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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타

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 (3) - 원정에 나서기까지

by uesgi2003 2012. 2. 6.

 

한 번 볼드체로 설정된 다음에는 일반서체로 안돌아가는군요 ㅡ.ㅡ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볼드체로 즐기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원정에 나서고 프랑스군의 성을 만나게 됩니다.


원정에 나서기까지

 

앞의 이야기에서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가 야전을 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성에 의지하는 것이 편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지휘관이라도 공성과 수성전은 피하려고 한다. 한 곳에 최소한 몇 개월에서 몇 년 동안 수 많은 병력을 못박아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대의 중심역할을 한 중세 기사도 공성전에서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고 궁수, 공병, 광부, 용병에게 더 중요한 역할이 맡겨지기 때문에 더더욱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공성과 수성은 절대로 전장의 명예는 찾아볼 수 없는, 지루한 인내와 계략의 연속이었다.

 

 

 

그림 설명: 백년전쟁 동안 있었던 주요 28개 공성전 위치입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시험에 안나오니까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그림은 클릭하면 커지는거 아시죠?

 

공성전은 직설적인 야전과 달리 체스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체스 판에 남아있는 말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말의 위치와 말들의 시너지 효과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왕은 기사보다는 졸에 잡히는 경우가 더 많다.

백년전쟁에서는 영국군과 프랑스군 모두 공성과 수성전을 절대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야전에서 영국군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프랑스군은 성에 의지하게 되었고 영국군은 프랑스군이 틀어박힌 성을 점령하거나 고립시킬 수 밖에 없게 된다.

성도 전장의 일부로 천혜의 장애물에 덧붙이거나 새로 장애물을 만들게 된다. 도강 길목, 계곡이나 다리 입구, 마을이나 항구 근처와 같은 전략 요충지 부근에 세워진다. 그리고 성에 접근하거나 공격하기 힘들도록 자연을 이용하고 온갖 방어시설을 갖추지만 산악지대에 건설된 성은 당연히 식량을 조달하기 힘들고 얼마 안되는 병력으로 시간을 끌면 아사에 몰려 성문을 열게 된다. 그리고 외딴 곳에 고립된 병사들은 고독과 권태로 평화 시에도 사기가 떨어진 상태가 된다. 이런 성은 임무라기 보다는 일종의 처벌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성은 접근성도 좋은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성은 방어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적을 견제하고 반격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공성과 수성전술을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침공한 영국군의 한 부대가 가상으로 성을 공략하는 시나리오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가상 시나리오에서는, 117년 간 이어진 백년전쟁에서 16,000명의 영국군이 노르망디 농촌지역을 침공하게 된다. 가상의 영국군은 노르망디 지역의 인구가 적고 프랑스군이 10,000명 이상의 병력을 모으기 힘들기 때문에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헐리웃 영화에서는 기사가 멋진 말을 타고 큰 칼을 휘두르며 성으로 돌진하는 신나는 모습만 나오지만, 실제 전쟁은 상당한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원정에 나서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준비되는 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징집과 모병

엄청난 부자 제후가 아니고서는 상비군을 보유할 수 없고 보통은 몇 백 명 정도의 근위부대만 유지한다. 프랑스군과 부르고뉴악은 상비군을 보유하려고 했지만 세금부담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군대가 필요할 때에만 징집하거나 모병했다. 제후와 전문 모병관 사이에 급여, 규율, 보상, 처벌, 훈련상태, 장비공급, 급식과 같은 상세한 계약이 맺어지지만 제대로 지켜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14세기 이전에는, 용병을 고용해서 경험많은 지휘관에게 맡기는 편이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농노를 징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돈이 허락한다면 용병은 얼마던지 고용할 수 있고 필요가 없어지면 언제라도 해산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만 용병은 약속한 급여를 지급하지 않으면 바로 탈영하거나 전투를 거부했다.

그 당시 지휘관들 사이에는 "보급은 돈이 들지만 전사자에게는 돈이 필요없다"라는 말이 격언처럼 받아들여졌다. 지휘관과 모병관은 계약된 복무기간이 끝날 때까지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맺곤 했다. 이런 계약조건 하에서는, 탈영이 줄어들고 급여지급일이 되었을 때에는 이미 상당한 용병이 전사를 했기 때문에 금전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반대로 용병은 주당 또는 매일 지급받기를 원했고, 지휘관이 용병에게 더 많은 돈을 쓸수록 큰 피해가 발생하는 임무를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급여를 받았다면 전세가 완전히 기울어 희망이 안보일 경우 바로 탈영할 수 있었다.

