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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독일군의 동부전선의 몰락 (11) - 강을 향한 경주

by uesgi2003 2011. 8. 14.

이번 이야기부터는 동부전선 몰락의 클락이막스라 사진이 많습니다.

드니에페르 강을 돌파당한 후에는 일방적인 사냥일 뿐이라 좀 맥이 빠집니다. 


 

강을 향한 경주

비와 진흙을 뚫고-누가 더 먼저?-챠파예프(Chapayev) 파르티잔 바투틴에게 신호를 보내다-카네프(Kanev)에서의 위기-러시아군의 그리고로프카(Grigorovka) 도강-카네프의 다리 


폭우가 쏟아지면서 우크라이나의 흙먼지는 진흙으로 내려앉았고 검은 땅은 진흙밭으로 변했다. 길은 모두 무릎이 푹푹 빠지는 수렁으로 변해 트럭이나 마차도 지나다닐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가을철 진흙 시즌의 시작이라면 독일군은 재앙을 맞게 될 판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빨리 진흙 시즌이 올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남부집단군은 강에 도착하는 즉시 강을 건너 수비선을 펼쳐 다리를 확보하라는 명령을 전달해두었고, 그 때까지는 수송부대, 정비부대, 훈련병으로만 전선을 수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진흙밭에서의 경주가 시작된 것이다.


사진 설명: 계절은 다르지만 진흙에 빠져 고전 중인 T-34입니다. 러시아 전차는 캐터필러가 넓어 열악한 환경에서도 주행이 가능했지만 진흙밭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독일군 차량은 거의 기동을 못할 정도였습니다.  타이거 전차부터 수송용과 주행용 2가지 캐터필러가 개발되어 주행성능을 높이게 됩니다. 

사진은 모두 클릭하면 커지는 것 아시죠? 


전차 얘기가 나와서 재미있는 사진 두 장을 더 올립니다.

먼저 진흙밭에 빠진 3호 전차를 구난하는 사진인데, 구난에 나선 전차가 무려 2호전차입니다.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과연 빠져나왔을 지 의문입니다. 

9톤의 2호전차가 23톤의 3호전차를 끌어내려고 하는데... 3호전차가 앞으로 미끌어지면 2호전차는 그냥 끌려들어갈 겁니다. 물론 2호전차의 캐터필러는 더 얇습니다. 


지난 침수피해로 이런 사진만 보면 안타까워집니다. 얼음이 깨져 침수된 4호전차입니다.

4호전차를 끌어내기 위해 4호전차 2대가 동원되었습니다.  

원래 동급전차를 구난하는데 2대 이상의 전차가 있어야 합니다. 

타이거는 전선에서도 귀중한 물자라 구난동원은 금지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 제1 기갑군은 자포로예의 교두보까지 후퇴했고, 40 기갑군단은 조각배를 타고 강을 건너 도시와 댐 수비를 맡았다. 17 군단은 동쪽으로 20km 돌출된 지역에 멈췄지만 다행히도 러시아 제3 방위군은 여기까지 진격하지 못한 상태였다. 크레멘츄그(Kremenchug)와 체르카시(Cherkassy)의 도강지점은 독일 제8 군이 수비했다.


다행히 진흙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괴롭히는구먼” 24 기갑군단의 참모장인 헤세(Hesse) 대령이 말했다.

정찰 보낸 병사 중에 아직 아무도 귀대하지 않았습니다. 베버 중위는 어제 12시간 걸려 겨우 10km 갔다는 군요.”

죽는 소리 그만해. 작전서류가 있는 트럭도 갇혔어. 사단 전체가 진흙밭에 갇혔는데 빨리 후퇴하라고 하면 미쳤다는 소리만 들을 거야. 아직 러시아군도 안 보이는데 무리할 필요 없다고 생각할 거야. 적에게 배후를 찔리지 않으려면 서둘러서 다리에 빨리 와주어야 할 텐데…”

헤세는 무릎 위에 지도를 펼치고 조금 전에 들어온 정보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반 놈들이 우리가 다리로 몰리는 사이에 구멍난 곳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 우리보다도 빨리 강에 도착하고 싶을거야.." 지도만 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푸른 색으로 칠한 군단의 철수지역은 붉은 색의 러시아군 화살표에 파묻혀있었다. 그들의 우익이나 좌익 어디에도 아군은 없었다.

