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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터키

장엄왕 술레이만의 원정

by uesgi2003 2011. 8. 21.

이번 이야기는 오토만 투르크 제국의 최전성기였던 장엄왕 술레이만(Suleiman the Magnificent)의 재임기간 동안 있었던 원정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료는 영문 위키에서 가져왔고 제가 가지고 있던 자료로 보완했습니다. 

이번 원정 리스트부터 간단하게 보시고 전편의 비엔나 공성전을 보신 후에 다시 여기로 오시거나, 아예 전편의 이야기부터 보신 후에 원정 리스트를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있는 오토만 제국과 헝가리의 전투 장면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헝가리가 만든 영화라 오토만 군이 마치 야만족처럼 묘사되어 있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당시의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이해하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장엄왕 술레이만의 원정 리스트 

벨그라데(Belgrade)/ 첫 번째 헝가리 원정(Angurus) 1521 5 18~10 19

원정로: Filibe (Plovdiv)–Niš–Belgrade–Semendire (Smederevo)


술레이만이 지휘하는 오토만 군은 정복왕 메흐메드Mehmed the Conqueror가 실패했던 벨그라데 침공준비를 마친다 700명의 수비병밖에 없었고 헝가리의 지원을 받지 못한 벨그라데는 1521 8월에 함락된다.

 

로데스(Rhodes) 1522 6 16~1523 1 30

원정로: Kütahya–Denizli–Rhodes–Alaşehir


5개월의 포위 끝에, 로데스는 항복하고 술레이만은 수비군이 떠나는 것을 허용한다.

로데스 포위는오토만 제국이 로데스 기사단을 섬의 요새에서 몰아내고 동부 지중해를 장악하게 된 두 번째 원정이다. 1522년 여름, 술레이만은 400척의 함대를 파견하고 자신은 100,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소 아시아를 건너 섬의 반대편에 상륙한다. 사진은 로데스 성입니다. 모든 그림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모학스(Mohács)/두 번째 헝가리 원정 1526 4 23~11 13

원정로: Belgrade–Peterwardein (Petrovaradin)–Eszek (Osijek)–Mohács–Ofen (Buda)–Szegedin (Szeged)– Bécse (Bečej)

 

1526 8 29, 모학스 전투에서 헝가리의 조하스(Johas 또는Louis) 2세가 이끄는 기독교 군은 술레이만의 오토만 군에게 패한다.

왕 조하스가 전사하자 합스부르크와 오토만 제국이 서로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왕국에 대한 지배를 주장한다.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귀족은 오스트라이 출신의 대공 페르디난드(Ferdinand) 1세를 왕으로 추대하지만, 오토만 제국은 자폴랴(Zápolya)를 왕으로 임명한다. 헝가리를 완전히 제압한 오토만 제국은 남동 유럽의 절대강자가 된다.

 

비엔나 1529 5 10~1529 12 16

원정로: Mohács–Ofen (Buda)–Komorn (Komárom)–Győr–Vienna

비엔나를 점령하려는 오토만 제국의 첫 번째 원정으로 1529년 실패로 끝난다. 챨스 5세와 형 페르디난드가 통치하던 합스부르크는 부다(Buda)를 탈환하면서 헝가리를 장악하지만, 술레이만은 바로 반격에 나서 부다를 점령하고 다음 해 여름에 비엔나를 포위한다.

실패한 원정이지만, 비엔나 포위는 오토만 제국의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기회가 되었고 세력을 중앙 유럽까지 확장하게 되었다. 이 원정 이후에 자폴랴가 오토만 제국을 대신해 헝가리를 통치하게 되었기 때문에 원정을 성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귄스(Güns-Kőszeg)/독일 원정(터키어로는 Büyük Alman) 1532 4 23~11 21

원정로: Eszek (Osijek)–Babócsa–Rum–Styria–Güns (Kőszeg)–Pettau (Ptuj)–Varaždin–Požega

1532년 비엔나를 점령하려던 두 번째 원정이 실패로 돌아간다. 술레이만은 비엔나로 향하는 정상경로 대신에 오시제크(Osijek)에서 드라바(Drava) 강을 건넌 후에 페르디난드가

 장악하고 있던 헝가리 영토가 있는 서쪽으로 향한다. 몇 군데 작은 요새를 점령한 후에 귄스라는 국경도시를 포위한다. 일부 자료는 술레이만이 도시 점령에 실패했다고 하지만, 도시 사령관이었던 크로아티아인 니콜라 주리시크(Nikola Jurišić)가 항복조건을 제시했다는 설도 있다. 두 가지 설 모두에서는 술레이만이 8월의 폭우가 쏟아지기 전에 철수했다고 한다.

술레이만의 진격이 귄스에서 멈추고 비엔나를 점령하지 못했지만, 페르디난드와 찰스 왕이 야전을 회피했고, 술레이만은 여러 요새를 점령해서 헝가리의 통제를 강화시켰다.

오토만 제국이 철수하자 마자, 페르디난드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초토화된 영토를 탈환한다. 1년 후에 페르디난드와 평화협정을 맺어, 자폴랴를 헝가리 왕으로 확정 짓고 페르디난드가 장악한 영토에 대해서는 그의 권한을 인정한다.