 

계약조건이 오고 가는 동안, 군사사절단과 참모들은 큰 그림에서의 원정 전략을 수립한다. 중세까지도 로마 후기의 전략가 베게티우스(Vegetius)의 이론을 포켓북처럼 들고 다녔다. 베게티우스의 이론은 프랑스어, 영어와 라틴어로 번역되었는데, 그는 엄한 훈련과 매우 상세한 사전준비를 강조했다. 그는 "부대원의 훈련이 더 잘되어 있고 규율이 잘 잡힐수록 전투 중에 문제가 덜 생긴다. 천성적으로 용감한 병사는 일부에 불과하고 훈련을 통해서만 용감한 병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라고 썼다.

베게티우스의 이론을 신봉하는 지휘관은 수십 가지의 변수를 늘어놓고 성공가능성을 계산할 것이다. 아무리 중세의 군대라고 해도 잘 모르는 지역에 무턱대고 진입하지는 않는다. 상인, 순례자, 그 지역 출신의 병사를 수소문해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좀 더 머리를 쓰는 지휘관이라면 스파이를 미리 보내 알고 싶은 정보를 수집했을 것이다. 당시에도 "왕자는 수입 중 1/3을 스파이와 정보수집에 투자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뇌물, 선물, 약속은 정보를 수집하는 훌륭한 수단이다. 만약 정보원이 변절의사가 있거나 최소한 협력할 여지가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 온다면 앞으로의 원정에 귀중한 자산이 된다.

 

병참선과 기동

전략의 밑그림이 그려지면, 영국군은 적진에서 몇 개월 동안 원정을 계속 할 수 있도록 공병, 인부와 보급품을 포함한 엄청난 규모의 병참선을 준비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이 일이 어느 정도로 고통스러운지에 대해서는 1408~9년에 프랑스에서 편찬되었다가 1489년에 영어로도 번역된 Book of Armes and Chyvalrye(군대와 기사에 대한 교본?)에 잘 나와있다. 저자 (예상 외로 여성) 6개월 간 공성전을 하는데 필요한 무기와 장비목록을 잘 정리해두었다.

 

최상의 공격시점은 추수기로, 적의 식량을 빼앗아 우리가 이용할 수 있다. 부근의 마을에는 고립된 성과의 장사를 금지시키고 아군과만 거래하게 한다. 막대한 양의 목재, 마차, 말과 소가 필요하며 물을 이용하더라도 바지선, 보트와 크레인이 필요하다... 

성을 약 2.6km 둘레로 완전히 봉쇄하는데 4.3m*3.5m의 나무 판자가 540개 필요하며 제분(밀가루 생산)을 위해 44m*15m 공간의 헛간이 필요하다. 3,000명 이상의 목수와 인부를 동원해야 하며 이들은 궁수로 활용할 수 있다. 1.4톤의 화약, 22백 개의 돌덩이, 240kg의 가죽, 2십만 개의 석궁 화살, 1 2백 개의 방패가 필요하다. 1천 개의 삽...

 

이 목록은 한없이 이어지는데 그냥 보통 성에도 이 정도가 필요하다. 중고대 역사학자들이 기록한 내용에는 상당한 과장이 많아서 60,000명이 전멸했다고 하면 많이 죽었다는 정도로 새겨 들어야 하지만, 60,000개의 화살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 숫자는 상당히 정확했다. 1360년에 에드워드 3세의 원정기록을 보면 공성전이 장기전으로 빠져들 경우의 보급품이 어느 정도로 늘어지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영국 왕과 귀족은 마차에 텐트, 천막, 취사도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왔다. 6,000대 이상의 마차가 동원되었고 각 마차마다 4마리의 말을 영국에서 동원했다..

 

이제 이 놀라운 숫자에 16,000명의 기병과 말, 보병, 인부들이 먹고 마셔야 할 음식을 생각해보자. 병참선은 악몽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수 천 명의 병력과 보급품을 이래 저래 겨우 갖추게 되면 이제부터는 적진으로 진격하는 문제가 남았다. 전광석화와도 같은 진격속도가 아니라면, 그리고 도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중세에서는 영국군의 침공을 프랑스군도 알게 될 것이고 그들도 영국군의 침공로에 군수품이 될 것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영국군은 최소한 적진에서 몇 주는 보급받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군수품을 운반해야 하며 보통은 가축이 끄는 마차를 사용했다. 수십 만 발의 화살, 활과 활줄, 화포와 화약, 대장간의 장비, 주둔지 장비 등 적진을 통과하고 성을 포위하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물통이나 궤짝에 넣어 운반한다.

 

그림 설명: 착한 댓글을 다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18,000명의 대병력입니다. 어차피 가상 시나리오이니까 여기에 나오는 모습도 반지제왕의 오크 대군처럼 엄청난 규모라고 가정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이 도서는 제대로된 등장인물들까지 갖추고 제대로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차를 많이 동원하는 것도 부담이 되는 것이, 마차를 끄는 가축의 사료도 함께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부는 일반 시민일 수도 있지만 용병이거나 정규군일 경우 전투에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마차를 부릴 사람이 부족할 수도 있다.

