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로 1차대전 직전까지의 코사크 역사를 짧게 끝내고 다음 이야기부터는 주요 헤트만과 투쟁사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그나 저나 신성로마제국과 30년 전쟁은 점점 멀어지는군요...
코사크의 역사 - 코사크의 정체성 확립
러시아군을 도와 아자크를 완전히 점령한 1768년, 돈강 지역은 친러시아와 코사크족이 양립했다. 아자크보다 상류의 로스토프Rostov가 중심지가 되었다. 1749년, 교역용 요새도시로 건설된 로스토프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드니에페르강에 코사크 정착을 위해 건설했던 부그Bug 요새와 비슷한 목적의 도시였다.
18세기 중반의 코사크족입니다.
코사크족은 표트르대제의 지원을 받아 새 영토로 확장하고 러시아인을 받아들여 병력을 늘렸다. 흑해 동쪽 연안의 쿠반Kuban 지역, 카스피해 북쪽의 아스트라한Astrakan 지역, 야이크Yaik(지금의 우랄)강 계곡까지 진출해 야이크강에는 오렌부르크Orenburg를 건설해 러시아제국의 동쪽 진출기지를 마련했다.
아스트라한… 이명박정부의 의심스러운 자원외교로 3,000억원 가량을 날린 곳입니다. 3,000억원이면 명바기가 날린 돈 중에 푼돈에 불과하죠.
그렇지만 예카테리나Catherine여제 시기에는 다시 코사크족의 불만이 끓어 올라 반란으로 이어졌다. 1762~1772년, 약 160건의 농노 반란이 있었는데 모두 귀족의 무자비한 착취 때문에 벌어진 저항이었다.
1773년, 예멜리얀 푸가체프Yemelian Pugachev라는 돈 코사크 병사가 최대규모의 반란을 일으켰다. 표트르 3세 차르(표트르대제의 손자)가 암살되었다고 믿고, 야이크 코사크족, 농노와 구 신앙파Old Believers를 모아 2년에 걸친 내전을 벌였다.
푸가체프는 첫 번째 러시아군을 격파한 후에 더 많은 병력을 모아 오렌부르크로 진격했다. 1774년, 결국 러시아군은 반란군을 진압했고 푸가체프는 달아났다가 동족에게 붙잡혀서 정부에 넘겨졌다. 예카테리나는 반란의 기억을 없애기 위해 야이크를 우랄로 바꿔 부르게 했다.
예멜리얀 푸가체프의 재판장면입니다. 아래는 그의 처형장면입니다.
구신앙파는 표트르대제의 종교개혁에 반발해 오지로 달아난 정통 동방정교 교인들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관용을 베풀다가 점차 가혹한 탄압을 가했습니다.
이런 저런 반란이 있었지만 코사크족은 러시아제국에 충성스러웠고 반란과 충성의 양면성 덕분에 러시아제국의 보호와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러시아제국은 동쪽으로 확장하고 무슬림지역을 합병하면서 코사크족이 첨병과 경찰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아스트라한 칸국을 합병할 때에도 반대편까지 정착한 코사크족에게 경호를 부탁했다.
코사크족이 코카서스산맥과 동부스텝(현재의 카자흐스탄Kazakhstan)에 진출하면서 게릴라전이 벌어졌다. 체첸Chechen과 잉구시Ingush족의 저항이 가장 심했다. 이들은 고원지대 요새에 살면서 조지아 군용고속도로Georgian Military Road를 위협했다.
코사크, 체첸과 잉구시족은 몇 세대에 걸쳐서 주도권을 놓고 분쟁을 벌였다.
조지아와 모스크바를 잇는 조지아 군용고속도로입니다.
쿠반Kuban 고원지대의 체르케스Circassian족도 코사크족과 치열한 분쟁을 벌였다. 이전의 적이었던 크림반도와 아스트라한 칸국과 달리 이들은 스텝보다 산악지대에 살았다. 18세기 후반부터 벌어진 분쟁은 19세기 전반기까지 이어졌고 1864년 러시아-체르카시 전쟁에서 마무리되었다.
쿠반과 돈 코사크족이 주력이 되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코사크족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코사크족은 체르카시족의 털모자(파파하Papakha)와 검(샤슈카Shashka)을 차용했다. 전쟁에서 패한 체르카시족은 저지대에 정착하거나 오스만제국으로 달아났는데 대부분이 아나톨리아Anatolia 부근에 정착했다.