 

페르시아/이라크 1534 6 11~1536 1 8

원정로: Konya–Sivas–Erzurum–Erciş–Tabriz–Sultaniye (Soltaniyeh)–Dargazin–Qasr-e Shirin–Baghdad–Irbil (Arbil)–Zagros–Tabriz–Khoy–Lake Van–Amid–Urfa (Şanlıurfa)–Aleppo–Adana–Konya–Istanbul


오토만 제국과 사파비드(Safavid) 왕조 간의 전쟁(1532-1555)의 일환으로 술레이만이 바그다드를 점령한다. 사파피드 수비군이 도시를 비웠기 때문에 전투없이 바그다드를 점령할 수 있었다.   

 

코르푸(Corfu)/아풀리아(Apulia) 1537 5 17~1537 11 22

원정로: Filibe (Plovdiv)–Uskup (Skoplje)–Elbasan–Avlonya (Vlorë)–Corfu–Manastir (Bitola)–Selanik (Thessaloniki)

프랑스-오토만 동맹의 일환으로, 오토만 제국은 남부 이탈리아의 아풀리아를 침공한다. 오토만 제국이 이탈리아를 공포에 몰아 넣었지만 오트란토(Otranto)와 브린디시(Brindisi)는 항복하지 않았고 프랑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술레이만은 원정을 포기하고 베네치아가 지배하던 코르푸 섬을 포위한다. 이렇게 해서 오토만-베네치아 전쟁(1537~1540)이 발발하고 오토만 제국은 코르푸 섬을 점령하지 못한다.

 

몰다비아(Moldavia)/블랙 보그단(Black Bogdan)  1538 7 9~11 27

원정로: Babadaği (Babadag)–Jassy (Iaşi)–Suceava

1538, 술레이만은 몰다비아를 침공한다. 피터 라레스 4세 왕자는 트란실바이나로 도망치고 술레이만은 몰다비아의 수도 자비(Jassy) 등 주요 도시를 점령한다. 그는 스테판을 몰다비아의 왕으로 임명하고 수세아바(Suceava)와 베사라비아(Bessarabia)를 병합한다.

 

헝가리/부다(Buda) 1541 6 20~1541 11 27

원정로Ofen (Buda)

자폴랴가 죽자, 페르디난드는 헝가리를 침공한다. 합스부르크가 부다를 포위하자 술레이만이 구원군을 직접 이끌고 부다에서 합스부르크 군에 승리를 이끈다. 술레이만은 헝가리를 오토만 제국에 병합하고 그 동안 헝가리를 통치했던 이사벨라((Isabella)를 트란실바니아의 섭정 여왕으로 임명한다.




 

헝가리/그란(Gran) 1543 4 23~11 16

원정로: Eszek (Osijek)–Siklós–Ofen (Buda)–Gran (Esztergom)–Tata–Pest

1543 4, 페르디난드가 2년 전에 침공해 탈환했던 헝가리 도시를 술레이만이 공략한다. 1543 8, 오토만 제국은 그란을 포위하는데 성공하고 3개의 헝가리 도시를 점령해서 부다를 보다 안전하게 만든다.

 

페르시아/이란 1548 3 29~1549 12 21

원정로: Tabriz–Van–Muş–Bitlis–Amid (Diyarbakır)–Ergani–Harput (Elâzığ)–Amid–Urfa–Birecik–Aleppo–Hama–Hims–Antioch

오토만-사파비드 전쟁 기간 중, 페르시아는 오토만 제국을 배후에서 공격하곤 했다. 술레이만은 이런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사파비드 왕조에 대한 두 번째 원정에 나선다. 술레이만은 타브리즈(Tabriz)와 페르시아 아르메니아를 점령하고, (Van)과 조르지아(Gerogia) 요새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원정을 중단한다.

 

페르시아/나크흐치반(Nakhchivan) 1553 8 28~1555 7 31

원정로: Kütahya–Ereğli (where Suleiman executed prince Mustafa)–Aleppo (for the winter)–Amid (Diyarbakır)–Erzurum–Kars–Karabağ (Nagorno-Karabakh)–Nahçıvan (Nakhchivan)–Erzurum–Sivas–Amasya (second winter)

술레이만은 사파비드 왕조에 대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원정을 시작한다. 오토만 제국은 1555년의 아마샤 조약에 따라 획득한 영토를 인정받고 바그다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의 메소포타미아 남부, 페르시아만 해변을 완전히 장악한다.

 

스지게트바르(Szigetvár) 1566 5 1~9 6

원정로: Siklós–Pécs–Szigetvár(on 6 September the Suleiman died)

오토만 군이 비엔나를 향해 전진하던 중에 시클로스(Siklos)의 투르크 주둔지가 크로아티아 사령관 즈링스키(Zrinski) 공격을 받은 것을 알게 된 술레이만은 즈링스키의 요새를 공격해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기로 마음 먹는다. 즈링스키는 마지막 돌격에서 전사하고 술레이만은 오토만 제국이 승리를 거두기 하루 전에 텐트에서 사망한다. 스지게트바르의 저항으로 일정이 지연된 오토만 제국은 비엔나 공격을 연기한다. 일정이 지연되지 않았다면 술레이만의 사망과 상관없이 비엔나를 포위했을 것이다.

즈링스키가 마지막 공격에 나서고 있다.






이제 재미있는 영화를 보실 차례입니다.

먼저 모학스 전투인데, 게임 그래픽으로 만들어졌지만 왠만한 영화보다 나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에 등장하는 기사가 무모한 전투를 벌였던 조하스 왕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부터는 모두 헝가리 전투입니다. 아마도 술레이만의 마지막 원정이었던 스지게트바르 전투 또는 그 이전에 있었던 헝가리의 독립전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