이때 군단의 통역장교인 그라이너(Greiner) 중위가 뛰쳐들어왔다. 10 기갑척탄병사단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온 몸이 진흙투성이였다. "병사들이 진흙 속에서 고전 중입니다. 며칠째 잠도 못자고 있지만 드니에페르 강이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으니까 버텨낼 겁니다. 병사들은 벙커 속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매복당하거나 배후가 끊길 걱정없이요!"


사진 설명: 독일군이 입고 있는 군복이 위장복으로 보이지만 위장복이 아니라 진흙이 묻은 것입니다. 

그리고 기계화보병의 이미지가 강한 독일군이었지만 사진에서와 같이 말에 절대적인 의존을 했습니다. 


헤세는 큰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벙커라니! 수비진지라니! 드니에페르 강 건너에는 그들에게 안전과 휴식을 제공할 그 어떤 것도 없다고 말해주어야 하나? 대신에 그는 "이반 놈들은 제10사단 지역에서 여전히 공격 중인가?"라고 애써 숨기며 물었다.

적의 보고서를 분석하는 일을 해왔던 정보장교답게 그라이너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러이사군은 폴타바-키에프 철로를 통해 이미 드니에페르 강을 향해 군대를 마구 밀어내고 있습니다."

"정말인가? 그라이너?"

"정말입니다. 슈미트 장군이 대령님에게 알리라고 하시더군요. 믿을만한 정보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부숴진 철로를 순식간에 수리해서 이미 가동 중이라고 합니다. 신호장치는 아직 수리를 못해서 열차운전을 수신호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상황이 거의 절망적이구만."


사진 설명: 급하게 철로보수를 하고 있는 러시아 인부들입니다. 탈환한 지역의 청장년은 병사로 징집하고 군인으로 부적합한 사람들은 모두 전선복구에 동원되었습니다. 

반격에 성공하는 시점부터 정치위원을 비롯한 관료들이 파견되어 탈환지역의 총동원을 유기적으로 조직합니다. 


9 21, 감청된 통신문 한 장이 제8군 뵐러 장군의 책상에 전달되었다. "차파예프(Chapayev) 그룹"으로 서명된 이 통신문은 파르티잔이 카네프 북쪽의 드니에페르 강변에 독일군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고하는 내용이었다.

통신문 그대로였다. 독일군 파르티잔 토벌부대를 제외하고는, 그리고로프카(Grigorovka)와 르지쉬체프(Rzhishchev) 사이에는 독일 수비군이 아예 없었다. 공중정찰에 따르면 러시아 선봉부대가 이미 이 지역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바투틴은 카네프 북쪽을 그대로 기습할 생각인가? 지난 몇 개월 동안의 바투틴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 인물이었다. 24 기갑군단이 아무리 빨라도 날아올 수는 없다. 9 22일에 러시아군이 도강을 하고 24 기갑군단이 제시간에 오지 못한다면?

8군 참모장인 스파이델(Speidel) 장군이, 카네프 남부의 체르카시에 남부집단군 무기훈련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10 30, 훈련병들은 즉시 무기를 가지고 집합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트럭에 탑승했다. 


러시아 방위군 세멘노프(Semenov) 일병은 강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의 옆에는 파르티잔이 몸을 숙이고 있었다. "배는 어디에 있죠?"

"강변 아래 저기 갈대 밑에 숨겨두었습니다."

