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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2차대전 최고의 전차는? (1부) - 전차병의 선택 기준

by uesgi2003 2020. 8. 22.

영화 퓨리가 개봉되었을 때에 영화관, 커뮤니티, 제 서재 등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었죠. 지금도 심심치않게 반박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부전선 전문가인 스티븐 잘로가Steven Zaloga의 자료와 의견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분은 엄청난 전사서적을 집필하셨고 비교적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이 분이 아무리 서부전선의 대가라고 해도 하나의 의견입니다. 반대의견이나 자료도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눈과 귀를 열어두어서 지식을 넓히시기 바랍니다. 

 

 

잘로가는 미시적인 기준과 거시적인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전차병이 선택하는 최고의 전차와 지휘관이 선택하는 최고의 전차를 선정했습니다. 

 

1, 2부에서는 그 의미와 배경을 정리하겠습니다. 

 

 

전차병의 선택이란?

전차병의 선택은 방어력, 화력과 기동성 3박자에만 집중한 평가다. 전차병은 분명히 공수주 3박자가 가장 뛰어난 전차를 선택할 것이다. 자신돈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전차의 가격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 전차병은 전투위협에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는 지가 최우선이다. 
주요 참전국은 2차 세계대전과 그 후에 전차의 기술효과성을 숫자로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조사를 진행했다. 영국군 작전조사그룹(AORG)은 이론 변수와 1944~45년 전투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차전에서의 기술효과성을 계산했다. 
적 전차 한 대와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아군 전차수를 효과성으로 정의하고 독일군 4호전차 H형과 여러 전차를 비교했다. 4호 전차에 1을 주고 영국군 전차의 전차를 평가했다. 
소련도 1970년대에 비슷한 컴퓨터 가상평가로 현대전 추측모델을 만들었다. 소련전차센터 VNII Transmash는 전투잠재력이라는 컴퓨터 모델 요소를 만들었다. 영국군 모델과 같이 특정 전차를 1에 두고 상대전차의 장갑, 화력, 기동성을 평가했다. 2차대전까지 추적평가했는데, 영국평가와 달리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고 일부 내용만 입수할 수 있었다. 

전차의 방어력, 화력과 기동성에 대해서는 전차의 3박자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다. 

전장변수Battlefield Dynamics는?


전장변수는 전투에서 전차의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다. 전차의 성능보다 전차병 능력과 전장환경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실제 전투에서 역전의 승무원이 탄 적당한 전차가 신병이 탄 우수한 전차를 격파한 경우가 많다. 
1941년의 소련군과 독일군 전차가 좋은 예다. 적군Red Army은 훨씬 우수한 T-34와 KV를 포함해 압도적으로 많은 전차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참패를 당했다. 좀 더 가깝게는 이스라엘 전차병이 아랍 전차병을 압도했다.   
그렇지만 전차병의 능력을 숫자로 평가하기 어렵다. 필자는 1944년 7월, 코브라Cobra작전 중 미 2기갑사단M4 셔먼이 독일 전차교도사단Panzer Lehr 4호와 벌인 전투에 대해 책을 썼었다. 2기갑사단 전차병은 충분한 훈련을 받았고 1942년 북아프리카와 1943년 시실리에서 실전을 경험했다. 
반면에 전차교도사단은 1943년 말에 편성되었다. 전차장은 육군전차학교 출신에 폴란드, 프랑스, 러시아에서 온갖 전투를 겪은 역전의 용사였다. 일반병은 대부분 신병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영국군과 1개월 이상 격전을 벌였다. 양측 모두 서로 다른 지역에서 훈련과 전투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능력을 계량화하기 어렵다. 

전차병의 훈련과 경험말고도 전장환경에 따라 전차전의 결과가 달라진다. 흔히 전차전을 기사의 맞대결처럼 생각한다. 전장 양 끝에서 달려와 부딪치고 더 과감하고 무장이 잘 된 편이 이긴다고 생각한다. 전쟁영화 때문에 이런 오해가 더 심해졌다. 이런 오해는 아예 잊어버리자. 
전차전은 매복해 있다가 상대가 알아차리기 전에 먼저 저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차대전 전차에이스는 화력과 장갑이 우수한 전차를 타고 매복을 즐겼다. 나치 팬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무장친위대 미하엘 비트만Michael Wittmann이 있다.  
그렇지만 비트만은 1943~44년 타이거 중전차를 탔고 당시 타이거는 적이 근접거리에 접근하기도 전에 모두 격파할 수 있었다. 2차대전 전차 에이스는 강력한 화력과 무적의 장갑을 갖춘 전차를 탄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3호와 4호, 셔먼을 탄 전차에이스는 소수에 불과하다. 

