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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여행

용산 전쟁기념관 둘러보기 - 근대~현대(1)

by uesgi2003 2012. 2. 16.

 

제가 사는 지역이 홍은동이라 요즘 차를 가지고 다니기 매우 힘듭니다.

홍은동 고가 철거 때문이죠.

고가도로 철거를 할 계획이었으면 고가도로부터 철거하고 버스 중앙차선은 나중에 해야 했었는데 버스 중앙차선 공사 후에 고가도로를 철거하면서 엄청난 교통 체증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이 몇 시의 사진인지 짐작하실 수 있나요?

자정을 넘긴 1시의 사진입니다. 한 달 동안 2~3km를 이렇게 줄지어있고 새벽 3시~6시까지만 풀리고 다시 이렇게 됩니다.

 

그동안 지하철을 타고 다니느라 녹번->홍제 방향만 이렇게 막히는 줄 알았는데, 어제 여러분에게 전쟁기념관 뒷 이야기를 올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다녀오다가 반대편은 더 심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서대문->녹번 구간 5km 정도가 2시간이 보통이더군요.

특히 홍은 고가철거 지점에서는 3개 차선이 1개 차선으로 변하고, 대형 시내버스까지 엉키면서 대혼잡이었습니다.

 

여행떠나기 전에 전쟁기념관 이야기를 마무리짓기 위해 차를 가지고 나갔다가 길거리에 괜한 기름만 흘리고 다녔습니다.

 

이제부터 용산 전쟁기념관의 나머지 이야기 근대~현대의 1편입니다.

 

용산 전쟁기념관이 수익사업을 위해 외부에 전시공간을 빌려주고, 6/25 전쟁관 일부는 리모델링 들어가고, 현 정부들어 반공교육강화한다고 온갖 공간 새로 마련해 이상한 짓거리 하느라 관람동선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기념관에 자주갔던 저도 헷갈려서 몇 번을 다시 들어갔을 정도이니 관광오신 지방분들은 많이 혼동하시더군요.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거의가 몇 군데를 빼고 이동할 수 밖에 없었고요.

그리고 체험관 등에 있는 봉사자(?)들은 너무 소극적으로 응대해 뭔지도 모르고 지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쟁기념관은 그냥 역사의 박물관으로 남겨두고 정치 놀음에 이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제부터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거의 사진만으로도 설명되기 때문에 클릭해서 큰 사진으로 즐기시기 바랍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사라지고, 항상 그랬듯이 일반 국민이 저항을 계속합니다.

 

 

 

 

 

 

 

 

 

 

 

 

 

 

 

 

의병과 독립군이 사용하던 무기들입니다.

이제 현대로 무대를 옮겨서 민족최악의 비극 6/25 전쟁입니다.

전쟁기념관에 아주 다양한 시청각 자료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한 눈에 어떻게 발발되었고 종전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장 잘 만들어진 포병 미니어처입니다.

 

 

추운 겨울 임시 숙영지에서 휴식하고 있는 국군의 미니어처입니다.

거의 모든 지역을 북한군에게 내주고 낙동강을 최후의 보루로 삼았던 절대절명의 낙동강 전선입니다.

지도를 보면 거의 공산화가 기정 사실처럼 보입니다만, 낙동강 전선 뒤에는 막대한 연합군 병력,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일반 국민들의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에 절대로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뉴라이트 보수꼴통들이 건국의 아버지 운운하며 떠받들던 이 승만은 가장 먼저 부산으로 도망가서 국민들만 앞세워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종전 후에는 국민의 피흘린 평화에 절대부패 독재로 군림하다가 4/19 국민저항으로 다시 도망칩니다.

 

낙동강 전선에 웅크린 국군과 연합군을 무리하게 공격한 북한군은 거의 모든 전력을 소진하고 반격 작전에 순식간에 밀려나게 됩니다.  

 

 

무반동포입니다.

