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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동부전선 타이거 이야기 (7부)

by uesgi2003 2017. 6. 4.

 

동부전선 타이거 이야기 (7부)

 

그녀는 헬만을 보더니 권총을 던지고는 러시아말로 긴 욕을 해댔다. 우리 타이거는 파르티잔이 사라진 방향으로 계속 고폭탄을 쏘아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헬만도 멀리 있는 뭔가를 향해 탄창을 모두 비웠다.

숲에서 나가야겠다. 연기 때문에 우리 위치가 노출되었다.’

적군이 부상병을 죽였군요. 간호병은 자살했고요. 파르티잔의 강간을 피해 자살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정작 러시아 여성은 강간 대신에 러시아인을 쏘았지. 그녀를 타이거에 태워.’

우리는 사체를 불덩어리로 변한 타이거에 던졌다. 숲 짐승의 먹이가 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제 타이거 6, 하노마그 3대와 대공포 트럭 1대로 줄어들었다. 타이거에 올라타며 뒤를 돌아다보니 하노마그의 MG42 사수는 모두 불타버리고 뼈만 남았다.

 

대공포 포병 꼬마들이 다시 큰 전과를 올렸다. 나무 옆에 숨어서 기다리던 파르티잔 20명을 먼저 발견하고는 4연장 기관포로 산산조각을 냈다. 사체를 직접 본 두 꼬마는 도랑으로 뛰어 내려가 토했다.

갑자기 헬만의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MP40 총성이 길게 울렸다. 또 한 번의 난전을 예상했는데 헬만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기 왼쪽 나무를 봐.’

젠장. 누구 머리 아니야?’ 쿠르트가 말했다.

잘려 나간 머리가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난 또 저격수인 줄 알았네. 대공포에 걸린 파트리잔이다. 그런데 머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간 거야? 최소한 10m는 넘을 것 같은데. 계속 가자.’

 

우리 타이거는 난잡한 구성원이 되었다. 공군조종사에 이어 러시아 여군장교라니. 타이거는 정비를 해달라며 신음을 계속 냈다. 숲을 빠져 나오자 골짜기가 나왔다. 전차에게는 최악의 지형이었다.

하노마그는 체중이 가볍고 트럭운전이라 별 문제가 없지만 이미 한계까지 도달한 타이거로는 골짜기의 울퉁불퉁한 길은 너무 버거웠다. 앞으로 남은 50km는 고사하고 중간에 주저앉아 적군의 사냥감이 될 판이었다.

헬만이 지도를 살펴보고 다른 전차장에게 명령했다. ‘지도에 길이 있다. 그곳으로 간다.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타이거와 하노마그는 서로를 보호하되 낙오되면 버린다. 강에 도착해 방어전을 지원하면 우리는 영웅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영웅으로 죽을 것이다. 질문있나?’

 

길은 골짜기 북쪽의 고지대를 동서방향으로 관통했고 아군이 1941년에 사용했었다. 지금은 후퇴길에 버려진 잔해로 가득 찼을 것이다. 이제 안개가 옅어지고 남쪽에 햇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까지 달릴 준비를 하느라 잠시 대기했다. 나는 런닝기어를 점검했다. 쿠르트가 차체에 앉아 물었다. ‘이 늙은 황소가 버틸 수 있을까?’

버틸거야.’

못 버티겠지?’

이 녀석을 전속으로 서쪽으로 데려갈거야. 파리까지는 버틸거라고. 에펠탑에서 둘이서 맥주를 즐기자고.’

전차나 너는 문제 없을 거라는 느낌이 오지만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아. 아무래도 저 포로가 마음에 안 들어.’

 

헬만은 쇠사슬을 가져와서는 그녀의 허리를 탄약대에 묶었다.

나는 그녀가 불운을 가져 온다고? 살아 남았잖아라고 대답했다.

다른 러시아 포로를 생각해봐. 하노마그 보병은? 간호병은? 모두 죽었어. 그런데도 괜찮다고?’

헬만이 인터콤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는 볼세비즘을 막기 위해 이 나라에 왔다. 사단사령부에 따르면 서쪽 강에서 전쟁이 결판난다. 적군이 방어선을 뚫으면 우리 본토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오늘 직접 본 파괴와 강간이 대대적으로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포위망에 갇혔다. 강으로 간다!’