"그럼 갑시다." 세멘노프가 해오라기 울음소리를 세 번 내자, 갈대 속에서 이반노프(Ivanov), 페투코프(Petukhov), 시솔랴틴(Sysolyatin) 세 명의 병사가 기어나와 다가왔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신들의 발자욱 한 걸음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 지 몰랐다. 자신의 이름이 전사에 영원히 기록되리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들은 러시아군 최초로 드니에페르 강을 건너게 된다.


사진 설명: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닙니다만 딱 맞아떨어지게 4명의 러시아군이 적진을 살피고 있어서 스캔했습니다. 실제 주인공으로 나중에 연출된 사진일 수도 있습니다. 그냥 그들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갑시다^^;


차파예프 파르티잔은 그리고로프카 서쪽 강변에 독일군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바투틴에게 알렸고, 그렇지 않아도 도강지점을 찾고 있던 바투틴은 리발코(Rybalko) 장군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리발코는 제51 방위군 전차여단에 직접 달려가 "지휘관 동지. 혹시 강에 가 있는 선발대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 (Da-). 몇 명이 있습니다."

"그럼 즉시 강을 건너라고 하시오." 아주 간단한 이 명령으로 드니에페르 전투는 러시아군으로 기울게 된다.

"공병과 도강 장비가 아직 없습니다."

"지금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오. 뗏목을 만들던 아니면 헤엄치던 바로 가게 하시오. 알겠소?"

정말로 51 방위군 전차여단은 뗏목을 타거나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너게 된다.

여단의 기관총 중대 지휘관 시나쉬킨(Sinashkin) 중위는 그리고로프카와 자루벤트시(Zarubentsy) 마을 사이를 도강하라는 명령을 받고 세멘노프, 이반노프, 페투코프, 시솔라틴 4명의 자원병을 뽑아 강을 건너 정찰하게 시켰다.

"더 힘껏 노를 젖지 않으면 떠내려 갑니다. 더 힘껏."

5명은 마을에서 180m 북쪽에 내려 독일군 초병과 총격전을 벌여 본격적인 도강지점이 이곳인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적이다. 즉시 전투준비" 독일군 하사관이 막사에 소리쳤다. 징벌중대(Punitive Company-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군복부로 수형을 대신하는 부대) 1개 소대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1개 소대가 그리고로프카에 있는 수비병 전부였다5명은 이러 저리 뛰어다니며 총을 마구 쏴대 마치 대대 전체가 마을을 공격한다는 혼란을 일으켰다.

이들이 전투를 벌이는 동안 기관총 중대와 120명의 파르티잔은 북쪽으로 1km 떨어진 자루벤트시 바로 아래로 건너고 있었다. 그들에게 공병이나 도강장비가 없다고 했는데? 그들은 널빤지와 막대를 긁어모아 못질을 하고 거기에 드럼통을 묶어 엉성한 뗏목을 만들고 헤엄을 잘 치는 병사들이 매달려서 도강을 한 것이다. 새벽이 되자, 기관총 중대는 자루벤트시와 그리로로프카에서 독일군 초병들을 몰아냈다.


사진 설명: 독일군을 밀어낸 러시아군입니다. 여름에는 시체썩는 것때문에 바로 치우기 마련인데, 독일군 시체가 그대로 있는 것으로 봐서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9 22일 오전에 러시아군은 카네프 북쪽에서 드니에페르 강을 건넜고 이 지역을 방어하기로 되어 있던 독일 제24 기갑군단이 여전히 강도 못 건너고 있는 판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여단병력이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카네프에서 키에프 남동쪽까지 어떤 독일군 부대도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군은 무인지경으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9 22일 같은 시간에 러시아 제13군이 200km 북쪽의 체르니고프(Chernigov)에서 도강을 해 남부집단군과 중앙집단군 사이를 파고 들었다. 이곳은 광활한 습지대여서 도강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 여파가 더 컸다. 9월 중순부터 파르티잔이 습지대에 교묘한 통로를 가설해둔 덕분에 러시아군은 순식간에 도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9 26, 러시아군은 폴란드 국경을 향한 화살처럼 작은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사진 설명: 습지대를 건너고 있는 파르티잔 부대입니다. 어떤 전투던 장기전에서는 민심확보가 필수적이었는데도, 전략전술의 교과서인 독일군은 히틀러의 광신적 쇼비니즘때문에 모든 점렴지에서 민심을 잃고 저항부대가 일어나게 만듭니다.  


