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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타

1187년 하틴(Hattin) 전투 : 무슬림 최고의 날

by uesgi2003 2011. 1. 11.

살라딘의 무슬림 대군이 성지에서 십자군을 몰아내다.

 

 (십자군 원정 3부작 중 가장 처음으로, 이 글 다음에 아르수프 전투, 그리고 리차드의 프랑스 원정을 읽으시면 시대 순서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1187 7 4일은 기 드 루지앙(Guy de Lusignan, 예루살렘의 왕)가 이끄는 십자군이 중동에서 사라진 날이다. 살라딘의 무슬림군이 하틴(현재의 이슬라엘 티베리아스 근처)전투에서 십자군을 몰살시켰다. 다마스커스를 정복하지 못한 2차 십자군 원정은 이미 중동에서 더 이상의 세력확장이 힘들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제 1차 십자군이 얻은 지역조차 위태롭게 되었다. 하틴 전투 후 몇 개월 만에, 무슬림의 뛰어난 지도자인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포함한, 거의 모든 십자군의 도시와 요새를 탈환한다.

 

에데사(Edessa), 트리폴리, 예루살렘과 같은 십자군의 전략적 요충지들이 모두 위협을 받았다. 십자군은 그 목적에 충실하게 끊임없이 전투를 벌여왔기 때문에, 비잔티움이나 유럽의 지원이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1187년에 당시, 유럽의 왕들이 권력강화와 자국발전을 서두르면서 지원이 거의 중단되었고, 정치상황에 따라 달라지던 비잔티움의 지원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십자군 지도자들은 군자금이 모자랐기 때문에, 충분한 용병을 고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성전의 열풍도 시들해져서 병력보충도 힘든 상태가 이어졌다. 12세기 중반, 많은 기사들이 중동까지의 위험하고도 지루한 여정보다는 스페인의 재정복(Reconquista, 스페인내의 이슬람지역 탈환 움직임)이나 튜톤의 슬라브지역 정복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살라딘이 예루살렘 왕국을 위협하던 1187, 자금과 병력이 모자라게 된 십자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처지였다. 십자군은 살라딘의 군대에 맞대응 해서 전진배치하는 동시에 전략적 요새를 수비할 여력이 없었다. 기사들이 요새에 머무르면 이슬람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겠지만, 주변 도시가 황폐해지기 때문에 다음 해에는 군자금이 더 모자라게 된다. 그렇다고 군대를 집결해서 일전을 치렀다가 큰 패배를 한다면 텅빈 요새는 쉬운 사냥감이 될 것이다. 한 번의 전투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십자군은 전면전을 피하고 이슬람군을 따라다니며 대치하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어쩔 수 없이 전투가 벌어질 때에는, 압도적인 전투력을 갖춘 기사들 덕분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유럽과 비잔틴의 수혈을 받지 못한 빈혈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림 설명: 하틴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의 양측의 공방전. 클릭하면 커집니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먼저, 사라센의 위대한 지도자 누르앗딘(Nur ad-Din)이 에데사(Edessa)와 다마스커스를 복종시켰다. 이 도시들은 동료 무슬림을 택하느니 기꺼이 십자군을 지지했던 지역들이었다. 누르앗딘은 더 나아가 1119년 사르마다 전투(Sarmada, 안티오크-Antioch-십자군이 지역 무슬림과의 전투에서 전멸)에서 회복하지 못한 안티오크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말릭(Amalric, 예루살렘 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안티오크를 보호하던 이전의 십자군 전략을 무시하고, 이집트를 공략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

 

당시의 재정상태를 감안하면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려던 아말릭의 결정이 옳을 수도 있었다. 이집트를 정복하면 남쪽 전선을 안전하게 하는 동시에 막대한 군자금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내분에 휩싸인 이집트가 탐나는 목표였겠지만, 예루살렘의 이집트 원정덕분에 누르앗딘은 시리아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이집트로 원정을 떠날 구실을 얻게 되었다. 먼저 쿠르드 장군 쉬르쿠(Shirkuh)를 보내고 다시 그의 조카인 살라딘을 파견한다.

