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대/기타

에뮤대전Great Emu War

by uesgi2003 2022. 7. 25.

BBC 자료를 인용한 짧은 전사(?)입니다. 

 


동물개체수 조절의 극단적인 예로, 1930년대 초에 호주는 기관총부대를 파견해서 겁 없는 새를 공격했다. 그렇지만 조니 윌크스Jonny Wilkes가 설명하듯이, 군은 적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1932년, 호주군은 전쟁에 돌입했다. 15년 전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고 2차대전은 생각도 못하던 시기에, 호주군은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에뮤Emu가 상대였다. 

 


에뮤는 크고 겁 없는 새로, 180cm의 키에 시속 50km로 달릴 수 있었고 교배시기에는 장거리를 이동했다. 호주 전역에서 볼 수 있었다. 

엄청난 수의 에뮤가 갑자기 나타나서 울타리를 부수고 곡식을 망쳤기 때문에 호우 서부의 밀농사에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더구나 이렇게 울타리가 부숴지면 토끼나 딩고dingo와 같은 동물이 들어와서 농작물을 완전히 망쳐 놓았다. 에뮤 2만 마리가 캠피언Campion과 월굴란Walgoolan의 곡창지대로 내려왔다. 

 


당시는 대공황Great Depression시기였고 이미 농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었다. 밀가격이 급락하는데도 정부는 보조금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참전용사였던 농부들은 분노와 좌절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농부들은 국방부장관 조지 피어스George Pearce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장관은 에뮤를 근절하겠다며 기관총부대를 약속했다,

겨우 3명만 투입된 작전이었다. 맥머레이McMurray와 오핼러런O’Halloran하사, 메레디스Meredith소령은 루이스Lewis경기관총 2정과 탄약 1만발을 가져갔다. 에뮤의 절반 밖에 안되는 탄약이었다. 

 


피어스장관은 성공을 확신하며 폭스 무비톤Fox Movietone에게 에뮤전쟁을 촬영하라고 부탁했다. 정부에게 좋은 홍보거리라고 생각했다. 

비 때문에 몇 주 지연되다가 1932년 11월 초에 작전이 시작되었다. 에뮤를 기관총 앞으로 몰아 사격연습을 하겠다는 작전이었다. 

계획대로 될 리가 없었다. 사격이 시작되자 에뮤는 뿔뿔이 흩어져서 빠르게 움직였고 맞추기 너무 힘들었다. 제대로 맞추더라도 바로 죽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메레디스는 전차와 같은 방어력이라고 말했다. 

겨우 몇 초 후에 탄약이 막혔고 에뮤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달아나면서 작전이 완전히 실패했다. 11월 8일, 기관총팀이 복귀하자 농부들은 바로 다시 병력투입을 요청했다. 

12월까지 작전이 계속되었지만 기관총팀은 패배를 인정하고 복귀했다. 에뮤가 호주군을 이겼다. 에뮤 1마리를 죽이는데 10발을 사용해 겨우 천 마리만 잡았다. 

전세계 언론이 에뮤대전Great Emu War의 패전을 조롱했다. 그리고 전세계 동물보호단체의 비난을 불렀다. 

 


조류학자 서벤티Serventy는 비웃는 보고서를 남겼다. ‘기관총팀은 영거리사격으로 에뮤떼에게 총탄을 퍼부을 생각이었지만 바로 현실을 깨달았다. 에뮤사령관은 게릴라전술을 지시했고 엄청난 대군은 작은 부대로 분산해서 군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참패를 당한 야전군은 한 달 만에 전장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훨씬 효과적인 전략이 나왔다. 에뮤사냥꾼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1934년 6개월 만에 57,000마리를 사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