파르티잔에 대한 사진 세 장을 더 올립니다. 

러시아 정규군 포로도 사람취급을 안한 독일군인데, 일종의 스파이인 파르티잔이 잡히면 100% 사형이었죠.

사진의 여성 파르티잔은 건물에 불을 지른 혐의로 사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고문 등으로 가슴이 잘린 여성 파르티잔이나 마을 입구에 목이 매달린 채 경고용으로 전시된 파르티잔의 사진은 독립군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전술적 실패가 아니더라도 질 수 밖에 없는 전쟁임을 느끼게 하는 사진입니다. 

3대가 파르티잔인 집안입니다. 아마도 아들과 손자는 정규군으로 징집되었거나 독일군에게 피살되었겠죠 .





여성으로만 구성된 파르티잔 부대입니다. 

뒷짐진 분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은데, 군복을 입은 분들은 모스크바에서 잠입한 정치위원이거나 전투에서 패해 합류한 정규군으로 보입니다. 

무장상태가 상당히 좋은 것으로 봐서 연출된 사진으로 보입니다. 



독일군 제2, 8, 12 기갑사단과 제20 기갑척탄병사단의 혼성부대가 드니에페르-프리페트(Pripet) 삼각지의 교두보가 더 확장되지 않게 막아나섰고 다른 전선에서 빼온 보병사단으로 더 이상의 구멍이 나지 않게 응급처방을 했지만, 중앙집단군과 남부집단군 사이의 구멍은 곧 헬게이트가 될 것은 분명했다.

프리레트 강하구도 급했지만 그리고로프카를 장악하는데 성공한 시나쉬킨 기관총 중대의 교두보, 부르킨(Burkin) 교두보가 훨씬 위급했다.

9 22일 오전까지만 해도, 이 작은 어부마을에 관심을 보인 참모는 아무도 없었다. 오전 11, 체르카시의 무기훈련장에 전화벨이 울렸다. 8군의 뵐러 장군은 "어제 카네프에 몇 명이나 보냈나?"라고 물었다.

"120명의 훈련병입니다. 장군님."

"겨우 120?... 즉시 그 120명을 트럭으로 그리고로프카로 이동시키게. 강을 건넌 적을 다시 강에 밀어넣어야 하네."

8군이 부르킨 교두보를 봉쇄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라고는 120명의 훈련병뿐이었다. 24기갑사단이 있어도 부족한 자리에 120명의 훈련병이라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12시간 후면 기갑사단이 도착하겠지만 그 시간 동안이면 훨씬 더 많은 러시아군이 건너올 것이다.

이리 저리 전화를 돌린 끝에 작은 희망을 찾아냈다. 19 기갑사단이 21일에 강을 건넜고 키에프 근처에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기갑정찰대대가 점심을 먹던 중에 "전원 승차!"라는 명령을 받고 남부집단군의 운명이 걸린 장소로 급하게 출발했다. 멘츠(Mentz) 소령의 하노버(Hanover)73 기갑척탄병연대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전체 사단이 출발했다.

키에프에서 그리고로프카까지는 겨우 100km 거리였다. 겨우 2시간 반 거리. 8군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150분이었다. 러시아군 사령부는 이 기회를 잘 살려서 로사바(Rossava)까지 교두보를 확장하고 제8군과 제4기갑군 사이에 쐐기를 박아 넣을 수 있을 것인가?

