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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미국

라스트 모히칸의 배경 - 윌리암 헨리요새 공성전과 학살 (2부)

by uesgi2003 2014. 3. 19.


프랑스군은 도착하는 즉시 요새를 포위했다. 프랑소아 가스통Francois Gaston은 하루 먼저 도착했었고 요새에서 본 모닥불이 바로 그들이었다. 가스통은 요새로 이어지는 길을 막았고 특히 에드워드 요새로 향하는 길에 인디언과 캐나다 민병을 배치시켰다. 

오후 3시경, 몽칼름이 도착했고 전령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는 전통적인 유럽식 전투수칙을 지켰다. 

"인간적으로 항복하기를 권하오. 지금이라면 야만행위를 막고 협상내용을 지킬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만 나중에는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소. 아무리 저항해도 며칠 시간을 벌 뿐이고 병사들은 풀려나지 못하고 불운을 맞을 것이오. 한 시간 안에 결심하기를 바라오."


먼로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겠다고 대답했고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몽칼름의 인디안 동맹군은 요새 주변에 몰려들어서 위협적인 몸짓을 하고 고함을 질러댔다. 먼로의 답변을 들은 아베나키 전사는 프랑스어로 "네놈은 두고봐라. 잡히기만 하면 토막내줄테다"라고 소리쳤다.

먼로의 대포가 선제포격을 가했고 몽칼름은 18세기 정통 공성법을 사용했다. 8월 4일, 공병은 참호를 파들어가기 시작했다. 요새에서는 끊임없이 포탄이 날아들었지만 프랑스 공병은 밤낮으로 공사를 벌어 2일 만에 첫 번째 참호선을 완성했다. 프랑스 대포가 배치되었고 대응사격이 시작되었다. 헨리 요새의 목책은 부숴지기 시작했다. 


라스트 모히칸처럼 묵직한 아날로그 전투신이 그립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헨리 요새를 향한 참호공사와 포격전을 큰 화면과 소리로 즐겨보세요. 



몽칼름과 먼로가 포격전을 주고 받는 동안, 에드워드 요새의 웹은 헨리 요새의 위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겨우 25km 밖에 안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양쪽이 주고 받는 수 백 발의 포성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알려주었다. 그렇지만 웹은 전 병력을 이끌고 도우러 가려 하지 않았다. 전병력을 투입한 전투에서 패배하면 뉴욕 국경은 무방비로 열리기 때문이었다. 루이스버그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뉴욕 국격에은 겨우 2개 연대의 정규군과 5,500명의 식민지군만 남겨두었다. 


공포에 질린 웹은 이주민들에게 호소해서 민병을 모았다. 민병은 그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지만 헨리 요새를 구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8월 4일, 웹은 먼로에게 더 이상의 지원병력을 보낼 수 없으며 불가항력의 경우에는 항복을 해도 좋다는 전령을 보냈다. 

몽칼름이 먼로보다 전령의 메시지를 보았다. 길목을 잡고 있던 인디안이 전령을 죽였고 코트 안에서 메시지를 발견했다. 며칠 후에 프랑스군은 백기를 들고 요새 앞으로 가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웹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먼로는 항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8월 8일, 수비군의 사기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고 몽칼름은 겨우 300m 떨어진 곳에서 18파운드 포로 요새를 포격하기 시작했다. 먼로 대령은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요새 벽 위에 백기가 걸리고 소년 드러머는 화의요청 북을 쳤다. 요새 문이 열리면 장교가 나와 몽칼름을 만났다. 


영화장면을 추가하다 보니까 마치 영화를 설명하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래도 편하군요. 시각자료 찾고 스캔하는 고생을 안해서요.

어쨌든, 영화에서는 먼로가 몽칼름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먼로는 항전을 주장하지만, 몽칼름은 명예항복을 권하죠. 가지고 있는 무기와 부대기를 모두 후방으로 가져가도 좋다는 신사협정입니다. 



8월 9일 오후 1시, 협상이 끝나고 상세내용에 서명한 후에 공식적으로 요새는 저항을 멈췄다. 수비군은 용감한 분투덕분에 18개월 동안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후방에 남아 있는다는 조건으로 프랑스군의 호위 속에서 에드워드 요새으로의 후퇴, 탄약이 없는 소화기와 부대기 그리고 청동대포 한 문(상징적인 의미)을 허락했다. 


영국과 프랑스군은 전투결과에 모두 만족했다. 그렇지만 몽칼름의 인디안 동맹군 2,000명은 절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노획물을 바라보고 먼거리를 달려와서 피흘렸기 때문에 프랑스군이 제의한 명예항복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동의하지도 않았다. 

