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로는 적 전폭기에 더 없이 좋은 목표물로 가득했다. 포위망을 탈출한 많은 병력, 우리와 같이 외톨이가 된 전차, 장갑차, 말과 마차. 몇 채 안되는 농가는 모조리 불타고 있었고 텃밭은 임시 묘지가 되었다. 밭에는 T-34 한 대가 뒤집혀 있었고 슈투카Stuka 전폭기 한 대는 완전한 상태로 버려져 있었다.
우리가 12군 지역이라고 생각했던 이곳은 여전히 위험지역이었다. 좌측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12군 보병이 중앙으로 대거 밀려와서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장교들이 머리 위로 총을 쏘아댔고 무기를 일부러 버린 몇 명은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다.
겨우 1km 떨어진 방어선에 구멍이 났고 폭발음 사이로 전차소음이 들렸다. 은폐해 있던 돌격포 2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위기지점으로 향했다. 승무원은 16살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었는데 사지로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통제와 공포로 얼굴은 무표정이었고 눈도 풀려 있었다.
2차대전 프로펠러기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슈튜카입니다. 정식 명칭은 Junkers JU87이고 37mm 포를 2문 장착한 G형입니다. 정밀폭격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제공권을 빼앗긴 후에는 크게 활약하지 못했습니다.
판터를 돌려 2단 기어를 넣고 간신히 그들을 따라갔다. 관목 사이에 참모차가 보였다. 국방군 소령 2명이었는데 말짱한 상태에서 사지로 떠나는 어린아이들을 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지나가며 일부러 부딪쳐 바퀴를 찢어 놓았다.
방어선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돌격포 2대가 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는 T-34 무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벙커의 88mm도 연신 포탄을 날렸고 얼마 안되는 보병은 개인참호나 포탄구덩이에서 판저파우스트를 끌어 안고 움츠려 있었다.
50대의 국민돌격병들이 우리를 빠르게 지나갔다. 판저파우스트와 소총만으로 구멍을 막으라고 투입되었다. 순식간에 포탄에 맞아 팔다리가 날아갔다. 히비스Hiwis 몇 명이 재빨리 뛰어가 죽은 사람의 총을 들었다. 그들은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리투아니아 히비스입니다. 히비스는 외국인 의용병으로 소련 일대에서 약 5만 명이 독일군복을 입었습니다. 잡히면 처형되거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평생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종전 직전에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전력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1955년에 모두 사면받아 석방되었습니다.
포수가 T-34 선두차량을 쏘아 세웠고 보병 둘이 판저파우스트를 들고 뛰어가 마무리지었다. 로켓탄이 전면장갑을 찢었고 적군이 해치로 빠져 나오려고 애쓰는 순간에 내폭을 일으켜 모조리 죽었다.
우리 전차도 한 발을 맞았는데 포탑전면 끝이 찢어졌다. 햇빛이 차내를 환하게 밝히는 구멍이 생겼다. 다른 한 발은 전면장갑을 맞추고 파편을 뿌리며 위로 튕겨 올라갔다. 포수에게 남은 포탄을 아끼지 말라고 명령했다.
88mm 포대로 달려가던 전차를 맞췄다. 포탑을 완전히 날렸는데도 차체는 여전히 굴러 가서는 포대를 깔아뭉갰다.
이제 연료도 포탄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후진하라고 명령했다. 소년병의 돌격포는 반대편에서 끊임없이 달려드는 T-34에게 포탄을 날렸다. 갑자기 판터 2대가 나타나 그들을 지원했는데 도색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공장에서 바로 나온 것 같았다.
중앙으로 되돌아가던 중, 탄약이 다 떨어진 히비병사들이 일부러 몸을 드러내고 T-34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고통없는 즉사를 선택했다. 포로로 잡히면 굴라그Gulag로 여생을 보내야 하고 가족도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1923~61년 사이에 존재했던 소련 전역의 강제노동수용소, 굴라그입니다.
일부러 차를 망가트렸던 소령 두 명이 권총을 휘두르며 전차에 태우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들에게 조금의 동정심도 없었기 때문에 전차에서 내려 무장해제시키고 차를 뒤져 연료가 가득한 캔 2개를 찾아냈다. 기적이었다!
30km는 더 갈 수 있는 연료였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던 소령은 태워주면 금시계 한 상자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우리는 지나는 국민돌격병의 판저파우스트를 두 사람에게 주고 방어선으로 강제로 보냈다.
국민돌격병도 우리를 응원했다.