9 22일 저녁 7 30, 뵐러의 통지문이 동쪽 제방의 프로크호로프카(Prokhorovka)의 네링(Nehring, 24기갑군단 사령관)에게 전달되었다. 가능한 병력은 모두 서쪽 제방으로 전개해서 드니에페르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제19 기갑사단의 정찰대대를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발코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9 23일 오전 네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적 전차 접근중!"이라는 고함을 들었기 때문이다. 10, 20, 30, 44대의 T-34가 드니에페르의 동쪽 제방을 따라 모젤(Moselle) 34 보병사단, 253 척탄병연대의 진지를 향해 맹렬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전차에는 보병이 잔뜩타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리발코는 반대편에서 네링의 도강을 아예 봉쇄해 구원군이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려는 대담한 작전을 펼친 것이다.

며칠 째 치열한 전투를 치룬 253 척탄병연대는 수 백명만 남아있었고 전차 앞에 순식간에 방어선이 무너져 러시아군은 다리를 향해 계속 나아갔다. 다리 전방 몇 km에 제14 중대의 지휘초소가 있었고 아우구스틴(Augustin) 대위에게는 다행히도 한 문의 75mm 대전차포와 3대의 돌격포가 있었다. 주저하지 않고 즉시 중대를 배치해 16대의 전차를 파괴했고 보병은 전차에서 내려 흩어졌다. 파괴되지 않은 전차 중 12대가 즉시 방향을 바꿔 다시 다리를 향했다. 남아있는 대전차총과 소구경 대공포로는 T-34의 중장갑에 아무런 효과가 없으니 다리는 곧 러시아군의 손에 넘어갈 판이었다.

바로 이 때에 군단 사령부의 헤세대령이 있는 대로 긁어모아 제253 보병연대에게 보낸 대전차무기가 도착했다. 히펠(Hippel) 대령은 받은 대전차 무기를 동원해 다가오는 러시아 전차들을 파괴했다. 위기를 벗어난 지 30분도 안되어서 네링에게는 그리고로프카의 제19 기갑사단이 상당히 위급한 상황으로 지원군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지시를 받는다.


그림 설명: 1943년부터 대표적인 대전차개인화기로 자리잡은 팬저파우스트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내려준 신의 선물이라는 RPG의 원형으로, 파괴력은 연합군의 모든 전차를 파괴시킬 정도로 강력하고 사거리 역시 짧지 않았습니다만(집속수류탄, 흡착지뢰, 총류탄은 바로 옆에 가야 했죠), 궤도를 재며 맞춰야 하고 상체를 세워야만 발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차를 엄호하는 보병에게 바로 눈에 띄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 때가 오후 2시였다. 자루벤트시는 이미 러시아군의 손에 넣어갔고 그리고로프카를 놓고 격전 중이었다. 러시아군은 서쪽과 남서쪽을 향해 교두보를 넓히고 있고 페리로 대포와 전차를 옮기고 있었다. 다행히도 네링은 수송부대와 후방지원부대를 며칠 전에 강 건너로 보내뒀기 때문에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전투부대는 신속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레나투스 베버(Weber) 중위는 집으로 보내는 편지에 강을 건넌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9 23일 드니에페르 강을 급하게 건널 때에 스웨덴의 칼(Charles) 12세의 비극이 생각이 났어요. 그는 이 강을 건너지 못해서 1709년에 패잔병을 이끌고 러시아에 항복할 수 밖에 없었죠. 우리는 다행히 철로를 따라 다리를 건너고 있습니다."

 

(우에스기 왈: 제가 정리했던 칼의 원정기에서 잘 나와있듯이 칼은 러시아군에게 항복하지 않고 투르크 제국으로 망명해서 그 군대로 복수전을 펼칩니다. 물론 그의 패잔병은 거의 대부분 러시아의 포로가 되는 것은 맞습니다.

카네프 다리는 이층 구조로 된 다리로 아래층은 트럭으로 철수하는 부대가, 위의 철로에서는 기차로 철수하는 부대가 동시에 건널 수 있게 만든 독특한 다리로 독일군의 뛰어난 기술을 잘 말해줍니다.)

