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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146

나폴레옹전쟁 (8부) - 백병전 이번 이야기는 무척 짧습니다. 역시나 우리의 오해와 달리, 당시 전투에서는 백병전이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는군요. 다음에는 기병을 정리할 예정입니다. 모든 보병은 소총총구 주변에 35cm 길이의 총검을 장착했다. 장전과 사격하는데 불편했지만 180cm짜리 창으로 사용해서 기병의 돌격을 막았다. 백병전에도 사용했는데 실제로는 총검부상의 증거가 많지 않아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 1705년 소총은 총구자체를 막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고 나머지도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한 장착방식이었습니다. 라레Larrey의사는 백병전 부상을 조사했는데 119명이 총상인 반면에 총검은 5명과 그쳤고, 1762년 입원부상자 조사에서는 생존가능 부상병 중 2.4%만이 총검부상이었다. 총검은 살상보다는 적에게 공포를 주어 달아나게 만들고.. 2022. 4. 25.
나폴레옹전쟁 (7부) - 전열병 일제사격 당시 보병전술이 우리의 오해와 달리 유연하면서도 복잡했다는 것을 설명했고, 이번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무척 답답하게 생각하던 전열병 일제사격에 대해 설명합니다. 전쟁에 전쟁이 이어지던 시대라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우리가 그랬듯이, 100년 후의 후손들은 우리를 미개하게 생각하는 실수를 반복할겁니다. 사격술 강선총을 무장한 병사는 거의 없었고, 절대다수가 전장식 수발총을 사용했다. 영국군의 소총은 구경이 약간 더 커서 프랑스군의 탄약을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의 소총은 성능보다는 생산성이 우선이었고 어느 소총이나 거의 비슷했다. 소총의 품질보다는 병사의 기량이 더 우선이었다. 정교한 조준보다는 최대한 빨리 장전하고 적을 향해 적당히 조준한 후에 일제사격하는 훈련을 받았다. 부대가 한꺼번에 방아쇠를 당겨야.. 2022. 4. 22.
나폴레옹전쟁 (6부) - 보병대형과 훈련 요즘 꽃심고 잡초 뽑느라 다시 속도가 느려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 2년 동안 많이 뒤집고 다듬은 덕분에 올해는 그 범위가 훨씬 작아졌습니다. 그 당시 유럽군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병과는 보병이었다. 전체전력 중 60~90%를 차지했고 가장 저렴하면서도 변화무쌍한 병과였다. 지휘관은 기병과 포병을 더 원했겠지만 대부분의 전투는 양측의 보병간에 벌어졌고 워털루전투의 나폴레옹처럼 보병이 부족하면 승리할 수 없었다. 보병의 기본단위는 대대이며 300~1,200명으로 편차가 심했는데 보통 500~700명이었다. 살라망카전투에서 영국군 42연대 1대대는 1,079명이었던 반면에 44연대 2대대는 겨우 251명이었다. 전투에 참가한 영국과 독일군 44개 대대 중에 5개는 800명 이상이었고 9개는 400명.. 2022. 4. 17.
나폴레옹전쟁 (5부) - 경보병 산병Skirmisher, 엽병Jager, 경보병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고 있습니다. 경보병은 18세기 말~19세기 초에 크게 활약한 병과였다. 영국과 유럽대륙은 미국독립전쟁 경보병에 큰 관심을 가졌고 프랑스혁명전쟁에서 산병전술은 경직된 구식보병전술을 압도했다. 그렇지만 최근 연구자료를 보면 프랑스산병에 대해 상당히 과장되어 있고 정예산병은 혁명의식에 고취된 신병이 아니라 전문경보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790년대 프랑스군은 산병전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밀집대형보병을 지원하거나 독립적으로 사용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왼쪽이 프랑스 척탄병, 오른쪽이 경보병(볼티죄흐, 도약병)입니다. 척탄병은 원래는 수류탄을 던지고 착검돌격해서 적진을 무너트리는 특수보병이었는데 나폴레옹전쟁에서는 정예보병 정도의 .. 2022.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