격차가 너무 벌어지지 않는 전차전에서는 기술적 우위가 아니라 전장환경의 우위에 따라 승리가 결정되었다. 예를 들어, 잘 은폐된 전차가 매복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상대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도로를 따라 전진하고 있다. 매복한 전차가 승리할 확률이 훨씬 높을 수 밖에 없다. 
1950년대,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대학의 작전연구부ORO는 한국전을 포함한 전차전을 조사해 전차전 승패를 결정하는 요소를 추려냈다. 적을 먼저 발견하고 발사하는 쪽이 6배나 유리했다. 전차전의 원칙은 먼저 발견하고, 먼저 발사하고, 먼저 맞춰라이다. 당연히 정차해 기다리는 전차가 상대를 먼저 발견하고 발사할 수 있다. 한국전 조사에서는 방어태세를 갖춘 전차가 공격전차보다 3배 유리했다. 
그렇다고 선공하는 전차가 항상 그리고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많이 발사하더라도 적중시키는 전차가 승리하는데 초탄적중은 전차병의 능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초탄적중은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전장변수가 전차전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숫자로  만들 수가 없다. 전장의 상황요소는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달라지기때문이다. 전차병의 능력도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고의 전차 선정에는 제외시켰다.  

지휘관의 선택이란?

전차병은 기술적 우위가 생존을 좌우하기 때문에 최고의 전차를 선택하는 반면에 고위 지휘관은 그렇지 않다. 1943년의 타이거는 당연히 '전차병의 선택'이지만 너무나도 비싼 전차였다. 독일군은 타이거 3대면 3호 돌격포Stug III를 10대 구입할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 돌격포 10대가 훨씬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신뢰성 문제도 있다. 타이거와 같은 중전차는 대부분 신뢰성이 크게 부족했다. 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중량을 늘렸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충분한 출력이 나오지 않았다. 3호와 4호가 타이거와 판터보다 신뢰성이 훨씬 높았다. 타이거 1대가 움직이는 동안 3호 돌격포는 7대를 투입할 수 있었다. 
고위 지휘관 관점에서는 1대의 중전차보다는 7대의 돌격포가 훨씬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휘관의 선택은 가용성 기준이다. 특정 전차를 얼마나 많이 투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전차병의 선택 기준 - 방어력, 화력, 기동성 

 

장갑방어력

1차대전이 끝나고 여전히 기관총과 야포에 대해 전차장갑을 설계했다. 1930년대 중반의 소련 T-26 경보병전차는 포탑 20mm와 전면 15mm 두께가 고작이었다. 
독일 라인메탈Rheinmetall 37mm 대전차포가 등장하면서 전차는 새로운 위협에 직면했다. 37mm 대전차포는 실효 사격거리에서 당시의 모든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다. 일부 국가는 방탄력과 두께를 늘린 장갑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1936년, 프랑스 르노Renault R35 보병전차는 40mm 주조장갑으로 37mm 포에 대응했다. 

 

독일군이 노획해 사용한 르노전차입니다. 당시 프랑스전차는 전체적으로 독일전차보다 훨씬 우수했습니다.

 

2차대전은 포와 장갑의 대결이었다. 포가 점점 더 강력해지는 만큼 전차의 장갑도 증가했다. 그렇지만 무게를 무한정 늘릴 수 없어서, 피탄확률이 가장 높은 차체와 포탑전면을 가장 두텁게 만들고, 측면은 더 얇게, 위와 아래는 최대한 얇게 만들었다.

1944~45년, 미군은 장갑설계를 위해 M4 셔먼 107대를 조사했다. 소련군은 1942년 스탈린그라드Stalingrad전투부터 종전까지 T-34 7.639대를 검사해 훨씬 자세한 데이터를 얻었다.  

2차대전 중 M4 셔먼의 피탄부위
포탑전면   9%
차체전면   21%
포탑측면   18%
차체측면   32%
서스펜션   19%
차체후면   1%

경사장갑은 두께를 늘린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20mm 직각장갑은 20mm 방어력 그대로이지만 30도를 기울이면 22mm와 같고 45도로 기울이면 28mm 효과가 났다. 경사장갑은 포탄을 튕겨낼 수 있었다. 

