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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그리스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원정(영화 제국의 부활편) 2부

by uesgi2003 2014. 3. 2.


서울시장 후보로 정몽준씨가 서민운운하며 나서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박원순씨에 비해 상당한 승산이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냥 웃으렵니다... 왕족처럼 태어나고 생활하며 군림했던 사람이, 주식을 1조 7000억이나 쥐고 있는 사람이 서민운운하는 것도 웃기고, 그에게 조금의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웃깁니다. 


51.6%가 원하는 대통령이 되었듯이, 다시 과반수 이상이 원하는 시장이 된다면, 웃고 지내는 수 밖에 없죠.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원정(영화 제국의 부활편) 2부


크세르크세스에게는 모든 징조가 불운하게 돌아갔다. 4개월 만에 헬레스폰트에서 아티카까지 진격하며 승리를 거듭해왔다. 그렇지만 9월 말이 되자 폭풍의 계절이 시작되었고 보급로가 위협받았다. 아티카의 농작물을 모두 불태웠기 때문에 병사들이 식량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스군을 빨리 찾아 궤멸시키지 않으면 아사할 판이었다. 사방으로 보낸 스파이덕분에, 그리스군이 지협에 장벽을 건설하고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굶주린 병사들을 힘들게 산맥너머로 보내기 보다는 해군을 동원하기로 했다. 

그는 아테네 남부에 있던 함대 중 선봉대를 살라미스 부근으로 보냈다. 그리스 함대가 사로닉Saronic 만에서 전투를 벌이면 페르시아의 대함대로 전멸시키거나 자기 고향으로 달아나면 하나씩 추격해서 궤멸시킬 생각이었다. 


이 계획은 거의 성공할 뻔 했다. 9월 17일, 크세르크세스 함대가 사로닉 만에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그리스 함대, 특히 펠로폰네시스 도시국가는 고향이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걱정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육군이 지협근처에 접근 중이라는 보고까지 들어오자 동요는 공황으로 커져갔다. 테미스토클레스도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그는 그리스 해군을 살라미스에 묶어두는 한편, 크세르크세스가 살라미스로 함대를 몰아넣게 유인해야 했다. 



어렸을 때에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위인전을 읽고는, 그리스를 구한 테미스토클레스가 오히려 도편추방(도기 파편에 이름을 적어 국외로 추방하는 제도)당하는 것을 보고 그리스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졌었죠. 인물에 대한 명암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어린이 위인전의 폐해이기도 합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정치가와 전략가로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부패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워낙 권모술수에 능해 아테네 시민과 정적의 반감을 샀고 결국에는 국외로 추방되어 크세르크세스의 아들을 위해 페르시아의 총독이 됩니다. 

반전과 반전의 인생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리스군 전략회의가 벌어지던 9월 19일 새벽, 테미스토클레스는 몰래 빠져나와 노예 한 명을 작은 배에 태워 페르시아 함대로 보냈다. 노예는 페르시아 장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급히 돌아왔다. 

그리스군은 이제 반반으로 갈라졌고 자신과 아테네군은 배반을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페르시아군에게 합류하지 않는 병력은 그날 밤에 지협쪽으로 퇴각할 예정이며, 그대로 둔다면 크세르크세스의 원정은 늘어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 공격한다면 이미 배반을 결정한 병력의 도움을 받아 쉽게 승리할 수 있으니 빨리 행동에 옮기라고 강력히 권유했다. 


페르시아 장군은 그의 정보를 사실로 믿고 왕에게 전달했고 크세르크세스는 함대에게 만 안으로 서둘러 진입하라고 명령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전략은 성공했고, 크세르크세스가 기대한대로 행동했다. 

페르시아 함대가 조용히 만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크세르크세스는 이집트 소함대에게 페트리티스Petritis 봉을 돌아 메가라Megara 해협을 봉쇄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2개 소함대를 더 보내 프시탈레이아Psyttaleia 섬 양쪽에서 살라미스 해협을 봉쇄했다. 그리고 보병을 섬에 상륙시켜서 해전이 벌어졌을 때에 달아나거나 밀려오는 배를 사냥하도록 준비시켰다. 