쿠르트가 나를 보고는 윙크하며 목에 철십자 모양을 그렸다.

 

안개가 걷히자 마자 슈트르모빅 6대가 달려들었다. 20mm 4연장포가 각도를 높여 전폭기를 상대했다. 대공포가 좀 더 안정적으로 상대할 수 있도록 멈출 것인지 아니며 계속 달려갈 것인지 염려되었다.

 

 

하늘의 전차 또는 흑사병이라고 불렀던 슈트르모빅IL-2 sturmovik 지상폭격기입니다. 이미 독일공군이 사라졌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없이 독일군 대열을 폭격했고 중장갑을 둘러 왠만한 소구경 대공포는 무시하고 날아다녔습니다. 

23mm 기관포 2문을 장착해 소프트스킨(경장갑) 차량에게는 죽음의 존재였습니다. 

마구 만들어서 대충 태우고 마구 떨어트려 피해를 준다는 소련군의 무기철학이 그대로 녹아있는 항공기입니다. 

 

다행히 대공포는 계속 우리를 따라오면서 엄호해주었다. 처음에는 넓게 퍼지던 탄막이 점차 좁혀지면서 급강하하는 적을 노렸다. 한 대의 꼬리날개가 떨어져 나가며 곤두박질쳤다. 다른 두 대가 폭탄을 투하했는데 대부분은 땅과 얼음에 떨어졌지만 한 개가 우리 중앙을 향해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

타이거 한 대가 옆을 정확하게 맞았다. 휠과 트랙이 날아갔고 40km 속도로 달리던 타이거는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미끄러지며 뒤집어졌다. 엔진룸에서는 짙은 연기가 나왔다.

처음 명령대로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대공포는 계속 탄막을 만들었지만 저공비행하는 적기의 기관포가 더 정확했다. 기관포탄이 앞에 있던 하노마그의 왼쪽에서 오른쪽을 꿰뚫었다. 몇 개는 탑승칸 안에서 굴절되다가 위의 열린 공간으로 튀어나왔다. 핏줄기도 분수처럼 위로 솟구쳤다.

뒷문이 열리고 생존자가 사체와 함께 굴러 떨어졌다. 내가 재빨리 방향을 바꿨지만 일부는 트랙 아래로 사라졌다. 아직 안에 있던 장갑척탄병은 연료탱크가 터지면서 불타 죽었다.

 

대단한 사냥꾼인 대공포병은 다시 슈트르모빅을 제대로 맞췄지만 포탄은 동체 아래의 장갑판을 뚫지 못하고 불똥을 내며 튕겨 나갔다. 이놈은 정말로 하늘을 나는 전차였다. 프로펠러 날을 맞춰 부러뜨린 후에야 격추시킬 수 있었다.

추락하던 슈트르모빅은 기를 쓰고 선두 타이거와 충돌했다. 전폭기와 전차를 불덩이가 되어 폭발했고 불기둥은 하늘로 수백 미터를 치솟았다. 다시 폭탄이 하노마그 한 대를 맞춰 산산조각 내버렸고 다른 타이거는 포탑과 차체가 분리되었다.

포탑에 있던 승무원은 포탑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차체는 계속 굴러가다가 내폭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잔해를 날렸다.

 

슈트로모빅이 마지막으로 다가왔다. 기관포탄이 포탑 지붕을 두들기는 굉음이 들렸고 조종사 양반이 미친듯이 기도를 올리는 소리도 들렸다. 쿠르트는 탄창이 모두 빌 때까지 기관총을 갈겨댔다.

이제 하노마그는 겨우 한 대, 그리고 타이거도 4대만 남았다. 타이거는 기름냄새 섞은 배기연을 뿜어냈고 우리 앞의 타이거는 거의 트랙이 벗겨지기 직전이었다. 우리 타이거도 쇠갈리는 신음을 계속 냈다.

오일압력은 붉은 색이었고 전압측정은 0이었다. 이제 계기판을 지켜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헬만이 ‘30km. 절대로 멈춰서는 안된다고 명령했다.