 

 


다양한 장갑재질로 방어력을 높일 수 있었다. 전쟁초기 독일전차는 표면경화장갑Face-hardened armor를 사용해 일반 철갑탄에 대해 일반장갑보다 보호력이 우수했다. 그렇지만 피모철갑탄APC(Armor-Piercing, Capped)과 같은 포탄이 개발되면서 그 이점이 사라졌다. 

 


강철장갑도 경화정도와 합금사용에 따라 보호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전차마다 장갑보호력이 차이가 났다. 예를 들어 소련은 두터운 경화장갑을 선호한 반면에 미군은 적당한 경화장갑을 선호했다. 
장갑품질도 일정하지 않았다. 독일전차는 합금부족으로 1944년 가을에는 장갑품질이 크게 떨어졌다. 1942년, 소련은 공장을 급히 동쪽으로 옮기느라 T-34 포탑의 주조장갑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지만 1944~45년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2차대전에서 전차를 가장 많이 격파한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포이지만 그 비율은 시간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전차포와 대전차포의 비율을 구분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시간이 지나면서 전차포와 대전차포의 성능이 크게 강화되었는데 1941~45년 기간 동안의 T-34전차 손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1942년 T-34는 피탄되어도 살아날 가능성이 50%였지만 1945년에는 거의 모두 관통당했다. 

 


전차포와 포탄의 화력


1차대전 전차는 적보병과 기관총진지를 상대했기 때문에 경포와 기관총 장착으로 충분했다. 전차전은 거의 없었다. 프랑스군은 1917~18년에 전차를 4,350회 투입했지만 독일군전차는 단 한 대도 만나지 못했고 영국군은 단 한 대만 만났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전 후에도 무장이 바뀌지 않았다. 경전차는 기관총 1~2정을, 중전차는 저속 단포신 37~47mm 포를 장착했다. 소련군은 처음으로 45mm 다목적전차포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독일군 라인메탈 37mm 대전차포를 개량한 45mm 포는 대전차와 대인포탄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소련군은 T-26 보병전차와 BT 기병전차에 장착했고 전차전이 처음 벌어진 1937년 스페인내전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T-26은 독일 1호와 이탈리아 L-3 경전차를 압도했다. 유럽은 기관총만으로는 부족한 것을 깨닫고 정찰용 경전차를 제외한 나머지에 포를 장착했다. 기관총은 보병용 부무장으로 장착했다. 

 

핀란드군이 노획해 사용했던 T-26인데 소련군에게 다시 넘어갔군요. 스펙을 비교하지 않아도 아래의 경전차를 압도하죠.

 


전차포 구경에 따라 관통력이 달라진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76mm 포가 75mm 포보다 강력하다고 단정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관통력은 포탄의 속도로 결정된다. 포탄 속도가 포탄 무게보다 훨씬 중요하다. 
포속은 여러 방법으로 높일 수 있다. 좋은 추진화약을 더 많이 사용하면 된다. 예를 들어, 대전초기 독일군 75mm 단포신 전차포는 겨우 340g의 추진화약만 사용했는데 중반의 4호 G형 장포신 75mm KwK 40에서는 2.4kg, 대전말 판터의 장포신 75mm Kwk 42에서는 3.7kg으로 크게 늘어났고 포속과 관통력도 크게 높아졌다. 
포신길이도 관통력을 결정한다. 같은 포탄을 사용하더라도 장포신이 단포신보다 포속이 더 빠르다. 장포신은 추진화약 폭발에너지로 포탄으로 더 오래 밀어주기 때문이다. 미군 75mm 전차포가 좋은 예다. 
포신길이는 보통 L/로 표현되는데 길이를 포구경으로 나눈다. M3 포는 포신길이 3,010mm를 포구경 75mm로 나누어 L/40가 된다. 