탈출로가 시시각각으로 좁혀지고 있었다. 적 전폭기를 머리 위를 선회하며 탈출로에 집속탄을 떨어트렸다. 폭탄은 하늘에서 여러 개로 갈라져서 넓은 지역에 볼 베어링과 파편을 뿌려 큰 피해를 입혔다.
다행히 판터는 그런 파편을 충분히 견디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경악했다. 장교를 가득 태운 민간인 버스가 집속탄에 맞아 완전히 찢어져 버렸고 장교들이 밖으로 기어나와 도로에 뒹굴고 있었다.
지나던 보병은 그들 위로 무심하게 건너갔고 줄무늬 군복을 입은 정치범들이 무장친위대의 명령에 따라 가방, 그림, 가구를 가득 실은 마차를 그 사이로 끌었다. 다시 날아온 전폭기가 마차를 날려 버렸고 살아남은 정치범은 죽은 무장친위대의 총을 들고 외곽으로 뛰어 달아났다.
집에 노인 2명이 목매달려 있었고 목에는 이런 표식이 있었다. ‘우리는 적에게 백기를 들었다.’ 실제로 한 명의 몸에는 백기가 둘러져 있었다.
무장한 민간인 여성들이 소련군 보병을 하나 잡고서는 지나가는 병사들에게 처리를 부탁했다. 아무도 민머리의 적군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한 여성이 머리를 쏘고는 지나가는 마차를 타고 사라졌다.
적 전폭기가 다시 대공포를 맞고 나무 사이에 곤두박질쳤다. 낙하산으로 탈출한 조종사는 나무 가지에 걸려 매달렸는데 버둥거리다가 누군가가 쏜 총을 맞고 죽었다.
들판에는 동쪽에서 탈출한 아군 전투기가 연료가 다되었는지 착륙해 있었다. 포케불프Focke-Wulf 전투기는 온전하게 잡초 위에 앉아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는 융커스Junkers 52가 동체착륙 후에 장성계급의 한 명이 근처에서 엎어져 있었다.
몇 분 후에 나무 너머에서 가솔린 냄새와 함께 무언가 큰 것이 움직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나는 판터에서 내려 보병 한 병과 함께 정찰했다. 적군 전차이거나 아군 장갑차일 것으로 생각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신형 전투기 메서슈미트Messerschmitt 262였다. 아름다운 제트엔진 2개를 장착한 기적의 무기였다. 뉴스에서와 달리 동체가 너무 커서 놀랐다. 동체는 수작업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고 기수의 독일표식 외에는 어떤 도색도 하지 않았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전폭기가 모두 등장하는군요. 본격적인 제트엔진 시대를 연, ME-262입니다.
최대시속 900km로 연합군 최강의 전폭기 머스탱Mustang보다 200km나 빨랐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1,400기 이상이 생산되었지만 히틀러의 광적인 집착으로 본토방어용 요격기가 아닌 폭격용도로 오용되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많은 변종이 있었는데 가장 아래의 그림은 폭격기를 요격하는 야간전투기형입니다. 밤에 폭격기 아래를 지나가며 동체 중간에 매립된 기관포로 폭격기를 훑는 용도입니다.
보병이 ‘프로펠러가 없어! 이건 기적이야’라고 중얼거렸다. 10살 정도의 소년이 몇 마리의 소를 부려서 262를 끌고 가고 있었다.
무척 혼란스러운 광경이었다. 상상 속의 기적의 무기가 중세에서나 볼 듯한 우마차 신세가 되었다. 천천히 끌려가며 연료를 계속 흘렸다.
공군 조종사가 우리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절대로 담배 피우지마. 우리 모두 다 죽어’라며 씩 웃었다. 그는 ME-262가 왜 여기에 있으며 금보다 더 비싼 제트연료를 흘리고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이제 어떻게 서쪽으로 가지? 이제 끝장이네. 당신들이 사라지면 불붙여야겠어’라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일분쯤 지났을까? 우리가 떠난 그 일대가 엄청난 오렌지색 폭발을 내며 불타올랐다. 농장 소년이 달려와 미친듯이 소리쳤다. ‘그 사람이 담뱃불을 붙였어요. 바보같이!’
우리 전차는 신음을 내며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이제야 규율이 제대로 잡힌 지역에 들어섰다. 헌병은 행렬을 유도했고 급조한 방어시설은 제대로 구축된 참호와 전차호로 바뀌었다. 병력은 처참하거나 말짱한 상태가 뒤섞여 있었다. 무기력한 대전차포 몇 문을 잡병 수준의 포병이 지키고 있었다. 말끔한 상태의 히틀러소년병Hitler Youth 부대가 바퀴와 트랙도 없는 구형 3호 전차와 함께 거점에 배치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야전부엌도 있어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스프를 건네 주었다. 나는 판터 차체 뒤에서 내 몫을 먹었다. 엔진연기로 그을리고 미식거렸지만 이제 확실히 12군 지역에 들어섰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장갑차 옆에 있는 병사들을 지나칠 때에 한 명이 우리에게 소리쳤지만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나중에 뒤에 타고 있던 아이가 내 소매를 끌며 이렇게 말했다. ‘총통이 죽었다는 데요.’
