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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일본

일본 전국시대 배경설명(6_2)- 다께다 가문의 24무장 이야기

by uesgi2003 2011. 3. 4.

가족 여행도 다녀오고 전세도 구하느라 리듬을 잃었더니 오래 걸렸습니다. 묵호항과 삼척동굴 지대를 다녀왔습니다.

묵호항에서 감동받은 3가지가 있었는데

1. 자연산 회를 너무 싼 가격에 골라서 즐길 수 있습니다.

애들이 워낙 반대를 해서 복어회를 마음껏 즐기지 못했지만 그래도 명품 매운탕은 실컷 즐겼습니다.

2. 차다니기 너무 편하고 곳곳이 빈 공영주차장입니다.

3. 24평 전세가 무려 2,400만원이랍니다. 구입이면 5,500만원이고요.

 

삼척동굴에서는 환선굴과 대금굴(인터넷 예매 필수)을 다녀왔는데 지척거리의 두 동굴의 성격이 너무 다르더군요.

대금굴은 하루 제한인원만 들어갈 수 있는데, 흔치않게 많은 물을 만날 수 있었던 반면에 환선굴은 그냥 잠실운동장만한 거대한 동굴을 다니는 것입니다. 추천한다면 대금굴이 자연상태의 동굴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정선의 화암동굴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정선의 화암동굴은 두 동굴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주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서 즐기는 스릴도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다께다 가문의 유명한 24무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께다 가문의 인물들도 설명하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너무 늘어져서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를 보면 사나다 닌자 몇인 방, 우에스기 무장 몇인 방 하는 식의 자랑이 많은데, 그 원조는 다께다 24무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께다 신겐은 돌이 아닌 사람으로 벽을 친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중신들이 많았다. 지금부터 유명한 24무장을 하나씩 설명하도록 하겠다.

 

대부분의 24무장 그림이 후대에 그려졌기 때문에, 수 많은 그림에 그려진 얼굴이 모두 다르고 심지어 그 당시에 살지도 않았던 인물이 섞인 경우도 많다. 여기에서 설명하는 24무장은 들녘이 번역출간한 야망패자(무사로 재출간)의 부록을 참조/인용했다. , 24무장 중 가장 유명한 야마모또 간스께조차도 가공의 인물이라는 설이 있고 심지어 멸망할 때에 배신을 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어서 24명 전체는 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부터는 현지발음 옆에 외국어표기법을 따른 이름을 추가하기로 한다.

 

그림 설명: 일본의 지방행사로 전국시대를 재현한 전투나 행렬이 유명한데, 매년 열리는 다께다 24무장 기마행렬 참자가 모집안내입니다. 엄청난 고가의 갑옷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참가자에게는 멋진 행사가 될 겁니다. 24무장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참가희망자는 아마도 시동이나 잡병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말고도 가와나까지마 전투 출전을 다께다와 우에스기 양쪽 집안에서 하는데, 이 행사도 대단한 장관입니다. 그림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아래 그림 설명: 24무장도의 일부 모음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마지막의 신겐공보물관의 그림의 얼굴을 각 무장에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야마모또 간스께 하루유끼(야마모토 간스케 하루유키, 山本勘助)

도요또미 히데요시와 같이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지방의 정보에 능통했고 문무양면의 뛰어난 실력을 겸비했다. 다께다 신겐은 이마가와 가에 머물고 있던 간스께를 알아보고 200관을 주고 아시가루 대장으로 발탁했다고 한다. 1561년 가와나까지마 전투에서 자신이 내놓은 전략의 허를 찌른 우에스기 겐신에 의해 전사할 때까지 신겐의 모사꾼 역할을 했다. 왼쪽 눈을 잃고 오른쪽 다리도 절었으며 손가락이 기형이었다고 하는데, 극히 일부의 역사기록을 제외하고는 간스께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가공이라는 논쟁이 수 백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69세의 나이로 가와나까지마(가와나카지마)에서 우에스기 겐신의 진격을 막기 위해 자살공격을 벌이고 전사한다.

