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늘어져서 다음 이야기부터는 좀 축약해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동부전선 타이거 이야기 (3부)
벙커 가장 안쪽에서 누빈 군복을 입은 몇 명이 손을 들고 나와 우리를 쳐다보았다. 쿠르트는 기관총을 갈기고는 탄창을 갈아 끼며 다시 군수창을 욕했다. 러시아군은 얼음 위에 쓰러져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이제 산개해서 장갑척탄병 공간을 확보한다.’ 통신병이 진공관을 갈아 끼우자 헬만은 인터컴으로 다른 전차장과 교신하기 시작했다. 5분 정도 지나면서 완전히 장악한 것처럼 보였다.
헬만은 임시 지휘관으로 사단사령부에 작전성공을 알리려고 했다. 우리 통신장비는 보스의 것처럼 장거리 고성능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연결여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밖에 나가 러닝 기어Running Gear와 휠의 상태를 보기로 했다.
차체 위에 서서 전과를 확인했다. 벙커 너머의 언덕까지 타이거가 올라가 아군 전투단Kampfgruppe가 남쪽 10km, 소련군 방어선의 중앙을 관통할 수 있는 거점을 지키고 있었다.
트랙과 휠은 별 문제가 없었다. 연결핀이 좀 느슨해졌고 아이들러 휠에서 윤활유가 비치는 정도였다. 트랙은 대보병 전투의 증거물이 가득했다. 대전차호에서 깔아 뭉갠 보병의 머리카락, 군화조각, 손가락, 긴 살점 등이 달라 붙어 있었다. 청소작업은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보통은 포로에게 시켰다.
다른 벙커 근처에는 10명 정도의 러시아군이 서로 뭉쳐 있었다. 정보를 얻어내기 좋은 통신병으로 보였다. 그래서 살아 남았을 것이다. 심문으로 위해 실려 가기 전에 궤도 청소와 노역부터 하겠지만 말이다.
포로 중 한명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젊은 초급통신장교였기 때문에 첫 번째 심문대상이었다. 그녀는 군복차림으로 팔짱을 끼고 찡그리며 서 있었다.
전투단은 목적에 따라 연대에서 여단 규모로 편성되었습니다.
우리 뒤의 대전차호에 다리가 놓였다. 전투공병대가 4호전차 차체에 철제다리를 가지고 와서 날아간 통로부터 우리가 사용한 T-34 발판 위를 연결했다. 후속 장갑척탄병 보병이 하노마그(크) 반궤도 장갑차를 타고 건너와 타이거 뒤에 산개했다.
일부 병력은 우리에게 멋진 솜씨라고 환호성을 질렀다. 헬만이 ‘정신차려! 오늘 잘 해주었다. 아직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야’라고 외쳤다. ‘우리 부대는 오늘 대단했다. 파우스트. 특히 자네는 시범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네.’
헬만은 지휘를 맡은 탓인지 이전과 달리 말이 많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스텝 어디인가에 주저 앉은 보스가 생각났다. 헬만은 내 생각을 읽었는지 ‘보스도 곧 우리와 합류할거다’라고말했다. ‘하노마그가 그들을 데리고 올거야.’
헬만의 회색 눈동자는 T-34가 여전히 연기를 뿜고 있는 후방 들판을 살폈다. 파손된 타이거도 회수팀이 기를 쓰고 견인하고 있었다.
‘마지막 하노마드가 왔다. 보스가 타고 있을거다.’ 우리는 마지막 하노마그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포수와 장전수는 차체에서 내려 빈 탄피를 버리고 88mm와 기관총 탄약을 싣고 있었다.
포수인 빌프Wilf는 영악하고 솜씨 좋은 사냥꾼으로 전차생활을 즐겼다. 러시아어를 좀 알 줄 알았는데 러시아 여성이 대단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비밀스럽게 말한 적이 있었다.
88mm 장전수 슈탄크Stang은 1년 전에 하르코프Kharkov에서 머리부상을 당했었다. 명령을 복창할 때를 빼고는 입을 거의 열지 않았다. 장전속도로는 부대 내에서 최고였다.
정식명칭은 Sd.Kfz. 251이지만 제조사 하노마그의 이름으로 더 유명합니다. 사진의 하노마그는 연합군이 사용 중이군요.
