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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참혹한 할베 포위망 탈출 , 마지막 이야기

by uesgi2003 2017. 4. 16.


역사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면 두 가지 자료가 있습니다. 철저하게 팩트만 설명하는, 몸에는 좋지만 입에는 쓴 자료. 그리고 적절한 각색으로 팩트와 상상을 교묘하게 뒤섞은 자료.

지식을 위해서 읽는 자료는 전자가 좋지만 아무래도 지루하고 난해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후자, 특히 상상이 지나쳐 왜곡과 조작을 하는 이야기를 즐기게 됩니다. 


할베 포위망 탈출도 저자의 각색이 상당한데 그래도 재미있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장편 하나를 더 정리할 예정입니다. 



참혹한 할베 포위망 탈출 , 마지막 이야기


앞에 있던 무장친위대가 사람들을 마구 밀치며 강변으로 몰려갔다. 총소리가 들렸고 잠시 후에 포병후보생 2명의 시신이 보였다. 아마 무장친위대와 다툼을 벌였던 모양이다. 부상병과 탈진한 민간인도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수천 명 행렬 사이에서 울며 가족을 찾았다. 우리와 함께 온 민간인들이 6명 정도의 아이를 모아 다리까지 함께 갔다.

다리를 지키고 있던 병력은 귀중품을 받고 새치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금시계, 카메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내밀면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욕을 하다가 뒤에서 폭발음과 비명 소리가 들리자 귀중품을 내밀며 건너려고 했다.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은 밟혔다. 갑자기 나타난 말이 행렬을 헤집고 난장판을 벌이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 상공의 적군 전폭기는 배기연을 맡을 정도로 선회비행하며 우리를 지켜보았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다리로 마구 달려갔다.

 

많은 사람이 밟혀 죽었는데 대부분이 노약자였다. 강변은 진흙경사가 가파라서 떨어진 사람은 올라오지 못하고 익사했다. 우리 일행도 간신히 다리에 달라붙었고 한 줄로 건너기 시작했다.

포위망을 탈출하며 우리는 엘베강에 있을 미군만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편 잔디에 내리자 기분이 묘했다. 전차와 전투기는 물론이고 단 한 명의 미군도 보이지 않았다. 다리에서 내린 병사들은 모두 무기를 버렸고 그렇게 쌓인 더미가 4m를 넘었다. 나도 권총을 버렸고 이제 남은 것은 부탁받은 미지의 여성사진과 카포의 철십자훈장 뿐이었다.

우리가 떠나려고 하자 헌병 한 명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술에 취한 헌병은 권총을 우리에게 휘두르며 그 훈장 내놔. 철십자 훈장 하나에 10달러야라며 웃었다.





 

나는 네 것이 아니야라고 소리치고 한 대 갈겼고 그 놈은 총을 쏘았다. 1945 5, 나의 전쟁은 엘베강 서쪽 강변에서 이렇게 끝났다. 2년의 참전 끝에, 쿠르스크부터 할베 포위망까지 수 많은 시체를 넘었다. 온갖 고난을 겪은 나의 전쟁은 만취한 헌병이 내 어깨에 총구멍을 내는 것으로 끝났다.

다른 동료들이 그 놈을 밟아서 죽였고 나는 땅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전우가 미군지역의 적십자 센터로 데려갔다. 등의 상처까지 겹쳐서 부상은 심했고 더디게 회복되었다. 하노버Hanover 외곽의 학교에 임시로 마련된 적십자 바닥에서 며칠을 보내며 미군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카드 놀이를 했다.

처음 먹은 음식은 토했다. 거친 국방군 배급과 물에 익숙한 내 위장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달고 고급이었다. 독일군은 배식시간에 보이는 핫도그, 스크램블 에그, , 비스킷화 허시Hershey 초코렛을 보고 경악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적십자 지원자와 여러 국가의 수녀가 해준 처치는 최고였다.

 

내 군복은 락커에 접어두고 병원에서 나눠준 민간인 옷을 입었다. 매일 면도했고 태양을 쪼이며 담배를 즐겼다. 우리는 전쟁에 대해 절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자상을 입은 병사 하나가 새로 들어왔는데 다리에서 난동을 부렸던 무장친위대였다. 나는 아는 척하지 않았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전우는 미군과 영국군 지역의 포로수용소에 분산되었고 민간인은 독일국내로 풀려났다고 들었다.

미군 하사의 취조를 받았는데 그는 내 참전기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냥 공산주의에 관심이 있는 지만 물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나갔다

 

동쪽의 소식은 전혀 알지 못했다. 엘베강 동쪽의 적군에게 사로잡힌 수백만 명의 사람은 소련체제에 흡수되었는데 들리는 소식이 아예 없었다. 일부는 소련 중앙, 코카서스산맥 너머로 끌려갔다고 했다. 일부는 시베리아나 몽골 심지어 소련인도 돌아올 수 없는 오지로 보내 졌다고 했다.