 

그림 설명: 전국시대 유명한 다이묘 이상으로 그림이 많이 남아있는 간스께입니다. 가공의 인물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가와나까지마에서 분사한 모습때문인지 그림이 유달리 많습니다. 옆의 그림은 가와나까지마에서 자신의 작전이 돌파당하자 시간을 벌기 위해 목숨을 던져 우에스기 겐신을 막다 죽는 간스께와 가신들입니다. 그림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이찌조 노부다쓰(이치조 노부다쓰, 信龍)

다께다 신겐의 이복동생으로 당시 명문가였던 이찌조 가문을 계승한다. 기마 100기를 이끄는 사무라이 대장으로 친족의 리더로 활약했다. 후반기부터는 후방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으며, 오다 노부나가 연합군의 공격으로 궁지에 몰린 다께다 가쓰요리 일행을 하루 재운 후에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공격하지만 사로 잡혀 아들과 함께 처형된다.

(우에스기 왈: 이 그림에는 몇 명의 무장이 다른 인물로 대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없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하라 마사따네(하라 마사타네, 原昌胤)

마사따네는 아버지를 이어 2대에 걸쳐 진마봉행(미리 세워진 작전에 따라 지리를 살펴 아군에게 유리한 장소를 선택해 진영을 펼치게 하는 임무)를 맡았던 무장이다. "마사또시(아버지)앞에 마사또시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아버지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제 역할을 다했다. 다께다의 모든 무장이 "진영을 선택하는 것은 마사따네에게 맡겨라"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다. 진마봉행은 병참과 정보를 관장하는 참모역할이었지만 다께다 중신이 대부분 전사한 나가시노 전투(다께다 신겐이 죽은 후 오다 노부나가/도꾸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이 공격한 전투. 2,000자루가 넘는 화승총이 동원되어 일본의 전략과 전술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된다)에서 직접 120기의 기병을 이끌고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전사했다.

 

 

하라 도라따네(하라 토라타네, 原虎胤)

'귀신 미노(美濃, 일본 중부지역 이름)'라고 불렸던 도라따네는 주군 2대에 걸쳐 38회의 전투에서 53개의 상처를 얻은 용장이었다. 18세에 다께다 가문의 가신이 되었고 젊은 신겐을 도와 가신을 이끌었다. 도라따네는 공성전이 특기였는데 그것도 성을 파괴시키지 않고 공략해 바로 재활용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부상당한 적장을 풀어주면서 회복되면 다시 상대하자고 위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68세의 나이로 가와나까지마 전투 전에 병사한다.

 

 

 

 

사나다 유끼따까(사나다 유키타카, 田幸隆)

사나다 가문은 원래 명문인 운노 가문 출신이지만 북 시나노의 무라까미 요시끼요의 공격을 받아 가문을 이끌고 신겐에게 의탁한다. 시나노 공략에 공을 세우면서 사나다 지역을 받아 가문 이름도 사나다로 바꾼다. 가와나까지마 전투 이후에 장남인 노부쓰나에게 가문을 불려주고 출가해 법명을 받았다. 신겐이 죽자, 바로 다음 해에 주군을 뒤를 따르듯 병사한다.

 

 

 

 

사나다 노부쓰나(사나다 노부츠나 田信綱)

사나다 유끼따까의 장남으로 가와나까지마 전투에서는 25세 약관의 나이로 신겐의 본진을 지켰다. 신겐이 상경전을 벌일 때에는 명예로운 선두를 맡았을 정도로 용맹이 뛰어났다.

사나다 가문은 기습과 야전 능력이 뛰어났는데, 노부쓰나는 성을 공략하는데 발군이었다고 한다. 아버지 유끼따까가 죽자 가문을 계승하고 나가시노 전투에서 동생 마사떼루와 함께 오다 노부나가의 본진으로 뛰어들다가 39세의 나이에 전사한다.

