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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지옥에서 쓴 일기 - 한스 로스의 동부전선 일기 (3부)

by uesgi2003 2015. 10. 4.


한스 로스의 부대는 스탈린그라드에서 간신히 살아나서 오렐까지 소련군에게 쫓기며 후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쪽에서는 만슈타인의 병력이 대대적인 반격으로 소련군의 추격을 궤멸시키지만 한스 로스는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고 계속 지리멸렬한 상태로 오렐까지 후퇴하는 중입니다. 


개인의 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딱딱한 표현이 많은데, 독일어를 영어번역한 자료도 상당히 딱딱한데다가 가능한 한 그대로 여러분에게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부드러운 의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27.

이튿날 수미Sumy방향으로 계속 행군했다. 눈덮인 거리에는 후퇴하는 헝가리군이 가득했다. 썰매와 전차 행렬이 끝이 없이 이어졌다. 얼마나 비참하던지! 그들은 무표정하게 눈 위로 천천히 걸었는데 발은 누더기로 감쌌고 하이킹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일부는 오래 전에 소총을 버렸는지 빈 소총덮개만 가지고 있었다.

아마 소총을 팔아먹었을 거다! 썰매에는 훔치거나 거래한 물건이 실려 있었다. 병사가 아닌 잡부에 불과했다.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으니 누굴 욕할 수도 없다.



죽은 전우를 떠나보내는 헝가리군 모습입니다. 기회가 된 김에 헝가리군 그림을 더 추가합니다. 




헝가리군이 스웨덴 전차를 라이센스 생산한 톨디Toldi 경전차 38과 43입니다. 생산량은 수 백대에 불과했고 이탈리아군과 같이 중전차를 보유하지 못해서 동부전선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후가 되자 수미까지 14km 남았다. 춥고 배고팠다. 한풍이 뼈마디까지 파고들었다. 14km만 더 가면 따뜻한 거처에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우측에는 마을이, 좌측에는 숲이 있었는데 나무 위로 적색 태양이 떠있었다. 이 지역에는 숲이 드물기 때문에 평화로운 고향이 생각났다. 어느 누구도 향수병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나는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갑자기 잔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머리 위로 큰 폭발음이 터졌다. 숲 끝에서 섬광이 올라오더니 그 너머의 마을에서도 연이어 터졌다. 차창에 3발이 맞더니 양옆으로 파편이 떨어졌다. 차에서 급하게 나가 헝가리군의 마지막 차 옆에 몸을 숨겼다. 우리 앞에는 아군 차와 트럭이 있었고 헝가리군은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들은 아예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총을 쏘지 않았다! 비명, 기관총 사격음, 박격포탄음, 대전차포음으로 정신이 없었다.

 

우리 트럭 2대가 눈길 옆으로 벗어나려고 하는데 헝가리군 썰매가 도로를 막았다. 말 엉덩이를 때리고 초인적인 힘으로 밀어서 썰매를 끌어냈다. 덕분에 우리는 소총과 포의 좋은 사냥감이 되었다. 정신없이 달려 트럭에 다시 탔고 첫 번째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관총탄이 트럭 본네트를 훑었고 전우의 손이 소총탄에 반토막났다.

트럭이 간신히 움직였지만 우리 앞에서 포탄이 터졌고 2cm 대전차총탄이 도로 옆에 떨어졌다! 빌어먹을 개자식들! 나는 사이드스텝에 올라서서 주변을 보았다! 본네트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왔다. 연료에 불이 붙었다!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 두 번째 트럭도 주저 앉았고 앞은 불타는 포드 트럭이 막고 있었다.

 

이제 죽기살기로 뛰어야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눈길을 뛰었고 주변에 탄이 쏟아졌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마을에 도착했다. 믿을 수 없었다. 우리 6명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신께서 보살펴주신다!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고 숲에는 200명 정도의 파르티잔이나 적군의 발자국이 보였다. 우리가 확인할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가보니 눈이 다시 덮였는데도 끔찍했다. 부서진 썰매, 트럭, , 죽은 말, 80명 정도의 헝가리군 시체가 있었다. 벌집이 된 아군 차도 있었다.