하노마그가 패인 길을 피해 비틀거리며 다가와 우리 옆에 섰다. 젊은 대위가 개방형 차체에서 뛰어내려 헬만에게 경례를 했다.
‘보스를 모셔왔습니다.’
‘어디에 계시지? 뒤인가? 괜찮으신가?’
대위는 뒤로 돌아가 뒷문을 열었다. 우리는 안을 보았다. 보스의 타이거 승무원은 차체 바닥에 진흙투성이로 누워 있었다. 보스도 있었다. 다른 승무원처럼 앞 이마에 총상을 입었다. 뒷머리는 완전히 날아가 은회색 머리카락은 피와 살점투성이였다. 그의 철십자훈장도 사라졌다.
‘은폐참호에 숨어 있던 이반놈들에게 잡혔던 것 같습니다. 보이나요? 한 명씩 차례로 처형당했습니다.’ 그리고는 철십자훈장도 기념품으로 가져갔을 것이다.
헬만은 시신을 조용히 검시했다. 그리고는 장갑차 문을 쾅 닫고 벙커 옆에 모여 있는 러시아 통신팀으로 향했다.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MP40을 풀고는 포로 중 5명의 가슴(타이거의 승무원 숫자)을 차례로 쏘았다.
나머지 5명은 울부짖으며 자비를 구했다. 여성장교만 침묵을 지키고 시신을 내려다 보았다. 헬만은 담뱃불을 붙이고 러시아군 시신을 검시한 후에 빌프에게 명령했다. ‘저 놈들에게 우리 전차 트랙을 청소하라고 말해. 트랙에서 살점을 모두 떼어내고 깨끗하게 광을 내라고 해. 지금 바로 시켜.’
다시 언덕 위로 올라가 남쪽 평원을 정찰하자 일이 틀어진 것을 알았다. 나는 민수용 쌍안경을 옆에 두고 마치 전차장처럼 저지대를 살펴보곤 했다.
쿠르트가 ‘어때?’라고 물었다. 우리 둘은 차체 해치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있었고 머리 위로는 88mm 두터운 포신이 차가운 러시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한낮이었는데도 태양빛은 아무런 온기가 없었다. ‘전투단은 어디에 있는 거야?’
그에게 쌍안경을 넘겨주었다. ‘아무 것도 없네? 빌어먹을 아무도 없어’라고 중얼거렸다. ‘늦는 걸까?’라고 물었더니 ‘늦어? 그래 늦는 것들이 있지. 지상전철도 늦고, 부활절도 늦어지는 해가 있지. 파우스트. 예쁜 애인이 있었는데 2개월 뒤늦게 결혼하자고 했었지. 아무리 그래도 전투단 전체가 뒤처졌다고?’
나는 ‘도대체 우린 왜 고생한거야?’라고 말했다. ‘왜 아군 목숨을 잃고 돼지 러시아놈들을 산산조각내며 여기까지 온거야?’
이 지역을 점령하느라 대가를 치뤘다. 나머지 타이거 승무원이나 하노마그 10대에 나누어 탄 장갑척탄병도 같은 의문이었을 게다.
임시 지휘관인 헬만은 비실거리는 무전으로 사단사령부와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언제입니까? 얼마나요? 얼마나 많이요?’ 우리는 3분 후에 깨끗하게 닦은 궤도를 진흙탕에 쳐박고 포로를 하노마드에 태워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앞이 아니라 뒤였다.
1943년 러시아에서의 후퇴는 전진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진할 때와 같은 전속력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적군을 상대해야 했다. 이번에는 전방이 아니라 후방에서 우리를 공격한다는 차이만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달아날 수도 없었다.
잠시 1942년 연합군 폭격으로 죽은 가족 생각을 하느라 하마터면 타이거를 폭탄구덩이로 빠트릴 뻔 했다. ‘파우스트, 무슨 짓이야?’ 헬만이 등을 걷어찼는데 그럴 만도 했다.
‘직진해라. 나를 내려가게 만들지 마.’ 쿠르트도 큰 머리통을 들이밀며 소리질렀다. ‘곧장 직진하라고. 뮌헨 전철처럼 말이야.’