 

아말릭의 세 번에 걸친 이집트 침공은 이집트 칼리프에게서 조공을 받아내는 작은 목적은 달성했지만 예루살렘의 재정을 더욱 바닥나게 만들었고 많은 기사들이 전사하는 큰 손실을 가져왔다. 설상가상으로 십자군의 전체적인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도 가져왔다. 1174년 누르앗딘이 죽은 후에 살라딘은 자신을 이집트의 술탄으로 선포하고 다마스커스로 진군했다. 살라딘이 누르앗딘의 유산을 장악하는데 10년을 소비했지만 결국 막대한 영토, 군자금, 병력으로 십자군의 도시들을 완전히 포위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에스기 왈 : 누르앗딘은 열병으로 죽었다는 설도 있고, 처벌을 두려워한 노예의 암살로 죽었다는 설도 있는데, 이것이 맞는다면 붉은수염 신성로마황제의 죽음과 같이 웃음이 슬그머니 나온다. 적의 도시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누르앗딘은 폭음을 하고 잠에 들었다가 새벽에 깼는데, 노예가 자신의 술을 마시고 있는 불경스러운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누르앗딘은 크게 화를 내며 내일 너를 죽여버리겠다라고 야단치고는 다시 잠에 들었는데, 공포에 질린 노예가 그를 난도질하고 도망간다. 원래 분열이 심했던 이슬람군은 지도자가 죽자 다들 전리품을 챙겨 들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십자군이 위기에서 벗어난다.)

 

1174년에 아말릭왕이 죽으면서 예루살렘 왕국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 빠져든다. 왕관은 10대 아들인 보드앵 4 (Baldwin, 나병환자)에게 넘겨졌다가 다시 보드앵의 7살짜리 조카 보드앵 5세에게 넘겨진다. 병약한 보드앵 4, 소년 왕의 즉위는 많은 정치세력이 섭정의 자리를 노리게 만들었고, 1186년 보드앵 5 (8)가 죽자, 주변의 정치세력은 두 개의 큰 중심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시비야(Sibylla, 보드앵 4세의 누이/보드앵 5세의 어머니)와 결혼한 기 드 루지앙(Guy of Lusignan) 그리고 아말릭의 큰 조카인 트리폴리의 레몽(Raymond) 3세가 바로 그 두 중심축이었다.

 

시비야는 기사단 단장인 게라드(Gerard, 자신을 모독했던 레몽을 혐오)와 르노 등 샤띠옹(Raynald de Chatillon, 예루살렘에서 가장 유력한 귀족) 모두의 지지를 받았다. 르노(레이놀드)는 기가 우유부단하기 때문에 레몽이 아닌 기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귀족들은 기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기가 보드앵 4세의 섭정에 있었던 짧은 기간 동안 무슬림과의 전투를 비겁하게 피했기 때문이다. 무슬림 군대가 큰 피해를 주지 않고 해산했지만, 기의 동료들은 그를 지휘관으로 모시기에는 너무 겁쟁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시비야는 자신에게 남편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면 기와 이혼하겠다고 약속해놓고서는, 자신의 즉위식에서 기를 앞으로 불러내 왕관을 넘겨주어 귀족들을 경악시켰다. 분노한 레몽은 왕위찬탈을 노렸다가 실패하자 트리폴리로 돌아가서 살라딘과 평화협정을 맺어 예루살렘 왕국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섭정에 있었던 레몽은 무슬림과 휴전을 여러 번 했었는데, 결국에는 살라딘이 시리아를 장악할 시간을 벌어줬을 뿐만 아니라 십자군이 본국의 문제해결에 한 눈을 팔게 만들었을 뿐이다. 1187 4월 휴전협정이 만료되기 전에, 기는 기사단장 게라드(성전 기사단)와 로저 드 물랑스(Roger des Moulins, 성요한 기사단, 아르수프 전투 보충편 참조)를 트리폴리로 보내 레몽을 다시 십자군 진영에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다시 한 번 반목의 골만 깊어졌고, 레몽은 기를 왕좌에서 끌어내릴 욕심으로 기의 왕국을 약탈하러 가는 알앟달(al-Afdal, 살라딘의 장남)이 자신의 영토를 지나가게 허락하는 명백한 반역행위를 저지른다.