중소형 화기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던 기억인데, 아마도 전시실 리모델링으로 폐쇄된 구역에 있지 않았나 합니다.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일등공신 중 하나인 250kg짜리 폭탄입니다. B-29가 융단폭격으로 북한군의 전후방을 완전히 초토화시켰습니다.  

 

 

 

 

반격작전과 인청상륙작전으로 국군이 3.8선을 통과해 북진하고 있습니다.

 

 

 

 

 

 

 

압록강의 물을 수통에 담고 있는 국군입니다. 이 때만 해도 통일이 바로 다가온 듯한 축제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국군의 무대포식(칭찬입니다^^) 용맹은 유명한데, 연합군이 500회 출격에도 성공하지 못했던 평양의 승호리 철교를 폭격해 후방을 끊고 있습니다.

 

 

 

 

 

 

 

 

연합군이 평양 시내를 폭격하고 있습니다.

 

 

 

 

 

 

 

 

소련군은 전차병 훈련을 위해, 그리고 수세에 몰리자 전투기 조종사를 파병해 참전했었는데, 중공군이 드디어 참전해 북진통일이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엄청난 인해전술로 방심하고 길게 늘어선 연합군의 길목을 차단했고 큰 피해를 입은 국군과 연합군은 다시 서울을 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군이 수도고지에서 중공군 2개 사단을 막아내는 모습입니다.

 

  

 

 2차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되어 평화에 대한 열망이 높았고 미국의 적극적인 주도로 많은 연합군이 UN의 깃발 아래 참전하게 됩니다.

각 국가의 참전규모와 내역은 사진에 잘 나와 있습니다만, 대부분이 명목상의 참전(전쟁에 거의 도움이 안되는 소규모 파병)일 뿐이고 99%는 미군의 참전이라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 전차는 말할 것도 없고 소총하나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던 우리나라가 참전국가들보다 훨씬 발전했고 이제는 거꾸로 원조파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우수한 국민입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이제부터는 무능한 정부가 제일 먼저 도망가고 남겨진 일반 국민들의 괴로운 생활입니다.

위대한 건국의 아버지(?) 이 승만이 "우리 국군은 개성을 넘어 북진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안심하고 평상시처럼 생활하세요"라는 거짓 방송을 하고, 한강철교까지 끊어 피난 길까지 막으면서 서울에 살던 거의 대부분의 시민이 북한군의 진격을 거리에서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서울을 탈환하면서 영문도 모르고 살아 남기 위해 북한군을 환영했던, 식량을 구하기 위해 북한군의 노역에 참여했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도 하지 못했던 선량한 시민들이 많은 보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의 무차별 징집을 피하기 위해 남자들은 이 사진에서처럼 숨어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이 탈환되었어도 폐허만 남은 서울 시민은 국군과 연합군의 원조를 받아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많으신 노인분들은 꿀꿀이 죽을 드시고 연명하셨을 것입니다. 꿀꿀이 죽은 연합군의 음식물 쓰레기 통을 뒤져서 끓인 죽으로 우리 역사의 아픈 기억입니다.

 

지금은 하나의 명품 음식이 되어가는 부대찌게도 미군 부대에서 나온 쏘세지와 햄 쓰레기로 만든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뛰어난 점 중 하나가 교육열입니다. 폐허 속에서도 천막 학교는 계속 되었고, 부모가 굶어도 아이들은 학교를 보내 재활의 의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북한군 점령지에서도 강제노역과 징집이 악랄했지만 탈환지역에서도 노역과 징집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양쪽에서 영문도 모르고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낮에 국군이 진주하면 태극기를 걸다가, 밤에 북한군 빨치산이 산에서 내려오면 인공기를 걸어야 했는데, 이것을 구분하지 못한 노인들이 학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보시면 민족의 비극이라는 말이 잘 이해될 것입니다.

 

어린 세대가 재미있게 역사와 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은 전시공간에 중복된 공간이 많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역사가 쌓여가면서 중복된 공간이 점차 기록물로 채워져 가기를 바랍니다.

 

 

다음 편에서는 베트나 파병, 해외 파병, 현대식 무기, 야외 대형 전시물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