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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나폴레옹전쟁

나폴레옹의 마지막 승리 - 바그람 전투 (2부)

by uesgi2003 2013. 11. 12.


처음 오신 분은 당연히 1부부터 읽으셔야 연결이 됩니다. 



나폴레옹이 바그람 전투에서 부관에게 지도를 건네주고 있습니다. 멀리 프랑스 기병이 진격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폴레옹은 베르나도트에게 아데르클라아에서 전선중앙을 유지하라고 명령했다. 이곳은 바그람 공격의 출발점이었다. 그렇지만 오전 4시에 로젠베르크-오르시니가 다부의 위치를 공격했고 베르나도트는 아데르클라아에서 좀 더 방어하기 좋은 곳으로 후퇴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아데르클라아를 정찰한 오스트리아군은 무방비상태로 버려진 것을 발견하고 바로 점령했다. 


오전 6시에 이 사실을 안 나폴레옹은 크게 화를 냈다. 베르나도트가 후퇴하면서 프랑스 전선에는 큰 구멍이 생겼다. 나폴레옹은 베르나도트와 작센군에게 아데르클라아를 다시 점령하라고 명령했고 베르나도트는 자신이 전권을 가졌다면 기동전으로 카를을 이미 패배시켰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데르클라아의 오스트리아 수비군은 작센군의 공격을 쉽게 막아냈다. 


나폴레옹은 다시 한 번 작센군의 후퇴를 지켜보면서 베르나도트의 무능력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현장으로 달려갔고 후퇴하는 병사들보다 먼저 도망치는 원수를 발견했다. 나폴레옹은 후퇴하는 작센군을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이것이 장군이 말하던, 카를을 항복시킬 기동전이오?" 베르나도트는 충격을 받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나폴레옹은 그에게 24시간 안에 대육군Grand Armee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나폴레옹은 마세나에게 마을 점령을 지시했고 그는 명령을 완수했다. 



아데르클라아의 오스트리아군이 작센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그 동안 장 부데Jean Boudet 장군의 보병 1개 사단만이 프랑스 좌익을 지키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선봉대는 부데의 병사를 가볍게 밀어내고(아래 그림 참조) 아스페른 마을을 점령했다. 그리고 이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요한 1세 요세프의 정예 척탄병 군단이 투입되었다. 클레나우의 병력은 에쓸링으로 진격했지만 로바우 요새의 맹렬한 포격을 받아 많은 피해를 내고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오전 9시, 양쪽이 모두 공세에 나섰다. 마세나는 자신이 매우 불리한 위치인 것을 발견했다. 아데르클라아를 점령했지만 측면이 클레나우와 콜로브라트에게 노출되었고 병력도 1대 3으로 크게 부족했다. 

마세나가 위험해진 것을 본 나폴레옹은 총탄을 뒤집어 쓴 그의 마차(지난 1부에서 설명했듯이 낙마로 입은 부상때문에 마차에서 지휘)로 달려가서 그에게 상황이 좀 위태로우며 원수의 마부 2명이 전장에서 가장 용감한 병사라고 농담을 건넸다. 

좌측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즉시 물러나서 로바우 방면으로 남진해서 클레나우와 콜로브라트를 막으라고 지시했다. 적이 공격해오고 있는 와중에 기동을 해야 하는 매우 위험한 임무였다. 그리고 베시에르의 황실근위 기병대에게는 전선의 좌익을 공격하는 적에게 돌격하라고 명령했다. 



나폴레옹의 명령을 받은 프랑스 흉갑기병cuirassiers가 승전을 다짐하며 돌진하고 있습니다.


베시에르는 부상을 당하면서도 오스트리아군을 오랜 시간 붙잡아두어서 위젠이 전선의 구멍을 막을 수 있었다. 위젠은 아데클라아아와 브라이텐네르Brietenleer 사이에 100문을 대포를 집결시키고 접근하는 오스트리아군을 두들겼다. 그 동안 마세나는 아데르클라아아에서 빠져나와 남진할 수 있었다. 

그 순간에 오스트리아군이 퇴각했고 마세나는 에쓸링으로 병력을 이동시켜 클레나우의 선봉대를 마을에서 몰아냈다. 정오가 되자 나폴레옹은 카를의 정예군을 격퇴했고 좌익을 유지했다. 이제 전장의 중앙으로 눈을 돌릴 차례가 되었다. 



가운데 흰말을 타고 있는 나폴레옹이 프랑스군에게 바그람의 오스트리아군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후방에서만 머물던 영화에서와 달리, 그는 전장의 여러 곳을 직접 확인하며 위험한 상황을 맞기도 했습니다. 