자정이 되자 페르시아 함대는 만을 완전히 봉쇄했고 그리스군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리스군은 아침이 되어서야 포위당한 것을 알았고 귀순한 페르시아 함선(페르시아 선원 중 상당수는 그리스인)을 통해 결전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건 도박이 성공해서, 결전에 나서는 그리스 함대를 보고 기뻐했다. 심지어 그리스 지휘관들은 그에게 사기를 북돋는 연설을 부탁하기도 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9월 20일 새벽에,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고향의 자유를 위해 반드시 승리하자는 연설을 했다. 

연설이 끝나자, 병사들은 서둘러 배로 달려갔고 해협을 향해 배를 저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 전역이 보이는 산에 올라 왕좌에 앉았다. 



새벽에 산에 오른 그는 그리스 함대가 정박지에서 나와 북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군이 메가가 해협이 봉쇄된 줄도 모르고 탈출을 시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함대를 해협으로 더 밀어넣어 그리스 함대가 달아나지 못하게 했다. 페르시아 함대는 전열에 90척의 함선을 1.7km 넓이로 세우고 배에는 30~40명의 보병과 궁수를 태우는 전통적인 전투방식을 따랐다. 

크세르크세스는 함대가 너무 밀집대형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페라미스Peramis를 도는 순간 좌익 이오니아Ionia 함선이 서로 충돌하며 뒤로 쳐졌고 우익 페니키아Phoenicia 함선은 훨씬 앞서면서 페르시아의 전투대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설상가상으로, 페르시아 함선이 해협에 들어서자 달아나는 줄 알았던 그리스 함선이 갑자기 배를 돌리며 전투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스 갤리선의 승선인원은 적었지만 더 날렵하고 기동성이 좋았다. 18명의 보병이 탄 180척의 아테네 3단노선은 페르시아 우익에 맞섰고 페니키아 함선은 해류에 밀려 좁은 지역으로 들어왔다. 



유인작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그리스 함대는 75척씩 4열 횡대로 초승달 모양의 대형을 취했다. 좌익 아테네 함선은 기동력을 살리기에 충분한 공간이 있었지만, 밀집대형의 페니키아 함선은 좁은 공간에서 해류에 밀려 서로 부딪치며 대형조차 갖추기 힘들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해협을 잘 알고 있으며 결전의 순간이 지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침만 해도 산들바람만이 불었는데, 날이 밝으면서 북쪽으로 큰 물결이 치고 있었고 비교적 가벼운 그리스 함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렇지만 큰 물결은 위가 더 무거운 페르시아 함선에게 더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공격에 나섰다. 

그의 판단이 옳았다. 큰 물결에 밀린 페니키아 함선은 심지어 그리스 함선에게 옆구리를 내주기까지 했다.

(당시는 대포가 없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래 그림과 같이 선수로 옆구리를 들이받아 가라 앉히거나 보병이 배에 올라 적의 노꾼을 죽여 무기력하게 만드는 전술이 사용되었습니다. 옆구리를 보여준다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헤로도투스Herodotus의 기록에 따르면 아테네 갤리선의 함장 아메이니아스Ameinias가 가장 먼저 페르시아 함선을 들이받았다. 플루타르크Plutarch는 아메이니아스가 크세르크세스의 동생 아리아메네스Ariamenes의 기함에 달려들었고, 페르시아군은 거대한 선체 위에서 화살과 창을 퍼부었다고 설명했다. 새부리처럼 생긴 두 배의 황동 선수가 서로 들이받으며 엉켰고 아리아메네스가 적의 배위로 건너가려는 순간에 창을 맞고 바다에 떨어졌다(그림 참조). 