 

 

무슬림군을 확인한 게라드는 겨우 150명의 기사만 이끌고 나자레스(Nazareth) 근처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대군에 맞서 용감하게 목숨을 던지 기사들 중 겨우 3(부상을 당한 게라드까지)만 살아남았고, 나머지 기사들은 창 끝에 머리가 꽂혀 전시되었다. 대부분의 전투기록에서 그랬듯이, 아마도 최소한 수 백 명 이상의 보병도 함께 전사했을 텐데 기록되지 않은 것은, 평민인 보병들은 죽어도 그만인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용기는 찬사를 받을만한 것이지만, 결과가 전혀 달라지지 않을 작은 전투에서 왕국전체의 기사 중 10%가 사라져버렸고, 하틴 전투에서 이 손실이 더욱 뼈아프게 작용한다. 그림 설명: 이슬람의 대군에 맞서 돌격하는 십자군의 기사들. 킹덤오브헤븐의 한 장면. 모든 영화장면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우에스기 왈: 킹덤오브헤븐에서는 발리앙이 이슬람대군에 맞서는 장관이 연출되는데, 이 영화는 재미를 위해 실제역사를 많이 각색했다. 시비야가 발리앙과 정사를 벌이는 것도 그렇고, 발리앙이 하틴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그렇지만 서방세계에서 만들어진 영화치고는 고증이 매우 뛰어나고 대단한 영화이니까 꼭 볼 것을 권한다.)

 

이 전투 후에 레몽의 지지자조차도 반역행위를 비난하며 왕과 화해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한다. 살라딘의 대군이 모이고 있는 것을 잘 아는 기도 분열을 피하고 레몽을 완전히 용서한다. 두 지도자의 정치적 휴전덕분에 십자군은 다가올 무슬림의 침공에 대해 힘을 합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십자군이 분열에서 회복하는 동안, 살라딘은 30,000명의 병력을 모아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레이놀드가 1186년 카이로와 다마스커스를 오가던 카라반을 공격한 것을 구실삼아 더 이상의 휴전협정을 거부한다. 누르앗딘과 같은 다른 지도자들이 무하메드의 지하드(Jihad, 투쟁)를 선포했었지만 성전으로의 공감대 형성에는 실패했었다. 살라딘의 군대는 레이놀드 덕분에 무슬림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전으로 뭉치기 시작한다. 1182, 레이놀드는 홍해 해안을 따라 내려가며 메디나와 메카를 약탈했고, 성스러운 도시가 위협받은 것에 분노한 살라딘은 레이놀드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형하겠다고 맹세를 하고, 무슬림은 지하드의 깃발을 세우고 집결하기 시작한다.

 

 

살라딘과의 일전에 예루살렘 왕국의 운명이 걸렸기 때문에, 기 역시 성과 도시를 지킬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세포리아(Sephoria)로 군대를 긁어 모았다. 6월 말이 되자, 기는 약 1,200명의 기사와 2만 명의 보병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True Cross (예수가 못박혔던 십자가의 일부)를 가져오게 해서 십자군의 사기를 높였다.

 

그림 설명: True Cross를 모시고 예루살렘을 떠나는 십자군. 킹덤오브헤븐의 한 장면으로 고증에 대해 감탄하게 만든 장면이다.

