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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지옥에서 쓴 일기 - 한스 로스의 동부전선 일기 (5부)

by uesgi2003 2015. 10. 12.


유신독재를 그리워하는 무리들이 국정교과서, 아니 올바른교과서로 과거세탁을 시작하겠다는군요. 김무성이 가장 앞장을 서고 있던데 누구보다 다급하겠죠. 


국민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장학관이라는 군사정권 앞잡이 앞에서 국민학생도 행진과 사열을 했는데, 연습시간에 발이 틀렸다고 운동장에서 뺨맞고 쓰러졌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 때 선생의 광기어린 얼굴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국가(정말? 군사정권!)에 헌신한다는 국민교육헌장을 단 한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어야만 했습니다. 저야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많은 아이들이 집에도 못가고 구타당해 울고불고 했었죠. 


고등학교에서도 학생용 군복을 입고 온갖 군사훈련을 받았죠. 역시 구타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올바른 교과서라...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만장일치로 선출하고 국민의 생각을 옭아매고 입을 막았던 그 시절이 그렇게도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과거가 부끄러우면 지금이라도 올바르면 됩니다. 지금이라도 올바르면 과거에 대해 묻지 않습니다. 부끄러운 과거에 덧칠하며 자랑스러워 하니까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쓴 일기 - 한스 로스의 동부전선 일기 (5부)


구멍투성이 창문을 수리하고, 부숴진 벽을 세우고 지붕을 다시 올렸다. 바뷰슈카Babushka와 아이들이 새벽부터 황혼까지 일한다. 저녁에는 대가족이 난로주변에 모이거나 바닥에 앉는다. 마을 외곽에 우리 탄약창이 있다. 이반Ivan놈들이 오랜 동안 보이지 않은데다가 위장이 잘 되어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

눈이 아주 부드러워졌지만 바람은 여전히 매섭다. 밤에는 짚침대로 기어들어가 곯아떨어진다. 러시아 집주인을 불러서 땔감을 넣어달라고 해야 하는데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참는다. 집주인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 감자저장고에 숨었는데 우리가 찾아내자 순한 웃음을 짓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을 깨우는 놈은 무조건 쏴죽이겠다고 맹세했는데 갑자기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창문파편이 몸위로 쏟아졌다. 진흙벽에는 손바닥만한 구멍이 났다. 사방에 진동과 굉음이 넘쳤다. 이반의 전폭기가 밤 2시에 날아들었다. 폭탄을 35개까지 셌다. 마을 1/3이 날아갔다. 그렇지만 탄약창은 안전했다. 만약 거기를 건드렸다면 마을 전체가 날아갔을 것이다.

아침이 되자 마을 주민전체가 나타나서는 집을 다시 수리하기 시작했다. 그 후 3일 동안 부엌에서 밤을 지새우고는 감자창고로 모습을 감췄다. 우리도 그들이 하는 대로 소지품을 챙겨 감자굴에 숨었다.



연두색이 이번 이야기 상황입니다. 오렐 아래에 대대적인 공격이 보이죠?

 

오늘밤 폭격기가 다시 와서 나머지를 모두 불태웠다. 이번에는 탄약창도 폭발해서 마을이 완전히 날아갔다. 다시 한 번 러시아 민간인의 정보망에 놀랐다. 그들은 소련군과 비밀통신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GFP(비밀경찰)이 통신망을 알아내려고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전방으로 향할 트럭이 줄지어 서면서 나는 도로 위에 몇 시간 동안 있었다. 소대가 행군하고 포대가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걸을 때마다 야전삽이 개스마스크에 부딪쳐 소리가 났다. 말을 탄 병사가 달려갔고 누군가가 몇 시인지를 물었다. 2시였다. 근처에서는 차를 끓이고 있다. 럼을 넣은 차냄새가 도로에 퍼졌다.

전방은 굉음과 함께 섬광이 하늘을 밝혔다. 중포의 포격이었다. 중간 중간 마치 회중시계 초침처럼 기관총의 탁탁탁 소리가 들렸다. 3시가 되어서야 소대트럭이 도착했다. 이반의 공격으로 늦었다고 한다.

 

평화롭게 담배를 즐긴 후에 출발했다. 도로는 갈수록 구멍투성이로 엉망이었다. 포격거리까지 들어서자 도로가 흔들렸다. 트럭이 급히 후진했는데 뒤에 있던 누군가가 탄약트럭이 맞았다고 소리질렀다.

마을 외곽에서 적의 포탄이 날아드는 밝은 탄흔이 보였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정지! 적의 포격이다! 엄폐하라!” 땅에 둔탁한 쿵소리가 여러 번 울렸다. 우리는 땅에 바짝 엎드렸다. 파편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고 곧바로 다음 포격음이 들렸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속 진격해야 했다.

 

나무를 깔아놓은 임시도로에 이르렀는데 최악이었다. 양쪽에 수 많은 포탄구멍이 있었고 다시 공격을 받았다. 땅에서는 포탄이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전투기의 기총소사가 쏟아졌다.