우리는 다음 부대 옆에 멈춰서 몇 분 동안 라디오를 들었다.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 시가전 중에 죽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겨우 30km 북쪽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여성 일부는 흐느꼈고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공공연하게 자살을 입에 올렸다. 나는 등쪽 부상의 고통 때문에 마지막 진통제를 먹었다.
엘베강 직전의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주변의 12군 지역은 완전히 폐허였다. 아직은 12군 잔여병력과 탈출한 9군이 버티고 있었지만 엘베강 서쪽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적군의 압박이 심했다. 서쪽의 미군은 반대편 강변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엄청난 차량과 인파가 강으로 향했다. 적군은 우리의 대공포 방어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지배했고 전폭기가 계속 날아와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소련군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 남지 않은 이 지역을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다.
아마도 종전을 앞두고 최대한 포로를 잡는 동시에 인간미에 호소하려는 것 같았다. 하늘에서 무의미한 저항을 중단하라는 안내장이 내려왔다.
‘히틀러는 죽었다. 베를린도 항복했다.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야 할 차례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연합군이 히틀러를 화장한 장소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서도 지축을 흔드는 소음으로 떠들어댔다. 자이들리츠 장교의 목소리가 몇 km 밖까지 들렸다. 내용 전체를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항복, 평화, 생명, 선의 등의 단어가 들렸다.
대부분의 병사가 무기를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무장병력을 보기 힘들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배낭만 메고 걷고 있었다. 계급장이나 부대표식은 떼어냈고 초원은 뱃지와 모자로 뒤덮였다. 농부 복장을 입은 병사도 많았다.
술만큼은 구하기 쉬워서 도로 주변에는 만취해 누워있는 사람이 많았다. 아마도 참극과 공포에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도로주변에는 방기된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전차도 몇 대 있었다. 판터는 우리 전차가 유일했는데 거의 사망직전이었다. 도로 교차지점의 거대한 구덩이가 있어서 무거운 차량은 건널 수 없었고 보병은 나무다리로 건너갔다.
우리는 초원으로 우회를 했는데 강 근처의 들판은 습지에 가까워서 궤도가 거의 물에 잠겼다. 판터를 일부러 가져갈 필요가 없었다. 이제 걸어서 엘베강까지 갈 수 있는 데다가 판터의 엔진이 불붙기 직전이었다.
판터를 적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판터를 일부러 습지로 몰아갔다. 뒤에 탔던 부상병과 시민을 내려 놓은 후에 2단 기어로 판터를 밀어 넣었다. 우리도 뛰어내려 판터가 잠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전투와 주행 중에 그렇게 친숙했던 큐폴라 속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거품과 연기가 물 위로 올라왔다. 수면이 잠잠해지자 승무원을 데리고 마지막 희망인 엘베강으로 향했다.
강으로 향하는 길은 온갖 종류의 사람으로 가득 찼다. 민간인, 비무장병과 무장병 등. 전차군단의 무장친위대가 사람들을 밀어내며 앞으로 향했다. 갈라진 틈으로 강물이 보였다. 200m 너비의 강은 검은 색이었다.
다리가 한 개뿐이었는데 남북의 다른 다리는 미군의 도강을 막기 위해 지난 4월에 이미 폭파했다. 사람들이 왜 주저하고 있는 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중앙부분이 날아가서 한 줄로 천천히 건너가야 했다.
미군지역은 기대와 달리 버려진 것처럼 보였다. 전차도 없고 보병도 없었다. 부근에 있던 포병중위에게 물었더니 미군은 강 서쪽 몇 km 밖으로 후퇴했다고 했다.
‘미군은 소련군과 충돌을 원치 않으니까. 지금만 해도 5~6만 명의 사람이 몰려 있는데 모두 강을 건너갈 수 있을까?’
강 건너에는 소화기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미군에게 항복할 생각이어서 일부러 무기를 가져갈 필요가 없었다. 일부는 빠른 강물을 수영으로 건너려 했다. 무사히 건넌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검은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일부는 부교에서 빼낸 보트를 타고 건넜지만 천천히 물에 잠겼고 그들도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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