 

살라딘은 십자군을 물이 풍부한 세포리아에서 꾀어내 야전을 치를 계획이었다. 기가 응하지 않자, 레몽의 가족이 피신해 있는 티베리아스(Tiberias)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우유부단한 기는 7 2일에 귀족회의를 소집해서 의견을 묻기로 한다. 레몽은 가족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티베리아스를 포기하고 무슬림 비정규군이 해산하는 건기(dry season)까지 참고 기다릴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4년 전에도 그런 전략을 사용했다가 기사와 귀족들에게서 겁쟁이라는 비웃음을 샀던 기였지만 이번만큼은 그 전략에 동의한다.

그 날 밤에 기를 따로 방문한 르노(레이놀드)와 게라드가 얼마 전에 있었던 레몽의 반역을 떠올리면서 십자군은 수비가 아니라 공격을 통해 이교도를 응징해야 한다는 정통성을 주장했다. 이들이 밀담을 나누는 동안, 레몽의 아내가 구원을 간절히 바래는 편지가 전달되었다. 여전히 티베리아스는 중요하지 않다는 레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사들이 티베리아스의 귀부인을 구하기 위해 무장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기는 결심을 하고 진군 명령을 내린다.

 

 

그림 설명: 십자군을 기다리는 살라딘의 군대. 킹덤오브헤븐에서는 하틴 전투는 아주 짧게 처리하고 예루살렘 공방전을 스케일큰 장면으로 담았다.

 

기는 진영을 세 대열로 나누었다. 왕이 중군을 이끌고, 레몽과 발리앙 드 이벨린 (Balian de Ibelin) 그리고 기사단이 후위를 맡았다. 7 3, 십자군은 세포리아를 떠나 투란(Turan)이라는 오아시스를 향해 나아간다. 살라딘은 즉시 도시공격을 중단하고 군사를 되돌려 십자군을 마중 나간다. 십자군은 투란에서 물을 채우지 않고 계속 진군해나갔다. 티베리아스까지는 어떤 오아시스도 없었으며 나무도 없는 뜨거운 평원만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전투 후에 쓴 편지에서, 살라딘은 십자군의 결정을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도 몰랐다라고 담담하게 표현했다. 투란을 지나치는 순간부터 십자군의 운명은 이미 결정 나 있었던 것이다.

 

 

무자비한 태양아래 강철 갑옷을 두른 십자군의 행렬은 계속 느려지고 있었다. 살라딘의 정찰대는 쉴새 없이 빈틈을 노리며 공격해댔고 십자군의 출혈은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무슬림의 기마궁수의 화살공세를 피하기 위해 대열을 흐트리면 중장갑기병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살라딘의 본진은 거리를 두고 십자군의 후위를 계속 조여왔으며, 살라딘은 병력을 보내 투란을 차지하고 십자군의 퇴로도 막게 했다. 오전 9, 뜨거운 아침이 찾아오자 십자군은 사방이 이교도로 둘러싸여 있고 오아시스는 모두 차단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 설명:하틴 전투를 한 눈에 설명하는 전개도. 영어라 그렇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꼭 확인해야 하는 그림이다. 클릭하면 무지하게 커집니다.

 

기는 티베리아스가 내려다 보이는 마스카나(Maskana) 언덕까지 중군을 이끌었지만, 무슬림군의 본격적인 공격이 곳곳에서 시작되었다. 정오가 되자 발리안과 기사단에게서 후위가 살라딘의 본진공격을 받아 매우 위험한 상태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시 한 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던 기는 레몽을 불러 조언을 구했다. 기와 레몽은 여기에서 밤새 병력을 재정비하고 아침에 속도를 내어 티베리아스를 향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레몽이 올바른 조언을 했을 때에는 듣지 않던 기가, 이번에는 절대로 따라서는 안 되는 조언을 받아들여 물도 없는 곳에서 캠프를 차리기로 한 것이다.