근처 폐허 중간에도 아군 트럭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방향을 알 수 있었다. 파편을 맞은 하사와 사병시체가 있었다. 우리 트럭을 찾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적군이 트럭을 뒤졌지만 중요 문서는 그대로 두었다. 적재칸과 본네트가 완전히 망가졌지만 엔진시동이 걸렸다.

 

두 번째 트럭은 완전히 불타 검은 뼈대만 남았다. 저녁에 수비에 도착했고 안도감도 잠시뿐이었다. 수미도 남쪽에서 공격을 받고 있었다. 서쪽 멀리에서는 이미 적군이 쿠르스크와 키에프 중간의 롬니Romny에 접근 중이었다.

 

피곤한 발을 이끌고 눈길을 걸었다. 비쩍 마른 말들이 6대의 썰매를 끌었고 첫 번째에는 아크자Akja(사진 참조)가 달려 있었다. 장례식과 같이 조용한 행렬이었다. 아크자에는 귀중한 짐, 소대장의 시체가 있었다. 우리는 전우애를 기리며 18일 밤낮을 시체와 함께 지냈다. 적이 공격하면 시체를 엄폐물로 응사했다.

우리는 결국 적군 포위망을 벗어났는데 여전히 소대장을 데리고 있었고 너무 자랑스럽다!



처음 사진에서는 영국이 소련에 제공한 발렌타인 전차가 보이는군요. 소련군은 미군과 영국군의 전차에 대해 무척 안 좋은 평가를 했고 실제로도 전투력이 많이 부족했죠.

 

멈출 수 없었다. 하리코프Kharkov도 적의 압박에 못 이겨 포기했다. 대형 저장고와 건물을 폭파했고 차르제정시대의 아름다운 대저택도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참 난감합니다. 영어로는 하르코프, 러시아어로는 하리코프, 우크라이나에서는 카리프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발음혼선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하리코프를 많이 사용하니까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하리코프는 우크라이나 수도에 이어 2번째 대도시이고 소련 전체에서도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에 이어 3번째 공업도시였습니다. 그래서 4차례나 공방전이 벌어졌을 정도로 치열한 격전지였습니다.

 

스탈린그라드-로스토프-하리코프, 이제 이 거대 삼각지는 적에게 넘어갔다. 우리는 모든 마을과 도시를 필사적으로 방어했지만 적이 너무 강했다. 몇 시간의 격전만 벌이고 퇴각해야 했다. 강력한 적만큼이나 비통한 마음이 우리를 짓눌렀다.

영하 40도에 눈이 목까지 찼다. 겁먹고 탈진한 말들이 이제는 빈 썰매도 끌지 못한다. 우리 부대는 매일 줄어들고 있고 겨우 절반만 싸울 수 있다. 동상걸린 부상병도 소총을 집고 있다. 그들이 눈을 헤치며 비틀거릴 때마다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눈보라 속에서 쓰러졌을 때에 발견하지 못하면 그대로 사라진다.

 

사방에 적군의 전차가 들이닥친다. 도로 양쪽에서 갑자기 나타나 대혼란이 벌어지면 우리 스투카가 재빨리 나타나 구원해준다.

우리는 눈을 헤치고 걸어갔다.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손발이 얼어붙어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다. 전차포탄의 파편이나 적의 소총탄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다.

 

북동쪽으로 퇴각 중인 다른 분대를 만났다. 그들도 우리처럼 큰 피해를 입었지만 합치고 나니 상당한 병력이 되었다. 낮에는 교대해서 전투를 벌이거나 잠을 잤다. 밤에는 적이 점령한 마을에 침투했다. 식량이나 탄약이 부족했지만 반가운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남쪽에서 신규 사단들이 공격준비 중이라고 한다.



히틀러는 특유의 광기를 부리며 하리코프를 사수하라고 명령해서 제2의 스탈린그라드가 될 뻔 했지만 만슈타인은 하리코프를 버리고 전력을 무사히 이동시켜서 중앙군집단(또는 집단군)과 남부군집단을 구해냈습니다. 



