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다가, 남은 분량도 얼마 안되기에 그냥 마저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참혹한 할베 포위망 탈출 7부
천 명 정도의 일행이 안전해 보이는 지역에 도착했다. 도로가 없어서 전차는 오크나무와 사과 과수원 사이를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피난행렬이 뒤를 따라왔는데 탈진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이 처지면서 숫자가 크게 줄어 있었다.
가끔 보이는 집 주인은 우리를 반기며 군복을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 입으라고 권했다. 일부 병사가 집안으로 사라졌다.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뒷뜰에서는 군복과 인식표를 태우는 불길이 올라왔다. 여성과 아이들도 그대로 집에 남으면서 숫자는 더 줄어들었다.
다행히 하늘에는 소련 전폭기가 보이지 않았고 멀리 뒤에서 들리는 끔찍한 폭음도 더 가까워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적군이 일부러 우리를 12군과 엘베강으로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가 크게 줄어들어서 양쪽의 들판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양측면을 지키던 소수의 공수대원와 무장친위대가 멀리 소련군 차량이 보일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소련군 차량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아서 더욱 의심스러웠다.
공식적으로 종전되었고 우리 행렬이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렇지 않다면 적군이 우리를 그대로 지켜볼 리가 없었다. 몇 km를 더 가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적군은 우리를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12군까지 약 10km 남았고 그 후에는 엘베강에서 미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들판으로 나서자 일단의 병사가 킹 타이거 앞에 서 있었다. 포수가 “독일군입니다. 드디어 해냈습니다. 12군입니다”라고 환호성을 질렀다.
할베에서 우리를 속였던 자이들리츠Seydlitz 놈이 기억 나서 MP40을 들었다. 포탑 옆에 서 있던 카포는 이미 권총을 들고 있었고 조심해 다가가라고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킹 타이거 앞에 판터를 멈추고 병사들을 살펴보았다.
수염도 못 깎고 누더기 군복이었다. 굶주리고 공포에 질려 있었다. 12군 장갑척탄병이라고 대답했는데 인식표가 맞았다. 자이들리츠 여단은 인식표를 달지 않았다. 그들은 앞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기 때문에 피난민을 안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2차대전과 거리가 먼 우리에게도 무척 익숙한 MP40입니다. 독일군이 수세에 몰리면서 시가전과 방어전이 많아졌고 MP40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소련군의 PPSh-41에 비해 분당 550발과 사거리 100m 정도로 화력은 크게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소련군이 노획해서 사용하거나 미영 연합군의 좋은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하사관Feldwebel이 “5km만 가면 통로를 만납니다. 많은 사람이 미군측에 도착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나?” “아닙니다. 적군이 오늘은 조용할 뿐입니다. 어제 노동절 축하를 벌였으니까요. 보드카와 여자에 취해 있습니다. 저기를 보십시오!”
러시아군 2명이 도로 옆 덤불 아래에서 자고 있었고 주변에는 빈 병이 많았다. 아군이 그놈들의 기관단총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그랬다. 5월 1일, 노동절Red Communist festival 다음 날이었다. 종전이 직전인 데다가 경축일 다음이니 목숨걸고 우리를 추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킹 타이거 전차장이 우리에게 소리질렀다. “놈들이 정신차리기 전에 서두릅시다.”
12군 병사들을 전차에 태우고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진했다. 무기도 없이 뒤를 따르던 병사들은 근처 집의 여물통 물을 마셨다.
전차와 우리 몸의 악취에도 불구하고 주변 들장미의 향이 너무 좋았다. 집까지 그대로 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12군 병사의 말에 따라 전차를 멈췄다. 그들은 뛰어내리며 “적군을 확인하고 돌아오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연료를 아끼기 위해 엔진을 껐다. 뒤를 따르던 행렬도 멈췄다. 포탑에 기대 서있던 카포는 소매로 얼굴을 씻어 내리며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몇 분 후, 꺼진 도로 가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권총을 차고 허리에 두 손을 올린, 러시아 장교였다. 병사들이 조준했지만 쏘지는 않았다. 적군이 한 명씩 경사로 위에 나타났다. 말끔한 군복차림에 반짝이는 총을 들었다.
5~60명의 병사가 우리를 내려다 보았다. 덤불 밑에 취해 있던 두 명도 있는 것 같았다. 우리를 인도했던 12군 병사 한 명이 그 옆에 나타나 “동무들. 더 싸울 필요가 있습니까. 아직 전쟁 중이지만 며칠이나 몇시간이면 끝날 겁니다”라고 소리쳤다.
우리 뿐만 아니라 뒤의 보병도 욕설을 해댔지만 아무도 총을 쏘지 않았다.
“내 말을 들어요. 포위망부터 당신들을 따르던 사람들 기억납니까? 모두 죽었어요. 오늘 아침에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될 겁니다.”
카포가 “뭘 원하는 건데? 왜 여기에서 기다렸는데?”라고 소리쳤다. 배신자는 “러시아 장교 사이에 경쟁이 붙었습니다. 이제는 전쟁이 아니라 경기입니다. 독일군을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라고 답변했다.
