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근대146

나폴레옹전쟁 (4부) - 포병운용 요즘 뉴스도 끊고, 데스크탑 PC가 고장나서 게임도 끊으니 전사정리 속도가 붙는군요. 포병은 고전하는 보병을 근접지원하면서 용맹을 발휘했다. 살라망카전투에서, 웰링턴은 다인리Dyneley에게 포 2문을 산정상으로 끌고 올라가 전부 전멸할 때까지 방어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명령을 받으면 전멸이나 수훈, 둘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염려했던 프랑스군의 공격은 없었고 연합군에 공세에 나서면서 포 4문이 더 합류했다. 이제 700m 거리의 산에 있는 프랑스군을 포격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응사하는 프랑스군 포대를 잠재웠다. 포르투갈여단이 프랑스군 진지를 공격해 산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밀려났다. 프랑스군이 반격에 나서자 다인리는 300m 거리에서 산탄을 퍼부어 프랑스군을 막았다. 본대의 .. 2022. 3. 26.
나폴레옹전쟁 (3부) - 포병편제 나폴레옹시대 군대의 3개 병과 중 포병이 가장 규모가 작았고 기병과 보병연대와 연계도 거의 없었다. 포병장교는 포병장교 집안이나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고 기술과 수학지식이 상당해야 했기 때문에 젊은 장교가 기피하는 병과였다. 그래도 프랑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가난하고 어린 포병장교가 결국에는 유럽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포수는 절대적인 자원이었지만 숫자가 일정하지 않았다. 반도전쟁에서 영국군은 포병전력 부족으로 고생했다. 살라망카에서 52,000명 병력 중 54문과 포병 1,186명이 전부로 병력 1,000명 당 1문이었다. 프랑스군은 바그람과 워털루에서 1,000명당 3.3문으로, 전체병력의 11%, 12%가 포병으로 살라망카 연합군 포병비율보다 5배가 많았다. 나폴레옹은 계속 포병을 강화시키고 상당한 .. 2022. 3. 21.
나폴레옹전쟁 (2부) - 전장 나폴레옹전쟁 당시 그리고 그 이후의 보병전술을 보며, 이해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밀집대형으로 상대와 힘대힘으로 맞붙는,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가장 기본적이고 이상적인 보병전술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야기 뒷부분에 원거리 사격전이 불가능한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나폴레옹전쟁 중 최대규모의 전투는 50만명 이상이 1813년 10월 16~19일 동안 벌인 라이프치히전투였고 최소규모는 아마도 바로사Barrosa와 마이다Maida전투로 양측이 1만명 정도를 투입했다. 대부분의 전투에 양측은 5~10만명을 동원했다. 나폴레옹이 대승을 거둔 마렝고, 아우스터리츠, 예나와 프리틀란트전투 모두 10만명 이하였다. 병력이 많을수록 둔하고 통제하기 힘들지만 방어력은 그만큼 높아졌다. 이탈리아와 이베리아반.. 2022. 3. 18.
나폴레옹전쟁 (1부) - 배경설명, 사기와 전투피해 리들리 스콧영감님이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나폴레옹 영화를 촬영 중이라고 해서, 나폴레옹전쟁에 대해 연재를 할 생각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중간에 관심이 다른 곳으로 튀면 중단될 수도 있고요. 주요 전투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하게 정리해두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당시 프랑스와 대프랑스동맹군의 상황, 편제, 무기, 전략과 전술 등에 대해 정리할겁니다. 영감님 벌써 84세인데, 정말 대단합니다. 참고로 하나만 머리에 넣어두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당시 사람들, 특히 전설적인 전략가 나폴레옹은 우리가 오해하듯이 어리석지 않습니다. 겨울에 원정을 떠나지 않았고, 대열을 갖춰 천천히 전진하고 근거리에서 일제사격을 주고 받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나폴레옹전쟁 전문가인 로리 뮤어Rory Muir의 자료를 주로 인용했.. 2022.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