 

 

 

오바따 도라모리(오바타 도라모리, 小幡虎盛)

다께다 노부또라(신겐의 추방당한 아버지)의 시대부터 가신이 되었다. 아버지 니찌조가 전사하자 14세의 나이로 가문을 계승한다. 신겐의 시대에는 30여 차례의 전투에서 40둔게 이상의 상처를 입은 역전의 용사로 '고요 다께다의 귀신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가와나까지마 전투 직전 71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오바따 마사노리(오바타 마사모리, 小幡昌盛)

도라모리의 장남으로 아버지가 병사하자 28세의 나이에 가문을 계승했다. 신겐이 "귀신의 아들에게는 귀신의 딸이 어울린다"며 귀신 미노라는 하라 도라따네의 딸을 중매했다. 재미있게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전투 직전에 병사해서 다께다 가문의 멸망을 지켜보지 못한다.

 

 

고사까 마사노부(코사카 마사노부, 高坂昌信)

다께다 4천왕 중 한 사람으로, 16세 때에 신겐의 가신이 된다. 상당한 미남으로 알려져있으며, 뛰어난 전략/전술로 가신들 중 가장 공이 뛰어났고 신슈의 명문인 고사까를 상으로 받아 고사까라는 성을 썼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모든 가신과 부대를 잃은 가쓰요리를 맞아들여 미리 준비한 갑옷을 다시 입혔다고 한다. 52세의 나이로 병사해 다께다 가문의 멸망을 함께 하지 못한다.

 

 

 

 

야마가따 마사까게(야마가타 마사카게, 山県昌景)

다께다 4천왕 중 한 사람. 신겐과 가쓰요리 2대를 섬기면서 전투뿐만 아니라 외교와 내정까지도 관장한 다재다능한 무장이었다. 야마가따 가문은 가이의 명문가였지만 노부또라의 미움을 사서 몰락했다가 신겐 시대에 마사까게가 다시 부흥시켰다. 가와나까지마 전투에서는 본대를 지휘했었고, 미까따가하라(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는 5,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도꾸가와 이에야스 본진을 압박했다.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전황이 불리하니 다시 때를 보자는 간언을 하지만, 가쓰요리의 고집으로 다께다 군이 전멸 위기에 몰리자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나서다 전사한다.

 

 

바바 노부하루(바바 노부후사, 馬場信房)

역시 4천왕 중 한 사람으로 그 중에서도 최고라 꼽힌다. 다께다 3대를 섬겨, 노부또라에게서 명성을 얻고, 신겐에게서 신뢰를 얻고, 가쓰요리에게 가로로 보답했다. 신겐이 이마가와를 공격해 성에 불을 질렀을 때에 보물을 들어내라고 명령하자, "적의 보물을 빼앗는 것은 후세에 웃음거리가 된다"며 다시 불 속에 집어던졌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61세의 나이로 나가시노 전투에서 전사한다.

 

 

 

 

나이또 마사또요(나이토 마사토요, 藤昌豊)

4천왕의 마지막 남은 한 사람. 노부또라가 가신이었던 아버지를 죽이자 고향에서 도망쳤다가 신겐의 시대가 되면서 복귀해 큰 공을 세웠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후퇴할 것을 간청하다가 육탄돌격으로 산화한다.

 

 

 

 

 

 

 

다께다 노부까도(다케다 노부카도, 武田信廉)

노부또라의 3남으로, 신겐과 노부시게의 친동생이다. 화가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가족을 그린 화상은 중요문화재로 남아 있다. 가와나까지마 전투에서는 형을 닮은 외모때문에 가게무샤(주군을 대신하는 가짜 주군) 역할을 했고 신겐이 상경전에서 사망하자 다시 가게무샤 역할을 해 다께다 군이 무사히 후퇴할 수 있께 한다.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4,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중앙 돌파를 지휘했으나 패전했고 다께다 멸망 후에 오다 노부나가에게 처형된다.