“전차입니다. 전차를 온전히 넘기세요. 그리고 여자도 모두 넘기세요. 전차 승무원과 보병은 모두 가도 좋지만 민간인은 그대로 남겨야 합니다.”
킹 타이거 전차장은 나를 뒤돌아 보았다. 아무 말도 안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차체로 고개를 숙였다.
“동무들. 전차를 넘겨주세요. 온전한 전차를 모스크바로 가져가서 전승축하 행진에 사용한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대신에 여러분은 그대로 갈 수 있습니다. 무장친위대도 무사할 겁니다. 이렇게 관대한 적군은 없을 겁니다. 다른 장교라면 분명히 모두 죽일 겁니다. 동무들. 패전입니다. 요구에 따르세요.”
킹 타이거는 갑자기 연기를 내뿜으며 시동을 걸었고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전차장은 큐폴라 밖으로 상반신을 꼿꼿이 세웠다. 나도 판터 엔진에 시동을 걸게 했다.
누가 먼저 방아쇠를 당겼는지 모르겠지만 일대는 지옥으로 변했다. 배신자의 머리에 총알구멍이 뚫리는 것을 보았다.
적군 장교도 가슴에 총을 맞고 앞으로 쓰러졌다. 지휘관이 죽자 경사로 위에 있던 러시아군은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기관총탄을 전차와 보병에게 퍼부었다.
카포가 신음을 뱉으며 판터에서 굴러 떨어졌다. 카포는 그 다음에도 여러 발을 맞아 희망이 없었다. 포위망에서 무덤이나 묘비도 없이 사라진 수 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한 명이 뛰어내려 카포의 철십자훈장을 뜯어내서는 내게 던졌다. 전사자의 훈장을 적에게 넘겨주지 않고 유가족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전사한 아군에 대한 마지막 명예였다.
(전투장면은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킹 타이거 전차장도 전사했고 킹 타이거는 수류탄 세례를 받고 고장났습니다.)
백여명이 꺼진 도로를 빠져나왔다. 나는 그들에게 최대한 속도를 내라고 소리쳤다. 킹 타이거는 엔진룸에서 불길을 내뿜으며 계속 멀어져갔다.
하늘에서 슈트르모빅 3대가 굉음을 내더니 킹 타이거를 노렸다. 킹 타이거는 전폭기를 끌고 계속 다른 방향으로 갔는데 아마도 변속기가 고장난 것으로 보였다. 승무원은 실내에 가득 찬 매연으로 모두 실신했을 것이다.
슈트르모빅은 킹 타이거를 정확하게 노렸고 엔진룸과 포탑 지붕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기관포를 맞을 때마다 금속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전폭기가 되돌아오는데도 킹 타이거는 화염과 연기를 내뿜으며 계속 움직였다. 한쪽 궤도가 벗겨진 후에야 멈췄고 차체로 화염이 번졌다. 탈출하는 승무원은 없었다.
우리와 백명의 피난민은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소나무 숲은 인공조림된 곳으로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규칙적으로 도로가 교차했다. 첫번째 교차점에서 우리를 인도했던 12군 병사들의 시체를 만났다. 모두 엎드린 채로 총을 맞았다.
판터 상태는 절망적이었다. 양쪽 궤도의 장력이 틀어져서 사선으로 흘렀고 엔진그릴에서는 심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차체에서 변속기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앞으로 10~20km가 고작이었다.
첫번째 피난민 무리가 교차점을 건너고 두번째 무리가 건널 때에 총성이 울렸다. 총에 맞은 남성이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부상당한 여성을 구하려던 공수대원도 총에 맞았는데 그를 관통한 총탄이 여성도 죽인 것 같았다. 그런데도 저격병은 그녀의 머리를 또 쏘았다.
어디에서도 저격병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판터를 몰아 피난민이 건널 수 있는 엄폐물로 만들었다. 총탄이 장갑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제발 대전차총이나 로켓탄이 아니기 만을 바랬다.
포탑을 돌려 총탄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고폭탄을 쏘았다. 모두 교차점을 무사히 지난 것을 확인하고 판터를 다시 몰았다.
이런 식으로 세번째 교차점을 건넜지만 그때마다 희생자가 생겼다. 적군은 박격포까지 쏘았는데 다행히도 울창한 나무에 걸려 공중에서 터졌다. 몇 명이 파편에 부상을 입었고 그대로 두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4번째 교차점에서는 엔진이 완전히 나가버렸다. 부상병을 두고 떠난 방향에서 총성이 계속 울렸다. 저격병이었는지 아니면 자살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적군이 우리를 뒤쫓는 것이 나무 틈 사이로 보였다. 숲을 빠져나오자 불탄 지역이 있었는데 아직도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차량과 시신이 곳곳에 있었다. 4호 전차들이 마치 검열을 받는 것처럼 나란히 서 있었다. 화염을 피하려던 승무원의 시체가 해치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이제 12군과 매우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양쪽에서 전투소음이 계속 들리는 것을 보니 12군이 열어 둔 탈출구를 적군이 공격하는 모양이었다. 1km 정도만 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12군이 있는 언덕 사이 방향으로 향했는데 이제 판터는 걸어가는 속도까지 떨어졌다. 200m 정도가자 마치 폭발할 것처럼 요동을 쳤다. 그 광경을 본 피난민은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제 유테르보크Juterborg(지도 참조) 외곽의 가옥이 보였다.