시속 20km 속도로 직진했는데 우리 뒤에서 적군이 반격해왔다. 우리는 석양을 맞으며 온 길을 되돌아갔다. 해가 있을 때에 처음 집결지로 되돌아가 못하면 돼지새끼들에게 포위당할 판이었다.
전투단은 남쪽 돌파에 실패했다. 작전대로 중앙공격을 엄호하며 측면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스텝에 고립되어 이반의 한 복판에 남아 있을 뻔 했다.
‘소련의 신형 JS전차 연대가 북서쪽에서 접근하고 있다. 남동쪽으로도 협공이 있다. 아군 전투단은 대전포와 지뢰에 완전히 막혔다. 정보가 틀렸다. 이제 우리는 서쪽 강으로 되돌아가 전투단과 합류한 후에 적군의 공격을 막아낸다. 그 놈들을 강에서 못 막으면 서쪽 평원이 온통 놈들 투성이가 될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우리 군의 모든 것은 서쪽 평원에 있었다. 야전병원, 병참기지, 정비창, 탄약고, 철도역, 공군기지 등. 특히 목숨줄과 같은 가솔린 탱크가 있었다.
적군이 서쪽 평원을 공격한다면 가솔린, 탄약, 식량 모두가 사라질 판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제국의 국경자체가 열리게 된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리 타이거 1대와 하노마그 10대는 철제 관이 되어 소련 무덤에 묻힐 것이다.
‘가끔 틀어질 때가 있지. 사랑처럼 말이야.’ 쿠르트가 소리질렀다.
‘네가 사랑에 대해 뭘 알아?’
‘이 친구야. 꽤 많이 알지. 월급이 들어 올 때마다 사랑한다구.’
우리 전차는 대열 중앙에 있었고 둘다 차체 해치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있었다. 앞에 타이거 5대가 있었고 그 다음에 소련군 포로를 태운 하노마그 10대와 장갑척탄병이 있었다. 후방은 타이거 10대가 책임졌다.
우리는 하노마그 바로 뒤에 있었다. 더 이상 화살촉 대형을 유지하지 않았고 긴 종렬대형으로 연료를 아끼며 후퇴했다.
머리 위에서는 아름다운 포케불크 전투기 2대가 약 500m 높이로 날아갔다. 날개 아래의 흑백 제국십자 표시가 확연했다. 한 대는 흰 연기를 길게 남겼다. 그 뒤에 바로 볼세비키 적성표식의 전투기가 지나갔다. 30초도 안 지나서 오렌지색 발광이 하늘을 수 놓았다.
우리는 이제 초원을 지나 도로로 들어섰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자갈이 깔리고 배수구가 있는 독일식 도로는 아니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머리를 들어보니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고 카울링에서는 검은 배연을 뿜어내고 있었다.
신형 슈투카로 급강하가 아닌 대전차용으로 날개 밑에는 긴 기관포가 달려 있었다. 하늘에서 요동을 치고 엔진에서 연기가 심하게 나오더니 우리 왼쪽에 동체착륙했다. 꼬리날개와 주날개 조각을 뒤에 길게 뿌려 놓았다. 동체는 우리 앞을 지나 오른족으로 가서 쳐박혔다.
하노마그의 장갑척탄병이 포로 한 명을 죽인 후에 뒷문을 잠깐 열어 시체를 떨어트렸다. 시체는 전차 트랙 아래로 사라졌다.
헬만은 ‘우리는 공군이 아니지만 저 조종사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파우스트 잠깐 정차하도록’이라고 명령했다.
조종사 한 명이 심한 부상을 입은 동료를 간신히 끌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슈투카의 탄약이 터지면서 섬광이 번쩍였고 캐노피가 날아갔다. 우리가 멈추자 조종사는 동료를 내려 놓고 뛰어오더니 경례를 하고 헬만에게 소리쳤다. ‘우리를 태워 주십시오. 적군이 10km 밖에 있습니다.’
‘올라와서 상황을 설명해 주시죠. 그런데 동료는 저렇게 둘겁니까?’
‘이미 죽었습니다.’ 조종사는 비좁은 포탑에 몸을 구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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