 

 

 

다께다 노부시게(武田信繁)

노부또라의 2남이자 신겐의 친동생이다. 노부또라가 노부시게를 편애해서 가문을 물려주려고 해서 신겐이 모반을 일으켜 아버지를 추방하지만, 노부시게는 형의 결정을 따라 지지한다. 가와나까지마 전투에서 우에스기 군대의 기습을 받아 형이 위험에 빠지자 목숨을 걸고 싸움을 벌인 덕분에 신겐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요꼬다 다까또시(요코타 타카마츠, 田高松)

노부또라 시대에 가신이 된 사람으로 적의 움직임을 보고 그 전술을 간파해서 선제공격을 펼치는 것이 장기였다. 신겐이 유일하게 패한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다까또시 부대는 아군의 철수를 위해 후미를 맡았다가 무라까미 요시끼요에게 포위당해 전사한다.

 

 

 

 

 

 

쓰찌야 마사쓰구(츠치야 마사츠구, 土屋昌次)

가와나까지마 전투 때에 17세의 나이로 첫 출전했다. 다께다 본진이 공격을 당해 전멸당할 위기에서도 신겐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미까따가하라 전투에서는 도꾸가와 진영의 도리이 노부모또와 대결해 그를 죽이는 공을 세웠다. 신겐이 죽자, 자살하려고 했지만 "신겐이 바라지도 않으며 그의 아들을 위해 공을 세우는 것이 무사의 도리"라는 고사까 마사노부의 조언을 듣고 자살하지 않는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오다 군의 기마 저지용 울타리 장애물을 철거하다가 전사한다.

 

 

 

오부 도라마사(飯富虎昌)

'가부또 산의 맹호'라는 별명의 용장으로 2대에 걸쳐 충성했지만 신겐이 중앙으로 진출한 다음부터는 수비만 맡았다. 우에스기 겐신이 이끄는 8,000명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겨우 800명만으로 능숙한 기습작전으로 적을 교란시키고 허점을 노려 공격을 감행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호랑이가 양을 몰고 다닌 것과도 같았다고 한다. 신겐의 이미가와 공격을 반대한 아들 요시노부가 자살하면서 모반의 의심을 사 함께 자살한다.

 

 

 

 

아마리 도라야스(甘利虎泰)

청년 신겐에게 전투에서의 진퇴를 시범으로 가르쳤던 무장으로, '미쳐 날뛰는 들소를 들판에 풀어놓은 것과 같이' 적을 공포에 몰아넣었고, 그가 나타나면 적들이 싸우지도 않고 도주했다고 한다. 신겐이 패한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요꼬다 다까또시와 함께 무라까미 요시끼요에게 전사한다. 장남인 마사따다도 아버지 못지 않은 용장이었지만 31세의 나이로 병사한다.

 

 

 

 

다다 미쓰요리(다다 미츠요리, 多田満頼)

야습이 특기였던 무장으로 가와나까지마 전투에서는 너무 늙어 아들이 대신 출전했다.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

다께다 가쓰요리가 죽기 직전에 배신자를 치러 간다고 속이고 전열을 이탈해 아나야마 바이세쓰(穴山梅雪)와 함께 배신자로 수 백년의 모욕을 당하고 있는 인물이다. 신겐과는 사촌간이었으며 친족 내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했었지만, 가쓰요리가 멸망한 후에 오다 노부나가의 아들을 만나 배신의 대가로 가문의 존속을 원했지만, 주군을 배신한 가신은 용서하지 않는다면 노부나가의 방침에 따라 42세에 처형된다.

 

 

 

 

사이구사 모리또모(사이구사 모리토모(三枝守友)

나가시노 전투에서 신겐의 동생 다께다 노부자네의 부장으로 나섰다가 도꾸가와 군의 기습을 받아 전사했다.