두 함대는 서로를 들이받으며 육박전을 벌였다. 페르시아 함대는 일부분만 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 함선은 1대1로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기동력도 뒤처지는데다 전투를 시작하자 마자 제독을 잃은 페르시아 함대는 사분오열하기 시작했다. 승리를 너무 확신한 나머지, 부제독을 임명하지도 않았고, 각 함선의 함장이 알아서 전투를 벌여야했다. 일부 함선은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대해에서 함선이 계속 밀려들면서 물러나는 배와 진입하는 배가 완전히 엉켜버렸다. 


우익 페니키아 함선이 페르시아 해군의 패전을 결정지었다. 경험많은 선원이었는데도 단호한 그리스군의 저항에 놀란 이들은 무질서하게 뒤로 물러났고 쏟아져 들어오는 다른 배와 충돌했다. 육지 근처에 있던 배는 뭍으로 올라가 주저앉았고 선원은 달아났다. 

크세르크세스는 나중에 함장을 불러모아 패전의 책임을 물었는데 페니키아 함장은 좌익의 이오니아 함선에게 책임을 돌렸다.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산위에서 이오니아 함선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 지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즉시 페니키아 함장들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함선에 승선했던 페르시아 보병은 거의 모두 수영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배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반대로 수영에 능숙한 그리스 보병은 배가 가라앉아도 뭍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해전이 벌어지자 아테네 호프라이트Hoplite가 살라미스에서 프시탈레이아로 건너가 페르시아 보병을 모두 처리했고, 운좋게 섬으로 헤엄쳐온 페르시아 병사를 모두 죽였다.



페니키아 우익이 대열을 이탈하는 동안, 아테네 함대는 페르시아 함대의 중앙과 좌익으로 선회했다. 페르시아 중앙의 길리기아Cilicia 함선은 용감하게 맞섰지만 페니키아 함선이 후퇴하는 모습을 보고는 함께 물러났다. 이제 페르시아의 좌익과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중앙의 일부만 고립되었다. 아테네 함대는 달아나는 페니키아와 길리기아 함선을 추격하지 않고 고립된 페르시아 함대를 옆과 뒤에서 협공했다. 



이오니아 함대는 궁지에 몰렸는데도 대단한 분전을 펼쳤다. 포위된 상태에서 아테네 함선을 들이받았고, 곧바로 들이받혀서 침몰했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 함선 위로 뛰어 올랐지만 이미 아테네 함대에 포위된 상태에서 에기나Aegina 함대까지 달려들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살아남은 함선은 서풍을 받아 대해로 탈출하기 위해 힘껏 노를 저었고 만신창이가 된 나머지 배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스 함대는 대승을 거뒀지만 아직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최대 300척을 잃었다고 해도 아직도 대단한 전력이 남아있었다(당시의 기록으로는 최대 600척, 현대의 분석으로는 300척이상이 남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리스는 최대 378척 중 40척을 잃었습니다.) 

반파된 함선을 정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전후처리였지만, 서풍을 받아 이오니아와 나머지 함선을 빠져나간데다가 선원과 병사가 모두 달아난 빈 배도 대해로 밀려나갔다. 그리스군은 대열을 정비하고 부숴진 배를 급히 보수하며 또 다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페르시아 해군의 공격을 기다렸다. 


페르시아 해군은 돌아오지 않았다. 크세르크세스는 살라미스 해협을 뒤덮은 병사들의 시체와 함선의 잔해를 지켜보다가 팔레룸Phalerum으로의 총퇴각을 명령했다. 그리고 2일 후에는 헬레스폰트로 다시 물러났다. 패전과 함께 자신감도 완전히 부숴져버렸고 오히려 그리스군의 추격을 염려했다. 그리스 해군이 에게 해를 건너 헬레스폰트 부교를 끊는다면 보급은 고사하고 자신도 꼼짝없이 고립될 판이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아티카에 주둔한 육군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에게 해를 장악한 그리스군은 페르시아 제국의 동쪽 국경으로 건너와 그렇지 않아도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그리스 주민의 반란을 조장할 수 있다. 크세르크세스는 급히 되돌아가 그런 움직임을 봉쇄해야 했지만 그에게는 제왕으로서의 평판도 중요했다. 단 한 번 졌다고 해서 그리스의 대부분을 포기하고 총퇴각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고민끝에 중간을 선택했다. 육군을 사촌인 마르도니우스Mardonius의 지휘하에 테살리Thessaly에 두되 보급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기로 했다. 이제 페르시아군은 방어에 주력하게 되었다. 

