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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우크라이나 역사 - 코사크수장국 소멸과 분할 원 자료가 우크라이나 학자이고 우크라이나 역사가 주제이기 때문에 러시아 역사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가볍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복잡하게 얽힌 역사배경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를 제대로 즐긴다면 이런 의문일 들겁니다. '코사크수장국이 사라졌네? 아예 러시아에 합병되었네? 그럼 지금의 우크라이나 넓은 국경선은 누가 그린 것이지? 내전과 격전지인 크림반도와 돈바스는 코사크가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는데???' 우크라이나의 넓은 국경선은 거의 전부 러시아의 역사와 함께 그려졌습니다. 서부 우크라이나는 키이우 루스 - 폴란드 - 리투아니아연방 등의 영토와 역사였으니까 우크라이나의 지분이 상당합니다만... 지금 전쟁의 배경이며 격전지인 지역은 크림칸국의.. 2022. 5. 31.
우크라이나 역사 - 코사크 수장국 (2부) 1595년, 동방정교 주교 2사람이 로마로 먼 길을 떠났고 교황에게 피렌체 공의회Council of Florence와 비슷한 조건으로 자신들을 가톨릭교회 안으로 받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키이우대교구를 로마에게 넘겼다. 1431년, 로마가톨릭이 7번째 공의회를 열고 오스만제국, 동방정교, 교황권위 등을 논의했습니다. 교황, 왕과 주교단은 합의에 만족했지만 콘스탄티 오스트로그스키Kostiantyn Ostrozky공과 같은 이해당사자에게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왕권에 대항하기 위해 동방정교를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사람을 보내 로마로 가는 주교를 납치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었다, 그는 동방정교 귀족과 리투아니아 귀족의 지원을 받아 무장병을 이끌고 브레스트Brest회의로 갔고 왕의 대리인도 무.. 2022. 5. 29.
우크라이나 역사 - 코사크 수장국 (1부) 이제 현대 우크라이나와 직결된 역사배경이 나옵니다. 코사크는 카자크 기타 등등으로 부르는데 저는 코사크로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번 연재는 우크라이나 역사 그리고 우크라이나 학자의 자료를 정리하기 때문에 훨씬 굵직한 러시아 역사와 사건은 아주 가볍게 넘어갑니다. 러시아쪽에서도 코사크족이 정착하고 세력을 넓히고 있었기 때문에 코사크 = 우크라이나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크라이나어를 모르기 때문에 발음에 혼선을 있을 수 있습니다. 1385년, 리투아니아의 대공 조갈리아Jogalia는 폴란드여왕과 조약을 맺고 폴란드왕위에 오르는 대신에 가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였다. 1387년, 연합군은 헝가리군을 몰아내고 갈리키아를 폴란드에 합병했다. 1569년,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Polish-Lithuanian Com.. 2022. 5. 28.
우크라이나 역사 - 몽골침입과 공국소멸 키이우에서 분화된 공국에서, 우크라이나 지역의 공국은 몽골에 대항하고 로마교황과 협력하다가 완전히 소멸되었고, 러시아 지역의 공국이 지역패권을 잡는 계기가 됩니다. 아직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폴란드 등의 역사가 복잡하게 얽힌 상태라 우크라이나의 역사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이렇게 복잡한 배경이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몽골군과 타타르족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타타르족은 몽골 이외의 다른 유목민족도 모두 포함하는 이름입니다. 키이우 루스의 형성시기는 알 수 없어도 소멸시점은 확실했다. 1240년 12월 7일, 몽골이 키이우를 점령했다. 몽골의 침입으로 다시 평원 유목민의 시대가 부활했다.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던 키이우 루스는 사라지고 하자르.. 2022.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