영국 수비군이 요새를 나서자 한 무리의 인디언이 요새에 난입했다. 약탈할 거리를 찾으러 다니다가 프랑스군에 맡겨진 약 70명의 부상병을 발견했고 바로 달려들었다. 부상병의 비명소리를 들은 프랑스군이 뛰어왔지만 이미 많은 수가 죽었다. 군목의 기록에 따르면, 한 인디안은 방금 자른 머리를 전리품으로 들고 다니며 흔들었고 거기에서는 피가 용솟음쳤다고 한다. 요새에서 만족스러운 전리품을 얻지 못한 인디안과 캐나다 민병대는 요새의 수비군 전체가 에드워드 요새로 떠날 준비를 하던 산 위의 영국군 야영지로 눈을 돌렸다. 


일부는 야영지로 들어가 개인 소지품, 흑인노예와 병사, 영국군 편에서 싸웠던 인디안, 수비군을 따라 온 여성과 어인아이를 끌고가기 시작했다. 오전 5시, 400명의 프랑스 정규군이 에드워드 요새까지 호위하기 위해 도착했고 영국군 일행의 선두에 섰다. 그렇지만 너무 호위병력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대열의 끝부분에 있던 식민지군은 인디안의 좋은 사냥감이 되었다. 


대열이 야영지를 나서자, 인디안도 함께 이동했다. 처음에는 그냥 전리품만 요구했고 프랑스군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중재했다. 먼로 대령은 항복합의에 위반된다고 항의했지만 프랑스군은 계속해서 인디안이 원하는 것을 모두 주는 것이 좋겠다고 설득했다.

짐마차를 인디안에게 넘겨준 후에 대열은 숲으로 들어섰다. 그런데도 인디안은 계속 따라오며 모자, 코트, 무기뿐만 아니라 여성과 아이를 끌고 갔다. 저항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다. 항복할 때에 개인 소화기는 소지할 수 있었지만 탄약은 모두 넘겨주었기 때문에 총검이 유일한 무기였고 정규군은 대열의 선두에 있어서 중간부터는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한 아베나키 전사가 전쟁 함성을 지르자 수 백 명의 인디안이 숲에서 뛰쳐나와 대열의 후미를 공격했다. 총검이나 탄약이 없었던 식민지군은 무방비로 당했다. 인디안은 머스킷총, 토마호크와 단도를 휘두르며 식민지군을 제압했고 마음대로 끌고가거나 죽였다. 식민지군은 전력을 다해 숲으로, 요새로, 프랑스 진영으로 달려가 목숨을 구해야만 했다. 

일반 시민의 피해가 가장 컸다. 아버지에게서 딸을 떼어놓고 어머니 품에서 아이를 잡아뜯거나 그냥 죽였다. 죽은 시체는 모두 발가벗겨졌다. 학살이 이어지는 동안 캐나다 식민지군 장교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비명소리를 들은 몽칼름과 다른 고급장교들이 말을 타고 달려와 인디안을 막으려고 했지만 학살은 멈춰지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몽칼름이 인디안의 약탈을 못본 체하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막으려고 했습니다. 몽칼름이 막으려고 하는 장면입니다. 그도 2,000명의 사나운 원주민을 통제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몽칼름이 다가서고 있는데도 인디안은 붙잡은 영국군 장교의 머리가죽을 벗겼다.

몽칼름과 장교들은 흩어져서 인디안을 만류했지만 약탈이 끝났을 때에는 이미 2,456명 중에서 185명이 죽고 500명이 끌려갔다.


학살이 끝나고 5일 후에, 먼로 대령과 500명의 생존자는 에드워드 요새에 도착해서 비극을 전했다. 전투와 학살에서도 살아남았던 먼로는 3개월 후에 자연사했다.

헨리 요새가 함락되면서 영국의 국경선에 큰 구멍이 생겼지만 몽칼름은 더 이상 진출하지 않았다. 웹은 에드워드 요새에 1,400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고 헨리 요새의 500 그리고 근처 야영지의 1,800명의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긴급한 요청에 7,000명의 민병대가 합류했다.

웹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병력을 증원받았지만 반대로 몽칼름은 약탈에 만족한 그리고 프랑스군의 처벌을 두려워한 인디안 동맹군이 떠나면서 전력이 크게 약해졌다. 

몽칼름은 인디안과의 협상을 통해 200명을 더 구해냈다. 


약탈을 벌인 인디안은 완전히 엉뚱한 곳에서 보복을 받았다. 그것도 스스로 자초한 보복이었다. 서쪽 부족이 전리품을 찾아 다니던 중에 이제 막 덮은 무덤을 발견하고 시체를 꺼내 머리가죽을 벗겼다. 그런데 그 무덤은 천연두로 죽은 사람들의 것이었다. 가을과 겨울 내내, 인디안은 처음보는 질병에 시달렸고 감염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죽었다. 


영화에서의 학살장면입니다. 여기에서는 탄약도 가지고 있었고... 그다지 전력도 딸리지 않는 것 같은데, 어쨌든 일방적으로 당합니다. 그리고 먼로 대령이 끔찍한 죽음을 당하는데, 실제와는 다릅니다. 물론 실제에는 모히칸족 전사들의 맹활약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