 두텁고 무겁지만 심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구부러지거나 부러지는데 하나만 부러져도 60톤의 타이거 전체가 주저 앉았다.
빌프, 쿠르트와 나는 트랙을 모두 살펴보며 진흙과 살점을 걷어내며 상태를 확인했다. 연결핀은 구부러지고 느슨했다.
‘어떤가?’
‘이 상태로는 50km가 고작입니다. 그 후에는 모두 벗겨내고 핀을 교체해야 합니다. 철품질이 예전만 못합니다.’
‘강까지 100km다. 견뎌줄 것이다. 파우스트. 연료도 겨우 100km가 고작이다. 강까지 가야 연료와 부품을 구할 수 있다.’
무지막지한 스탈린 전차군 추격을 받으며 간당간당한 연료로 100km를 강행돌파 해야 한다니.
‘갈 수 있겠죠? 그렇죠?’ 진흙투성이의 조종사가 다가와서 물었다.
‘아! 용감무쌍하다는 조종사로군. 그렇지 않아도 당신이 필요했는데.’
‘정말로요?’
‘어깨를 보니 힘 좀 쓰겠구만.’
‘권투를 했었죠.’
‘아주 좋아. 마침 88mm 장전수가 필요했어.’
‘저요? 전차포 장전수요? 하나도 아는 것이 없는데요?’
‘빌프에게 배우면 돼.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해. 날이 새면 바로 출발해야 하니까 교육을 받은 후에 좀 쉬게.’
빌프와 조종사가 포탑 후미에서 장전과정을 연습하는 동안 헬만은 다른 7명의 전차장과 짧은 회의를 가졌다. 쿠르트와 나는 고기깡통을 열어 절반을 먹었는데 이상한 맛이 났다. 늙은 군마나 당나귀 고기라는 소리가 있었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며 피로를 풀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 뭔지 알아?’ 쿠르트가 말했다.
‘할머니처럼 비명지를 때 말이지?’
그는 못생긴 얼굴을 구기며 ‘아니야. 스탈린 전차에서 빠져 나왔던 이반 놈있지?’
‘스탈린에서 나왔는지 어떻게 알아?’
‘한 놈이 다시 뛰어 들어갔으니까. 못봤어?’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서 갑자기 나왔겠어?’
‘그렇지만 세 놈이 왜 전차 주변을 맴돌고 있었지?’
‘글쎄. 아마 탄약을 모두 다 써버려서 주변을 뒤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마지막에 우리에게 쏘지 못했을 거야.’
‘스탈린 전차는 대단해. 그 놈들이 강을 건너 서쪽으로 넘어간다면…’
‘우리가 막아야겠지.’ 헬만이 뒤에 있었다. ‘우리의 대단한 전차로 도강을 막아야지. 이제 새 장전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더구나 권투 챔피온이라고 하잖아.’
헬만은 쿠르트에게 종이를 내밀며 ‘이걸 사단사령부로 암호전송하도록. 한 번만 전송해. 이반에게 우리 위치를 알려주면 안되니까’라고 명령했다.
‘자네 러시아 세 놈이 이상하다고 했었지? 나도 이상하게 생각한다.’ 헬만은 얼굴을 찌푸렸다. ‘포로를 태운 하노마그 근처에 있었지?’
‘우리가 통신팀을 포로로 잡았는데, 아마도 중요한 정보가 있는 것 같다. 이제 한 명만 남았는데…’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포로를 심문해보자. 여군장교를 여기로 데려와. 빌프가 러시아 말을 할 줄 아니까 통역할 수 있을 거야.’
장교를 전차로 데려와 포수 해치 아래로 내려 보냈다. 나는 포탑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심문에 귀를 기울였다. 조종수는 반대편에 웅크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공간을 비워주었다.
‘자신이 통신병이라고 하는데요. 벙커에서 일반 송수신을 했답니다. 전투병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적인 대우를 해달랍니다. 지난 24시간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답니다.’
‘어떤 내용을 발신했는가?’
‘그냥 중대차원의 야전상황을 송신했다고 합니다.’
헬만은 포로의 눈을 오랜 동안 주시했다.
‘암호작업이 수작업인지 아니면 기계작업인지를 물어봐. 그리고 어떤 암호를 만들고 해독할 수 있는지도.’
어설픈 러시아어 취조에 혼란스러워 하던 그녀는 대답을 망설였다.
‘암호화에 대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암호기계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답니다.’
‘손을 보니 너무 부드럽고 더럽지 않군.’
‘펜와 연필만 사용한답니다. 어떤 노동도 하지 않았답니다.’
‘내가 알기로는 여군은 매일 20km 모래주머니를 들던데. 처음으로 힘을 쓰지 않는 러시아 여성을 보는군.’
여성의 한쪽 발목이 심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반대편의 조종사도 그것을 보고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중요인사, 장교가 그녀나 팀을 보호하려고 한 이유를 물어봐.’
‘중요인사를 모른답니다. 자신은 그냥 통신장교라고 하는 군요.’
헬만은 그녀의 얼굴을 갈겼고 그녀는 울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조종사는 씩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는데 앞으로 그 놈을 싫어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정보부에 넘어가면 엄청난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겠지만 그들은 여유를 가지고 고통을 줄거야.’
‘그냥 통신장교에 불과하고 아무 것도 못 먹었답니다.’
‘그만하자. 하노마그에 태우고 경비병을 두 명 붙여. 날이 밝으면 바로 출발한다.’
소련은 남녀 모두를 인적자원으로 투입한 공산국가였기 때문에 동부전선에서도 여성은 귀중한 전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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