 


포탄에 따라서도 관통력이 결정된다. 대전초기 철갑탄AP은 날렵한 철탄이었다. 탄속이 늘어나면서 표면경화 경사장갑을 뚫지 못하고 부서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탄두에 연철껍질을 씌워 장갑과의 충돌충격을 흡수하고 관통력을 높였다. 피모철갑탄APC이라고 부른다. 
다시 APC에 얇은 금속 바람막이Wind-Shield를 추가해 안정도를 높인 저저항피모철갑탄APCBC(Armor-Piercing Capped, Ballistic Cap)을 개발했고 대전 후반에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대전차포탄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기발한 설계를 적용했다. 크고 가벼운 금속탄 안에 밀도가 높고 단단한 관통자Penetrator를 넣었다. 2차대전 당시, 탄화텅스텐으로 관통자를 만들었는데 강철보다 2배 가까이 밀도가 높고 단단했다. 

영국군은 경심철갑탄APCR(Armor-Piercing Composite Rigid), 미군은 고속철갑탄HVAP(High-Velocity Armor-Piercing)이라고 불렀고 포탄이 가벼워서 탄속이 훨씬 빨랐다. 장갑에 맞으면 연질탄피가 벗겨지고 내부의 관통자가 운동에너지를 충격지점에 집중시켜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킹타이거의 88mm HVAP탄은 500m 거리에서 260mm를 관통할 수 있는 반면에 APCBC탄은 210mm를 관통했다. 독일군은 1941년에 HVAP탄을 도입해 3호의 50mm 전차포의 화력을 크게 높이고 T-34에 대항했다. 소련군은 1942~43년, 미군은 1944년 늦여름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련군 85mm 고속철갑탄입니다. 

HVAP는 2가지 큰 단점이 있었다. 먼저 APCBC탄두와 같은 크기에 무게가 30% 더 가벼워서 장거리포격전에서는 탄속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2차대전 당시 탄화텅스텐은 귀한 금속으로 공장의 생산기계에 사용하기에도 부족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HVAP탄을 마음껏 생산할 수 없었다. 미군의 경우 1944년에 모든 전차에 최소한 한발 이상의 HVAP탄을 지급하는 것이 목표였고 텡스텐 공급이 원활했던 소련군은 전차당 5~6발을 지급했다. 독일군은 1941~43년 기간 HVAP탄을 여유있게 사용했지만 1944~45년 기간 텅스텐 보급부족으로 보급이 크게 줄어들었다.  
 
분리철갑탄APDS(Armor-Piercing, Discarding Sabot) 또는 고속분리탄SVDS(super-Velocity Discarding Sabot)도 있었다. 연철 안에 관통자를 넣는 대신에 알루미늄 등의 경철송탄통Sabot 안에 넣었다. 탄이 포신을 떠나면서 송탄통 껍질이 벗겨지고 관통자만 초고속으로 목표물로 날아간다. 영국군 17파운더 포의 경우, APDS탄은 일반 APC보다 초당 300m나 더 빠른 초당 1.2km로 날아갔다. 
2차대전 말 당시의 APDS는 송탄통을 분리하는데 문제가 있었다. 송탄통을 동시에 모두 벗겨내지 않으면 관통자는 궤도를 빗나가서 장거리에서는 명중률이 크게 떨어졌다. 전후에 차차 개선되었다. 
1944~45년 당시, HVAP탄은 명중률이 좋았고 APDS는 관통력이 좋았다. 

 


2차대전 당시 대전차고폭탄HEAT(High-Explosive Antitank)이 가장 강력했지만 대전차전에서는 제 성능을 내지 못했다. HEAT탄은 속이 뿔모양으로 안이 빈 성형작약 구리탄두 뒤에 화약을 넣었다. 장갑에 맞으면 화약이 구리를 뚫고 나와 폭발하면서 금속분자를 초음속으로 뿜어내 장갑을 관통했다. 
최초의 HEAT탄은 미군의 2.36 바주카와 같은 대전차 로켓이었다. 다른 나라도 저속 야포에 HEAT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차대전 당시에는 2가지 이유 때문에 고속전차포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강선Rifled전차포는 포탄을 회전시키는데 금속제트 위력을 30~50%까지 떨어트렸다. 충격과 동시에 고폭탄두가 터지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고속으로 장갑과 충돌하면 화약에 점화되기도 전에 구리탄두가 부서질 수 있었다. 
보병용 로켓발사기나 곡사포는 포속이 느려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고속전차포에서는 큰 문제였다. 2차대전 후에 압전기Piezoelectric 도화선으로 화약을 100만 분의 1초에 터트려 이 문제를 해결했고 1950~60년대 나토NATO의 대표적인 대전차무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