그 순간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대구경 포탄에 맞은 집은 먼지더미로 변했다. 오른쪽에도 포탄이 떨어져 몇 사람이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적군은 재조준 후에 우리 앞쪽을 가로질러 때리기 시작했다. 포격의 장막을 뚫고 나가야 했다. 나는 포탑 안으로 들어가 숨었고 파편과 돌조각이 장갑판을 심하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옆에 떨어진 포탄 때문에 차체 전체가 위로 치솟는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파 때문에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귀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엔진이 완전히 나갔다. 운전병이 시동을 걸려고 노력했지만 이제 전차를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다음 포탄이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밖으로 나가 엄폐물로 숨으라고 명령했다.
우리는 모두 집 근처 땅에 엎드렸다. 집 안에는 이미 피난민이 몸을 숨기고 있었고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모여 있는 모습이 창문 밖으로 보였다. 황당하게도 집 건너 편에는 소련 보병도 엎드려 포격을 피하고 있었다.
지하실 창문이 있는 집을 발견하고는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지하실에는 6~7살의 아이들과 여성 2명이 있었다. 밖의 포격으로 바닥이 치솟았다가 내려앉고 벽의 돌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계단에 군화가 보이더니 한 명이 급하게 내려왔고 다른 한 명이 그 뒤를 따랐다. 러시아군이었다.
20살 정도의 젊은이로 철모를 쓰고 배낭을 메고 있었다. 두 명 모두 원형 탄창의 기관단총을 들었다.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고는 놀랐다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반대편 벽에 기대 앉았다.
적군은 내 군복을 보고도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은 아이들에게 윙크하거나 웃어 보이며 폭발음을 흉내냈다. 아이들이 공포에 움츠리자 주머니에서 가족사진을 꺼내 보였다. 나도 주머니에 있던 (전달을 부탁받은 미지의) 여성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소련을 구한 3대 무기 중 하나인 기관단총입니다. 위가 PPD-40이고 아래가 PPSh-41입니다. 독일군 기관단총을 복제한 PPD-40은 생산이 복잡해서 아래의 PPSh-41로 바꾸었습니다. 권총탄을 사용해 살상력이 떨어지고 사거리가 200m밖에 안되고 드럼탄창이 고장을 자주 일으켰지만 분당 1,100발이라는 놀라운 속도와 값싼 생산성때문에 대표적인 개인화기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독일군도 애용한 무기였습니다.
한 명이 철모를 벗어 소녀에게 씌워주었다. 철모가 워낙 커서 소녀의 머리가 안 보였다. 그리고는 맨머리로 벽에 기대는 순간에 계단 바로 위에 직격탄이 떨어졌다. 나는 머리를 감싸며 재빨리 몸을 숙였고 파편이 계단 아래로 쏟아지는 소리를 들었다.
헬맷을 벗어준 병사의 이마에 긴 파편이 박혔다. 아마 철모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면 막을 수도 있었을 파편이었다. 동료가 그의 맥박을 재더니 화가 난 듯 중얼거렸다. 그는 녹색철모를 쓴 소녀를 노려보고는 총을 집었다.
내가 먼저였다. 가슴에 두 발을 쏘고 머리에 다시 한 발을 쏘았다. 잠시 포격이 잠잠해졌다. 나는 여성에게 함께 서쪽으로 탈출하자고 권했다. 그들은 차라리 어떤 보복을 당하더라도 그대로 머무르겠다며 거절했다. 만일을 위해 소련군 시체를 지하실에서 꺼내 밖에다 버리고 그들도 집에서 떨어진 포탄 구덩이로 옮겼다.
피난민도 한 두 명씩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운전병이 몇 번을 시도한 끝에 판터의 엔진을 되살렸고 다시 언덕 사이의 통로로 향했다.
언덕 사이에는 12군의 88m와 헤처 구축전차 2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12군이 앞에 기다리고 있다며 속도를 내라고 재촉했다. 다행히도 배신자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 나가면서 더 많은 병사를 만났다. 대전차포 진지나 개인참호를 파고 탈출구를 방어하고 있었다.
탈출구는 겨우 3km 폭도 안되었고 양측면은 끊임없이 포탄이 떨어졌다. 12군은 탈출구를 막으려는 소련군의 협공을 간신히 막고 있었다. 적군 전폭기가 나타났지만 20mm 대공포와 탄약이 충분했다. 지나치게 용감했던 슈트르모빅 한 대는 날개에 불이 붙어 언덕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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