마침 15세기 말에 1,5000명의 병력을 지원하는데 필요한 마차의 수를 기록한 자료가 독일에 남아 있다. 12,000명의 보병을 위해 650대의 마차가, 3,000명의 기병을 위해 300대의 마차가 필요했다고 한다. 15,000명의 병력이 950대의 마차와 함께 전진하던 행렬은 무려 20km 넘게 늘어졌고 최전위가 노숙하고 행진에 나설 때까지도 최후위는 숙영지에 도착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군대의 이동속도는 당연히 도로 상황,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군대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백년전쟁 중 보르도에서 채널 해안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약탈하고 흑태자는 하루 16km 정도의 거리를 2개월 동안 이동해 총 860km 이상을 누볐다. 군수품말고도 약탈품을 가득 싣고 다녔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기동력이다.

십자군은 장거리 원정에서 하루 10~17km의 속도로 이동했다고 한다.

 

우리의 가상 원정 시나리오로 돌아와서, 16,000명의 병사, 3,000마리의 전투마, 3,800마리의 가축, 950대의 마차 그리고 각종 무기와 장비가 피해없이 영국해협을 건넜다고 가정하면, 이제 지휘관은 마차에 병력을 배치해서 내륙으로 진격할 것이다. 노르망디의 농촌지역은 산악이나 강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하루 16km 정도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군은 가파른 절벽 사이로 난 계곡을 만나기 전까지는 꾸준한 속도를 보일 것이다.

계곡에 다가간 영국군은 처음으로 난관을 만나게 된다. 함정을 의심한 지휘관은 군대를 멈추고 정찰대를 보낸다. 정찰대는 계곡의 너비가 13km, 길이가 50km 정도되고 양쪽의 절벽은 가파르고 숲이 우거졌다는 보고를 한다. 계곡의 평지 대부분은 늪이나 습지였는데 계곡에 살던 농민들은 이미 달아났거나 밭을 불태운 상태였다.

계곡 양쪽에는 성이 있고 습지 끝에도 성이 두 개나 더 있어서 성을 그대로 두고 전진했다가는 유사시에 배후가 완전히 끊기지는 않더라도 후방으로 소식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리고 영국군의 전진을 이미 알고 있을 프랑스군의 위치와 규모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성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영국군은 성을 공략하거나 최소한 무기력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병력과 시간을 계산해야 한다. 성은 계곡 위에 있기 때문에 방어에 매우 유리한 위치였다. 지휘관은 성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있는지, 계곡 반대편에 프랑스 주력이 기다리고 있다가 영국군이 병력을 나눌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영국군의 전진을 지연시키려는 미끼에 불과한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성 안에 20명일지 200명일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지만 배후에 그대로 둔다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결정이다. 공성전의 경우 수비군 1명에 5명의 병사를 투입해야 하는데 일단 성 하나에 최대 400명이 주둔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절벽 위의 성에는 1,800명씩을 그리고 습지대의 성에는 2,200명씩의 병력을 떼어놓았다. 병력만 떼어놓는다고 고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별동부대를 위한 병참선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영국군이 둘로 나뉘면서 성은 제 역할을 다했다. 성을 포위하느라 영국군의 규모가 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영국군의 주력은 8,000명으로 줄어들었고 군수품 소비를 줄이기 위해 불타버린 농촌을 뒤져야 한다. 군량을 조달하기 위해 적진 깊숙이 들어가는 위험도 무릅써야 하는데, 성은 현대전에서의 "종심방어 (Defence in Depth)"의 핵심역할을 잘 해주고 있는 것이다.

성은 상호보완을 위해 하루 거리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되면 필요한 경우에 구원군을 보내거나 적의 공격을 분산시킬 수 있다. 그리고 성은 보통 귀족의 개인소유이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방어한다.

 

지금까지 불과 18,000명의 원정군을 움직이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사전준비와 고려사항이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럼 다음에는 수성전을 준비하는 수비군은 적의 포위에 어떻게 대비하는 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전에 외국 애들은 리플레이 놀이를 즐긴다고 설명한 적이 있었죠? 자국의 주요 전투를 재현하면서 자신들도 즐기고 관광상품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몇 개의 제대로된 중세 리플레이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는 뭘해도 무식합니다. 제가 본 리플레이 중에 가장 과격한데 다치는 사람도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번에도 러시아 애들인데 앞에서만큼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이 리플레이는 진짜 전투 수준으로 규모가 상당합니다. 이렇게까지 동원하면 조직하고 지휘하는 사람들이 많이 애먹었을겁니다.

그러다보니 걸어다니는 사람도 보이고 전투흐름이 상당히 이상해집니다.

잘못하면 역사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군요. 좀비도 등장할 것 같고요.

 

우리나라도 리플레이를 할 수 있는 지자체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거의가 휴양지 이벤트여서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