체르카시 전사입니다. 코사크족 아니야? 할텐데, 우리가 아는 코사크족은 체르카시 등의 영향을 받은 후의 모습입니다.
체르카시족이 러시아군을 공격하고 있고 아래는 반대로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체르카시족의 지휘관입니다.
코사크족은 여러 면에서 러시아제국의 확장에 기여했다. 1552년, 예르마크 티모페에비치 알레닌Yermak Timofeyevich Alenin은 이반뇌제를 도와 카잔Kazan칸국을 상대한 후에 시베리아를 탐험했다. 강을 건너고 원주민과 전투를 벌이며 값진 털가죽 산지를 발견했다.
1648년, 세묜 데즈네프Semyon Dezhnev는 베링Bering해협을 건너 미국과 아시아의 경로를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발견했다. 그 밖에도 수 많은 코사크족이 국경선 부근에 정착지를 마련하고 러시아가 처음으로 합병한 지역을 확고하게 다졌다.
이런 막대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서유럽은 나폴레옹 전쟁때까지 이들의 존재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 1803~1815년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에 러시아는 1807년, 1812~1815년에는 프랑스를 전쟁을 벌였지만 1807~1810년에는 프랑스를 지원하기도 했다.
프랑스 대육군이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하면서 코사크족이 결정적인 활약을 했다. 러시아군은 몇 번의 패전 후에 초토화작전을 선택하고 내륙 깊숙이 후퇴했다. 그 배경에는 코사크족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러시아군은 후퇴하면서 뒤에 남겨진 모든 마을, 도시, 다리, 밭, 곡식창고를 불태웠다.
프랑스군은 모든 군수품을 국경너머에서 수송했고 굶주린 부대가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식량을 구할 때마다 코사크군이 요격했다. 코사크 경기병은 두 군대 사이의 공백을 완전히 지배했다.
초토화작전은 러시아국민에게 고통을 안겼지만 결과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다. 한 겨울이 되자 프랑스군은 질병, 기아, 코사크 습격, 피로와 탈영으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러시아군은 대회전을 회피했고 프랑스군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두 군대는 마침내 모스크바 서쪽 70km 떨어진 보로디노Borodino에서 결전을 치뤘는데 단 하루만에 70,000명 이상의 피해가 생겼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에 입성했지만 후퇴할 수 밖에 없었고 코사크군은 그 뒤를 괴롭혔다.
프랑스군이 후퇴하자 코사크와 러시아군이 추격했다. 프랑스군이 국경을 넘어 재보급을 받으면서 다시 전투를 벌일 수 있게 되었고 전장은 독일로 이동했다. 코사크군은 프랑스 본대와의 정규전뿐만 아니라 전초전, 기습과 정찰전도 벌였다. 전투가 거듭되면서 코사크의 이름이 점차 알려졌다. 독일과 프랑스는 코사크를 매우 두려워했고 유럽은 코사크를 러시아제국의 상징처럼 생각했다.
보로디노 전투의 한 장면입니다. 이 자료의 저자가 전사에 대해 상당히 무지하기 때문에 전사에서는 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일단 그대로 정리하고 오류를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보로디노 전투는 1812년 8월 7일에 벌어져서 겨울피해와 순서가 뒤바뀌었죠.
그리고 프랑스군은 겨울이 오기 전, 영상기온인 9월 14일에 모스크바에 입성했고 이미 이 때에 병력은 1/4으로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1812년 12월 14일에 러시아 국경을 넘어 되돌아갔는데 이 저자는 겨울말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간혹, 위의 그래프를 보여주는데도 부족한 지식을 강변하는 사람이 있는데 무더운 날씨와 보급부족으로 인한 질병, 아사, 탈영 그리고 전사가 인명피해의 절대원인이었습니다.
이해가 안되면 프랑스 학자가 정리한 위 그래프를 이해될 때까지 보고 또 보면 됩니다.
보로디노 전투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하게 설명해두었습니다.
http://blog.daum.net/uesgi2003/720
http://blog.daum.net/uesgi2003/721
http://blog.daum.net/uesgi2003/722
코사크족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우크라이나 국수주의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우크라이나 중산층, 특히 장교집단이 등장하면서 차르에 대한 충성심보다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우세해졌다.
1846년, 루스역사History of the Rus라는 책(아래 사진참조)이 발간되었다. 이 책은 1769년까지의 우크라이나 역사를 설명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차이 그리고 코사크 국가가 키에프 공국의 후손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코사크족이 우크라이나의 정통성을 가지게 되었고 러시아 역사와 차별성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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