하리코프를 내줬으니 가만히 있을 히틀러가 아니었죠. 하우저부터 만슈타인까지 모두 내쫓을 생각으로 날아왔지만 현장에서 본 상황이 암울한데다가 불과 50km 정도 밖까지 소련군이 다가오자 만슈타인의 계획에 동의하고 다시 날아갔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부터 벌어진 간극은 계속 이어졌고 결국 2차대전 최고의 명장이 해임됩니다. 



실제로 한스 로스가 끝없는 후퇴를 하는 중에 2차대전 최고의 명장 만슈타인의 대반격이 시작되었고 유인작전에 말린 소련군 52개 사단을 격파해 스탈린그라드 참패를 간신히 만회했습니다

52개 사단이라니?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을텐데, 원래 급하게 모은 병력인데다가 아직 전력이 대단했던 추축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이며 추격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단이 절반도 안되는 병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피해는 10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독일군의 기동전략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입증했고 소련군, 특히 스탈린은 전선의 지휘관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됩니다. 반대로 히틀러는 더욱 광기를 부리는 계기가 되죠. 



롬멜이 매체노출을 즐겨 과장된 평가를 받는 반면에 반대로 만슈타인은 이런 평범한 모습으로 오히려 평가절하되고 있습니다. 아들과의 모습인데 전설적인 명장의 위엄은 보이지 않죠?

만슈타인의 전기를 번역출간하고 싶은데... 계획대로 안되네요.

 

(중략)

 

우리는 기름통 주변에 앉아서 기분좋은 열기를 만끽하고 있다. 오늘 아침 소련군의 마지막 포위망을 돌파했다. 고속도로에 죽은 말 옆에 숨었더니 군복에 짙은 피가 스며들었다. 스텝에서 왔을 작고 통통한 말들이 우리 목숨을 살려주었는데.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지. 과거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조용히 앉아서 차갑게 언 손을 불가에 대고 우리 몸에 천천히 퍼지는 온기만 느끼면 그만이다. 그리고 서로를 보며 웃음 짓는다. 겨울추위라고? 공포라고? 이미 그런 것은 상관이 없다.

밖에서는 죽음이 거리마다 쫓아다닌다. 소련군의 중화기가 도시 북부를 두들기고 있지만 이글거리는 기름통 옆에 앉아서 웃으려고 애쓰고 있다. 안전해지니까 고향이 그리워진다. 용감한 우리 사단에 합류하고 싶다. 그들이 용맹스럽게 싸웠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어떻게 오렐Orel까지 가야 할지가 더 큰 문제다. 약간의 술수와 담배로 북쪽행 열차에 자리를 구했다. 여행 중에도 고난은 끝날 줄 몰랐고 동부전선은 이제 끝났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젠장이라는 욕은 장성이나 사병이나 모두 사용하는 말이고 이제는 러시아인까지도 잘 사용한다. 젠장이라는 욕으로 전쟁의 모든 상황을 말할 수 있다. 실망, 분노, 조바심과 무기력 말이다. 그렇지만 죽음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약간의 유머로 분위기를 가볍게 할 수 있다.

밥을 못 먹어도, 차가 진흙이나 눈에 빠져도, 진지교대를 했는데 기관총이 얼어붙은 상태여도, 고향에서 온 편지를 못 받아도, 젠장! 한 마디만 하면 된다.

 

고멜Gomel2시간 동안 머물렀다. 영광의 이탈리아 제8 군이 있었는데 그리 반가운 재회는 아니었다. 소문에 따르면 일부는 2년 동안 휴가를 가지 못했고 연대 여러 개가 전멸했다고 한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교훈이 되었을 거다. (독일군이 이탈리아 동맹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탈리아군이 맡은 전선은 쉽게 무너졌습니다.) 



이탈리아군은 행군사진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인데, 종전 후에 집으로 향하는 길도 독일군과 달리 무척 가볍습니다. 그리스전투와 북아프리카전선도 이탈리아군때문에 독일이 끌려들어가 큰 피해를 입었었고, 스탈린그라드에서 큰 피해를 입은 후에 본국으로 탈출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반 병사들의 감정이 상당히 안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