블라슈카토보 마을은 불타는 헛간, 굴뚝만 서 있는 집, 죽은 시체의 역겨운 악취만 남아있었다. 목표지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오전 520, 우리 소대가 자리잡았는데 두 명의 전우가 실종되었다.

 

진흙 계절! 밝은 햇빛이 눈과 겨울바람을 스텝에서 몰아내더니 3일 만에 해빙이 시작되었다. 4일째에는 모든 땅이 진흙과 뻘층으로 변할 정도로 기온이 올라갔다. 지난 주말에는 녹은 물이 무릎까지 차 올랐고 개울과 정원을 넘쳐 흘렀다. 주변도 호수처럼 변했다. 차량은 주저 앉았고 차 한 대를 빼내는데 3~4일이나 걸렸지만 한 시간도 못 갔다.

 

부츠가 늦지 않게 도착해서 다행이다. 덕분에 차가운 물을 막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양서류처럼 살 준비를 하고 있다. 작년과 같이 일반질병용 약을 배급받았다. 날씨가 끔찍한 판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을 받았다.

요즘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신장비를 갖춘 깨끗한 얼굴의 젊은 대대가 도착했다. 부츠는 광이 났고 야전식기는 사용한 흔적도 없었다. 정말 놀라운 일은, 3~4줄을 맞춰 걸으며 노래를 부른다! 엉망이 된 벙커와 오두막에서 나온 전우들이 마치 기적을 본 것처럼 어리둥절해 했다.

우리는 더러운 위장복을 걸친 채로 수염이 덮수룩한 얼굴을 매만졌다. 그들이 십자가가 있는 작은 무덤터를 지나면서 노래소리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물에 젖은 더러운 부츠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잔인한 농담을 던졌다. “쟤네도 금방 노래를 안 부르게 될 거야그렇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고 맞받아치지도 않았다.

고향에서 온 젊은 전우들이 2~3km 더 걸어서 배치될 거다. 소총을 손에 들어서 식기와 부딪치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겠지. 바지나 코트주머니에 있는 것을 모두 꺼내 상의주머니에 넣으라는 명령을 받으면 어리둥절할 거다. 왜 그러는지를 알게 되면 뼛속까지 떨겠지. 우리가 참호에 들어갈 때에도 같은 명령을 받았었다. 얼음물이 허리까지 차 올랐고 부츠안으로도 물이 들어왔다. 바지는 허벅지에 달라붙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견뎌내겠지. 벙커난로의 열기를 즐기다가 군복이 진흙투성이가 되면 그 때에는 우리와 구분되지 않겠지.

 

(중략)

 

밤새 신선한 바람이 불더니 태양을 가리던 구름을 날려보냈다. 일주일 만에 우리를 패배자로 만들었던 물과 진흙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아직은 봄의 기적을 믿을 수 없다. 마른 도로를 따라 피어있는 먼지구름을 보면 아직은 의심쩍다. 아마도 자연이 우리와 잔인한 장난을 하나보다. 그래도 봄이 이렇게 기분 좋게 와서 기쁘다.

 

우리지역은 이제 조용하다. 가끔 포탄도 날아들고 적군 항공기가 공습하지만 벙커는 충분히 튼튼해서 안전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풍우 중간의 햇살같아서 전선의 평화를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이반놈들이 마침내 항복한 것 같다. 가끔씩 한 두 시간은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정도다. 종종 힘들었던 오렐의 겨울전투에 대해 회상하곤 한다.

 

2월 하반기에는 오렐 서쪽에서 주로 전투가 있다가 며칠 뒤부터는 남동쪽에서 극심한 전투가 벌어졌다. 적은 양쪽에 대규모 병력, 전차와 중포를 집결시켰다. 그러니 2월의 차가운 아침부터 포탄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한 번도 내주지 않은 이 지역은 이제 지옥 그 자체였다. 역전의 용사도 이런 전투는 처음이었다. 소련군은 12~20만의 병력, 400대의 전차와 120~150문의 대포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소련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같은 지역을 공격해 돌파한 후에, 독일사단이 압도적인 적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볼쉐비키는 어마어마한 병력을 동원해 북과 남에서 동시에 협공해서 오렐을 가두려 한다.

우리는 최전선의 돌출부인 오렐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스탈린그라드의 용감한 전우와 같은 운명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련군은 남북협공말고도 2군데에도 병력을 배치했다. 고멜근처의 숲지역은 500km 너비의 거대습지로 겨울에는 통과가 불가능했었는데 이제는 수 천명의 파르티잔과 공수부대가 장악하고 있다. 보급이 올 때마다 공격을 받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비참한 최후까지 버티는 것밖에 없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살아남으려면 이곳을 지켜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잃은 것이 없는 사람에게도 힘든 싸움이다. 지금은 모든 것이 간단해졌다. 많은 병사가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동부전선 봄가을 진흙장군의 위력을 볼 수 있는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