 

쿠르트는 마지막 탄창을 갈아 끼우면 키스를 했다. ‘강에 갈 때까지 만나는 이반놈들 용이야.’

강에 가면 그 다음에는?’ 내가 물었다.

다음 강까지, 그 다음 강까지 계속 가겠지.’

그러다가 제국까지?’ 쿠르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지형이 험해서 속도를 줄일 때마다 타이거는 비명을 질러 댔다. 트랜스미션에서는 오일이 흘러나왔고 차내에는 산성 냄새가 가득했다. 마침내 만난 도로에는 후퇴하는 병력이 가득했다. 작전상 후퇴의 규모가 아니라 전면후퇴 수준이었다.

이제 연료계도 바닥에 가까워졌다. 타이거는 평속에서도 1km 마다 3리터의 가솔린을 먹어 댔다. 고속에서 전투기동을 할 경우에는 1km 5~6리터가 필요했다. 헬만은 욕설을 내뱉고는 아래로 내려와 연료계를 주먹으로 두들겼다.

오래 전에 고장난 모양이군.’ 그의 입에서 꼬냑 냄새가 났다.

그렇지 않습니다. 연료계는 정확합니다.’

빌어먹을 가솔린 때문에 전쟁에서 질거야. 적군은 마음대로 디젤을 태울 수 있으니 좋겠지. 코카서스에서 채굴하던데.’


 

 

쿠르트는 마지막 탄창을 특수탄인 Hollow Point 탄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오른쪽 모양의 탄으로 인마살상용으로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얼마나 남았지?’

‘5? 6? 그 정도입니다.’

다른 차에서 연료를 구해야겠군. 내가 말하면 바로 세우도록.’ 강이 보이는 곳까지 가서 주저 앉으면 정말 난감했다. 우리는 마지막 몇 km를 이반의 추격을 받으며 달려가야 했다.

 

저기 수송트럭이 보이지? 어이 통신병. 다른 타이거에게도 말해.’

쿠르트는 내 이름을 모르겠지라고 말했다.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10대 정도의 수송트럭이 5~6km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무슨 뜻인지를 바로 알았다. 선두 트럭의 민간인 털코트를 입은 사람이 발판에 내려서며 헬만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의 장교모에는 무장친위대의 해골표식이 보였다.

우리 차량에서 당장 꺼져. 우리는 친위대다.’

헬만이 큐폴라에서 내려다 보며 트럭에 뭐가 있죠?’라고 물었다.

네가 알 바가 아니야. 전차를 당장 치워.’

우리 전차는 강 방어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연료를 주십시오.’

연료를 줄 수 없다. 네 놈은 총살감이야.’

헬만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SS 장교는 루거 권총을 꺼냈고 헬만은 거친 웃음소리를 다시 냈다. 그의 술냄새를 맡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행히도 SS 장교는 총을 쏠 틈이 없었다. 갑자기 도이치Deutz 트럭의 바퀴 전체가 들썩이더니 옆면이 뻥 뚫렸다. 고폭탄이 다시 날아와 이번에는 트럭 지붕과 옆면을 모두 날려버렸다. 트럭 짐칸에 있던 수천개의 작은 덩어리가 하늘로 흩뿌려졌다.

담배구나. 젠장.’

헬만이 외쳤다. ‘좌측으로. T-34.’

급선회 중에 오펠Opel 트럭과 부딪쳐 박살냈다. 이번에는 포도주병이 마구 굴러 떨어졌다. 차내에서도 술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까운 포도주가 트랙 밑으로 사라졌다.

눈발 사이로 T-34가 보였다. 모두 3대였다.


 

 

도이치 트럭입니다.


 

 

가장 앞이 오펠 트럭입니다. 

 

타이거 4대와 T-34 3. 무척 손쉬운 전투인데도 T-34는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선두전차가 우리 옆의 타이거에게 한 방을 맞았다. 포탑에 맞고 잔해가 사방으로 튀었는데도 계속 달려들었다. 다시 전면장갑을 맞고 운전병 해치가 날아갔다.

계속 달려들었다. 너무 빨리 다가와 88mm 포탄이 그 놈의 머리 위로 넘어갔다. 우리 포방패도 한 방 맞았는데 조종사 양반이 다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포로가 크게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