(우에스기 왈: 투란에서 숙영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실수, 그리고 적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숙영한 것이 두 번째, 그리고 다음 날 전투에서 돌파구를 열어줄 기사들만 따로 내보낸 것이 세 번째 실수다. 두 번째 실수가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무리한 김에 계속 전진했더라면 절반의 병력이라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지치고 목마른 십자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이리 저리 탈영하는 병사들이 점차 많아졌지만 이미 주변은 무슬림들이 포위망이 완성되어 있었다. 티베리아스의 호수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그곳이 십자군이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었다. 살라딘은 아침에 있을 마지막 전투를 위해 밤새 많은 물과 화살을 낙타로 실어 날랐다. 그리고 주변의 잡목에 불을 질러 십자군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렸다.

동이 터오자 무슬림군은 떠오르는 태양 속에서 엄청난 화살을 쏘아대며 십자군을 밀어붙인다. 무슬림 역사가는 전투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슬림 궁수가 메뚜기 떼와 같이 하늘을 화살로 뒤덮어 프랑크인들의 말을 쓰러뜨렸다. 보병의 호위를 받던 프랑크인들은 티베리아스의 물까지 길을 열려고 시도했다. 이미 그들의 목표를 알고 있었던 살라딘은 일말의 희망도 남기지 않고 그들의 앞을 막았다.

 

공포에 질린 기는 다시 한 번 르노와 게라드의 조언을 구했다. 두 사람은 모든 기사를 투입해서 활로를 열 것을 제안하면서 그 활로에 보병부대의 사활도 걸기로 한다. 기는 동생에게 기사를 모아 레몽과 함께 돌격을 명령한다.

지난 수 많은 전투에서 십자군 기사의 파괴력은 전투의 승패를 바꾸는 계기가 되어왔지만 살라딘과 병사들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몽의 중장갑기병이 지축을 흔들면 돌진하자, 무슬림군은 대열을 열어 그대로 빠져나가게 한다. 예상과 다르게 손쉽게 포위망을 빠져나간 기사들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기록이 전해진다. 다시 진영을 정비해 최후까지 싸웠다는 설과 전멸의 위기를 느낀 나머지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냥 티베리아스로 갔다는 설이 있다. 어쨌든 레몽과 그의 가족은 무슬림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많은 역사가들은 그의 또 다른 배반을 의심하고 있지만, 어차피 전투가 끝난 지 몇 개월도 안되어 죽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었다.

 

 

 

기사들이 빠져나간 기의 처지는 완전히 절망적이었다. 끊임없는 무슬림의 공격을 받으며 십자군은 하틴의 뿔이라고 알려진 분화구까지 전진해나갔다. 이곳에서 왕의 붉은 텐트를 세우고 True Cross를 모셨다. 그렇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음식과 물도 다 떨어진 십자군은 도저히 살라딘의 포위를 뚫을 여력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무슬림 역사가의 기록을 인용하면,

 

그들이 제 아무리 사력을 다해도, 모두 격퇴되었고, 진열을 재정비해도 여전히 포위된 상태였다.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멸할 운명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그들은 하틴 산으로 퇴각해서 전멸만은 피해보려 했지만 하틴에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화살이 그들을 꿰뚫었으며 창이 그들을 쓰러뜨렸고 운명이 그들을 찢어놓았고 재앙이 그들을 씹어 삼켰다.

 

발리앙은 마지막 최후의 탈출을 감행해 성공했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덫 안에 갇혀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일부 십자군의 용기는 꺼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기는 살라딘이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병력을 모아 살라딘만을 노려 공격했다. 간발의 차이로 실패했는데, 성공했다면 십자군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살라딘의 아들 알앟달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프랑크 왕은 군대를 이끌고 언덕으로 올라갔다가 공격하는 무슬림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왔고, 아버지 살라딘에게까지 밀고 왔다. 아버지가 크게 놀라 수염을 잡아당기며 저 악마들을 물리쳐라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무슬림은 반격을 가해 프랑크인들을 다시 언덕으로 몰아붙였지만…. 다시 한 번 맹렬하게 돌진해서 아버지를 노리고 내려왔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군대에 반격을 명령했고…. 나는 아버지에게 그들을 물리쳤습니다라고 외쳤다. 아버지는 나를 돌아보며 조용히 해라. 프랑크 왕의 텐트가 쓰러져야 정말로 물리친 것이다라고 말했다.