 

연대 별로 다리를 건너고 있었지만 이미 하늘은 러시아군의 하늘이어서 언제라도 공습이 있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러시아 공군은 보이지 않았다. 저녁 9 15, 57 보병사단의 바바리아(Bavaria) 연대가 강을 건너자 마자 다리 양쪽의 강변에 수비선을 펼쳤고 휴식없이 70km를 강행군한 제112 보병사단도 강을 건너 수비선에 합류했다.

동쪽 제방의 후퇴로를 지키던 제10 기갑척탄병사단의 병력들이 새벽 3 30분에 강을 건너자 새벽이 밝아왔다. 네링 장군은 러시아 공군이 단 한 번도 공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다. 설마 바투틴에게 공군지원이 없었던 것인가? 바투틴은 공군지원을 받고 있었다. 2공군 전체가 바투틴에게 배속되어 있었지만 독일군을 공습하기 보다는 드니에페르 강을 건너는 아군을 독일 공군에게서 보호하는 역할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대규모 공격을 위해 공군력을 아껴둔 것이었는데 독일군은 이것을 알 방법이 없었다.

네링은 후퇴하는 대열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은가?"라고 옆에 있던 베버 중위에게 물었다. "1시간 안 걸릴 겁니다. 장군님." 새벽 4 30, 네링이 다리를 건너면서 한 개 군단이 13시간 30분만에 다리를 건너 후퇴하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군단병력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새벽 5, 10 기갑척탄병사단의 사령관인 아우구스트 슈미트가 공병대대의 보프스트(Bopst) 대위와 함께 다리 폭파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 준비되었나?" "예 예정대로 준비되었습니다."

24시간 전만 해도 다리 폭파는 고사하고 24군단 병력이 제대로 다리를 건널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슈미트 장군은 다시 한 번 위로 기어올라가 러시아군이 오지 않는지 확인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폭파시켜!" 공병 하사관이 뇌관을 누르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잔해가 하늘높이 솟구쳤다.

러시아 최고사령부가 왜 이렇게 중요한 다리를 낙하산 부대를 동원해 선점하지 않았는지, 아니 곳곳에 출몰하고 있는 파르티잔 부대를 동원해 점령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슈타인이 드빈스크(Dvinsk)를 기갑전력으로 기습했던 것과 같은 전술을 아직은 배우지 못한 것일까? 러시아군은 사전에 계획된 정교한 작전으로 드니에페르 강의 요충지를 선점하지 않고 즉흥적인 대처를 하고 있었고 그것으로도 이미 승패는 기울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리가 없어도 충분히 도강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여러 지점에서 교두보를 마련했고 독일군의 수비선 전개가 늦어져 큰 피해도 입지 않았다. 9 24일 이후, 러시아군은 로예프(Loyev)에서 자포로즈예에 이르는 700km에 걸쳐 23개의 교두보를 더 마련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한 가지를 계산하지 않았다. 서쪽 강변으로 중대, 대대, 연대급 병력을 속속 투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 작전을 펼칠 정도로 교두보를 마음대로 확장하지는 못했다. 갑작스런 상황전개에 미처 공병을 투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차, 대구경화기, 탄약을 실어 나르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래서 다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인데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

러시아 최고사령부는 계산착오가 있었던 것을 알아채자 마자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로 한다. 동부전선에서 딱 한 번 있었던 대규모의 작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사진 설명: 드니에페르 강을 건너고 있는 러시아군입니다. 


그림 설명: 드니에페르 강은 아니라 좀 더 뒤의 이야기입니다만, 상황이 너무 비슷해서 가져왔습니다.

간단하게 대사를 요약하면

멈춰! 규율을 지켜라!

여기로 와!

내가 데려다 줄께.

소용없어 죽었다.

러시아 전차다. 이제 끝장이다.

장교는 모두 하선한다.

대전차전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