필사적으로 탈출한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핫도그와 초콜렛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미영 연합군은 자신들이 파괴한 도시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커피, 화장품, , 가솔린, 모르핀, 칼라잡지, 카메라, 포도주 등을 살 수 있었다. 심지어 철십자 훈장 10개와 루커Luger 권총 한자루면 지프Jeep와 바꿀 수 있었다.

 

내 미군상대는 반드시 루거야. 발터Walther는 가치가 없어라고 고집을 피웠다. 거리는 미군 GI와 다니는 독일 여성이 흔했고 모든 것이 활기찼던 전쟁 이전 분위기가 났다.

그렇지만 나는 달랐다. 국방군이 내 가족이었고 돌아갈 집이나 재산도 없었다. 밤에는 악몽으로 흐느끼고 울부짖었다. 할베 포위망이 되살아날 것 같아서, 지하실에서 내게 총맞아 죽은 러시아군을 꿈꾸게 될 것 같아서 잠을 못 이뤘다.

나는 사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간호사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사진을 본 간호사는 그렇지만 여동생이 있잖아요? 여차친구인가요? 그녀에 대해 전혀 말을 안하네요라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 그녀 그리고 그녀의 가족과의 새 인생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녀와 결혼해서 미군지역에서 기계를 다루는 직업을 찾고 싶었다. 독신남성이면 다들 꿈꾸는 그런 인생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몰랐지만 사진 뒤의 주소를 보면 엘베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가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졌다. 1945 8, 양복 한 벌, 백팩과 간호사가 전해 준 꽃다발을 들고 병원을 떠났다.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우편트럭을 탔다가 농장마차로 갈아탔다. 동년배로 보이는 남성이 몰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냥 거리를 지켜보며 말을 건네지 않았다. 거리는 잔해를 치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늘어서서 벽돌을 건네 받고 건네 주었다. 미군 불도저가 구획을 모두 밀어내면 트럭이 목재와 콘크리트를 싣고 와 건물을 지었다.



 

미군은 우리를 용서한 것처럼 보였고 할베 포위망은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그 기억은 엘베강 동쪽 숲과 우리들 마음 속에만 남았다. 미국이 우리의 미래였다.

마차가 그녀의 집에 멈췄다. 내 미래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그런데 집은 완전히 닫혀 있었다. 전투직전의 불안감이 몰려왔다. 집안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기에 주변의 이웃을 찾았다. 그녀의 사진을 보여주고 아는 지를 물었다.

노인은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어두운 부엌식탁에 앉혔다.

 

그녀가 여기에 있나요? 어디에 있죠?’

미군은 우리를 정말 잘 대해주었어요.’

. 압니다. 저도 봤습니다. 그녀는요?’

미군은 관대했고 질서를 되찾아주었어요. 소련이 점령한 동부와 비교하면 우리는 운이 좋죠. 거기에서는 여성에게 참혹한 짓을 계속 저질렀어요.’

. 운이 좋았습니다. 저도 적군에게서 탈출해 서쪽으로 왔습니다. 탈출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디에 있죠?’

젊은이. 우리는 미군에게 어떤 반감도 없다우. 마치 사과 한 두개가 썩듯이 군대에도 소수의 문제거리가 있기 마련이에요. 안타깝지만 그녀는 더 이상 여기에 없다우.’

 

떠났나요?’

죽었다우. 너무 안타까워요. 어느 군대이건 법을 안지키는 병사가 한 두 명은 있어요. 소련군에 비하면 미군은 정말 착해서 운이 좋아요. 절대로 화내면 안되요. 절대로 복수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녀는 몇 주 전에 미군에게 죽었어요. 술취한 병사가 강제로 그녀를 범한 후에 목졸라 죽였어요. 그렇지만 체포되어서 군사재판 중이라고 해요. 시장이 미군과 무척 가까운데 분명히 교수형받을거라고 하네요.

미군 지역에서는 정말 드문 일이에요. 이런 사건은 잊어버려야 해요. 마음에 담아 두어봐야 좋을 일이 없어요.’

 

나는 어두운 부엌에서 밖의 건설소음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질 무렵에 집을 나왔는데 갈 곳이 없었다. 폐야적장 들판에는 전차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작은 헤처, 돌격포, 거대한 타이거와 판터

너무나도 많은 강철괴물이 더 이상 존재가 없었다. 그 노인의 말이 옳았다. 이런 일을 마음에 담아두어서 좋을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