 

 

 

 

 

 

 

 

아나야마 노부끼미(아나야마 노부키미, 穴山信君)

어머니가 신겐의 누나이고 아내는 신겐의 차녀였다. 노부끼미보다 바이세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으며 다께다 멸망 직전에 가쓰요리를 버리고 가문을 존속시키기 위해 도꾸가와 진영으로 달려간 전력으로 배신자라는 낙인이 따라다닌다. 노부나가는 노부시게를 처형한 반면에 다께다 영지로 확장하고 싶었던 이에야스는 노부끼미를 살려준다. 모든 전투에서 주로 본진 수비만 담당해서 무공은 알려져 있지 않고 있으며 노부나가가 암살당한 혼노 사 정변에서 이에야스와 다른 길로 도망치다 산 속에서 토착민의 약탈에 걸려 42세로 죽는다.

 

 

 

이따가끼 노부까따(이타가키 노부카타, 板垣信方)

신겐이 아버지를 추방한 사건의 주모자였으며 노부또라를 이마가와로 보내는 역할도 맡았다. 젊은 신겐에게 목숨을 걸고 조언을 해 신겐이 두려워하기도 했다. 신겐이 유일하게 패한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부상당한 신겐을 철수시키다가 무라까미 군대에게 포위되어 전사한다.

 

 

 

 

 

아끼야마 노부또모(아키야마 노부토모, 秋山信友)
다께다 집안의 사람으로 후방을 지켜 신겐이 외부로 진출할 수 있게 도왔다. 신겐의 6녀와 오다 노부나가의 장남(오다 노부따다)이 정략결혼할 때에 사자로 가서 오다 측 장수들을 압도했다는 일화가 있다. 나가시노 전투 후에 미노의 이와무라 성을 사수했지만 오다 군에 생포되어 49세의 나이로 처형되었다.

 

 

 

 

 

 

이제 100%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충실한 일본 전국시대 배경설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200여년에 걸친 수 많은 인물과 배경을 10여편의 이야기에 정리한다는 것이 원래 무리였습니다. 그래도 그림과 동영상을 곁들이며 다른 어떤 자료보다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올리지 못한 자료가 많아 안타깝지만 여기에 몇 개만 더 올리고 다른 시대로 옮겨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피드백이나 의견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24무장의 가옥이 있는 그림입니다.

혹시 일본 고슈지역을 여행하시게 되면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림 설명: 바바 노부후사의 큰 그림입니다. 클릭하면 커집니다.

 

 

 

 

 

 

 

 

 

 

 

 

 

 

 

 

 

 

 

 

 

 

 

 

야마모또 간스께의 가와나까지마 전사 그림 두 개 연속으로 올립니다. 두 번째 그림에서는 24무장 중 일부와 우에스기 겐신의 유명한 가신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께다 무장의 다른 그림입니다. 여기도 17명밖에 없고 다른 인물들이 섞여있지만 해상도가 상당히 좋으니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가와나까지마에서 우에스기 겐신의 본진 난입을 막아나서는 가신들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이름들이 보입니다.

 

 

 

 

 

 

 

 

단독으로 신겐의 본진에 뛰어들고 있는 우에스기 겐신입니다.

칼에 맞아 날아가고 떨어지는 헐리웃 액션이 흥미롭습니다.

 

 

 

 

 

 

 

 

우에스기 겐신의 본진 난입 후의 장면입니다. 갑자기 모여라 꿈동산 버전이 되었습니다^^; 다께다 신겐은 칼에 맞아 부상을 당했지만 가신단의 보호로 생명을 건집니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는 우에스기 겐신이 판정승을 거뒀고, 후속 전투에서는 다께다 신겐이 판정승을 거둬 무승부를 이룹니다.

가신과 병력손실은 다께다 신겐이 훨씬 많았지만 결국 전략요충지를 차지했기 때문에, 실제 승리자는 다께다 신겐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전투 후에 두 영웅은 서로를 존경하며 정면대결은 피하게 됩니다. 사상자가 전 병력의 70~90%에 달했으니 엄청났죠.

 

다음은 이맘 때쯤 이미 잊고 있을 다께다 신겐의 일생 그림입니다. 들녘출판사의 야망패자의 부록을 인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