 

살라딘이 이 말을 하자마자 무슬림이 언덕 위에까지 올라가 텐트를 쓰러뜨리고 십자가를 빼앗은 다음에 포로를 모두 땅에 엎드리게 했다.   

 

전투가 모두 끝나자, 살라딘은 기와 르노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는 기에게는 물을 주었다. 물을 먹은 기가 컵을 르노에게 건네자, 그는 물을 거부했고, 살라딘은 마셔라! 네 놈이 마지막으로 먹을 물이니까.”라며 몹시 화를 냈다. 레이놀드는 살라딘의 물은 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조용히 대답한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살라딘은 그를 돼지라고 욕하면서 칼로 찌른 후에 머리를 벴다. 머리는 나중에 다마스커스로 보내져서 길가에 전시된다.

 

그림 설명: 킹덤오브헤븐에서 감탄하게 만든 고증. 살라딘 앞에 기와 르노가 끌려와있다. 르노는 기가 전해준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

 

(우에스기왈: 이 장면은 킹덤오브헤븐이 더 정확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 당시 무슬림에서는 적의 왕은 죽이지 않고 풀어주며, 술탄의 대접을 받은 적이나 죄인도 풀어주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면 살라딘에게서 얼음물-얼음물이 맞다-을 받은 기가 르노에게 바로 넘겨준다. 살라딘은 적의 왕을 예의로 접대했고 기는 무슬림의 전통을 악용해 르노를 살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르노를 죽이겠다고 맹세했던 살라딘은 바로 목을 베어버린다.)

 

 

살라딘은 이슬람 개종을 거부한 기사단 기사들의 목도 모두 벴다. 수천 명의 포로는 노예가 되었고 귀족들은 몸값을 치른 후에 석방된다. 기는 다마스커스에 수용되었다가 다음 해에 풀려났는데, 기는 1189년에 아크레를 포위해서 3차 십자군 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그림 설명: 살라딘의 예루살렘 공략. 클릭하면 커집니다.

 

전투 후에, 살라딘은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하지 않고, 2주 만에 거의 모든 십자군의 항구를 탈환한다. 콘라드(Conrad)가 제 시간에 지원군을 보낸 티레(Tyre)만 저항을 계속 했다. 내륙지방도 케락(Kerak) 등 극소수의 요새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탈환한다. 살라딘은 같은 해 9월에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예루살렘은 하틴에서 간신히 탈출했던 발리안이 항전을 했지만 결국 10 2일에 항복한다.

 

예루살렘 왕국은 사실상 사라졌고, 패전의 소식은 유럽을 충격으로 몰아넣어 가장 큰 규모의 3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된다. 영국왕 사자왕 리차드 (Richard the Lionheart), 프랑스왕 필립 아우구스투스 (Philip Augustus) 그리고 신성로마황제 프레드릭 바바로사 (Frederick Babarossa)가 예루살렘을 다시 자신들의 성지로 되돌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동쪽으로 진군을 시작한다.

 

그림 설명: 성지를 향해 집결한 십자군. 킹덤오브헤븐의 한 장면.

 

그림 설명: 3차원정을 떠나는 리차드. 킹덤오브헤븐의 한 장면으로 발리앙에게 찾아와 함께 떠나자고 한다.

 

 

 

 

 

 

 

 

 

Militaty History James Lacey의 기사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부록으로 그 동안 멋있게만 보였던 십자군 기사의 굴욕그림도 올립니다.

 

 

 

예루살렘에서 풀려난 십자군 기사입니다.

 

 

 

 

 

 

 

 

 

 

 

 

 

 

 

 

 

 

 

성지에서 돌아오는 십자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