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세/기타

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 (4) - 수성전을 준비하며

by uesgi2003 2012. 4. 5.

 

미국여행과 다른 일탈(보육원 아이들 영어공부와 야구연습, 목요일과 토요일)로 잠시 뜸했습니다.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던(ㅡ.ㅡ) 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흐름을 잃어버린 분을 위해 다시 이야기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클릭하셔서 다시 보시고 이번 이야기를 보신다면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 (1) - 크레시 전투

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 (2) - 푸아티에와 아쟁쿠르 전투

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 (3) - 원정에 나서기까지

 

백년전쟁 공성전 이야기 (4) - 수성전을 준비하며


프랑스군의 성이 영국군의 진격로 한 가운데에 있지 않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수비군은 프랑스 본대에서 차출해갔을테고 성을 지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만이 남겨졌을 것이다. 오히려 성에 병력을 더 배치시켜서 영국군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발목을 잡아야 할텐데 병력을 이렇게 빼간다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수성전을 좀 더 들여다보면 병력이 너무 많아도 성을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우리가 설정한 시나리오로 다시 돌아가서, 프랑스 정찰대가 약 2~3천 명의 영국군 별동대가 접근 중이라는 귀중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온다. 경험이 많은 지휘관은 보고를 받자마자 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동원해 24시간 수성전을 준비할 것이다. 성의 위치와 규모에 따라 준비하는 정도가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수성전 준비작업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휘관은 가장 먼저 성 주변마을에서 사람을 동원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성안의 병력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창고에서 무기를 꺼내거나 조립하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성 진입로를 막을 목재와 철재 방어물, 물과 식량을 준비한다.

 

 

중세의 목재는 석재와 함께 귀중한 자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재를 얻을 수 있는 숲을 가진 영주는 재벌급 자산가였었죠. 그러나 공격을 당할 때에는 숲은 공격군이 투석기를 포함한 온갖 공성무기를 만들 수 있는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림은 클릭하면 커지고 IE9에서 설명과 함께 연결되어 제대로 보입니다.

 

 

 

그림에서는 단순한 곤도라만 설치되었지만 규모가 큰 성은 공격군에 맞사격할 수 있는 투석기가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지속될 지 모르는 포위를 버텨내려면 병력이 너무 많아도 안되고 너무 적어도 안되는, 균형을 맞춰야 하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병력이 많다면 성을 당연히 지켜낼 수 있겠지만 구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식량이나 물이 떨어져 성문을 열게 된다. 그래서 성의 방어보강 작업을 끝낸 후에는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밖으로 내보낸다. 그리고 감시초소를 세워서 영국군의 약탈을 피해 성으로 도망쳐온 피난민이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우에스기 왈: 전사에서도 피난민을 최대한 모아 성으로 몰아가는 공격군 이야기가 나오는데, 성으로 들어간 피난민은 전력의 플러스요인이 아니라 절대적인 마이너스요인이기 때문입니다. 식량을 모두 빼앗긴 피난민은 성의 식량을 급속히 소비할 뿐만 아니라 질병을 발생시키고 심지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피난민이 성으로 들어가지 못해도 그 효과는 충분합니다. 수많은 피난민이 성밖에서 울부짖고 그 중에는 수비군의 친인척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수비군에 쫓겨 공격군에게 학살당하는 처참한 광경은 수비군의 사기를 땅에 떨어뜨리게 됩니다.
1356년 기록에 따르면... 성문 바로 앞까지 추격이 계속되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그러나 성문은 열리지 않았고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성문에 이르는 길은 끔찍한 학살의 증거가 남았다.)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용도폐기된 비전투인력은 모두 성밖으로 쫓겨납니다.

중세시대 어느 누구도 보호하지 못하는 농노는 약탈을 위한 존재였을 뿐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얻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유렵의 민주주의는 국가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개인을 위한 민주주의 성격이 강합니다.

 

포위된 모든 성의 희망은 왕이 구원군을 데리고 와 포위를 풀어주는 것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왕은 공격군을 막아내기도 벅찬 상태여서 성은 스스로 공격군을 물리쳐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
기사들을 보내 성의 관할에 있는 마을의 모든 식량을 징발한다. 들판에서 익어가는 곡식과 같이 성으로 가져올 수 없는 식량이나 가축은 태우거나 죽인다. 물론 농부는 큰 피해를 입겠지만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시나리오에서 성 부근의 마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규모가 상당히 빈약해보이지만 책 출판을 위해 이정도로 투자한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요즘같았다면 CG를 통해 그럴듯하게 만들었을텐데요.

 

14세기 당시의 작은 성도 1년 정도를 버틸 수 있는 식량창고를 가지고 있어서 식량은 수비군보다 공격군에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식량을 잘 비축한 400명의 수비군은 굶주리지 않을 정도의 배급을 받을 수 있지만 주변이 초토화된 2,000명의 공격군은 포위가 늘어질 수록 수비군보다 더 굶주릴 수도 있다.
6개월 동안 600명의 수비군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식량이 필요한지를 기록한 15세기의 자료를 통해 400명의 수비군을 위해 준비할 식량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밀 60톤, 그 중 33%는 비스켓으로 구워두고 나머지는 밀가루로 보관. 콩 40톤, 완두콩 2톤, 포도주 120통, 식초 2통, 식용유 1통, 소금 1톤, 버터 1톤... 황소 100마리, 베이컨 100~120 꾸러미, 양 160마리, 훈제장어 1,000마리, 청어 25 궤짝

 

공성과 수성전에서는 식량과 물이 병력이나 투석기보다도 더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보통 성은 지하수가 흐르는 곳에 짓기 마련이나 내부에는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기 마련이다. 심한 가뭄이 오거나 공격군이 지하수맥을 찾아내 끊는다면 성은 일주일을 버틸 수가 없게 된다.
성의 보급품이 확보되고 병력도 보충되었다면, 프랑스군은 이제 일주일 후면 도착할 영국군을 맞아들일 준비에 착수한다.
계곡을 지키고 있는 4개의 성 사이에는 연락병이 분주히 오가고, 근처 마을에는 모두 떠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명령이 떨어진 후에도 남아있는 주민은 강제로 소개한다. 그리고 비워진 마을은 하나도 남김없이 잿더미로 만든다. 프랑스군은 성 주변을 완전히 초토화시켜서 영국군이 식량을 조달하거나 쉴 곳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영구군은 2일이면 도착할 거리까지 전진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