7월 6일 오후, 나폴레옹은 이제 바그람과 루스바하 고지를 장악하고 있는 오스트리아군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시킬 수 있게 되었다. 다부는 고지 위에 있는 적을 우회해서 공격했고 우디노는 중앙에서 꾸준히 밀고 나가며 바그람을 결국에는 탈환했다. 오후 12시 30분, 다부는 마르크그라프노이지들을 점령했고 로젠베르크-오르시니의 측면은 그루시 장군의 기병에게 루스바하 평원을 따라 계속 밀려났다. 


나폴레옹은 다부가 제대로 해내자, 4년 전에 아우스터리츠Austerlitz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스트리아군을 반으로 나누기 위해 좌측 중앙을 공격했다. 자크 마크도날Jacque Macdonald 장군은 8,000명의 보병을 이끌고 중기병의 지원을 받아 오스트리아군 전선의 중앙을 공격했다. 그렇지만 포격에 큰 피해를 입으며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카를은 프랑스군의 공세를 막기 위해 마지막 예비 척탄병을 투입했다. 마크도날은 다시 한 번 공격하기 위해 지원을 요청했고 나폴레옹은 바바리아군과 황실근위대를 포함한 예비병력 대부분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오스트리아군의 중앙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 동안 메세나의 병력은 남쪽에서 다시 공세에 나서 아스페른을 점령하고 클레나우를 고립시키려고 했다. 메세나는 클레나우를 밀어냈고 우디노와 마몬트의 지원을 받아서 프랑스 전선을 더욱 두텁게 만들었다. 

카를은 오후 1시 30분에 루스바하 고지에서 다부에게 반격했지만 실패했고 오후 2시가 되자 바그람 전투를 프랑스에게 내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고지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고 지체하다가는 보헤미아 퇴각로가 단절될 위험에 처했다. 그는 총 퇴각을 명령했고 아직 전력이 남은 오스트리아군은 질서정연하게 퇴각했다. 오후내내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군과의 교전을 중단하고 보헤미아로 후퇴했다. 요한 대공은 오후 4시에 전장에 도착했지만 전투가 끝난 것만 확인하고 역시 퇴각했다.

격전을 벌인 프랑스군도 추격할 전력이 남지 않았다. 


양쪽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프랑스와 연합군 188,000명이 참전해서 37,000명이 사상당했다. 오스트리아군은 155,000명 중에 45,000명을 잃었다. 나폴레옹은 최고의 지휘관 앙트완 라살Antoine Lasalle을 잃었다. 



후사르 장군이라고 불렸던 앙트완 라살이 바그람 전투에서 마지막 돌격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35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했는데, 혁명 이후부터 주요 전투에 참전했고 용맹한 돌격으로 전설적인 존재였습니다. 



바그람 전투를 한 눈에 되새김질할 수 있는 전황도입니다. 꼭 필요한 부분만 번역했습니다. 클릭해서 큰 그림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40명의 장군을 전사 또는 부상으로 잃었다. 오스트리아와의 전투는 값비싼 승리였다. 그래도 프랑스는 병력을 보충할 수 있었지만 오스트리아는 도저히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자국영토에서 패배했고, 사기가 크게 떨어진 채로 즈모이노Znaim으로 퇴각했다. 

7월 11일까지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되다가 오스트리아 황제의 요청으로 종전협상이 시작되었다. 카를 대공은 총사령관에서 해임되었고 오스트리아가 1808년의 보복을 꿈꾸며 시작한 도박은 1809년에 더 심한 상처로 남았다. 


7월 12일, 나폴레옹은 마크도날, 우디노와 마몬트를 제국원수로 진급시켰다. 나폴레옹이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고 격려하는 대단한 능력은 이번에도 가치를 발휘했다. 그는 베르나도트와 같은 무능한 인재를 적시에 교체할 줄 알았고 다부의 과감한 공격 그리고 마세나의 굳은 방어는 전투기동의 모범이 되었다. 물론 두 사람에게는 공Prince 작위가 주어졌다. 


오스트리아군이 선택한 전장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둔 나폴레옹의 천재성은 절정에 달했다. 그는 유럽최고의 장군들을 적시적소에 투입하면서 전투의 맥을 짚을 줄 알았다. 위기와 기회의 순간을 절대로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바그람 전투는 그의 절정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오스트리아군은 전혀 설명하지 않아서, 오스트리아의 흉갑기병 그림으로 마무리합니다. 


이 동영상은 에슬링 전투입니다. 비교적 작은 스케일이라 그 다음에 영화사상 최대의 스케일을 자랑하는 러시아판 전쟁과 평화를 연이어 소개합니다. 8시간짜리 영화로 구 소련체제의 막대한 물량을 지원받아 제작된 영화입니다. 워털루도 스케일면에서는 1, 2 위를 다투는데, 이 영화 앞에서는 작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