크세르크세스와 본대는 45일 만에 헬레스폰트로 되돌아왔다. 그리스군의 추격은 전혀 없었지만, 대신에 전염병, 굶주림과 추운 날씨가 페르시아군을 괴롭혔다. 

수많은 병사의 시체를 뒤에 남기채 헬레스폰트로 되돌아왔지만, 이번에도 폭풍이 부교를 쓸어가버렸다. 이렇게 크레스크세스의 야심찬 원정은 비극으로 끝났다. 


고생끝에 사드리스Sardis로 넘어온 크세르크세스는 여전히 안전하지 못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에게 해를 넘어 헬레스폰트 부교를 끊으려 했지만 유리비아데스가 찬성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달아난 왕보다 뒤에 남겨진 마르도니우스의 육군이 먼저였다. 

기원전 479년 9월, 그리스군은 플라타이아Plataea에서 페르시아 육군을 가볍게 물리쳤다(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군 전력을 30만 명으로 기록했지만 그리스 동맹군을 포함해 최대 12만 명으로 그리스 연합군과 거의 같은 규모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같은 달에, 그리스 해군은 크세르크세시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소아시아Asia Minor의 무갈레Mycale 해변(지도참조)에서 페르시아 해군에 신승을 거두고 페르시아의 위협을 완전히 잠재웠다(무갈레에서는 해군과 육군이 모두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 전투를 끝으로 크세르크세스는 다시는 유럽원정에 나서지 않았다. 


그리스는 안전해졌고 본격적인 부흥의 시대로 들어섰지만 결국 민주주의 아테네와 군국주의 스파르타로 편이 나뉘어 내전을 벌이게 된다. 



기원전 431~404년에 벌어진 그리스 내전,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한 장면으로 아테네군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플라타이아 전투는 이번 이야기 다음 편으로 이어질 겁니다.


재미있게도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벌인 마지막 두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다. 그의 군사적 재능은 대단했지만 심각한 인성결함(오만함과 부패)때문에 아테네에서 추방당했고 크세르크세스의 아들에게서 보잘것 없은 일자리를 받았다. 그는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아테네를 상대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화 300: 제국의 부활편의 광고를 보면 상당히 인상적인 여배우가 등장합니다. 카리아Caria의 아르테미시아Artemisia 역을 맡은 에바 그린입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영화에서 대단한 역할로 나올 것 같은데... 실제로는 카리아 지방의 태수 (또는 여왕)으로 겨우 5척의 배를 지휘한 것에 불과합니다.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군이 우세한 해전을 피하고 육전에서 승부를 내자고 현명한 주장을 했고 해전에서도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패전 후에는 그리스에서 철군하자고 주장해서 크세르크세르를 구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어떤 성격으로 등장할 지가 매우 궁금한 테미스토클레스입니다. 포스터나 예고편만을 보면 대단한 지휘관으로 나오는 것 같은데... 전작인 레오니다스 스파르타 왕에 비해 캐릭터도 배우도 모두 미흡하기는 합니다. 



외국 시사회에서는 벌써부터 실망스러운 평가가 들려오는데... 그래도 저는 개봉당일에 보러 갈 예정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그리스에 남겨진 페르시아 육군의 마지막 분투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영화 300은 살라미스 해전이 주무대여서 이번 이야기로 충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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